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시행을 앞두고, 법의 적용을 받는 대학교와 공공기관 의사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일부 조항의 표현이 모호해, 처벌받는 상황을 정확히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많은 언론이 모호한 기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혼란이 가중됐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런 기사의 내용을 일일이 반박하며, 잘못된 법리해석을 교정해주고 있다.)
의사가 우선 고려해야 할 사항
1. 내가 속한 의료기관이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는지 확인한다.
2. 대가와 관계없이 한 번에 100만원이 초과하는 금품 혹은 연간 동일인으로부터 300만원이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하면 처벌받는다.
3. 금품 수수의 크기 혹은 유무와는 관계없이 누군가에게 청탁을 받으면 무조건 처벌받는다.
4. 직무관련성이 있는 사람에게 금품이나 경조사비를 대가 없이 받더라도, 가액에 제한이 있다. 그 액수를 넘으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김영란법 시행을 몇 주 앞두고, 의사들이 자주 접하게 될 상황을 7가지로 나눠 의사 중심으로 정리해봤다.
이 기사는 김영란법 원문을 기본으로 하되, 그동안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교정해준 다양한 사례를 참고해 의사에게 맞는 상황으로 각색했다.
추후 법의 일부 조항과 관련한 대통령령이 추가될 가능성을 고려해, 다소 모호한 해석이 있다는 점을 밝힌다.
1.환자 촌지 : "환자 촌지도 청탁이다?"
CASE.1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운영하는 I병원 소속의 외과 A과장.
A과장은 담낭염을 진단받은 B씨에게 담낭절제술을 시행했다.
환자 B씨의 보호자는 퇴원 때, A과장에게 감사하다며 7만원 상당의 와인을 선물했다.
B씨는 퇴원 후 외래를 통해, 지속해서 A과장에게 추적관찰 받을 예정이다.
-A과장이 근무하는 I병원은 공직유관단체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김영란법 적용 기관이다.
김영란법이 처음 언론에 언급될 당시엔 주로 제약회사나 의료기기회사와의 관계만을 우려했지만, 사실 의사들이 가장 많이 대면하는 사람은 환자와 그 보호자다.
현재 대부분 법률가는 환자를 의사와 직무관련성이 있는 관계라고 해석하고 있다.
보호자 선물을 학부모 촌지와 같은 행위로 볼 것인지는 약간의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김영란법 제8조 제3항 제8호엔 '사회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을 법 적용의 예외사항으로 인정했는데, '사회상규'에 해당하는 상황이 아직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례가 나오기 전까진, 일단 법을 엄격하게 적용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위 예에서 환자 B씨는 수술 후 퇴원했지만, 외래에서 진료를 받아야 해 A과장과 직무관련이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학부모 – 교사와의 관계는 학생이 학교를 떠나는 순간 끝나게 돼, 졸업 후 교사에게 주는 선물은 촌지가 아니라고 판단하지만, 이 경우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만약 보호자의 선물이 (청탁이 아닌) '원활한 직무수행, 사교·의례 등'이라고 판단되더라도, 예시에선 와인이 (김영란법에서 허용한) '금품' 5만원의 가액을 초과해 A과장에겐 과태료가 부과된다.
2.전공의 선발 청탁 : "수련의 때 눈도장 찍으러 함부로 인사 하지 말자!"
CASE.2
사학재단 소유 Y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정형외과 B교수.
어느 날 이 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던 C씨는 2만원짜리 음료수 세트를 들고 B교수를 찾는다.
C씨는 B교수에게 자기를 내년 정형외과 전공의로 선발해 달라고 부탁한다.
-사립학교법에 따라 Y대학병원은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는 의료기관이다.
C씨의 부탁은 김영란법 제5조 제1항 제3호의 '채용·승진·전보 등 공직자등의 인사에 관하여 법령을 위반하여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공직자 등(사학재단 직원과 기자 포함)이 청탁을 받는 경우, 금품의 수수 여부(혹은 액수)와는 상관없이 처벌받는다.
청탁을 받은 자는 거절의 의사를 명확하게 표시해야 하고, 동일한 부정청탁을 다시 받은 경우엔 소속기관장에게 서면으로 신고해야 한다.
이와 같은 절차를 밟는 경우,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다.
