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12.29 07:18최종 업데이트 23.12.29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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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정원 1000명 이상 확충은 국가적 재앙이다

[칼럼] 박인숙 울산의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사진=챗GPT가 그려준 '의대정원 증원 반대' 한목소리를 내는 한국 의사들 

[메디게이트뉴스] 의대 정원 확충은 국가적 재앙이라고 의사들이 아무리 말해도 국민이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고 의사들이 비난만 듣게 된다. 현 정부와 여야정치권이 모처럼 한 목소리로 이 정책을 추진하는 이유는 단 하나, 국민의 83%라는 압도적 찬성 때문이다. 의사들을 때리면 지지율이 올라가는 비이성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에 정부도 강력하게 이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어떠한 정책도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면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의료 현장은 날로 험악해지고 있고, 교육병원에서는 전공의들의 빈자리까지 메우느라 교수들, 봉직의들의 고생이 극심한데, 의대 정원 확충은 이미 빠르게 붕괴되고 있는 필수의료와 지방의료의 정상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역으로 의료 붕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의대 정원 확충 발표가 나자 졸업 후 곧바로 개업하겠다는 학생들이 늘며 수련 받으려는 전공의들이 줄고 있으며 특히 필수과, 비인기과 전공의 지원율도 매우 낮다. 이미 수련 중인 전공의들도 개업으로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전공의가 더욱 부족해지고 있으며 게다가 ‘소송 공포’까지 높아지는 상황에서 대학병원, 수련병원의 교수, 전문의들이 견디다 못해 줄줄이 병원을 떠나면서 악순환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를 메우느라 입원전담의, 임상교수들을 채용하다 보니 기존 의대 교수들과의  대우가 역전되면서 불만이 터져 나오며 이들의 사직이 이어지며 악순환이 끊이지 않고 있다. 누가 먼저 나가는지 ‘뱅크런’을 연상케 하는 현상이다. 
 
이렇게 대한민국이 망하는 길로 들어서는 걸 의사들이 속수무책 보고만 있어야 하나? 이런 국가파괴 정책은 후에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의사들만이 알고 있고 의사만이 진실을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국민들께 이를 알릴 책임은 우리 의사들에게 있다. 
 
나라가 망하는 길로 들어섰는데, 국민 설득이 시급한데, 대한의사협회는 국민을 설득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보이지 않는다. 의협의 직무유기다. 
국민 설득이 쉽도록 의대정원 증원의 문제를 문답식으로 정리해 본다. 
 
Q 의사 수가 정말 모자라는가?  

의사 수가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의사들의 지역별 분포, 전공별 분포가 문제다. 이를 바꾸려면 혁명적인 의료제도 개혁이 필요한 것이지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이 답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의료 접근성은 이미 세계 최고다. 지금도 의사 보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소위 ‘명의’, 또는 ‘원하는’ 의사를 만나기 어려운 것이다. ‘의료 쇼핑’이 세계 1위이다. 이러한 소모적인 의료 생태계는 하루빨리 고쳐야 한다. 
 
Q. 당장 의사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국민을 이해시키는 일이다. 국민과 싸우는 것은 무조건 최악의 선택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파업도 고려할 수 있으나 국민적 분노, 국민 생명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지경까지 가지는 말아야 한다. 의사 파업의 딜레마가 여기 있다. 

정치권과 언론 왜곡도 심각하지만 의사들의 대국민 홍보 노력도 매우 부족했다.  
 
Q 의협이 국민을 이해시킬 수 있는 방식이 있나? 너무 늦지 않았나?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실들을 대부분 국민은 모른다. 그래서 의사들이 무조건 반대만 한다고 오해하고 불신하고 있다. 따라서 의협이 지금 해야할 가장 시급한 일은 국민을 이해시키는 일이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지금이라도 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시간도 없고 선택의 여지도 없다.
 
신문광고, 방송광고도 내고, 전국에 현수막도 내걸고, SNS를 통한 홍보를 하거나 종이 홍보물도 만들어서 각 병의원에 비치해야 한다. 의사들이 직접 환자들을 설득하고 회장을 위시해 의협 지도부가 자주 언론에 나가서 토론이나 대 국민 연설도 해야 한다. 지금은 이런 활동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Q 의협의 지금과 같은 투쟁 방식이 옳은 것인가? 
 
아니다. 지금의 투쟁 방식에 대해 국민은 냉소를 넘어서 분노하고 있고 게다가 잇단 말 실수 때문에 의사에 대한 적개심만 더 커지고 있다. 국민은 의사들의 투쟁을 심지어 민노총, 보건의료노조의 투쟁과 같은 수준으로 보고 있다. 
 
Q 의대정원 확충을 의사들이 결사 반대하는 이유는 ‘집단 이기주의’ ‘밥그릇 싸움’ 때문인가?
 
