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와 국내 최대 의사 전문 포털 메디게이트는 국제의료기기·병원설비전시회 2019(KIMES 2019) 기간 중 코엑스 컨퍼런스룸에서 의사와 예비 의사를 위한 특별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딴짓하는 의사들', '지구醫', '의료소송 제로' 등 3가지 세션으로 구성됐다.
‘딴짓하는 의사들’ 세션에서는 의사 면허를 가지고 임상의사가 아닌 다른 직업인의 삶을 성공적으로 살고 있는 비(非)임상 의사들의 직업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김현정 차바이오 F&C 연구개발사장 겸 분당차병원 피부과 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료실 대신 국회에 입성한 이유(김현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윤일규 의원실 비서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의사는 어떤 역할을 하나(유승현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지원센터장) ▲AI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의사(김민성 루닛 메디컬 디렉터) 등의 강의가 이어졌다.
[메디게이트뉴스 정다연 기자] "인턴 시절, 소아응급실에서 36시간 동안 한숨도 자지 못하고 일을 마친 뒤 퉁퉁 불은 컵라면을 먹으며 선배들에게 질문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일해야 할까', '나한테 진료받는 환자는 안전할까', '정말 환자 수에 비해 의사 수가 적은 걸까'. 다들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며 커피 한 잔을 사줬습니다. 그 질문이 저를 국회로 이끌었습니다."
내과 전문의인 김현지 국회 비서관은 진료실 대신 국회로 간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보건의료 정책 기사를 읽던 의대생이 정책을 만드는 국회로 오기까지
김 비서관은 서울의대를 졸업한 내과 전문의로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다가 국회 비서관이 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윤일규 의원(더불어민주당)실의 5급 비서관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현재 국회에서 유일하게 의사 면허를 가진 비서관이다.
김 비서관은 "의사가 특채로 보건복지부에 들어가면 5급 사무관이다. 국회 비서관도 같다. 국회 비서관은 주로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일을 하며 업무 범위가 매우 넓다. 나의 경우에 상임위원회, 국정심사, 의정활동 등 보건의료를 전문으로 맡고 있다. 일은 굉장히 많고 힘들다. 연봉은 요양병원에서 근무할 때의 절반도 안 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김 비서관은 "의대 시절 부터 자발적인 아웃사이더였다. 친구들과 관심사가 달랐다. 의대에 들어온 것을 후회했으나 우리나라 최고의 의대를 박차고 나올 용기가 없었다. 학생 때부터 졸업하면 뭘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김 비서관은 "임상의사의 길은 끌리지 않았다. 다양한 경험을 했다. 본과 4학년때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인턴쉽을 했고 전공의 4년차때 프로젝트 말라위에 참여했다. 친구들과 다른 경험을 하려고 했다. 이익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에서 부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싱가포르에서 의사를 하려고 알아보기도 했다. 또 보건복지부, 로펌, 컨설팅, 국회 보좌관, 국회 입법조사처, 의협, 제약회사 등등 임상 현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일하는 선배들을 만나봤다"며 "스스로 보건의료 정책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상태로 10년을 고민했다"고 덧붙였다.
김 비서관은 "그러다 전공의 1년차때 병동에서 전공의법이 통과됐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 무렵, 나는 같은 연차 전공의 2명이 그만두고 72시간을 연속으로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하고 일했다"며 "내가 던진 질문에 누군가는 답해줬다고 생각했다.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 전공의의 잡일을 줄이고 전문의를 고용하면 의사 수는 부족하지 않았다. 그때 뭔가를 바꿀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공의 3년차때 대한전공의협의회 활동을 한 것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주변에는 보건의료 정책에 관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친구들이 많지 않았다. 친구들은 논문 쓰느라 바빴다"며 "대전협 활동을 하면서 수련규칙, 수련계약서 초본을 직접 만들었다. 전공의들의 목소리가 현장에 반영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밝혔다.
