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2.06.03 09:54최종 업데이트 22.06.03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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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만에 '예술가'로 제2의 인생 시작한 제네럴닥터 김승범 원장

6월 12일까지 '생과 사의 사분면' 전시회 개최...의사 또는 작가의 역할은 '인간대 인간'의 관계 회복

제네럴닥터로 잘 알려진 김승범 원장이 6월 12일까지 생과 사의 사분면 전시회를 진행한다. 생과 사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반쯤 마른 나뭇잎. 

[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2007년 서울 홍대 앞 카페 겸 병원으로 잘 알려진 ‘제네럴닥터’를 시작했던 김승범 원장이 15년만에 예술가로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시 제네럴닥터는 생활협동조합과 네이버 사내의원으로 외연을 넓히며 여러 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김 원장이 어느날 제네럴닥터를 그만두면서 돌연 자취를 감췄다.

김 원장은 요양병원 봉직의에 이어 미용성형 분야의 일반의로 근무하다가 2019년 예약제로 운영하는 '의사의 작업실'이라는 피부미용 의원을 개원했다. 그리고 전시회까지 구상해온 김 원장은 6월 12일까지 서울 강남구 아트스페이스엣에서 열리는 ‘생과 사의 사분면’ 전시회로 사람들을 초대했다. 

전시회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김 원장은 “전시회를 열고 예술가로서의 새로운 출발이 제네럴닥터를 오픈할 때와 같은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작가 입장에서 일방적인 작품 감상이 아닌, 인간대 인간이 만나 상호작용을 하도록 전시회를 구상했다. 자신이 찍은 사진을 제시하며 ‘이것은 살아있는 것일까, 혹은 죽어있는 것일까’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각자 자리에서 서로의 답을 스스로 찾기 위해 끊임없이 환자, 그리고 사람들을 자신의 작품 세계에 초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앞으로는 의사 출신이 아닌 '예술가'로 인정받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김 원장은 의사의 역할에 대해서도 "의사는 과감히 전문가의 벽을 스스로 부수고 인간대 인간의 솔직한 선의와 진실성을 회복해야 한다. 의사는 새로운 형태의 전문가로서 의학 지식과 도구들을 활용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며 "의사는 믿을 수 있는 전문가를 넘어 인간으로서 인간을 도와주는 존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제네럴닥터 떠난 이후 요양병원 그리고 피부미용 의원 개원까지 

-제너럴닥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어느 날 갑자기 돌연 사라졌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제너럴닥터를 2013년에 떠났고, 떠난 직후 크게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았을 뿐이었다. 남은 사람들이 제너럴닥터 일을 했다. 

그리고 나서 의료서비스, 경험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디자인회사를 설립해 의원급 의료기관의 디자인을 하나 했다. 그 다음에는 요양병원에서 근무했다. 6년 전에는 가족들과 가까이 서울 강남으로 왔다. 제너럴닥터에서 젊은 사람들만 보다가 죽음에 가까운 곳에서 오랜 시간 근무를 하다보니 삶과 죽음에 대한 다른 눈이 뜨이기도 했다. 하지만 요양병원 경력으로 서울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집 근처에서 일반의로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 마침 피부미용 시술이었다. 경제적인 파산에 우울증이 왔고 그때 남은 것은 가족이라 가족에 집중하고 조용히 살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직접 2019년 6월에 예약제로 하는 피부미용 의원을 개원했다. 

-그럼 현재 피부미용 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것인가. 

예약제로 제너럴닥터 시절처럼 한 사람에게 오랜 시간 집중하는 피부미용 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착한 의료'를 내세웠던 의사라는 스스로의 프레임에 갇혀 피부미용 시술을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제너럴닥터 시절에 알던 사람들 중에서는 내가 변질됐다고 비판하거나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너럴닥터 당시에도 의료의 비영리성만 추구했던 것이 아닌 데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덧씌운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자유로워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다짐했다. 

의외로 피부미용 시술을 하면서 상당한 재미와 보람을 느꼈다. 무엇보다 ‘소질이 폭발했다’고 해야 할까. 시술 결과가 아주 좋았고 기술을 빠르게 습득했다. 제너럴닥터에서 갈고닦은 면담 기술과 사람 전체를 보는 관점이 큰 도움이 되는 것을 알았다. 피부미용 역시 ‘사람’이라는 요소가 담겨 있었다. 단순히 약을 처방하고 진료상담을 하는 것을 넘어서 피부미용 시술로 직접 변화를 만들어 주는 과정을 통해서도 삶의 문제를 넓게 해결하는 단초를 만들 수 있었다.

가령 얼굴에 보톡스를 잘 주사하는 것을 넘어 그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고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적은 노력으로 좋은 결과를 얻다 보니, 단순히 피부미용 시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얼굴을 다루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예전 제너럴닥터 때처럼 피부미용 시술도 30분씩 상담하고 진료를 하고 있나. 

