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09.27 10:46최종 업데이트 24.09.2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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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 소아외과환자 받았다가 10억원 배상 판결…의사들이 겁을 먹기 시작했다

소아외과의 없어 당직의가 응급 수술해 소생했지만 법원은 병원에 책임 물어…"최종치료 제공 못하면 책임 묻는 현실 문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최근 119 구급대의 수용 요청 단계에서부터 환자를 거절하는 일명 '응급실 뺑뺑이'가 연일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일반 성인환자에 비해 특수성이 큰 소아 응급환자의 응급실 거절 사례가 큰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의료계는 법원의 판결이 현재의 '응급실 뺑뺑이'를 만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응급 소아외과환자, 응급수술 진행했다가 10억원 배상 판결…당직의에도 1000만원 부담

최근 두 살배기 소아경련 환자가 응급실 11곳으로부터 진료를 거부당해 결국 의식불명에 빠진 사건이 논란이 됐다.

A양은 119신고 접수 후 11분만에 구급대원이 도착해 구급차에 실렸으나 구급대원이 인근 병원 6곳에 전화를 걸어 환자 수용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고, 직접 찾아간 병원들조차 진료할 소아신경과 전문의가 없다며 진료를 거절했다.

해당 사건 이후 국민들은 왜 응급실을 운영 중인 대형병원조차 해당 환자를 받아 응급처치라도 하지 않는 것이냐며 의료계를 비난했지만 의료계는 이러한 사건이 일련의 법원 판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고등법원이 소아응급환자를 받아 응급수술을 한 병원과 당직의사에게 1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사건은 지난 2015년 생후 5일이었던 신생아가 녹색 구토를 해 동네 소아청소년과 의원을 찾았다가 '중장 이상회전과 꼬임' 진단을 받고 해당 병원 응급실로 내원하면서 시작됐다.

'중장 이상회전과 꼬임'은 임신 중 태내에서 장의 회전 이상으로 소장이 꼬이는 것으로 심할 경우 장이 괴사하고 사망에 이를 수 있어 즉시 수술해야 하는 응급질환이지만, 해당 병원은 마침 소아외과 전문의가 휴가중이었다.

이에 당직 중이던 외과 교수는 수술을 지체할 경우 신생아의 생명에 지장이 갈 위험이 있다고 판단해 응급수술을 진행했다. 

해당 외과 교수는 농이 가득 차 있는 괴사 직전인 배 속의 염증을 세척하고 꼬인 소장을 풀어 배치한 뒤 수술을 마쳤으나, 이틀 뒤 다시 장이 꼬여 재수술을 해야 했다. 장 이상회전 질환을 가진 아기는 맹장이 엉뚱한 곳에 붙어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결국 이때 신생아의 소장 대부분이 괴사해 상부 15~20cm만 남기고 맹장까지 잘라내야 했고, 이후 아기는 뇌 이상에 따른 발달지연, 사지마비 등 후유장애를 갖게 됐다.

두 차례의 수술을 받아 신생아는 소생했지만, 보호자는 후유장애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병원과 외과 교수, 소아과 주치의를 상대로 약 15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그러자 병원 측도 그동안 받지 않고 있던 미납 진료비 2억 4000만원을 지급하라고 맞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소아외과 세부전문의가 아니더라도 외과 전문의라 수술에는 결격이 없고 다른 병원에 보내 시간을 지체했으면 더 나빠졌을 것"이라며 병원 측의 손을 들어주었으나 지난해 2023년 10월 항소심 재판부는 180도 다른 판결을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는 소아외과 전문의가 아닌 당직의사에게 응급 소아외과환자 수술을 맡긴 병원 측에 책임을 물어 약 15억여원 중 70%인 약 10억원을 배상하고, 그중 1000만원은 수술한 외과 교수도 함께 책임지라는 판결을 내렸다.

응급처치 가능해도 최종치료 위험 부담에 환자 거절할 수밖에…"전원 체계 개선 필요"

해당 판결의 충격은 곧 응급실 전역으로 퍼졌다. 해당 판결은 의사들에게 분초를 다투는 응급 소아환자라 하더라도 '소아세부 전문의'가 없으면 환자를 수용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줬다.

환자를 살리겠다는 선의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 수술을 했더라도 결과가 나쁘면 환자 측에 배상을 해야하는 이상, 위험을 무릅쓰고 수술하기보다는 환자를 외면하는 편이 안전한 선택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당 판결에 대해 대한소아외과학회 정연준 회장 역시 "상당히 논란이 있을 수 있는 판결"이라면서도 "소아환자는 성인과 다른 특성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외과의사라고 하더라도 소아외과환자를 보기가 쉽지 않다. 소아외과 전문의가 있었다면 당연히 좋았겠지만 부득이하게 전문의가 없었고, 당시 아기의 상태가 굉장히 응급 상황이었기 때문에 의사라면 응급 수술을 결정하는 것이 맞았다고 본다"고 개인적인 견해를 전했다.

정 회장은 "문제는 응급상황에서 잘 모르는 분야를 수술해서 잘못된 결과가 나오면 모두 책임을 져야한다는 판결 자체가 의료진에게는 가혹하다고 본다. 안 그래도 소아외과 의료진은 숫자가 적은데 이런 판결이 이어진다면 병원은 보수적으로 굴 수밖에 없다. 특히 소아환자는 소송이 걸리면 성인 환자보다 배상 액수 자체가 몇 배로 커진다. 향후 성인까지 보호자가 부담해야 할 경제적인 비용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점점 줄어드는 소아외과의사들 역시 의료사고 법적 책임에 대한 부담을 호소하는 만큼, 정 회장은 불가항력 분만 의료사고 국가 배상책임제처럼 소아환자의 응급, 중증질환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지고 보상하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 역시 "이런 판결을 보다 보면 생명을 위협하는 응급 상황에서 수술을 안 하는게 정답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즉, 법원의 판결이 최종치료를 제대로 하지 못할 바엔 병원들이 환자를 받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회장은 "소아응급환자 뿐만이 아니다. 최근 다리 절단 외상 환자가 사망한 사건에서도 권역외상센터들이 다리 접합 수술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환자를 거절했다"며 "권역외상센터 대부분이 생명을 살리는 응급처치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설령 생명은 살리고 다리는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책임 문제가 생길 것이 뻔하기 때문에 그 환자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권역응급의료센터는 법적으로 중중, 응급환자의 최종치료를 담당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렇다보니 응급치료는 제공할 수 있어도 최종치료는 제공할 수 없으면 환자를 못 받는 상황을 정부가 스스로 만들어 놓고 있다. 응급환자를 일단 받아서 응급처치만 하고 최종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전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최종치료 책임을 응급센터에 부과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이 회장은 "외국은 병원 간 전원을 119가 담당한다. 병원에서 병원 간 이송은 돈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반대다. 현장에서 병원까지는 119가 담당하고, 병원에서 병원 간 전원은 환자 본인이 부담한다"며 "국내도 합리적인 방법으로 응급환자의 생명을 살리고 최종치료가 적시에 제공될 수 있도록 전원체계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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