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3.03 07:17최종 업데이트 23.03.0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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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눈 잃은 서연주 내과의사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갖는 힘 믿어요”

[인터뷰] "질병은 의사·환자·보호자가 한마음돼야 기적처럼 낫는 것...환자와 의사 간 간극 좁힐 콘텐츠 만들고파"

서연주 전문의.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한쪽 시력을 잃었지만, 그보다 값진 많은 것들을 얻었습니다. 씩씩하게 잘 이겨내어, 이 은혜 두고 두고 갚으며 살겠습니다.”

30대 초반의 젊은 내과 의사는 한쪽 눈을 잃은 사고가 있은지 불과 이틀 후 병원 침대에 누워 이런 글을 올렸다. 

여의도성모병원 내과 서연주 전문의는 사고 전까지 누구보다도 활발한 사람이었다. 업무량이 많기로 악명높은 전공의 시절부터 대한전공의협의회 부회장직까지 수행하며 전공의들의 권리 신장을 위해 노력해왔고, 파업 당시 그가 젊은 의사들을 대표해 읽은 편지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전공의 수련을 끝낸 후에도 서울시의사회 정책이사직을 맡아 의료계 주요 이슈들에 젊은 의사들의 목소리를 전달해왔다. 

그는 공식적인 직함을 벗어난 자리에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즐기는 그는 지난 가을,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 산에서 승마를 하던 중 낙마 사고로 왼쪽 눈 시력을 잃었다.

실의에 빠져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 응급 수술을 받고 일어난 그가 처음 한 다짐은 “유튜브를 계속 해야겠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갖는 힘을 전하기 위해 시작했던 유튜브를 이대로 그만둘 순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지난해 연말 젊은 의사 서연주의 일상과 생각을 전달하는 창구로서 문을 열었던 유튜브 채널은 사고 이후인 지금도 그대로 운영되고 있다. 그는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유튜브를 지속하기로 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타인의 완벽함을 선망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혐오하는 현대 인간들의 삶은 얼마나 비극적인가. 현대 사회의 모순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나누고, 교류하고, 고백하는 휴머니즘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가 가지는 힘을 믿는다.”

메디게이트뉴스는 최근 여의도 한 카페에서 서연주 전문의를 만나 사고 이후 심경과 향후 계획 등에 대해 얘기를 들어봤다.

불의의 사고로 왼쪽 눈 실명...환자 입장 돼보니 '돌봄' 중요성 인식

- 어떻게 실명하게 됐나.

지난해 11월 강원도에서 승마를 하던 중에 낙마 사고를 당했다. 사고 순간에 대한 기억이 통째로 사라져서 정확한 사고 경위는 알지 못한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병원으로 이송된 상태였다. 사고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온 아버지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의식을 차렸다. 좌측 안구는 파열되고 얼굴뼈는 복합골절 상태여서 지금까지 총 3차례 수술을 받았다. 안구 함몰이 심해서 조금만 더 심하게 다쳤으면 뇌 손상이 크게 올 수 있었다고 하더라. 지금처럼 멀쩡하게 글도 쓰고, 영상도 남길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한다.

- 일상에서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앞으로 갖고 가야 할 장애들을 하나씩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일단 다치지 않은 쪽 눈에서 눈물이 많이 나온다. 다친 쪽 얼굴은 감각을 느낄 수가 없고 불편하다. 외모적으로도 30대에 한 쪽 눈을 잃고, 의안을 껴야한다는 데 대한 상실감이 있다. 이런 이유로 울기도 많이 울었다. 티를 내지 않았지만 힘든 시기를 보냈고 아직도 그렇다.

체력적으로도 예전같지 않다. 퇴원을 했다가 최근에 재입원을 했었다. 퇴원 후에 다시 일상으로 복귀를 준비하던 중이었는데,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다친 쪽 눈에서 고름이 나오더라. 수술 부위에 감염이 일어난 거였다. 다행히 재수술까진 하지 않아도 될 상황이지만. 예전의 나를 생각하고 복귀를 서둘러 준비한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일이 있고 나니 내가 활동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걸 어느정도 선에서 제한해야 하는 건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더라.

내시경을 보는 내과 의사로서의 고민도 있다. 한 쪽 눈으로도 괜찮다고 하지만, 의사로서 정확히 보고 판단해야 하는 일을 내가 계속 해도 되는지 그런 미래에 대한 고민이다. 

- 고민에 대한 답은 찾았나.

다친 후에 서연주란 사람의 존재 의미와 가치는 무엇일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아직 명확한 답은 못 찾았지만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 지에 대해선 생각이 잡혔다. 나는 의사로서 의료정책, 의료체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던 사람이다. 지금은 환자 입장이 돼 이전과 다른 시각으로 의료정책과 체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이걸 바탕으로 조금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예기치 않게 찾아온 사고지만, 이 사고를 나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계기로 삼고 싶다.

- 환자 입장에서 느낀 현 보건의료체계의 문제점으로 대표적인 건 무엇인가. 

