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한림원, 미래 의료를 선도할 의사 양성을 위한 의학교육 청사진 제시…역량·질 관리·거버넌스 등 강조
고려의대 이영미 교수. 사진=대한민국의학한림원 유튜브 갈무리
[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AI·빅데이터 등 의료 환경의 변화와 의학 지식의 확대로 기존 의학교육체계가 이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의정사태로 의학교육 체계의 미비와 구조적 한계가 드러나 질 개선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교육·수련·평가·재정·거버넌스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의학교육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은 9일 '미래 의료를 선도할 의사 양성을 위한 제언'을 통해 의학교육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날 ▲경희의대 허영범 교수는 '의학교육의 질 관리 및 교수 전문성 강화' ▲가톨릭의대 김성근 교수는 '지속가능한 의학교육을 위한 협력 거버넌스 구축' ▲고려의대 이영미 교수는 '역량 중심 교육과정과 자기주도적 학습환경 혁신' ▲울산의대 임영석 교수는 '통합적 사고에 기반한 복합 문제해결 능력 배양'을 주제로 발표했다.
의학한림원, 미래 의료 대비한 의학교육 전환 로드맵 제시
이날 의학한림원은 미래형 의료인 양성을 위한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의사 핵심 역량 ▲역량 중심 교육과정과 자기주도적 학습환경 혁신 ▲의학교육의 질 관리 및 교수 전문성 강화 ▲지속가능한 의학교육을 위한 협력 거버넌스 구축 등 4개 분야와 12개 과제를 제언했다.
의학한림원은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의사 핵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통합적 사고에 기반한 복합 문제해결 능력을 배양하고, 신뢰와 공감에 기반한 환자 중심 소통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투철한 직업윤리와 사회적 책무성, 민주적 시민의식과 글로벌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고 부연했다.
역량 중심의 교육과정을 구축하고 자기주도적 학습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통합 교육과정 고도화, 자기주도적·탐구적 학습 생태계 조성, 역량 기반 핵심 교육체계 확립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의학교육의 질을 관리하고 교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근거 중심 의학을 위한 과학적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데이터 기반의 지속적 교육 질 개선 시스템 구축, 교육자 역량 강화, 동기 부여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아울러 지속가능한 의학교율을 위한 협력 거버넌스를 구축하기 위해 정부의 안정적·잔략적 지원과 정책 협력 확대, 환자와 국민이 함께하는 교육 협력체계 구축 등이 갖춰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미래 의사 양성에 빨간불…통합적 사고·자기주도 학습으로 교육 패러다임 전환
이날 발표에서 울산의대 임영석 교수와 고려의대 이영미 교수는 단편적 지식 전달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통합적 사고와 자기주도적 학습을 핵심 축으로 의학교육 전반을 개편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임 교수는 "의학 지식은 누적성이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지식이 계속 쌓인다. 이를 환자에게 제대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질환 이전에 환자 자체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학제적 협력과 소통 능력은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의사의 핵심 역량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한명의 환자가 가진 문제는 매우 복합적이다. 또 의료 기술이 고도화됨에 따라 다학제적 협력은 필수적"이라며,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환자와 전문가 간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키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의사로서의 직업 윤리와 사회적 책무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사례 기반 윤리적 의사결정 훈련과 전문성 개발 문화 조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특히 상호존중과 민주적 의사결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올해 학생들이 복귀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여러 상황에서 그 필요성을 더 크게 느꼈다.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 좋은 학교를 들어왔음에도, 상대 의견을 경청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최종 의사 결정하는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 이 때문이 학생들이 일방적인 독선에 휘둘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학생들이 다양한 정보를 공정하게 공유하고,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험을 교육 과정에서 체득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 교수는 지식 전달 위주의 교육 방식은 유지되기 어렵다며, 핵심역량 기반의 교육체계와 자기주도적 학습환경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학 지식은 계속 누적되지만 이를 모두 가르칠 수는 없다"며 "졸업 시점의 지식 수준이 아니라, 평생 학습자로 성장할 수 있는 핵심 역량을 갖추는 것이 의학교육의 목표가 돼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이 교수는 미래 의료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상향 표준화된 의사 핵심 역량을 정의하고, 학년·단계별 성과 기준을 마련해 평가와 연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역량 관리 위원회를 설치해 교육 성과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인증제와 연계하는 체계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기초의학·임상의학·헬스시스템과학을 연계한 통합 교육과정 고도화와 조기 임상 노출 확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자기주도적 학습과 관련해서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 교수는 "학생들이 자기주도적으로,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할 수 있는 학습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며 "과거에는 교수가 운전을 하고 학생은 승객으로 앉아있는 것과 같은 교육이 이뤄졌지만, 앞으로는 학생이 학습의 주체로 운전석에 앉는 교육 환경이 필요하다. 교수는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멘토이자 네비게이터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톨릭의대 김성근 교수. 사진=대한민국의학한림원 유튜브 갈무리
교육 혁신 지속가능하려면? 질 관리·협력 거버넌스 구축 필요
이어진 발표에서는 의학교육의 질을 관리와 지속가능한 의학교육 환경 구축에 대한 필요성이 강조됐다.