아니다. 효과는 없는 반면, 국가와 국민께 끼치는 피해는 즉시 나타나고 심각하고 비가역적인 피해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의대 정원 확충 결정은 정부와 여야 정치권의 극단적 포퓰리즘의 합작품인데  주요 언론들이 국민을 호도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Q 의대정원을 확충하면 의사들 수입이 줄어드나?
 
아니다. 앞으로 8~10년 후에나 확충된 수의 의사들이 더 배출된다. 그래서 이 정책이 지금의 의사들 수입에 큰 영향은 주지 않는다. 즉 의사들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다.
 
Q. 40개 대학에 ‘의대정원을 몇 명까지 올려줄까?’ 정부의 이런 질문은 정당한가?
 
이 질문은 의료계 내부 분열을 책동하는 정부의 절묘한, 매우 부적절한 작전이다. 이는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 몇 마리 줄까? 또는 고3 학생에게 명문대학 정원 몇 명 더 늘려줄까?”라고 물어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중대 발표를 고민이나 준비없이 갑작스럽게 하는 배경이 의심스럽다. 정부가 각 대학에 충원하는 정원수를 더 많이 써내도록 종용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조차 들 정도로 너무나 많이 써냈다.  
 
Q 의대정원 확층으로 인해 당장 의사 만나기가 쉬워지나?
 
아니다. 오히려 교수, 봉직의, 응급실 의사를 만나기는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의대정원 확충 발표이후 수련의, 교수들, 봉직의들의 병원 탈출, 이직, 개업이 봇물 터지듯 증가하고 있다. 그 결과 이미 진행 중이던 필수의료, 지방의료 붕괴속도에 가속도가 붙었다. 의대정원 확충 발표가 오히려 의료붕괴의 촉매작용을 하는 셈이다.

당장 개원가에서는 의사 만나기가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 응급실에서는 교수나 봉직의를 만나기 더 어려워질 것이다. 특히 최근 급증한 사법 리스크와 응급실 평가제도의 ‘개악’ 때문에 응급실 의사들의 ‘탈출 이 이어지면서 상황이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  
 
Q. 의대정원이 급증하면 이공계가 붕괴한다는 것은 사실인가? 아니면 이는 의사들의 협박인가? 
 
의대정원 확충은 국가발전에 심각한 위해이다.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데이터가 입증하고 있다. 종로학원 통계에 따르면 입시현장에서는 의대정원의 약 5배 되는 수험생들이 의대입시로 몰려서 이공계의 황폐화가 극심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N수생, 반 수생, 직장 퇴직/휴직 수험생이 급증하고 있고 올해 명문대 이공계 합격자들의 미등록이 급증하고 있다. 
 
출산율이 급감해 올해 출생아 수가 20만명을 넘을지 걱정되는 심각한 저출산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정부의 주장대로 의대 정원이 늘어난다면 2050년에는 의사 40여 만명, 지원인력(의사 1명당 약 5명 필요) 160~200만명, 즉 국민의 4~5% (200만/인구 5400만)가 의료계에 종사하게 된다. 이는 국가적 재앙이다. 
 
의료는 내수용 서비스산업이다. 의료산업은 국가 발전의 기간산업이 아니다. 과학기술이야말로 이제껏 대한민국 발전을 견인한 중추 산업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의료수출, 의료관광으로 ‘외화벌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억지 주장도 있으나 그 효과는 미미하다. 게다가 영리의료 금지 때문에 가능하지도 않다. 우리나라는 태국, 싱가폴처럼 의료관광을 통해 국부창출이 가능한 나라가 아니다. 
 
출생아 수가 급속히 줄어드는 이런 나라에서 국민 직업 중 의료 종사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번영은 커녕) 지속이 가능할까? 다른 선진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대단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Q. 의사 수가 늘면 의료의 질은 높아질 것인가?
 
아니다. 지금도 대한민국 의료의 질은 이미 최고 수준이다. 

오히려 의대 정원 폭증에 더해 급증하는 의대 교수들 사퇴 때문에 부실교육, 부실 실습이 확실 시 되고 있다. 그 결과 의료의 질은 더 나빠질 것이다. 

그리고 의사 수가 많아진다고 그 의사들이 필수의료로 갈까? ‘낙수의사’에게 필수의료를 맡길 수 있을까? 투철한 희생정신, 사명감이 없다면 ‘바이탈과’를 쉽게 전공하지 못한다. 
 
Q 의사수가 급증하면 싼 값에 진료를 받을 수 있나? 
 
아니다. 의사 숫자가 많아진다고 진료비가 낮아지지 않는다. 전체 의료비는 오히려 증가할 것이다. 우리나라 의료비는 세계 평균을 보더라도 이미 매우 낮은 편이다. (OECD 발표 2017년 국가 간 진료비 비교 수치 : OECD 평균 72, 미국 100, 일본 71, 우리나라 48). 

