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보의가 무엇인가요?"... 섬·교정시설·병원선·민간병원 등 다양한 곳에서 일하는 공중보건의사들
[공중보건의사 기획①] 역할의 다양성·복잡성 특성 가진 공중보건의사 직역별 업무와 고충은
공중보건의사 제도는 여러 직역이 섞여 있고 법적 지위와 운용 방식 등이 복잡해 역할의 중요성에 비해 제대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시대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고 처우 개선 조치도 미뤄졌다. 공중보건의사 기획은 복잡한 공중보건의사 제도의 이해를 돕고 현재 공보의 제도가 가진 상황과 문제점을 살펴보기 위해 마련됐다. 또 이번 기획은 공중보건의사의 역할을 제고하는 방안을 제안함으로써 공중보건사업을 강화하는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공중보건의사 기획① "섬보의가 무엇인가요?"... 섬·교정시설·병원선·민간병원 등 다양한 곳에서 일하는 공중보건의사들 공중보건의사 기획② 의사수 증가·무의촌 해소·공보의 감소 등 시대는 변했는데 40년 된 낡은 공보의 제도는 그대로 공중보건의사 기획③ 미래 공보의의 역할은 근거기반 의학으로 지역 맞춤형 보건사업 주도하는 전문가
[메디게이트뉴스 정다연 기자] 공중보건의사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 의료 인력이 부족한 곳으로 향한다. 이들은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농어촌 등 보건의료 취약지역 및 보건의료시설에 배치돼 공중보건업무에 종사한다. 신분은 임기제 국가 공무원이다.
으레 공중보건의라고 하면 보건소 또는 보건지소에 근무하는 이들을 떠올린다. 실제로 공보의들은 보건소와 보건지소 뿐만 아니라 교정시설, 국공립병원, 응급의료 취약지의 민간병원, 병원선, 시·도청 등 다양한 곳에서 복무하고 있다.
2019년 기준으로 공중보건의사로 복무하는 의사들은 약 2000명에 달한다. 직역별로는 보건소 350여명, 보건지소 1300여명, 국공립병원 150여명, 응급의료 취약지의 민간병원 100여명, 교정시설 39명, 시·도청·질병관리본부·하나원 등 국가보건기관 29명, 병원선 6명, 서울역 무료진료소 2명 등이 배치돼 있다.
다양한 직역이 있는 만큼 공보의들이 처한 환경도 고충도 저마다 다르다. 게다가 공보의는 대체 복무의 성격을 가지고 업무를 하기 때문에 임의로 근무 지역을 옮길 수 없고, 3년이라는 한정된 기한 동안만 근무한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공보의 업무 전반에 걸쳐 공통으로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 안전 문제, 인력 부족, 의료 질 저하 등이다.
섬에 배치된 '섬보의' 약 100명... 공보의 안전·주민 건강 위해 추가 인력 배치해야
공보의의 약 80%는 농어촌 등 의료취약지의 보건소와 보건지소로 배치를 받아 근무한다. 보건(지)소에 배치된 공보의는 약 1650명이다. 이중 연륙도를 제외하고 섬에서 근무하는 공보의는 전국에 약 100명이다. 이들을 '섬보의(섬에서 근무하는 공보의)'라고 부른다. 섬이 많은 전남 지역에만 무려 44명의 섬보의가 있다. 섬보의들은 인천 25명(백령도 병원 7명 포함), 경북 지역 17명, 경남 지역 6명, 제주 지역 4명, 전북 지역 4명 등으로 배치돼 있다.
보건(지)소에 근무하는 공보의들이 전부 똑같은 환경에서 일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배치 지역 환경에 따라 업무 환경이 천차만별이다. 특히 섬보의들은 내륙 지역의 보건(지)소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인한 안전 문제, 과중한 업무로 인한 부담과 피로도 등에 시달린다.