경희의대 허영범 교수는 근거 기반 교육과 데이터 중심의 교육 질 관리 체계 구축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유전체학,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첨단 과학기술이 임상 현장에 빠르게 도입되는 상황에서, 의사의 역할 역시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의사는 더 이상 임상 술기만 수행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과학적 원리를 이해하고 새로운 근거를 비판적으로 해석·적용할 수 있는 인재여야 한다"며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교육 단계에서부터 근거 중심 교육 체계가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근거 중심 의학을 실현하기 위한 토대로 ▲통합 교육 성과 관리 시스템(LMS·e-포트폴리오) 도입 ▲다면적 피드백 체계 구축 ▲교육 성과 분석 전담 조직(Office of Education, OE) 운영 ▲정기적 교육과정 검토 위원회 설립 등을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학생 학습 활동과 성적, 평가 결과 등 모든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교육과정과 교수 활동에 대한 정량·정성적 데이터를 주기적으로 수집해 데이터 기반의 교육의 질 개선 환경을 만들자는 의견이다.
또한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해 교육과정의 강점과 약점을 진단하고, 교육 목표 달성도를 측정해 교육 혁신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정기적으로 교육과정을 검토해 다음 학년도 교육에 반영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어 그는 교수 전문성 강화와 보상체계 확립도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무리 우수한 교육과정이라도 이를 실행하는 교수의 역량과 헌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며 "의학교육의 질 관리는 곧 교수 전문성 강화"라고 했다.
허 교수는 "연구와 진료 실적 중심의 평가 문화 때문에 교육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낮게 평가되고 있거나 존중받고 있지 못한다"며 "교육 전담 교수제 활성화와 동기부여 체계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가톨릭의대 김성근 교수는 의학교육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정부의 전략적 지원 ▲국민 능동적 참여 ▲의학교육관련 단체 협력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최근 의정사태와 지역의사제 논의 과정에서 정부가 의학계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정부의 역할 변화와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그동안 의학교육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보면 단순한 규제자 역할을 해왔다"며 "앞으로는 조력자, 전략적 파트너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의학교육은 단순히 학생 교육에서 끝나지 않는다. 철학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역할로 ▲안정적인 재정 및 정책 지원 확대 ▲교육 현장 전문가와의 정책 협력 강화를 제시했다.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교육 혁신을 추진할 토양을 만들기 위해서는 재정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고효율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교육현장 전문가 집단과의 상시적·유기적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의정사태 이후 두 학년 동시 입학으로 인한 혼란, 실습 시설 확충 필요성 등을 언급하며 "안정적인 재정 지원을 대학에만 맡겨 놓을 수 없다. 대학이 오랫동안 등록금을 동결하고 있어 재정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기술은 발전해 의학교육과 시설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의대-전공의-전임의로 이어지는 의학교육 전 생애주기의 단절을 지적하며, 미국 ACGME 모델처럼 통합된 교육 거버넌스 체계 구축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의학교육이 더 이상 폐쇄적인 영역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환자와 국민의 참여를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의학교육은 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며 "특히 임상실습과 수련 과정에서 환자와 국민의 이해와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국민 참여 협력체계 구축 방안으로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 환자 경험 공유 프로그램 도입, 교육과정 설계 단계에서의 수요자 참여 확대 등을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