진료비는 어차피 정부가 통제하기 때문에 진료비는 의사 수와는 상관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미 낮은 수가를 더 낮춘다면 필수의료진의 탈출만 더 가속화할 것이다
 
나중에 많아진 의사들, 즉 상위 3%(정원이 늘면 지금처럼 1%가 아니다)의 인재들이 빠르게 발전하는 생명공학을 활용해 비보험 신의료기술들을 개발해 어떻게든 수익을 창출할 것이다. 공급이 많아지면 수요를 더 많이 창출한다. 즉 의사가 많아지면 오히려 의료비가 증가할 것이다. 이는 의료현장에서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따라서 의료비 급등으로 인해 건보 재정 파탄이 예상보다 훨씬 더 앞당겨질 것이다. 
 
Q 의사수가 많아지면 건보료에 어떤 변화가 올 것인가? 
 
전체 의료비가 급증하면서 건보 재정 고갈 시기도 훨씬 더 빨리 올 것이다. 또한 '인구 감소 + 의료 소비 증가 + 의료비 급증'의 결과 개인 건보료 부담이 급등하면서 우리의 미래 세대들은 ‘건보료 폭탄’을 맞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국민의 건보료 부담은 약 7%이고 법적 한도가 8%이지만 의사수가 급증하면 이 비율도 급증할 것이다. 지금 선진국의 건보료 비율은 우리보다 훨씬 높아 프랑스 13%, 독일 14.6%, 일본 10%이다.  
 
Q. 당장 정부가 필수의료 개선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나?
 
정답은 있는데 정부가 실천에 미온적이다. 필수과 의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필수과 의사가 마음 놓고 자기 과목 진료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안된다는 것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사법 리스크, 즉 ‘소송 공포’를 없애 주는 것이다. 간첩도 풀어주고 갖은 형사 사범들도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사법부가 환자를 살해하거나 상해할 의도가 전혀 없고 도주의 우려도 없고 모든 의무기록이 전산화돼 있어 증거 인멸의 가능성도 없는 의료인을 단지 치료 결과가 좋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구속시키는 현실이다. 

이런 나라에서 사망 확률이 높은 환자를 진료하려는 의사를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다. 어느 나라에서도 의료과실을 형사처벌하는 나라는 없다. 
 
형사처벌 금지, 의료분쟁 특례법제정, 피해보상금 국가책임제 등 제도를 하루빨리 도입해 필수의료 의사들이 안심하고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이것만 해결돼도 많은 의사들이 필수의료 현장을 떠나지 않은 것이고 이미 떠난 의사들도 돌아올 것이다.  
 
또한 필수의료의 건보 수가를 파격적으로 올려줘야 한다. 지금 필수 의료 붕괴는 대학병원 필수의료 과의 붕괴다. 특히 의대 교수들, 봉직의들의 대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주고 필수의료 진료 현장, 병원에 획기적인 지원을 해줘야 한다. 그래서 이들의 더 이상의 ‘탈출’을 막고 이미 떠난 의사들도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
 
Q. 지방의료 개선 방법은?
 
일차의료 전달체계 개선이 가장 시급하다. 무작정 ‘불필요한’ 상경진료를 막는 유인책이 필요하다. 지방의료에 인센티브, 지역 가산제, 세제 혜택 제공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세부전문 분야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40개 의대병원과 상급종합병원 모두가 모든 세부 전문 분야에서 충분한 숫자의 전문의를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 권역별 질환별 선택과 집중 전략을 과감하게 펼쳐야 한다. 

이송시스템 강화가 필요하다. 앰불런스, 이송 헬기 등 이송시스템을 강화해야 하며 이도 여의치 않은, 인구밀도가 매우 낮은 지역에서는 공공택시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응급구조사 양성에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대학병원들이 수도권 병상수를 더 이상 늘리는 것을 억제해야 한다. 수도권 병원들이 블랙 홀처럼 비수도권 환자들과 의료진들을 모두 빨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모든 방침에는 무엇보다도 지자체장들의 의지와 투자가 가장 중요하다. 지방자체단체장들, 지역 정치인들, 지역 지도자들이 지역병원을 이용하지 않고 무작정 수도권 병원으로 오는 행태부터 바뀌어야 한다. 
 
결론: 최악의 포퓰리즘을 막기 위해 의료계가 나서야 한다 
 
의사정원 수천 명 확충 정책은 현 정부의 최악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포퓰리즘에는 여야가 없다. 상식과 이성, 애국심, 사명감이 투철한 의사들이 앞장서서 막아야 하다. 그리하지 않는 것은 의사의 직무 유기이자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백 년, 아니 이 십년 후 미래, 아니 당장의 국민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나서야 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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