식칼로 수술하라고?

"식칼로 수술하라고?"

25일 대한의사협회가 원격의료의 안전성 연구가 시급하다는 기자회견을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의사협회는 정부가 시행중인 원격의료 시범사업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연구를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수행중이다.

이 연구는 당초 금년 1월말 종료할 예정이었으나, 연구기간을 4월말까지 연장하고 정부의 협조를 요청하였다. 정부가 시범사업에 활용하는 기기나 시스템의 확인은 물론 현장 접근마저도 협조하지 않아 시범사업 중인 원격의료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의료용구나 의료기기 내지는 의료장비는 물론 의약품 등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수단이다. 정보통신수단의 발전으로 환자나 의료 관련 정보를 생산, 유통 및 활용하는 정보시스템도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수단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의료행위는 사람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는 행위이므로 이에 사용되는 수단에 대해서는 안전성과 유효성에 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자 권한이다.

약품이나 의료기기는 물론 사소한 의료용 물품에 대해서도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의료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우리 정부 부처 중 식품의약처의 업무가 의약품과 의료기기 등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여 해당 제품의 사용을 허가하는 것이다.


원격의료시스템도 의사와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환자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수단이다.  원격의료에 사용되는 기기나 장비는 물론 정보시스템도 당연히 안전성과 유효성의 확보를 전제로 하여야 한다.

즉, 원격의료에 사용되는 혈압이나 혈당 등을 측정하는 기기의 안전성과 유효성은 물론, 측정 결과를 의사에게 전달하고 소통하는 정보시스템과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인건강정보의 안전성도 담보되어야 한다.


지금 원격의료 시범사업에 대하여 통상 규제를 하는 정부와 규제를 받는 의사협회의 입장이 상식선에서 이해가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의사협회는 원격의료라는 수단이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았으니 이를 검증한 후에 활용 여부를 결정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건강을 위하여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고 담보하여야 할 정부는 별 문제가 없으니 의료행위에 사용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형국은 의사들은 소독도 안 되고 무디고 커다란 식칼로 수술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정부는 문제없으니 식칼로 수술하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마땅한 수술용 칼을 사용할 수 없는 응급이나 특수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과도나 식도를 잘 소독하여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술용 칼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과도나 식도를 사용한다면 용납될 수 있는 일일까?

원격의료도 마찬가지이다. 응급이나 도서벽지 등 어렵고 예외적인 상황일 경우에는 안전성과 유효성을 포기하고라도 원격의료를 활용하는 것이 환자 내지는 국민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대면진료가 충분히 가능한 상황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보되지 않은 원격의료를 활용하자는 것을 어떻게 해석하여야 할까? 그것도 의료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책임지고 담보하여야 할 정부가 나서는 것을...

 

정부가 식칼로 수술하고 공업용 레이저로 수술하는 것을 장려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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