이 곳의 이름은 ‘의사의 작업실’이다. 제너럴닥터는 모든 동네 사람들을 위한 동네 주치의를 추구했다면, 여기는 자기 세상에 갇혀 사는 예술가인 의사가 사람의 얼굴에도, 물리적 사물에도 예술 작업을 해 나가는 폐쇄적 작업실이라는 개념이다. 제너럴닥터를 통해 하려고 했던 건 ‘당장의 수익을 포기하고 환자와 의사의 인간적 관계 회복을 시도한다’라는 의료적 가치의 추구였다.

지금 나의 피부미용 시술은 의학의 기준에서 치료적 가치도, 의료 산업이라는 측면에서의 영리적 가치도 추구하지 않는 애매한 위치다. 굳이 말하자면 ‘환자로 오지는 않았지만 고객으로 만난 사람을 돈벌이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자기만족적 최선을 다한다’ 정도이다. 그래서 지금의 내 시술은 치료적 의료행위나 제대로 된 영리적 사업행위이 아닌, 자기 만족적 예술 행위라고 정의했다. 

그러다보니 한 사람에게 쏟는 시간도, 완성도에 대한 집착도 늘어났다. 지금은 한 명당 두 세 시간을 들여 이야기하고 시술하고 또 이야기하고 시술하는 과정을 이어간다. 이렇게 하기 위해 하루에 한 두명만 진료하기 때문에 진료시간은 제너럴닥터 때보다도 길다. 이렇게 3년을 보내오면서 스스로도 많은 것을 깨달았고, 다른 피부미용 시술을 하는 의사들과 아주 다른 경험을 해왔다.

내 앞의 한 사람은 긴 시간동안 매우 다양한 표정을 보여준다. 정말 신경 쓰이는 부분을 이야기해주며, 평소 습관이나 두려움도 드러낸다. 다른 피부 미용시술 영역에서는 이렇게 충분한 시간동안 의사와 대면하며 이야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의사가 시술에 필요한 정확한 판단을 하기 어렵다. 정해진 시술만 하기에 급급해지기 쉽고, 그마저도 고객이 원하는 정확한 부위를 파악해 완벽한 시술을 하기란 더 어렵다. 보험 영역 뿐 아니라 가장 산업화된 비보험 미용시장에서도 충분한 시간동안 문제를 파악하고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미용성형 영역에도 인간이 있고, 인간의 아픔이 있다. 이것을 무시한다면 의사가 시술 하나로 온전한 문제 해결을 해줄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시간을 충분히 들여 그 사람의 문제를 올바로 바라보고 접근하면 얼굴의 작은 주름 하나, 꺼짐이나 쳐짐 하나를 해결하더라도 그 사람의 삶속에서 아주 큰 변화를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점이 무척 재미있고 보람 있다. 

-전시회는 언제부터 준비한 것인가. 
 

​구체적으로 언제까지 전시회를 해야 한다는 계획은 없었지만 ‘의사의 작업실’이라는 이름으로 개인 아뜰리에 겸 의원을 한다는 발상을 했을 때부터 전시를 목표로 했다. 사실 이번이 첫 개인전이긴 하지만, 그룹전 경험이나 설치 작업 경험은 있었기 때문에 막연한 목표는 아니었다. 

이번 전시회의 경우는 지난 겨울부터 구상했다. 어느날 피부 시술 받으러 온 고객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작업실에 가득한 피규어나 오브제, 그리고 디스플레이된 사진을 보면 하나 하나 다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시네요.”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가 이 말을 통해 나의 시선을 돌아보게 됐다. 

나의 시선으로 어떤 것을 바라보든지 간에 조명이나 의자 등 무생물체 모두 생명처럼 보려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매일 찍는 사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진을 못 찍는 편은 아니지만 작가들의 사진과 달리 너무 대상이 다양하고 한 느낌이 이어지지 않아 사진만으로는 전시를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그제서야 이 부분도 이해가 됐다. 나는 내 시선의 대상이 되는 세상 모든 존재에서 살아있거나 죽어있음을 흐릿하게라도 느낄 때 사진으로 담고 있었다. 그래서 전시회 주제도 생과 사에 대한 것으로 정했다.  
그는 다 말라버린 꽃도 살아있음을 느끼며, 생과 사의 사분면에서 '생'의 축에 점을 찍고 있는 자신의 시선을 소개했다. 

의사와 작가 역할 넘어 '인간대 인간'으로 선의와 진실성 회복해야 

-이번 전시회의 주제인 ‘생과 사의 사분면’에 대해 소개해달라. 

생과 사의 사분면은 가로축은 객관적 판단, 세로축은 주관적 느낌의 축에 +쪽으로 갈수록 생명이 강한 것, -쪽으로 갈수록 생명이 없는 것으로 정의된다. SWOT 분석 등 다양한 경영적 전략적 판단에 쓰이는 사분면 분석은 두서없이 늘어놓여 있는 다양한 대상을 바라보는 사고의 틀을 만들어주고 의사 결정을 이끌어 내는데 도움을 준다. 나는 평소 습관적으로 사분면 분석을 많이 하는데, 사진을 해석하는 과정을 사분면 분석의 형태로 해봤다.