‘돌봄’ 문제다. 내가 회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부모님의 헌신이 큰 역할을 했다. 내가 상실감을 느낄 때마다 부모님은 그 커다란 구멍이 나를 잡아먹지 못하게 사랑으로 채워주셨다. 한편으로 그런 보호자의 사랑이나 헌신을 기대할 수 없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됐다. 서울에 혼자 올라와 일하고 있거나 부모님이 돌아가신 청년이 나처럼 다쳤다면 어땠을까. 돌봐줄 가족이 없는 노인들이 사고를 당하거나 몸이 아프면 그 상황을 혼자 견딜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다보니 돌봄의 중요성이 실감되더라. 

특히 요즘은 예전보다 1인 가구가 많아졌다. 사회 안전망 측면에서 돌봄의 필요성이 더 커진거다. 실제로 병원에서 일할 때 계속 입·퇴원을 반복하는 할머니 환자가 있었다. 퇴원시켜서 집에 돌려보내더라도 혼자선 식사조차 챙겨먹기 어려운 환자였다. 그런 환자들은 결국 금방 재입원을 하거나, 최악의 경우 돌아가시기도 한다. 그런 상황이 안타까웠고, 해당 분야에 대해서 앞으로 공부를 해 볼 계획이다.
 
서연주 전문의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윙크의사 연주당'.

사고 후에도 "유튜브 계속 해야겠다" 다짐"환자와 의사 간 간극 좁히고 싶어"

- '윙크의사 연주당'이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뭔가.

처음에 유튜브를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환자들이 의사를 보다 친근하게 생각해줬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환자들은 의사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는 의사도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겉만 번지르르한 게 아니라 실패도 하고, 어려움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고군분투하는 의사. 그런 의사의 진실된 모습을 다루고 싶었다.

- 응급수술을 받고 깨어난 직후 처음 한 다짐이 사고 전부터 해오던 유튜브를 계속해야겠다라는 게 인상적이었다.

학부생 시절부터 친했던 친구가 기획을 맡아 함께 만들어가는 채널이라 의미가 남달랐다. 나에겐 유튜브를 만드는 과정과 좌충우돌하며 성장하는 내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 자체가 치유인 것 같다. 내가 힘든 시기를 헤쳐나가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용기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도 했다. 힘든 시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갖는 힘을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주위의 반대도 있었다. 어머니는 사고 후에도 유튜브를 계속 하겠다고 하니 오열을 하시더라. 그 때까지도 눈물을 잘 참아오셨는데 ‘네가 눈을 다친 것도 속상한데 지금 상황에서 유튜브를 하는 게 맞느냐’고 걱정하셨다. 하지만 막상 편집된 영상을 보시고는 좋아해주셨다. 지금은 영상이 올라오면 바로 오탈자 체크를 해주실 정도로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 앞으로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SNS에서 어떤 콘텐츠들로 꾸며 나가고 싶은가.

의사와 환자의 입장을 모두 경험해 본 입장에서 둘 간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콘텐츠들을 만들고 싶다. 그런 역할이 필요하단 건 지난 2020년 의료계 파업 때도 절감했다. 당시에도 일각에서 의사들을 ‘나쁜 사람’, ‘사기꾼’으로 몰고가는 데 대한 아쉬움이 컸다. 의사에 대해 그런 인식이 있다보니 환자는 의사에게 자신의 몸을 편히 맡길 수가 없다. 반대로 거기에 상처받은 의사는 환자에게 신경질적이 되거나 방어진료를 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번에 환자 입장이 돼보니 더욱 절실히 깨달은 게 있다. 질병은 의사, 환자, 환자 보호자가 한 마음이 돼야 기적처럼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환자의 건강을 위해서 셋의 간절한 마음이 한 데 모이는 게 중요한데, 현재 국내 의료환경은 그럴 수 없게 만든다. 

- 몸 상태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을 것 같다.

내가 있던 자리로 복귀해서 맡은 일을 잘 수행해낼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게 일차적 목표다. 그 외에도 올해는 내가 경험한 일들을 바탕으로 책을 써보려고 한다. 실제로 최근에 출판사 몇 곳에서 연락이 왔다. 어릴 적 동화 작가가 되고 싶었던 꿈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뤄질 것 같다. 젊은 의사들이 의료 정책 등에 다양한 목소리를 내기 위한 ‘젊은의사협의체’도 준비 중이다. 조만간 발족 예정인데 해당 조직의 기반을 잘 닦는 것도 중요한 목표다. 지금 운영 중인 유튜브를 통해 내가 전하려던 메시지가 시청자들에게 잘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도 크다.

- 이렇게 지치지 않고 다양한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뭔가.

삶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어머니는 본인이 어린 시절부터 계속 숙제를 주고 잘해야 한다고 다그친 탓에 인정 욕구가 많아진 것 아니냐며 마음이 아팠다고 하시는데 그건 아니다. 실제로 어릴 때부터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그와 별개로 나는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다친 후에 회복을 하면서 빅터 프랭클의 ‘삶의 의미를 찾아서’라는 책을 읽게 됐다. 인간에게 중요한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존재 의미고 하나는 관계라고 하더라. 내 삶에서 벌어진 드라마 같은 일을 잘 극복하면 더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미있는 인생 스토리가 되지 않을까. 

박민식 기자 (mspark@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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