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9.12.27 06:22최종 업데이트 19.12.27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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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결산: 꾸준히 하면 좋은 날이 온다

[칼럼] 배진건 배진(培進) 바이오사이언스 대표·우정바이오 신약클러스터 기술평가단장

사진: 배진건 박사(오른쪽)가 2019 과학문화 콘텐츠 페스타 북콘서트에서 강연 후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해의 마지막 칼럼은 한해를 뒤돌아보며 결산을 하기로 했다.

2019년은 지난 2년 7개월 동안 매주 칼럼을 꾸준히 쓴 결과로 좋은 날을 많이 만났다. 4월 말 '사람을 살리는 신약개발 Back to BASIC'이 출간됐다. 두 번의 북콘서트를(먼저는 서울에서 메디게이트뉴스가 주관하고 나중은 판교에서 퍼스트바이오와 에이비엘바이오가 주관을 한) 가질 수 있었다. 그 결과의 부산물인지 모르지만 5월 22일 오송혁신신약살롱 스페셜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여섯 장관, 여러 전문가들과 함께 40여명이 같이 한 자리에서 책 제목으로 7분 시작 강연을 하는 영광을 가졌다.

10월에는 한국과학창의재단의 '2019년 대학일반 부문 우수과학도서'에 선정돼 창의재단이 책 200권을 구입해 학생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도서관에 비치해줬다. 12월 7일 광화문 KT스퀘어에서 열린 '2019 과학문화 콘텐츠 페스타 사이언스 북 콘서트' 강연자로 초청받아 강의를 했다. 꾸준히 하면 좋은 날이 온다는 것을 실감하는 2019년이었다.

지난 11월 22일 SK바이오팜이 개발한 엑스코프리(Xcopri)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최종 시판허가 승인을 받았다. 주요 적응증은 17세 이상 성인 뇌전증 환자의 부분발작으로, 단독 복용과 병용 투여 모두 가능한 약물로 허가 받았다.

어쩌다 대한민국 신약개발에 이런 좋은 일이 일어난 것일까? 다른 제약사들과 차별점이 무엇인가? 한마디로 꾸준히 신약개발에 매달렸다는 것이다. 그것도 27년이나.

SK는 지난 1993년, SK그룹의 차세대 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신약 연구개발을 시작했다. 1993년부터 대덕기술원과 미국 뉴저지(NJ)주에 설치한 미주동부R&D센터가 공동으로 의약연구 전담조직을 구성해 간질치료제, 우울증 치료제 등의 중추신경계 의약품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1997년 4월부터 기존의 미주동부R&D센터를 신약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의약개발 센터와 정밀화학제품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뉴저지연구소로 분리됐으며 2000년 의약개발센터를 SK Life Science(SKLS)로 명칭을 변경,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것이 SK가 갖고 있는 꾸준함을 나타내고 있다.

필자와 SKLS의 꾸준한 관계도 1990년대 후반 당시 대덕기술원을 총괄하면서 화학연구소장을 맡고 있던 이병형 박사로 올라간다. 고교동문 선후배 관계로 이 박사와는 IBM의 연구소가 있던 뉴욕에서 내 동기 이강욱 박사와 같이 운동을 한 적이 몇 번 있다. 자신은 연구원장으로 한국에 있지만 유공 출신으로 신약개발은 잘 모르고 미주동부R&D센터가 이제 시작이므로 많이 도와 달라던 선배님이 기억난다.

그때부터 과학기술자협회나 KASBP를 통해 아직도 SKLS의 COO이신 김홍욱 박사가 생각난다. 김홍욱 박사와 같은 시기부터 근무했다 지금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압타머 사이언스 한동일 대표, 머크의 사이언스앰배서더 경험을 마치고 최근 창업을 한 신헌우 박사, 그리고 이름도 비슷하지만 미국에서 활동하는 신우현 박사, 미국 비만치료제 회사 다니다 지금은 CMC 컨설팅 하는 김민우 박사 등의 얼굴이 뇌리에서 떠올랐다. 누구보다 옛 Cater & Wallace 시절부터 알고 지낸 최용문 박사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를 이은 수장으로 1.5세대로 영어가 더 편했던 이승재 박사다. 이런 변화의 역사도 SKLS가 현지인을 중심으로 변화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SK는 뼈아픈 실패의 경험도 수차례 맛봤다. 꾸준함은 항상 테스트를 당한다. 첫 뇌전증 치료제 ‘카리스바메이트’는 임상 1상 완료 후 존슨앤드존슨(J&J)으로 기술 수출까지 했지만 3상 후에 2008년 출시를 앞두고 FDA 승인이 좌절됐다.

