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03.29 07:28최종 업데이트 24.03.29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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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개혁신당 비례후보 1번...아이들 살리던 소아응급실 의사, 의료계와 정치도 구할 수 있을까

[의사 출신 총선후보 인터뷰] "의사의 전문성 살리겠다…전문가와 현장 의견 존중하고 자긍심을 살리는 당 될 것"

이주영 개혁신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메디게이트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의사 출신 후보자 릴레이 인터뷰
 
오는 4월 10일, 향후 4년간 국회에서 의정 활동을 펼쳐나갈 주인공들이 결정된다. 의료계로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의료시스템의 미래를 판가름할 중요한 선거이기도 하다. 메디게이트뉴스가 4·10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의사 출신 후보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다. 

①이주영 개혁신당 비례후보 1번 "아이들 살리던 소아응급실 의사, 의료계와 정치도 구한다"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아프면 울고 안 아프면 웃고, 주사 맞기 싫어 거짓말을 해도 아픈 곳이 빤히 보이고, 꾀병을 부려도 '마이쮸' 하나면 안 아픈 게 뻔히 보이는 아이들의 유리알 같음에 반해 소아과 의사가 되기로 했다.”(이주영, 『우리는 다시 먼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
 
이주영 개혁신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비례 1번∙전 순천향대천안병원 교수)은 불과 2달 여 전 유리알 같은 아이들을 살려내는 일을 그만뒀다. 지난 10년 동안 환자∙보호자∙동료들과 울고 웃었던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기어코 떠나기로 했다. 공교롭게도 정부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한 2월 1일이었다.
 
의미 없는 우연이었을 수 있지만, 어찌 보면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소아의료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고, 응급실 의사들이 욕받이가 돼 버린 시대. 병원을 나온 이 위원장은 낯선 정치 무대에 소환됐다. 남편, 세 아이와 함께 올여름 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그는 운명의 장난처럼 국회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헛발질의 연속인 의료정책과 의사들에 대한 국민의 싸늘한 여론으로 의료계는 지칠 대로 지쳤고, 의대증원 2000명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가 촉발한 사태도 어느덧 한 달을 넘겼다.
 
신참 정치인을 향한 의료계의 성원은 그래서 절실하다. 이 위원장이 무너지는 대한민국 의료와 희미해지는 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를 조금이나마 살려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다. 유리알 같은 아이들을 살려내던 그 손으로 말이다.
 
메디게이트뉴스는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이주영 위원장과 만나 정치 입문을 결심하게 된 계기와 현재 의료현안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아래는 일문일답.

"개혁신당, 전문가 목소리 들으려는 진정성 느꼈다"
 
- 지난 2월 초 10년 동안 일했던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그만뒀다. 정치 입문이 결정되기 전까지 어떻게 보냈나.
 
원래 정치를 하려던 것도 아니었고, 기약 없이 쉰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출산했을 때도 예전엔 짧게 쉬던 시절이어서 8주 정도 쉬고 복귀해서 일을 하곤 했다. 그래서 기약 없이 길게 쉬어 본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갑자기 사직하게 됐고, 당연히 다음 계획은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직할 생각으로 그만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6개월 이상 쉬면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몇 년 만에 일주일이 넘게 여행을 다녀왔다. 여름에도 아이들이 방학하면 2주 이상 여행을 갈 계획이었는데, 지금은 아이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 정치 입문 계기는 뭔가.
 
사실 총선 날짜도 모를 정도로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몇몇 정당에서 연락을 받긴 했는데 결국 개혁신당을 택한 건 진정성이었다. 지난해 책을 냈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고 대형 출판사들에서 연락이 먼저 왔다. 내 글과 나라는 사람을 갖고 상품을 만들어주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그때까지 내가 쓴 글은 우리 환자들 얘기였기 때문에 그걸로 상품을 만들고 싶진 않았다.

몇 차례 고사를 했는데 결국 책을 같이 내게 된 건 1인 대표가 하는 작은 출판사였다. 대표가 진정성 있게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이해하고 있고, 그게 우리나라 소아 의료에 분명히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제안을 해줬다. 그래서 책을 내게 됐다.

