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한마음병원 하충식 이사장
기자는 한 달 전 취재차 창원 한마음병원을 방문해 하충식(55) 이사장을 만났다.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이사장실에 들어서자 하충식 이사장은 반갑게 악수를 건네며 한마디 던졌다.
"선풍기 틀면 되겠지요?"
그날 창원의 날씨는 거의 40℃에 달했고, 후텁지근하기 짝이 없었다.
비서가 손님에게 미안하다는 듯 에어컨을 켜려고 하자 "선풍기 바람이면 됐지!"라고 말해 모두를 뻘쭘하게 만들었다.
하충식 이사장은 한마음병원, 한국국제대의 운영자다.
지난 5월에는 경남의 유일한 특1급 호텔인 창원 풀만 호텔까지 인수했다.
여기에다 창원 중앙역 인근에 2만 4천여9㎡의 부지를 확보하고 조만간 840병상 규모의 초대형 병원 설립에 들어간다.
창원중앙역 인근에 설립 예정인 840병상 규모의 병원
이 만하면 산부인과 의사 중 가장 출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나는 평소 걸뱅이처럼 산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는 2년 전부터 아반떼를 타고 다닌다.
그 전 15년은 엑센트를 몰았다.
가끔 창원을 벗어나야 할 때에는 병원장 차를 얻어 탄다고 한다.
"사실 시내에서는 작은 차가 편하고, 주차하기도 좋다. 누가 걷어차고 가도 별로 속상하지도 않고…"
그는 화장실 변기 물도 하루에 딱 두 번, 저녁에 한번, 출근할 때 한번 내린다고 했다.
수돗물을 아끼기 위해.
쓰다 남은 쪼가리 비누는 발목 스타킹에 넣어 세수 하면 잘 닦인다고 귀띔했다.
외부 약속이 없으면 식사는 늘 직원식당에서 해결한다.
병원에 VVIP 골프 회원권이 있지만 그는 골프를 치지 않는다.
운동도 돈이 들지 않는 족구, 등산, 배드민턴만 한다.
술은 막걸리면 족하다.
왜 이렇게 안 쓰고 사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중국 마오쩌둥이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지 아느냐"면서 "대장정에 나설 때 병사들과 똑같이 입고, 먹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 자신도 병원 식구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직원들보다 더 검소하게 생활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그는 직원들에게 에어컨 온도를 28도에 맞추고 선풍기를 틀면 더 시원하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선풍기만 돌린다.
또 병원 봉직의사들이나 직원들에게 VVIP 골프 회원권을 이용하라고 하고, 자신은 배드민턴을 치고, 작은 차를 타고 다닌다.
이런 자린고비 의사가 남을 돕는 일이라면 물 쓰듯 돈을 쓴다.
1년에 그가 기부하는 돈이 10억원이 넘는다고 하니 이런 반전이 또 있을까?
얼마 전 그는 자신의 모교인 조선의대에 3억원 기부 약정을 했다.
매년 한 번씩 버스 55대를 대절해 경남지역 장애인시설, 고아원 등에서 생활하는 청소년들과 야유회를 간다.
경남지역 저소득층 자녀 1300명의 교복도 자비를 들여 맞춰 주고 있다.
그는 진주와 창원 지역 저소득층 자녀 수학여행 경비를 매년 지원하고 있다.
내년에는 지원비용을 2억원으로 늘려 경남 전체 저소득층 자녀의 수학여행 경비를 대줄 생각이다.
2011년 국민이 직접 숨은 유공자를 발굴, 시상하는 제1회 정부 포상 국민추천제에 고 이태석 신부와 함께 선정돼 국민포장을 받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직원들이 애써 번 돈을 내 주머니에 채우지 않고, 이웃에게 베푸니까 아껴쓰라고 잔소리해도 이해하고 따르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검소하고 겸손하면 모래밭에 던져놓아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자식들한테도 늘 이야기하는데, 나는 애들한테 모범을 보여야 하니까 늘 이렇게 쇼를 할 수밖에 없다"고 농담 했다.
그는 2012년 국내 처음으로 일명 '뽁뽁이'로 불리는 비닐 단열시트지를 사용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이렇게 해서 난방비용이 20% 줄어들자 창원시청을 찾아가 매년 1억원씩 20년간 저소득층 자녀 교복비로 기부하겠다고 '통큰' 약정을 맺었다.
악착같이 아껴서 남에게 베푸는 재미로 사는 듯하다.
또 그는 창원의 '청소대통령'으로 유명하다.
그는 오전 7시 30분 창원 한마음병원에 출근해 40분간 병원 인근 동네를 청소한다.
하충식 이사장뿐만 아니라 병원 직원들이 구역을 나눠 함께 쓰레기를 치운다.
1995년 시작해 20년이 넘다보니 직원들도 7시 30분 출근, 40분 청소를 당연시했다.
그는 "병원을 개원하고 보니 주위가 너무 지저분하더라"면서 "손님을 맞을 때 마당을 쓸고 청소 하듯이 환자와 이웃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매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정치하려고 쇼 하는 게 아니냐고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기자도 똑같이 물었다.
"정말 정치에 관심이 없으세요?"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마음을 담으면 오래할 수 있다. 20년간 쇼하는 건 고문일거다. 정치는 내가 할 일이 아니다."
그는 마음을 담은 덕에 한국기록원으로부터 '최장기간 단체환경미화 자원봉사' 기록을 인정받았다.
한국기록원이 2010년 국내 기네스기록으로 인정한 '최장 자원봉사'
그의 조선의대 출신이다.
그는 고등학교 때 동기 중 100명이 서울대에 들어갔는데 자신은 가지 못했다.
이 기억은 그에게 영원한 콤플렉스(?)다.
그는 "지방대 출신도 열심히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런 콤플렉스가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인도한 것이다.
이제 그의 다음 목표는 외료선교로 향하고 있다.
"100년 전 미국 선교사들이 도와준 덕에 우리나라 의료가 이만큼 성장했다. 이제 우리가 갚아야 한다. 새 병원을 키워 의료선교하는 게 또 다른 꿈이다."
그는 벌써 짐바브웨에 5억원 지원을 약속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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