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2.01.17 14:02최종 업데이트 22.01.1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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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성 위장관 증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 정신심리치료로 위장 증상을 조절한다

[칼럼] 장승호 원광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교수·대한소화기기능학회 뇌장축연구회 위원

대한소화기기능성질환·운동학회(대한소화기기능학회) 릴레이 칼럼 

메디게이트뉴스는 반복적인 소화기 증상을 나타내지만 객관적 검사에는 이상이 없는 '기능성 위장관 질환'에 대해 대한소화기기능성질환·운동학회 전문가들의 '릴레이 칼럼 및 희귀질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기능성소화불량증, 과민성장증후군, 기능성변비, 위식도역류질환과 같은 기능성 위장관 질환은 흔히 발생하지만 잘 낫지 않아 환자들의 삶의 질을 매우 나쁘게 만듭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다양한 기능성 위장관 질환에 대해 환자와 의료인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질환 정보 및 최신 연구내용을 다룰 예정이오니 많은 관심 바랍니다. 

①환자도 의사도 답답하고 괴로운 병, 기능성 위장관 질환
②과민성장증후군 환자의 식이·생활습관 조언
③이해가 필요한 위식도역류질환의 유지요법
④기능성 소화불량증 환자의 원인
⑤소화불량과 역류 증상 환자에서 올바른 식이요법
⑥내시경으로 치료하는 소화기 기능성 질환
⑦과민성장증후군 환자의 궁금증 해결을 위한 Q&A
⑧만성 변비, 그것이 알고 싶다
⑨기능성 위장관 증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 정신심리치료로 위장증상 조절  

이름도 생소한 뇌-위장관 질환, 과연 무엇인가요?

중요한 발표나 시험을 앞두고 소화가 안 되거나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었던 경험 다들 있으실 것입니다. 또한 직장이나 가정에서 다양한 사건들로 인해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가슴이 쓰려서 밤잠 설치셨던 분들 많으실텐데요. 이렇게 심리적 원인으로 유발되는 위장관 질환을 소화기내과에서는 '기능성 위장관 질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질환으로 소화불량과 과민성장증후군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이 글에서는 기능성 위장관 질환 중에서 증상이 심해 치료가 잘 되지 않고 정신의학적인 측면이 강한 환자군을 지칭하는 의미로 '뇌-위장관 질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습니다. 

뇌와 위장관이 서로 연결돼 있다구요?

위장관 질환은 정신건강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의 연구에서 정신증상이 위장관 증상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반대로 우울, 불안, 스트레스 등이 동반된 위장관 질환 환자에서 그 증상이 훨씬 더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쉽게 말해 뇌와 위장관은 수많은 신경세포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돼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이 복잡한 신경 고속도로를 사방팔방으로 질주하면서 배가 고플 때, 스트레스를 받을 때, 유해균을 섭취했을 때 인체가 적절한 반응을 통해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러한 뇌와 위장관 사이의 정보고속도로를 뇌-위장관 축이라고 부릅니다.(그림) 이 축을 통해 다양한 정보들이 전달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최근에는 위장관을 제 2의 뇌라고까지 부르고 있습니다.실제로 최근 일반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세로토닌이라는 물질은 뇌뿐만 아니라 장에서 훨씬 많이 만들어 집니다. 물론 장에서 만들어진 세로토닌은 중추신경계인 뇌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뇌보다 장에 세로토닌이 많다는 사실은 장 자체가 수많은 신경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죠. 하지만, 어떠한 심리적 원인으로 인해서 이러한 신경전물질들에 균형이 깨지게 되면, 배가 아프고 소화가 안 되는 것 같은 위장관 증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을 통해서 코티솔이 분비되는 스트레스 대처반응이 나타납니다. 이 반응의 시작점은 바로 시상하부에서 CRF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는 것인데 CRF는 자율신경계를 통해 위와 장의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위의 운동성은 감소시키고 대장의 운동성은 증가시켜 더부룩하게 소화가 안되거나 화장실에 급히 가게 하고 심하면 설사를 하기도 하죠. 

 
뇌-위장관질환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은 어느 정도나 되나요? 
 