이번에 정치에 들어오게 된 것도 비슷하다. 더 큰 정당에서 연락이 오기도 했지만 사실 그분들은 나를 영입해서 진지하게 비전을 나누고 싶다기보다는 '나'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몇 개의 상징성에 주목한 것이라고 느꼈다. 예를 들면 '바이털과' 의사이자 여성 의사이고, 아이도 셋이니 그런 걸 보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런데 개혁신당은 진정성 측면에서 훨씬 깊이 있는 제안을 해줬다. 지금까지 내가 언론이나 글을 통해 전해왔던 신념과도 다르지 않았다. 정말로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궁금해한다고 느껴졌기에 개혁신당에 제안에는 마음이 열렸다.
 
- 정치 신인인데 총괄선대위원장이란 직책까지 맡았다. 새로운 환경에서 부담이 클 것 같다.
 
부담감에 죽을 것 같다. 그런데 의사가 되는 과정도 그랬다. 병원에 가면 누가 하나하나씩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건 네가 하는 일이야’라고 지시를 받으면 그냥 그렇게 해야 했다. 병원에 가면 (선배 의사들이) 어떻게 하는지 옆에서 보고 그것보다 더 잘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모르는 게 있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물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서 주어진 일을 쳐내지 않으면 수련 기간 동안 모든 걸 배우기는 어렵다.

지금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정치인으로서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고 경험도 없다. 하지만 기성 정치인들이 갖고 있지 않은 내 분야의 전문성이 있다. 그 분야에서 일을 새롭게 배우며 내 이야기를 만들어내 본 경험도 있다. 여기서 맡겨진 일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세 아이에게 자랑스런 엄마 '뒷모습' 보여줄 것…정치에 실망한 국민들 마음 잡겠다
 
- 정치를 한다고 하니 가족들 반응은 어땠나.
 
이런 부분에서 (가족의) 팀워크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남편과는 가장 힘들었던 인턴 시절에 만나서 볼 꼴 못 볼 꼴 다 봤고, 서로 어떤 부분을 힘들어하는지 어디서 성취감을 느끼는지 잘 안다. 그래서 남편이 내 꿈에 대해 한 번도 반대한 적이 없고, 나도 남편이 원하는 일을 반대한 적이 없다. 이번에 내가 정치계에 입성하지 않는다고 했어도 남편은 지지해 줬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하겠다고 마음먹으니 당연히 지지를 해줬다.

아이들은 갑자기 엄마가 바빠진 것에 대해 불만이 많기는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아이들을 교육할 때도 닥친 일에 대해서는 스스로 적응하라고 가르치는 편이다. 가령 선생님이나 학교 친구들과 관계에 대해 문제가 있어도 내가 대신 나서서 해결해 주거나 하지 않는다. 문제가 있어도 그 환경을 바꿀 수는 없고 스스로 적응하든가 해결하든가 도망치든가 '다 너에게 달려있다'는 취지로 교육해 왔다.

엄마, 아빠가 갑자기 바빠지는 것도 적응해야 한다. 엄마의 삶이 있는 거고, 대신 엄마가 아무리 바빠도 너희에게 꼭 필요한 건 절대로 눈 감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는 계속 주고 있다.
 
- 세 아이의 엄마다. 세 아이를 낳아 키운 것 자체만으로도 경이로운데 소아응급실 일을 하면서 육아를 했다고 생각하면 더 놀랍다. 어떻게 가능했나.
 
사실은 응급실이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 있었다. 성격상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게 있는데 그걸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상태를 견디기 힘들어한다. 만약 (소아응급실이 아니라) 신생아 집중치료실이었다든가 입원실이 있는 영역에서 일했다면 퇴근 후에도 항상 머리가 반으로 나뉘어져 있었을 것이다.

한쪽에서는 계속 입원환자들을 생각하고, 반대쪽에서는 아이들이 있고. 그럼 집에 와서 아이들에게 충분히 집중할 수 없었을 것이고 출근해서도 한쪽에 아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응급실은 온∙오프가 확실한 곳이다. 내가 인계를 정확하게 했으면 그때부터는 환자들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그러면 퇴근한 후에는 집에서 우리 아이들만 신경 써도 된다. 사실 출근했을 때는 아이들 전화도 잘 안 받는다. 대신 집에 가서 최선을 다해 놀아준다. 이렇게 오히려 응급실이라서 가능했다.
 