원하는 처방을 받지 못했다고 흉기를 들고 보건지소 앞에서 서성이는 정신질환자로부터 위협을 받는 섬보의 등 사례도 있다. 공보의들은 섬이라는 내륙과 단절된 공간이라는 특성과 나고 자란 지역이 아닌 낯선 곳이라는 특성 떄문에 이런 위협을 맞닥뜨릴 때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섬보의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조치는 현재 전무한 상태다. 심지어 섬보의들은 부족한 의료인력 때문에 대개 보건지소에서 혼자 근무한다. 위험한 상황이 발생해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각 섬의 보건지소에 배치되는 공보의 인원은 2명이다. 과거에는 전문의 1명의 배치가 의무였지만 공중보건의사 중 전문의 수가 줄어든 탓에 요즘에는 거의 대다수 일반의들이 섬보의로 채워진다. 이들은 10일을 연속근무하고 4일 휴무하는 방식으로 교대로 섬 보건지소에 머물며 근무한다.
문제는 섬에 별도의 민간 의료기관이 없는 곳이 많아 24시간 온콜 대기 상태라는 점이다. 작은 섬이라고 해도 주민 수가 1000명 이상인 곳도 많기 때문에 공보의는 10일 연속근무를 하는 동안에 낮에도 진료하고 밤에도 낮과 동일한 수준으로 근무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야간에 혼자 근무하는 섬보의들은 응급환자가 오면 섬 밖으로 이송을 위해 해양경찰이나 구조대에 연락을 취하고 이송을 위한 행정 절차를 처리하면서 동시에 환자를 감별해 응급 처치를 해야하는 등 1인 3역을 해야 한다. 의료의 질을 위해서라도 전문의 배치나 인력 증원 등 대책이 필요하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조중현 회장은 "지역 주민들로부터 위협을 받는 섬보의들을 위한 대책이 미흡하고, 야간 업무 강도가 주간과 똑같아 과중한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섬보의들이 많다"며 "사실상 강제 배치다 보니 공보의들은 근무지를 쉽게 변경할 수 없고 업무 환경을 임의로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공보의의 안전을 보장하고 섬 주민들의 건강권을 위해 야간에 다른 근무 인력이 함께 배치돼 근무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며 "소방서처럼 현업기관으로 인정하고 섬에 배치되는 공보의 숫자를 2명에서 3명으로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수감자 건강 위해 고군분투하는 교정시설 공보의들
교도소에 근무하는 의사에 대해서는 최근 화제가 됐던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를 통해 비교적 널리 알려졌다. 교도소 등을 비롯한 교정시설에는 '닥터 프리즈너'에 등장한 '의료과장'뿐 아니라 공보의도 있다. 인원은 36명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교정시설에서 맡은 역할과 책임의 무게는 매우 크다.
환자를 외부 병원으로 이송하는 일 자체가 어려운 교정시설에서 공보의들은 제한된 의료 인프라와 부족한 의료 인력을 극복하기 위해 방대한 양의 공부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보의 내 전문의 부족 현상 등으로 인해 임상 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의사들이 교정시설에 배치돼 홀로 수백의 수감자를 담당해야 하는 경우가 늘어 문제가 많다.
공보의 배치보다는 교정시설 의료인력 증원을 위한 인센티브 도입 등 전문 의료인력을 확보하려는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교정시설 공보의들의 가장 큰 고충은 교정시설의 폐쇄적인 환경 특성상 어려운 환자 이송 절차로 인해 봉합, 간단한 지방종 제거 등 외과 시술을 포함해 전 질환을 감당해야 하는 업무 부담이다. 전문의가 교정시설 내에 함께 상주하는 경우도 있지만 없는 경우에는 공보의 혼자서 교정시설 내 전 수감자를 담당해야 한다.
이뿐 아니다. 교정시설 공보의들은 교정시설 밖 병원으로 나가기 위해 증상을 과장하는 수감자들을 상대로 엄격하게 감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수감자들로부터 협박을 받는 사례도 많다. 휴일에 교정시설 내에 의료인력이 부재한 상황에서 응급 환자가 발생하면 전화로 감별하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공보의가 전해 들은 내용을 가지고 이송 결정을 해야 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조 회장은 "교정시설에서 봐야 하는 질환 범위는 넓고 수감자 중에 정신질환을 앓는 경우도 많다. 규모가 큰 교정시설은 의료과장과 간호인력이 있지만 작은 곳에서는 공보의 혼자서 수감자 전체를 보는 경우도 있다"며 "공보의 중에는 임상경험이 부족한 일반의들이 대다수인데 이를 공보의에게 떠맡기는 것 자체가 수감자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일이다"고 지적했다.