남몰래 보건의료 정책 기사를 읽던 의대생은 보건의료 정책을 직접 만들 수 있는 국회로 입성했다. 김 비서관은 정책하는 의사가 돼 만인이 지속가능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김 비서관은 "사람들이 윤일규 의원과 원래 친분이 있었는지 묻곤 한다. 친분이 전혀 없었다. 보좌진 채용 공고는 공개돼 있다. 윤일규 의원이 재보궐로 당선됐고 그때 비서관 채용 공고를 통해 국회에서 비서관으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입법 제안, 공청회 개최 등 국회를 통해 의료정책을 바꿀 수 있는 방법
김 비서관은 국회를 통해 의료 현장을 반영한 정책 수립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요목조목 설명했다.
김 비서관은 "개정한 응급실 당직법은 현장과 괴리가 커서 탁상행정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다. 결국 이 정책은 차일피일 미뤄지다가 조정됐다"며 "의료 현장을 반영한 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으면 발품을 팔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비서관은 "국회의원은 걸어다니는 입법기관이다. 법안을 구상했다면 의원실을 탐색하고 개정안을 만들고 개정안이 통과할 수 있도록 공청회도 여는 등 절실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전공의법은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초안을 썼다. 당시 대한병원협회가 반대했지만 당시 김용익 의원이 발의했고 결국 법안 통과까지 이어졌다. 최근에는 폭행을 방지하는 조항이 전공의법 개정안에 담겼다"고 말했다.
그는 "상임위원회와 국정감사가 중요하다. 국회의원의 입을 빌려서 직접 질문하고 답을 받으려면 질문 하나를 위해서라도 직접 국회에 찾아와야 한다"며 "토론회와 공청회 통해서도 제도를 개선하는 동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비서관은 "국회는 의료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국회 직원들에게 물어봤다. 두려움, 직역 이기주의, 불신, 범생이, 냉점함, 전문가, 사기꾼, 미지의 영역, 불통, 보험료, 직역간 갈등, 갑, 불친절, 보험료, 수가 등 다양한 키워드가 나왔는데 좋은 이야기는 없다. 한 마디로 돈 많이 버는 이기적인 전문가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비서관은 "나에게 의료계는 친정이라는 생각과 웬수라는 생각이 든다. 사명감이 있으면서 동시에 집단 이기주의를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면도 있고 단결력은 좋은데 관료 집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며 "정책 수립때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입법 예고 전에 직접 국회에 와서 의견을 내줬으면 한다. 의견 달라고 할 때는 안 주고 나중에 말하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무작정 수가를 올려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수가를 어떤 방식으로 몇 퍼센트 올려달라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수가가 전부가 아니다. 법, 제도, 지원금 등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비서관은 "오만한 면도 있다. 비서관으로서 비교적 나이가 어린 편인데 의사 선배들이 갑자기 찾아와 '너 이거 좀 해와'라고 시킨다. 다른 비서관한테는 어떻게 행동하겠나. 이런 면은 고쳐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국회는 선거철에 의협을 좀 두려워하지만 평소에는 엄청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의료계는 정부, 환자단체, 다른 이익단체 등을 설득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목소리를 낼 때는 내부에서 의견을 조율하고 통일해서 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후원하는 국회의원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또 의협 회장 선거 등에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도 방법이다. 현재 의협 회장은 전체 의사 회원 13만명 중 2만명만이 투표해서 약 6000표를 받아 당선 됐다. 불과 6000표 만으로 의협 회장에 당선된 것이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세미나 참석자들이 궁금한 국회 비서관 뒷이야기는
세미나 참석자들은 의사이자 국회 비서관인 김 비서관에게 정치 참여 방법부터 연봉 수준, 공무원 회식 빈도수 등 다양한 질문을 했다. 김 비서관은 특유의 솔직한 말투로 답변을 했다.
Q. 의사들이 욕을 먹는 가장 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A. 전문가 집단이라고 하지만 국회에 입법 제안서를 제출할 때는 성의를 보여야 합니다. 한 학회에서 '문재인 케어 시작하면 우리 다 죽는다. 수가 올려달라. 전공의법 시행으로 힘들다' 등등 내용의 제안서를 들고 왔는데 내용이 A4용지 한 장도 채우지 못했습니다. 저녁 식사 자리가 끝나고 의원님과 저는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기 위해 인사하는데 '문재인 케어로 다 죽는다'던 분들이 외제차 발레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힘들다고 말하면서 그러면 국회에서는 와닿지 않을 것입니다. 적어도 국회에 올 때만큼은 외제차 끌고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또 입법 제안서를 제출할 때는 뒷받침 자료를 충실히 마련해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영양사협회는 책들을 들고 근거 자료를 만들어 가지고 옵니다. 여러 해외 사례를 제시하고 근거를 제시하며 제도 개선을 위한 공청회를 열어달라고 합니다. 이런 접근이 필요합니다.