- 앞으로 정치를 하면 더 바빠질 텐데 어떻게 할 생각인가.
 
물론 지금까지는 아이들이 어리기도 했고 엄마가 필요한 영역들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면 자랄수록 더 많이 배우는 건 자신들을 바라보면서 불안해하거나 챙겨주는 엄마의 앞모습이 아니라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자기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좋은 사람이 되면 된다. 일일이 챙겨주지 못해도 그 시간은 아이들이 스스로를 잘 챙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난 우리 아이들을 믿는다.
 
- 정치인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 특히 거대 양당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팽배해 있다. 그럼에도 개혁신당의 지지율은 예상보다 저조한 게 사실이다. 신인 정치인 이주영과 갓 창당한 개혁신당은 앞으로 어떻게 국민들의 신뢰를 얻어 나갈 생각인가.
 
개혁신당이 나를 설득한 방식이 있다.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고, 현장의 이야기는 현장 사람들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 나는 그게 의료계뿐 아니라 이공계∙교육계∙언론계∙국방 등 모든 영역에 똑같이 적용될 것으로 생각한다. 개혁신당은 계속해서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당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실질적, 현실적, 발전적 미래를 그릴 수 있는 당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 지지율이 그리 높지 않은 이유는 국민들이 거대 양당에만 실망한 게 아니라, 모든 정치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개혁신당의 제안에 마음이 열렸던 것처럼 우리 당의 모습과 행보를 보면 기대가 싹트고 지지가 생길 것이다. 그 기대와 지지가 커지고 함께 꾸는 꿈이 있을 때 정치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본다.
 
지난 25일 기자회견 당시 이주영 위원장 모습.

의대증원은 잘못된 진단서 나온 오답…의사가 '자긍심' 갖고 일할 수 있어야

- 정부의 의대정원 2000명 증원과 최근 발표한 대학별 정원 배정 계획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계속 숫자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환자 치료 시 약을 잘못 썼는데 몇g을 잘못 썼는지가 중요할까. 그게 아니다. 애초에 진단이 틀렸으면 진단을 다시 들여다봐야 할 뿐이다. 그걸 상쇄하겠다고 다른 약 쓰고, 다른 수액 달고, 다른 검사하고 해봤자 의미가 없다. 전문가 정신의 정수는 내 진단이 틀렸을 수 있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두고, 틀리면 틀린 대로 받아들이고 고치고 새로 시작하는 데 있다. 내가 틀린 걸 끝까지 사수하는 데에 있는 게 아니다. 의사들이 왜 다른 의사들에게 조언을 구하나. 내가 모르는 게 있거나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게 있을 때 다른 과나 동료들이 봐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동료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고, 그게 실제로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제네바 선언의 정수다. 요즘은 잘못 언급되고 있지만 그 본질은 의료를 의료답게 하기 위한 동료 간의 끈끈한 연대와 신뢰, 그리고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용기와 자긍심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전문가로서 진단이 틀렸을 때 이를 강행하는 것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후의 논의는 사실 전혀 의미가 없고 진단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고, 그 모든 게 국민 건강에 이로운 방향이라면 2000명이 대수인가. 2만명을 늘려도 된다. 그게 아니라서 반대하는 것이다.
 
- 의료계는 정원 2000명을 갑자기 늘렸을 때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는 교육의 질 저하가 없을 거란 입장이다.
 

정부가 어떻게 그렇게 오만한지 모르겠다. 해보지 않은 공부와 겪어보지 않은 수련 과정에 대해 어떻게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나. 나는 다른 분야에 대해서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하면 한 마디도 반박을 못할 것 같다. 지금 의대 교수들이 사직하는 게 정말 돈 때문에 그렇게 쉽게 결정했다고 생각하나. 교수들은 그 일을 40년 동안 해왔다. 평생이 거기에 다 담겨있다. 가족들 만날 틈도 없이 그 일을 했고 전 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최고 수준의 진료를 하고 있다. 

정부는 그 모든 걸 일반 의사로 대체 가능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거기서 오는 교수들의 자괴감, 자신의 40년이 날아가는 그 슬픔을 어떻게 견디겠나. 실제로 (교육이) 불가능한 것을 넘어서 지금 정부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들까지 너무 많이 건드리고 있고, 이건 의료계 문제만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어 위험하다.
 