하지만 SK는 R&D 조직을 더욱 강화하며 신약개발에 힘을 쏟았다. SK 바이오·제약사업 부문을 2011년 SK바이오팜으로 분사시킨 것도 R&D를 더 집중적으로 하기 위해서다. 분사 이후 SK바이오팜은 지난해까지 8년 동안 R&D 비용으로 약 5000억 원을 투자했다.

이런 계속적인 투자 때문에 한국에서도 신약 개발부터 의약품 생산, 마케팅 역량까지 갖춘 글로벌 바이오·제약 기업이 탄생할 기회가 생겼다. SK바이오팜은 글로벌 시장을 타겟으로 앞으로 신약 상업화 등의 성과를 통해 신약 후보 물질 탐색부터 출시 이후 마케팅에 이르는 전 과정을 아우르는 글로벌 종합 제약사(FIPCO: Fully Integrated Pharma Company)로의 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에 판매 허가 받은 엑스코프리도 카리스바메이트 실패 후 2001년 기초연구를 다시 시작해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수많은 임상시험과 인허가 과정을 거쳤다. 후보물질을 선정하기 위해 합성한 화합물만 2000개 이상, FDA에 신약 시판 허가를 신청하기 위해 작성한 자료만 230여만 쪽에 달한다고 한다.

조정우 SK바이오팜 대표이사는 11월 26일 SK서린빌딩에서 열린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 미국 FDA 시판허가 기념 기자간담회를 가지며 이날 감격스러운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고 미래의 청사진을 밝히는 프레젠테이션을 했는데 의미가 매우 컸다. 2017년 3월부터 SK바이오팜 대표직을 맡은 조 사장이 직접 현장인 미국에 머무르면서 또 사무로 한국을 오가면서 전 과정을 진두지휘하였기 때문에 더 감격스러웠을 기자 간담회였던 것이다.

누가 이렇게 좋은 날이 오는데 공헌을 했을까? 물론 오랫동안 지휘를 한 조 사장이 계시지만 이기호 박사와 마크 케이민(Marc Kamin) 박사(Chief Medical Officer)라는 생각이 든다. 이기호 박사는 'Xcopri' 탄생부터 승인까지 옆에서 가장 오래 함께한 사람 중 한 분이다. KDDF 발표 등에서 필자와 익숙하며 연구의 기초를 한국에서 지휘한 분이다.

임상 콘트롤을 총괄한 케이민 박사의 역할도 두드려졌다. 전문의인 케이민 박사는 30년 넘게 편두통, 우울증, 알콜중독, 뇌전증, 말초신경장애 등 중추신경계 분야의 임상을 설계하고, 컨트롤한 CNS 분야의 최고전문가 중 한 명이다. 2013년 J&J에서 영입돼 SK LSI에서 임상2상부터 총괄했다. 케이민 박사는 풍부한 경험으로 임상을 지휘하면서 FDA와의 미팅을 잘 이끌었다. 오랜 경험은 바로 나이와도 연결된다. 이런 임상경험이 풍부한 분을 나이와 상관없이 영입해 큰 일을 맡긴 것이 미국에서 임상 3상을 실패한 다른 한국 바이오 회사와 차별점이 아닐까?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매년 약 2만 명이 뇌전증 진단을 받고 있다. 뇌전증 환자의 약 60%는 뇌전증 치료제를 복용해도 여전히 발작이 계속된다. 엑스코프리 승인으로 의사들은 부분 발작이 계속되는 환자들에게 효과적인 치료요법을 고려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약물 투약 기간 중에 발작이 발생하지 않는 ‘완전발작소실’은 환자의 일상이 정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해, 삶의 질을 향상 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뇌전증 신약 선택에서 중요한 지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Xcopri’라는 약의 이름을 생각할 때 필자는 자꾸 ‘XC’ ‘O! Free’ 라는 생각이 들었다. ‘XC’는 ‘C저(seizure)가 아니다(X). 오 이제 난 자유인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Xcopri’라는 이름이 환자의 입장에서 ‘오! 난 발작에서 자유로운 영혼’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국 제약회사의 수장들과 이야기할 때 필자가 좋아하는 질문이 있다. “신약개발 이제 얼마나 하셨나요?” 오래되지 않은 상태에서 벌써 의구심을 갖고 연구소를 정리하고 픈 분들에게 던지는 화살이다. “이제 10년도 못 하신 것 아닌가요? 20년 하시고 난 후에 접겠다고 하시면 됩니다. 20년 하시면 꼭 신약이 나옵니다.” 꾸준히 하니까 이런 좋은 날도 오더라. 그렇게 고백하는 회장님들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 꾸준히 하는 것보다 더 믿을 것은 없다. 지난 2년 7개월간 매주 칼럼을 쓰며 꾸준함을 추구하니 2019년 같은 좋은 날도 오더라.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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