제7조 제1항 공직자등은 부정청탁을 받았을 때에는 부정청탁을 한 자에게 부정청탁임을 알리고 이를 거절하는 의사를 명확히 표시하여야 한다.
제7조 제 2항 공직자등은 제1항에 따른 조치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부정청탁을 다시 받은 경우에는 이를 소속기관장에게 서면(전자문서를 포함한다. 이하 같다)으로 신고하여야 한다.
만약 B교수가 C씨의 청탁을 받다 적발되면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C씨에겐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김영란법에선 예외적으로 ▲절차와 법에 따라 특정한 행위를 요구하거나, ▲공개적으로 특정 행위를 요구하는 것을 정당한 청탁으로 규정했다
3.환자 스케줄 끼워넣기 : "김영란법을 핑계로 스트레스에서 해방하자!"
CASE.3
국립 S대학병원에서 신경외과 주임과장인 A교수.
그의 수술 스케줄은 항상 6개월 후까지 꽉 차 있다.
어느 날 A교수의 부인은 친구인 J씨를 만난다.
이 자리에서 J씨는 자기 남동생이 뇌하수체 선종을 진단받았다며, 동생이 A교수에게 일찍 수술받도록 친구에게 부탁한다.
그리고 4만원짜리 넥타이를 함께 건넨다.
A교수 부인은 남편에게 친구를 만난 사실을 알리고 선물도 전달했다.
J씨 남동생은 수술을 앞당길 수 있었다.
-국립대학병원은 공직유관단체로 김영란법의 적용 의료기관이다.
다소 모호한 면이 있는 환자 촌지와는 다르게, '스케줄 끼워넣기'는 제삼자의 피해가 예상돼 확실한 청탁이다.
J씨는 남동생 편의를 위해 친구에게 청탁했고, 둘 사이에 오간 금품의 유무나 액수와는 무관하게 A씨는 처벌을 받는다.
(A씨는 부인에게 청탁 소식을 듣는 순간, 바로 신고했어야 한다.)
만약 A씨가 부인에게 청탁 사실을 전해 듣지 않았다면, A씨는 처벌을 받지 않고 부인만 받는다.
4.금품 수수 : "세상에 공짜는 없다!"
CASE.4
C교수는 S병원 과장 당시 열심히 썼던 논문을 인정받아, 현재 사학재단 소유의 Y대학병원에 채용될 수 있었다.
(S병원은 의료법인 소유로, 대학병원이나 공공의료기관이 아님)
최근 C교수는 S병원 과장 당시 잘 알고 지내던 의료기기 회사 사장 K씨를 만났다.
K씨는 이 자리에서 S병원 당시 신경 써준 점에 감사하다며 C교수에게 150만원 상당의 항공권을 선물했다.
K씨는 현재 의료기기 사업을 접고, 미국 이민을 고려 중이다.
-C교수는 현재 사학재단에서 근무하는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자다.
제8조 제1항 공직자등은 직무 관련 여부 및 기부·후원·증여 등 그 명목에 관계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등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서는 아니 된다.
K씨가 건넨 항공권은 100만원을 초과해, 설령 직무관련이 없더라도 C교수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만약 항공권이 100만원 이하였다면 어떻게 될까?
먼저 C교수와 K씨의 '직무관련성'과 둘 사이에 '청탁'이 있었는지를 따져야 한다.
예시에서 K씨는 항공권을 건넨 당시, 의료기기 사업을 접었기 때문에 C교수와의 직무관련성이나 청탁 가능성 모두 작아 보인다.
그러나 K씨가 건넨 항공권이 100만원 이하고 대가성과는 관련 없더라도, (일반적으로 항공권이) 김영란법에서 명시한 금품 가액 5만원을 초과해 최소한 과태료의 대상이 된다.
제8조 제 2항 공직자등은 직무와 관련하여 대가성 여부를 불문하고 제1항에서 정한 금액(회당 100만원, 연간 300만원) 이하의 금품등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서는 아니 된다.
제8조 제3항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금품등의 경우에는 (중략) 수수를 금지하는 금품등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원활한 직무수행 또는 사교·의례 또는 부조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물·경조사비·선물 등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가액 범위 안의 금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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