- 의대증원 문제를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가 장기화함에 따라 국민들의 우려가 크다. 사직 전공의와 교수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한 의견과 출구 전략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말해달라.
 
여론대로만 가자면 우리나라에 당장 바꿔야 할 게 매우 많다. 국회의원 수부터 줄여야 한다. 하지만 지속 가능하게 더 발전적 방향으로 가려면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게 온당한지 반문하고 싶다. 여론에 따라가려면 모든 이슈를 국민투표에 부치면 된다. 다수의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갔을 때 과연 이 모든 복잡한 정책이나 현안이 올바른 방향으로 상충하지 않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문가들의 비전이 중요하고 현실적 조언이 필요하다.
 
출구 전략에 대해서는 이미 너무 많은 잘못된 일들이 진행되고 있어서 이제 막 정치에 입문한 내가 얘기한다고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정부∙여당이) 의대 교수들을 만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동훈 위원장부터 시작해서 교수들을 많이 만나고 있는데, 지금은 애초에 의대 교수들이 제자들을 설득해서 들어오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의대생이든, 전공의든, 일반 의사나 교수든 개별 의사가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가 스스로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발생했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마치 뭔가 요구사항을 갖고 파업하는 사람들처럼 (의료계를) 달래려고 한다. 그게 아니다. 월 100만원을 더 주고 250명만 늘리겠다고 해서 의사들의 잃어버린 자긍심이 돌아오지 않는다.

내가 공부를 하기 싫은데 하게 만들려면 공부했을 때의 결과가 보람 있어야 한다. '100만원 더 줄게'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순간 (이 분야는) 지원금 없이는 안 된다는 인식이 생긴다. 나는 소아과 의사로서 굉장히 수치스럽다고 느꼈다.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인정받아야지, 지원금을 줄테니 일하라는 건 전문가로서는 절대 기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정부가 그런 식으로 진행하면 오히려 그 전문과목은 하면 안 된다고 정해주는 셈이다. 지금 정부가 '지원금을 주겠다', '특별 예산을 편성하겠다'는 이야기들도 다 같은 맥락이다. 전문가로서 자존심을 인정하지 않고 그 전문성을 폄하하고 있다.
 
이렇게 정부의 방향은 모든 면에서 틀렸기 때문에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단지 물질적이거나 제도적인 문제가 아니다. 관계를 회복하고 의대생∙전공의와 의사 전체를 향한 정부의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어떤 '당근'이 와도 의사들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기피과 문제, 해결 요원해져…불신 깊어진 의사와 환자? 일대일일 때 애틋함 기억해야
 
- 세 아이의 엄마이자 소아응급실에서 일한 의사로서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문제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을 듯하다. 정부는 이 문제들에 대해 의사 부족이 원인이라고 지적해왔다.
 
소아과 오픈런과 응급실 뺑뺑이에 대해선 여러 차례 얘기를 해왔다. 10여 년에 걸쳐서 소아 인구는 거의 절반이 됐는데 소아과 전문의 수는 2배다 됐다. 그런데 왜 소아과 오픈런이 생기나. 응급실도 예전에는 2차 병원들까지 다 응급실을 운영했었다. 국가가 이상한 정책과 규제를 만들고, 법적 책임을 지우고, 지역의료를 했을 때 돈이 안 되게 만들고 특진료도 없앴다. 거기에 SRT, KTX가 생긴 것도 영향을 미쳤다. (소아과 오픈런과 응급실 뺑뺑이는) 이런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의료계의) 토양을 무너뜨렸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소아과 전문의가 지금보다 적었지만 오픈런 같은 건 없었다. 응급실 뺑뺑이도 마찬가지다. 내가 일했던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도 왜 폐쇄됐나. 그 많던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갑자기 소아과 전문의가 아니게 됐나? 아니다. 우리가 정말 좋아했고 열심히 했던 일이다. 10년 동안 잡음 한번 없이 끈끈한 팀워크로 일했다. 지금도 같이 일했던 간호사에게서 매일 전화가 올 정도다. 

그 좋은 소아응급센터가 왜 없어졌나. 정부가 없애고 있다. 정부가 하나씩 다 쳐내고 있으면서 의사가 어디가 부족하다는 건가. 일단 현재 닥친 문제부터 바로 잡고 이후에도 의사가 부족하고 여기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있다면 당연히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니다.
 