Q. 국회 비서관을 하려면 꼭 임상 경험 있어야 하나요?
A. 임상 경험 꼭 필요하지 않지만 있으면 좋습니다. 저는 7년간 임상 현장에 있었던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Q. 돈은 많이 버나요?
A. 내과 의사로서 제일 많이 벌 수 있는 연봉에 비하면 많이 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요양병원에서 일할 때 받았던 연봉의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Q. 가족들의 반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저희 부모님은 아직도 반대하고 계십니다. 이해보다 용서가 쉽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해는 못하더라도 언젠가 받아들여 주실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잔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저는 2개월 전에 독립했습니다.
Q. 평균적인 의사가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A. 의원님께서 언급하신 시민단체 활동도 이익단체등과 더불어 임상의사직을 유지하면서 정치에 참여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사실 저처럼 본업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보건복지부나 건강보험공단 같은 정부 부처에 특채로 들어가거나, 국회 보좌진으로 시작하는 방법, 보건의료 분야(예방의학이나 의료관리학)의 교수가 되어 정책 연구를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Q. 비서관이라는 직업의 삶의 질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칼퇴근은 하는지 공무원 회식은 얼마나 자주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A. 국정감사나 상임위가 열리는 때가 아니면 그래도 칼퇴근을 할 수 있습니다. 일할 때는 바쁘지만 삶의 질은 전공의 시절보다는 훨씬 좋은 편입니다. 다만 접대나 약속은 좀 잦은 편이지만 얼마든지 조절 가능합니다. 저는 많아도 1주일에 2회 이하로 약속을 잡습니다.
Q. 비서관으로서 실제 입법 과정에 참여하더라도 행정부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현장에 적용하는 일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괴리감을 느낀 적은 없나요?
A. 그렇지 않아도 요즘 좀 괴롭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신나서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관료사회의 특수성을 이해하더라도 기대보다 변화가 더디다는 것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10개 중에 하나라도 제대로 하려면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다잡고 끈질기게 요구하고 건의해야 합니다.
Q. 국회에 들어가려면 의사로서 어떤 커리어가 필요할까요?
A. 저 같은 경우는 다른 커리어가 필요 없었습니다. 보좌진을 고민 중이라면 별다른 커리어가 없어도 (의사 면허를 가진) 전문가라는 점이 장점으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이 되길 원한다면 인지도를 쌓기 위한 커리어(예컨대 의협회장 등)가 필수겠지요.
Q. 이국종 교수님처럼 국회뿐 아니라 언론에 열심히 의견을 내는 분도 있는데 왜 의견이 반영되지 않을까요?
A. 이국종 교수님의 의견은 그래도 국회나 정부가 귀 기울이는 편입니다. 꾸준히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체계를 바꾸고 제도를 개선하려면 결국 예산과 법적 지원이 필수입니다. 그 과정에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얽혀있습니다. 관계자들을 설득하고 예산을 받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그 과정이 굉장히 더디거나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안 된다고 단정지으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10개를 끈질기게 요구하면 적어도 1개는 꼭 바꿀 수 있습니다.
Q. 입법고시를 패스하는 길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A. 입법고시는 정말로 고시입니다. 사법고시만큼 경쟁이 심합니다. 저는 따로 시험없이 서류평가와 면접만 보고 들어왔습니다. 보건복지부 5급 공무원직을 예로 들자면, 5급 특채로 들어가느냐 행시를 직접 보고 5급으로 들어가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물론 하는 일도 다릅니다. 보좌진은 의원을 보좌하여 입법, 상임위 및 국정감사 등을 준비하며 소속 정당의 입장을 고려해야 합니다. 입법고시를 치룬 입법조사관들은 의원들의 법안을 평가하거나 예·결산평가등을 담당하며 정치색을 띄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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