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최근 건강보험연구원이 발표한 건강보험 진료비 영역별 지출 요인 분석에 관한 보고서를 다수의 언론에서 인용 보도했다. 연구 결과, 지난 2022년에 우리나라 건보 진료비는 총 100조 원 규모를 이미 넘어섰다. 의료비 증가의 주요 원인이 고령화나 소득 증가보다 병상수와 의원 수 등 ‘공급 요인’에 있다고 분석했다. 진료비 폭증이 단순한 인구 구조 변화가 아닌, 공급자 중심의 의료 체계가 원인임을 주장하고 향후 공급자 관리의 타당성을 제시했다.
흥미로운 점은 2017년 이후 의원급 의료기관의 외래 진료비 증가분의 50% 이상이 ‘설명되지 않는 요인’으로 코로나19, 신의료기술 도입, 정책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추정 분석해 연구의 제한점을 뛰어넘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총진료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변수는 가입자 수, 고령화율, 그리고 요양기관의 숫자였다.
보고서에 의하면, 지역 의원이 늘어나면서 의료 접근성이 개선된 반면에 과잉 진료로 이어지는 ‘공급자 유발 수요’가 진료비 급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음을 방증한다는데, 공급자에 의한 의료수요 유발은 정작 어떻게 이뤄지는지는 그 내막이 궁금하다. 보고서에는 ‘폭증’, ‘과잉’ 등 연구자들이 의도한 가치 판단적 단어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래도 의사를 콕 집어 직접적으로 지칭하는 대신 ‘공급 요인’이라는 암묵적 표현을 사용해 병, 의원이 의료비 증가의 주체임을 암시하고 있다.
자료=OECD, 보건복지부
의료비 폭증이라는 주장 이면에 OECD 경상의료비 수준은 하위권
건보 진료비 100조 돌파, 과잉 진료, 폭증 등의 단어를 보니 자연스럽게 과연 우리나라 경상의료비와 의료는 국제적으로 어떤 수준인가를 비교해 보고 싶어졌다. 우리나라 정부가 의사 수 확대의 필요성 이유로 즐겨 인용하는 OECD 자료를 보자.
‘OECD Health data’ 2024년 기준으로 GDP 대비 경상의료비 지출은 캐나다 11.30%, 프랑스 11.50%, 독일 12.30%, 일본 10.60%, 영국 11.10%, 미국 17.20% 등으로 OECD 회원국 평균 9.30%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8.40%에 그쳤다. 의사 수가 OECD 평균에 못미쳐 시급히 의대 증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정부는 OECD 평균치에 미달하는 GDP 대비 경상의료비를 곧바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찾아볼 수 없다.
의료비를 줄이는 것이 과연 공공의 복리에 더 부합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건강보험연구원의 연구도 의사 수와 의료비 관계는 언급이 없고 다만 공급 요인으로 표현하고 있다. 의사 수를 늘리면 의료비도 증가한다는 ‘Romer의 법칙’이 이제는 틀린 이론이 되었나보다 생각된다. 의원과 병원의 의료 공급을 제한하려면 의사 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과잉 진료라는 주장에는 과잉 소비가 있는데 이것을 공급자의 문제로만 보는 것인지? 아니면 제도적 문제인지? 소비 통제에 대한 언급은 정치적 ‘표심’에 반대되는 표현이다 보니 우리나라 정부의 문법으로는 공급 관리다.
국민 1인당 경상의료비를 원화로 환산하면 OECD 국가의 평균은 2024년 기준 424만6909원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359만3899원, 일본 421만 63원 독일 665만3118원, 캐나다 523만7577원, 영국 483만8510원, 미국은 무려 1114만1525원에 이른다.
같은 자료로 주요 국가별로 경상진료비 총액을 US$PPP(실구매력환율)로 전환하면, 캐나다가 약 216조 원, 프랑스 368조 원, 독일 555조 원, 일본 521조 원, 영국 336조 원, 미국 3752조 원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한참 낮은 수준인 185조 원이다. 경제 선진국에 비해 경상의료비도 적고 진료와 치료 대기 기간도 거의 없고 전문의 중심 진료와 세계 최고 수준의 수진율을 자랑하는 우리나라가 의료의 효율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나라로 보인다. 정부는 이를 우리나라의 좋은 의료제도 덕이라고 홍보한다.
의료 공급을 제한하는 게 옳다면 의사 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경제학자들은 부족한 자원으로부터 큰 효율성을 달성하는 것이 정책 순위 설정의 주요 기준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효율성은 의료 자원이 비용 대비 최고의 가치를 얻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지를 측정하는데 의료가 건강 증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중간 생산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효율성은 자원 투입(노동, 자본, 장비 등의 형태로 발생하는 비용)과 중간 산출물(치료자 수, 대기 시간 등) 또는 최종 건강 결과(구명률, 생존 연수, 질보정수명(QALY)) 간의 관계를 대상으로 조사된다. 우리나라는 이미 의료에서 투입 대비 엄청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치료가능사망’은 2차 예방을 포함한 시기적절하고 효과적인 의료로 예방할 수 있는 조기사망을 의미한다. 이미 OECD와 WHO는 치료가능사망률을 의료서비스 접근성과 질을 측정하는 핵심 성과지표로 제시했다. OECD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예방가능사망은 아주 양호한 편이다.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등 그간 정부나 언론에서 자주 사용했던 표현대로라면 우리나라의 의료 성과는 현재의 OECD 자료나 보고서와는 정반대의 내용을 담았어야 했다.
국제적으로 모든 의료제도(체계)는 성과가 우수한 부분이 있고 동시에 성과가 낮은 부분이 존재한다. 최근에 공개된 OECD 연구보고서(How Do Health System Features Influence Health System Performance?)에 의하면, 특정 의료제도 집단이 다른 의료제도 집단에 비해 일관되게 우수한 성과를 보인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즉, 이 세상에 ‘최고의 의료제도’는 없다는 설명이다. 영국의 Health Foundation 역시 조세 바탕 의료제도와 전통적 사회보험제도의 비교에서 두 제도의 차이는 없었고 다만 제도의 운영비에 약간의 차이만 보였다고 보고한 바 있다.
강압적 의료개혁 보다는 신중한 설계와 단계적 실행전략 우선돼야
이러한 연구 결과가 정책적으로 시사하는 바는 대규모 의료 개혁은 단순히 제도 전체를 전환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신중한 설계와 단계적 실행전략이 동반돼야 함을 시사한다. 그동안 우리나라 정부가 수도 없이 펼쳐왔던 의료개혁의 실패가 무엇인지 암시하고 있다. 의료시스템 성과는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좌우되며, 전체 구조의 변화만으로 알아서 자동적으로 개선되지는 않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속성이다.
과잉 진료에 의한 의료 공급 과잉에도 의료비 지출은 아직 OECD 평균도 못미치는 우리나라의 특별한 현상을 과연 정부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설명할 것인가. 정부 주장대로 개혁의 대상이라는 우리나라의 의료제도는 왜 세계적으로 우수한지 명쾌한 답을 내놓을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
<참고문헌>
How Do Health System Features Influence Health System Performance? : OECD/The Health Foundation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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