- 소아과, 산부인과, 외과, 흉부외과 등 기피과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사실 2달 전만 해도 쉬웠다. 형사 처벌을 완화하고 민사도 합리적으로 바꾸고, 수가를 현실화하는 것. 그 정도만 했어도 충분히 살릴 수 있었다. 그건 돈과 제도만 있으면 가능한 문제였다. 그런데 지난 2달에 걸쳐서 쏟아진 수많은 명령과 금지, 발언, 댓글, 여론이 이제는 무언가를 만들거나 투입해서 되는 수준이 아니게 만들었다. 무너진 걸 처음부터 쌓아야 하는 지경이다.

의사들이 어떻게 의료에 대해 다시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지, 힘들게 오래 수련받아야 하는 일의 가치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나부터도 고민된다. 내 아이가 흉부외과를 가겠다고 해도 말릴 판에 무슨 수로 지금 의대생과 전공의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내가 작은 정당에 초임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혼자서 뭔가를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인생의 큰 흐름 속에서 여기까지 왔을 때는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국회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의사의 전문성으로 틀린 것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이 있었고, 의사들을 위해 일한 사람이 있었다는 걸 적어도 의사들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 다음에 누군가 또 이 일을 할 사람이 생긴다면 그 사람에게는 더 큰 힘이 주어졌으면 한다.

일반 국민들도 이게 의사들의 밥그릇 싸움이나 의사들의 안위를 위한 게 아니란 걸 알아주셨으면 한다. 의사들이 가진 전문 영역의 토양을 유지하고 싶고, 그게 세계적 수준으로 지속되게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이건 의사들을 위한 게 아니라 국민들을 지키기 위한 의사들의 노력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 치료 과정에서 한 팀이어야 할 의사와 환자, 환자 보호자 간의 불신이 깊어지고 있는 데 대한 아쉬움이 큰 것으로 안다. 특히 이번 의대증원 사태에서 더욱 악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지금 시점에선 의사들이 무슨 말을 해도 국민들의 마음을 돌려세우는 건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의사들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모든 직역에 대한 존중이 사라지고, 서로 신뢰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의 영향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특히 의대생, 전공의들에게 ‘전체로 보지 말라’고 부탁하고 싶다. 나도 지금 버티고 있는 힘은 내 환자 한 명 한 명이 있어서다. ‘이런 아이가 있었지’, ‘이런 엄마가 있었지’ 하는 거다. 일대일로 만난 의사와 환자는 언제나 사이가 좋다. 내가 환자일 때 정말 고마운 의사들이 있고, 내가 의사일 때 뿌듯함을 안겨줬던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있다. 그렇게 일대일 관계로 돌아가면 우리는 잘 지낼 수 있고 서로 신뢰하며 아낄 수 있다.

국민들의 의사에 대한 여론이 부정적이듯 의사들도 이제 국민들에 대한 생각이 좋지 않은 것 같아서 안타깝다. 우리는 환자들을 좋아했지 않나. 너무 전체적인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나를 좋아해 줬던 환자들을 기억하자. 내 환자, 내 주치의 이런 기억들 하나하나를 버리지는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 소아응급실에서 일하면서 아동 학대 문제 등에도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안다. 국회에 입성하게 되면 이 문제에 대해서도 정책 입안 계획이 있나.
 
이번 사태를 제외하면 가장 관심이 많은 게 장애 아동과 학대받는 아동들이다. 두 문제가 사실 비슷한 결이다. 모두 알지만 모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재정을 과감하게 투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돈이 필요하고 사람이 필요한 문제지 위원회 같은 걸 만든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너무 많은 문제가 있고, 특히 학대 아동들이 즉시 (부모와) 분리돼서 가는 곳의 상태를 보면 신생아부터 고3까지 있다. 학교는 어떻게 다니고 밥은 어떻게 먹을까. 정서적, 학습적 케어가 안 된다. 아이들을 그런 식으로 두는 것 자체가 2차(가해)일 수 있다.

그래서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면서도, 아이들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게 하려면 복지가 개입돼야 한다. 학대 문제를 전담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하는데, 이건 사실 국가적 차원의 얘기고 규모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여러 분과에 먼저 협조를 구해야 할 것 같다. 

박민식 기자 (mspark@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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