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확진 1번, 14번 환자는 각각 30명, 85명을 감염시켰다. 일명 수퍼 전파자.
1번은 5월 17일부터 20일까지, 14번은 같은 달 15일부터 20일까지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평택성모병원에서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메르스 초기 방역에 구멍이 뚫린 것일까?
지난 5월 20일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는 바레인에서 입국한 68세 남자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 남성은 4월 8일부터 5월 3일까지 바레인에 체류했고, 입국한 지 7일후 발열, 기침 등의 증상이 발생하자 A병원 외래, B병원 입원을 했다가 17일 평택성모병원(당시 복지부는 이 병원을 C병원으로 언급했다) 응급실을 방문했다.
1번 환자는 확진 당일 국가 지정 입원치료병상으로 이송됐다.
14번 환자는 1번 환자가 머물렀던 평택성모병원에서 같은 병실에 있지는 않았지만 같은 병동에 입원했다.
그는 폐렴이 의심되는 호흡기질환으로 입원했다가 20일 굿모닝병원으로 옮겼다.
굿모닝병원에 온 직후 고열과 오심, 구토, 폐렴 증상을 동반하고 있었다.
그는 굿모닝병원에서도 이렇다 할 증상 호전이 없자 25일 자진 퇴원한 후 버스를 타고 삼성서울병원으로 이동했다.
1번 환자가 확진을 받은 5월 20일 복지부는 이렇게 발표했다.
"19일 검체 의뢰 직후 현재까지 해당 환자의 감염경로와 가족, 의료진 등 접촉자에 대한 역학조사를 시작했으며, 20일 질병관리본부 중앙역학조사반이 5월 11일 이후 환자를 치료한 의료기관과 가족에 대한 역학조사를 실시중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보도자료에는 환자의 감염경로와 가족, 의료진 등 접촉자에 대한 역학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하면서도 그 어디에도 1번 환자와 '접촉한 환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그 시기 평택성모병원에서 1번 환자와 같은 층에 있던 14번 환자를 눈 앞의 감시망에서 놓친 것과 연관이 있다.
20일 질본은 역학조사관 2명(공중보건의사)을 평택성모병원에 급파했다.
이들은 당일 1번과 밀접 접촉자로 파악된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 16명을 자가격리 조치했다.
역학조사관은 이렇게 말했다.
"메르스는 3차 감염이 없다. 내 임무는 밀접 접촉한 의료인을 격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인 21일 1번 환자와 같은 병실을 사용하던 입원 환자들 중 발열 증상이 없으면 퇴원 조치했다.
나머지 8층 환자들은 그냥 7층으로 병실을 옮겼다.
이 과정에서 퇴원환자에 대한 지침이 전무했다.
이 때문에 평택성모병원은 21일부터 일부 입원환자들을 사실상 강제퇴원시켰다.
물론 평택성모병원은 이들 퇴원자에게 메르스 때문에 이 같은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고 알리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메르스로 인한 불가피한 퇴원'이라는 것을 환자들에게 인지시키라는 정부 지침이 없어 사실을 전할 수 없었고, 역학조사관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14번 환자는 격리대상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20일 퇴원했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역학조사관들이 전체 입원환자들을 추적 조사했으면 14번 환자는 25일 평택굿모닝병원을 퇴원하기 전에 격리됐을 것이다.
그러나 14번 환자가 격리 대상에서 빠진 진짜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니었다.
브리핑 중인 권덕철 중앙메르스대책본부 총괄반장
'같은 병실에 있으면서 확진자와 2m 이내, 1시간 이상 접촉한 사람들’
질본이 메르스 사태 초기 역학조사 대상 밀접 접촉자 기준으로 제시한 지침이다.
질본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지침을 참고해 이런 역학조사 기준을 만들었다.
14번은 1번과 같은 병실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역학조사 대상이 아니었다.
또 1번은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는 와상환자도 아니었다.
입원 당시 기침과 열이 있었지만 휠체어를 타고 있지 않았고, 스스로 돌아다니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와상 상태가 아니었지만 질본은 1번 환자의 상태와 무관하게 '확진자와 2m 이내, 1시간 이상 접촉한 사람들'만 밀접 접촉자로 선정해 역학조사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다보니 의사와 간호사 16명만 자가격리됐고, 14번 환자는 아예 역학조사 대상에서 제외돼 평택성모병원을 퇴원한 후 굿모닝병원, 삼성서울병원을 옮겨 다니면서 자신도 모르게 수퍼 전파자가 돼 있었다.
뿐만 아니라 21~23일 입원환자 19명이 퇴원했는데, 이들 중 3명이 강제퇴원한 후 건양대병원으로, 대청병원 등으로 옮겨가 메르스 확진자가 됐다.
"질병관리본부의 방역 빵꾸"
평택성모병원 이기병 원장은 답답했다.
강제 퇴원자들이 다른 병원에 가서 자신들이 평택성모병원에 있었고, 그 곳에서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으면 2차, 3차 감염이 발생할 수 있었지만 그 당시 질본은 '메르스 확진자가 나온 병원 이름을 공개하라'는 지침을 내려보내지 않았다.
'메르스'의 '메'자도 꺼낼 수 없는 상황.
영문도 모르고 쫒겨난 환자들은 평택성모병원에 불만을 쏟아냈다.
그러는 사이 평택성모병원에서 21일 1명, 26일 2명, 28일 2명의 추가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 중에는 의료진도 1명 있었다.
이기병 원장은 결단을 내렸다.
28일 역학조사관에게 "전원시키는 것도 마땅치 않고, 이대로 두면 지역사회 확산을 막을 수 없으니 자발적으로 병원을 격리하겠다"며 승인을 요청했다.
역학조사관은 질본 관계자에게 전화로 평택성모병원의 뜻을 전했지만 그후 평택성모병원은 아무런 지침을 받지 못했다.
결국 평택성모병원은 29일 자발적으로 병원을 코호트 격리하기로 결정했다.
위 내용은 메디게이트뉴스가 17일 국회 메르스특위에서 해당 위원의 질문과 평택성모병원 이기병 원장의 증언, 질본 관계자의 답변을 종합해 재연한 것이다.
신상진(새누리당) 국회 메르스특위 위원장은 "왜 정부에 평택성모병원 입원환자에 대한 역학조사 지침이 없었나. 1번 환자가 병원을 활보했다면 '1시간 이상, 2m' 역학조사가 아니라 상식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지 하지 않았느냐"고 질본을 강하게 질책했다.
신 위원장은 이 것을 '방역 빵꾸(펑크)'라고 표현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은 "1번 환자가 침대에 묶여 있었던 게 아니라 맘대로 돌아다녔는데 확진자와 2m 이내 접촉자에 한해 역학조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당 김영환 의원은 "2m, 1시간 이상 지침이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라면서 "정부의 오판과 무능이 메르스 사태를 키웠다"고 개탄했다.
그럼에도 평택성모병원은 메르스 숙주, 대규모 확산의 주범으로 몰렸다.
이기병 원장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반면 권덕철 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총괄반장은 얼마 전 "평택성모병원으로부터 코호트 격리를 요청받은 사실이 없다"며 평택성모병원의 주장을 반박한 바 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6월 7일에서야 메르스 발생 병원을 공개했다.
진실은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그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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