사실 뇌-위장관 질환이라는 개념이 일반에 알려진 것은 최근의 일이기 때문에 정확한 유병률이 아직 보고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소화기 내과에서 기존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과민성장증후군의 경우 전체 인구의 27%까지, 소화불량증은 25%까지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심리적 원인이 고려되지 않았지만, 이중 상당 수는 뇌-위장관 질환에 해당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최근 증가하고 있는 직장 내 과로나 대인관계 갈등으로 인해 직무스트레스가 높아지면서 뇌-위장관 질환의 위험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전라북도에 근무하는 소방공무원 중 1200 여명을 대상으로 뇌-위장관 질환과 심리적 건강 상태를 조사했을 때, 소방공무원들은 일반인에 비해 월등히 높은 뇌-위장관 질환의 유병률을 나타냈고, 이러한 증상들은 직무스트레스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뇌-위장관 질환의 진단과 치료 

가끔 과민성장증후군으로 잘 낫지 않아 대학병원까지 방문했는데 정신의학과 진료를 권유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뱃속이 불편한데 소화기내과가 아닌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라고 하니 이해가 잘 안될 수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위장관 증상이 있는 경우 먼저 내과에서 정확한 문진과 혈액학적 혹은 내시경적 검사 등을 시행하고 그 검사에서 이상소견이 발견되지 않으면 기능성 위장관 질환 진단하에 치료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내과적 치료에도 증상이 지속된다면, 심리적 원인이 더 크게 작용하는 뇌-위장관 질환을 고려해야하는데 이런 환자의 경우 내과와 정신의학과 사이의 긴밀한 협진이 중요합니다.

현재 제가 진료중인 뇌-위장관 클리닉에서는 소화기내과에서 협진의뢰된 환자들에게 정신의학적 면담을 진행하고 필요시 임상심리전문가에 의해 전문심리검사, 신경생리검사, CT나 MRI 등 뇌영상의학적 검사를 진행해서 심리적 문제들에 대한 전문적이고 정확한 진단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뇌-위장관 클리닉에서는 소화기내과에서 의뢰받은 환자에게 먼저 정신의학적 심층 면담을 시행합니다.

겉으로는 건강해 보이고 근심걱정 없이 즐거워 보이는 분들도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어려움들을 털어놓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어렸을 때 부모님과의 관계나 성장 과정에서의 학대나 방임, 또한 최근의 스트레스 등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필수적입니다. 심리적 요인으로는 건강에 대한 과도한 걱정이나 염려가 가장 중요합니다. 또 가족이나 친구, 동료들이 얼마나 내편이 되어주는가를 평가하는 사회적 지지도 매우 중요한 요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심리적인 어려움이 심하지 않은 분들은 정신의학적 면담만으로도 뇌위장관 증상이 많이 호전됩니다.

제 경우에도 수 년간 복통과 소화불량으로 고생하셨던 분들이, 30여분 정도의 정신의학적 면담만으로 증상이 급격히 호전된 분들을 많이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수면장애나 불안이 심한 환자의 경우 약물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정신과 약물이라고 하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무섭게 생각하는데 적절한 약물치료를 통해서 수면의 질을 높이고, 불안을 낮추기만 해도 위장관 증상은 훨씬 좋아집니다. 또한 약물치료는 뇌와 위장관 사이를 연결해주는 다양한 물질들의 균형을 잡아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건강에 대한 염려가 심한 분들 중에는 생각의 기준이 다소 부정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진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을 평범한 일들도 다른 사람보다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마음속에 오랫동안 담아두는 경향이 강한데, 이런 분들께는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부정적으로 기울어진 사고방식을 교정하고 보다 현실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드려서 환자분들이 사로잡혀있는 이런 위장 증상에 대한 고통에서 좀 벗어나서 현재의 즐거움을 느끼고 심리적 안정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게 됩니다.  

국내 뇌-위장관 질환 치료 현실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위와 같은 진료 형태가 활성화되지 않아서 뇌-위장관 클리닉이 거의 없는 현실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정신건강의학과와 내과라는 두 진료 분야의 학문적 교류나 환자에 대한 지속적인 토론이 필요하지만, 국내 의료 현실에서는 쉽지가 않습니다. 또 한가지 이유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에 대한 환자분들의 두려움입니다. 뇌-위장관 질환으로 고통받으면서도 정작 그 원인을 찾고자 권유를 하면 나는 그런 정신적 문제가 아니라면서 거부감을 느끼시는 분들이 매우 많습니다. 정신의학과 진료를 받을 때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도 작용합니다. 따라서 뇌-위장관 질환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과 국내에서 정신의학적인 치료에 대한 인식의 개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대적으로 미국의 경우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소화기내과 전문의가 통합진료를 시행하는 뇌-위장관 질환 전문 치료 병원이 많이 있고 환자들이 정신의학과 진료에 대해 거부감이 덜하기 때문에 난치성 환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치료법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경험에서 뇌-위장관 클리닉은 난치성 기능성 위장관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에게 희망의 빛을 줄 수 있는 유용한 치료법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향후 국내에서 뇌-위장관 클리닉의 활성화가 이뤄지기를 기대합니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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