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9.08.17 06:55최종 업데이트 19.08.17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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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지도 않는 원격의료 추진

“기업 이윤이 아니라 환자 건강을 중심으로 두고 의료정책 펼쳐야”

[칼럼] 정명관 가정의학과 전문의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정명관 칼럼니스트] 또 원격의료 추진이다. 지긋지긋하다. 이런 글을 쓰기도 지쳤다. 하지만 자본은 끈질기다. 포기하지 않는다. 비도덕적이다. 그러나 정작 실망스러운 것은 보수 정부 진보 정부를 가리지 않는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이다.

원격의료는 이명박 정부 때 추진됐다가 의료민영화의 한 부분임이 드러나서 폐기된 바 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때 또다시 정체도 모호한 창조경제란 외피를 입고 부활해 정권 내내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반대를 무릅쓰면서 끈질기게 추진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원격의료만큼 박근혜 정부가 뚝심을 갖고 밀어붙인 의료정책은 없다. 사실은 의료정책이라고도 할 수가 없다.  보건복지부를 제쳐두고 기획재정부 주도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문재인 정부에서도 스마트진료 등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원격의료를 꾸준히 추진하다가 3년 차에 접어든 지난 7월 14일에 원격의료를 다시 정식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규제특구사업 가운데 하나로 강원도에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더불어민주당도 야당 시절에는 원격의료를 반대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에 원격의료에 대해 분명하게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보건복지부는 제쳐두고 중소벤처기업부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 사이에 도대체 무엇이 바뀌었다는 말인가? 정부는 그 근거를 확실히 밝혀야 한다.

의료계와 시민단체가 원격의료를 반대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그것이 국민건강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재벌과 산업계를 위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건강 증진 효과는 미미하지만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2014년 당시 계산으로는 환자와 의료기관이 마련해야 할 컴퓨터 장비와 생체 측정기 등 장비 비용만 최대 20조원이 들어가는 것으로 나왔다. 통신비용과 장비의 유지보수 비용을 더하면 비용은 더 늘어날 것이다. 이 막대한 비용은 어디서 나오는가? 세금으로 지급되든 건강보험으로 지급되든 결국은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다.

둘째는 원격의료 시범사업이 이미 국내외적으로 돼 있는데 굳이 시범사업을 또 하려는 것은 사업을 기정화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으로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영국에서도 비용에 비해 효과가 없어서 문제가 됐고 우리나라도 도서 지역에서 이미 시범사업을 했으나 시간과 비용에 비하여 효과가 미미했다. 심지어 시범사업 결과를 왜곡해 발표하기까지 했다.

셋째는 그렇지 않아도 의료전달체계가 엉망이고 의원과 의원, 의원과 병원이 무한경쟁을 하는 우리나라에서 원격의료는 국민건강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그나마 부실한 의료체계마저 붕괴시켜버릴 수 있기 때문에 우려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와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 심각성을 과소평가하거나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차의료기관에서 환자 진료를 하고 있는 필자의 경험으로 봐도 원격의료에서 할 수 있는 수준의 의료는 이미 시행 가능하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와 통화도 할 수 있으며 환자의 가족이 피부 병변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는 일도 있다. 

그 이상의 경우에는 원격의료로 충분치 않다. 의료의 질을 담보할 수가 없다. 환자가 의료기관에 오거나 의사가 환자를 방문해서 해결해야 한다.

수술 후 거동이 불편한 환자나 노쇠한 환자와 같이 꼭 필요한 경우에는 당연히 왕진을 가야 한다. 원격의료로 해결할 수가 없다. 20조원이나 투자해 건강증진에 획기적인 변화를 줄 일은 없는 셈이다. 

20조원이 얼마나 큰 금액이냐고 하면 2017년의 건강보험진료비가 69조원이고 이 가운데 약국비용 15조원을 뺀 54조원이 의료기관에 지급된 비용이며 그중에서
의원급에 지급된 비용은 13조7000억원이다.

매년 1조원씩만 일차의료 환경 개선에 투자한다면 그것이 훨씬 더 환자의 건강증진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기업의 이윤이 아니라 환자의 건강을 중심에 두고 의료정책을 펴기를 바란다. 기업의 로비에 의해 추진되는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당장 폐지돼야 한다.  

환자의 건강을 위해서 시급한 것은 원격의료가 아니라 일차의료기관의 질을 높이고 책임 의료를 할 수 있도록 정비하는 것이다. 원격의료에 들어갈 금액의 10분의 1만 투자해도 가능한 일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원격의료 # 정명관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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