조 회장은 "수감자 진료를 공보의 혼자 맡다보니 퇴근 이후에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공보의에게 전화가 온다. 하지만 응급질환 자체가 전화로 감별하기 어렵다. 시진, 촉진, 청진, 타진 다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을 생략한 채로 병원 이송을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교정시설 공보의들이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애초에 교정시설이 근무하려는 사람이 부족하다. 충분히 숙련된 인력이 교정시설에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도청, 병원선, 민간병원에서 일하는 공보의들
공보의들은 시·도청, 질본, 병원선, 민간병원 등에도 있다. 시청 또는 도청에서 공보의들은 역학조사관으로도 근무한다. 역학조사관은 메르스 등 감염병 감염 우려가 있는 지역에 다녀온 주민이 감염병 확진을 받으면 격리조치, 접촉인 경과 관리 등 감염병 관리를 한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발생시, 역학조사관의 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는 인력만 부족한 것이 아니라 역학조사관의 전문성도 결여돼 있다. 역학조사관은 시·도에서 의무로 2인 이상 임명하도록 돼 있다. 지역 전체에서 발생하는 감염병 관리를 담당하는 만큼 역학조사관의 업무는 전문성이 중요한데 현재 대부분 시·도에서는 역학조사관으로 공중보건의사 1명, 일반직 공무원 1명을 두는 경우가 많다.
역학조사관은 지역 내에서 감염병 환자가 발생하면 실시간으로 연락을 받아야하므로 365일 온콜 상태고, 역학조사를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업무는 전문적인 역학조사를 수행할 역량이 부족한 3년 임기직 공무원 신분인 공중보건의사 1명에게 달려 있다.
시·도 내에서 역학조사관의 업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업무 영역이 명확하지 않은 점도 문제다. 역학조사관으로 근무했던 공보의들은 역학조사 유관 업무가 아닌 보건사업의 업무를 맡는 일도 많다고 호소한다.
병원선은 섬들을 방문하며 섬 주민들에게 의료를 제공하는 선박으로 시·도청에 소속돼 있다. 병원선 공보의들은 대개 항구에 숙소를 구하지만 멀리 나가면 항구에 돌아오지 못할 땐 배에서 숙박하기도 한다. 그만큼 근무 여건이 열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병원선 공보의들은 환자가 아닌 주민들이 상비약을 구하기 위해 병원선에 와서 약을 달라고 요구하고 병원선에서 받은 약을 섬 내에서 되파는 고충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민간병원에 근무하는 공보의들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공보의라는 뜻으로 '병공의'로 불린다. 병공의들은 전국에 약 100여 명 정도다. 민간병원에 공중보건의사들이 배치되는 이유는 의료취약지에 응급의료를 담당할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의료취약지는 의료 환경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해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의료취약지의 의료 환경 변화가 제때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되고 있다. 민간병원에서 배치된 병공의들은 병원장과 개별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기 때문에 공중보건의사를 배치하는 목적과 다르게 병원의 요구에 따라 응급의료가 아닌 민간병원의 수익 창출을 위한 피부·미용 업무에 내몰리기도 한다.
조 회장은 "의대를 졸업하고 바로 공중보건의사로 배치 받는 사례가 많다. 이 때문에 민간병원과 계약서를 쓸 때 불합리한 근무 요건인 줄 모르고 계약에 서명해 착취 수준으로 일하는 공보의들이 많다"며 "병공의관련 문제가 많지만 이들이 개별적으로 계약을 하고 일하는 만큼 사례 파악조차도 어렵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공중보건의사 제도의 취지가 의료취약지에 의료를 전달하는 일인만큼 민간병원의 수익 창출 도구로 공보의가 쓰이지 않도록 복지부 차원의 전수조사가 필요하다"면서 "또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문제가 되는 병원에 공중보건의를 배치하는 것을 검토해야 하는 등 병공의를 배치하는 민간병원에 대한 실태 파악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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