나의 시선이 담긴 사진들은 두서없이 보이지만, 생과 사로만 설명해야 하는 사분면에 올려 보면 일정한 양상이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전시회가 단순히 사진전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생과 사의 사분면에 점을 찍어보라고 안내한다. 

작가 입장에서 무생물이라 하더라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죽어가는 것을 보면 당신은 어떻게 볼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사진을 찍어서 편집을 하고 다시 돌아보면서 마음의 소리를 담았다. 그렇게 사진을 함께 감상하는 사람들과 함께 상호작용을 할 수 있고, 관객 역시 소극적이나마 작가가 될 수 있다. 작품을 감상하는게 아니라 작품으로 작가와 관객이 함께 느끼게 했다.

스스로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러면 안 된다는 이중적인 족쇄가 있었다. 의사 출신이라 의학적인 지식은 우위에 있더라도 사람마다 살아온 과정이 다 다르듯이, 의사는 물론 작가도 여기까지 작품에 초대할 뿐이다. 작가와 관객 둘은 어디까지나 공평하고 동등한 존재다. 각자의 시선의 주인으로 누군가는 해석에 따라 점을 찍으면 그 사람의 시선이 다시 재료가 돼서 그 사람이 만들고자 하는 작품이 된다. 가르치고자 하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사람이 작품이나 사람에 감탄하는 것을 넘어, 사람 자체의 고유함을 드러내고 작가와 관객이 동등해지게 만드는 데서 기뻤다. 

-앞으로 전시회 이후 예술가로서의 삶의 꿈은 무엇인가. 

아직 의사로서의 경력이 대부분이고 작업을 통해 말하는 예술가의 길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짜 예술가로 평가받고 인정받고 싶다. 의사 겸 예술가가 아닌, 그냥 '예술가'로 말이다. 사람을 보고 얼굴에 시술을 하는 일은 너무 즐거운 일이지만, 자기 만족적 취미생활로만 남겨 두고 싶다. 물론 내가 의료인으로 사회화되면서 지내온 20년 가까운 세월이 내 시선과 정신세계, 그리고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작품의 밑거름, 나만의 시각과 작품세계를 만들어 낸 배경일 뿐, 작품이 치료적 의미나 의료행위로 연결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정량적이고 정성적인 과학적 분석에 근거한 진단과 의료법상 치료 행위만이 인간을 위로하고 치료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고 있다. 나의 작품이나 작업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된다면 진료실 안에서 당장 좋은 시술을 해주는 것의 가치를 높일 수도 있고, 삶의 가치를 넓힐 수도 있다.

-다음 전시회를 연다면 어떤 콘셉트일까.  

이번 전시회는 사진전이 아니라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라고 설명하고 있다. 앞으로도 미디어 아트나 인터랙티브 키네틱 아트를 하고 싶다. 다시 말해 설치물이나 미디어 설치물에 관객이 들어가거나 참여해 작품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공간과 경험이 어우러진 대규모의 설치작업에 대한 구상이 8개 정도 있다. 바쁘게 만든다 해도 향후 몇 년을 통해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무척 새롭고 재미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제너럴닥터 이후 15년만에 새로운 출발이다. 의학, 그리고 의사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제너럴닥터를 통해 ‘의사가 권위의 벽 뒤에 숨은 전문가로서 이미 환자가 된 상태의 사람을 만나는 것을 그만 해도 치료적 관계가 꼭 나빠지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새로운 인간적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더 큰 치료적 가치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복잡한 말을 줄여 ‘극단적으로 인간적인 의료 경험을 통해 인간 중심의 의료를 구현한다’고 표현했다. 이 과정에서 돌파하거나 전복시켜야 할 가치나 상식, 관습이 많았다.

예를 들어 '의사-환자 관계'라는 말에서 이미 온전히 인간적인 관계가 아닌 도구적, 목적적 관계의 틀을 만들게 되는데, 이 속에서 인간적인 것을 추구해도 한계가 너무 분명했다. 그래서 의사-환자 관계를 넘어 인간대 인간의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번은 어렵게 모셨던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선배께서 ‘인간적 의료란 그래도 의료의 틀 안에 있는 것인데, 너는 의료를 벗어나려 한다. 그건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고 답이 없는 영역이다'라고 했다. 

과거의 의료 체계 속에서는 선배의 말이 맞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료라는 체계와 틀, 학문이 우리의 유일한 기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의료의 틀을 벗어난 곳에서도 의료나 건강과 관련한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또 새로운 소비를 만들어 나간다. 그러니 경직된 의료의 틀 안에 갇힌 채 인간성을 회복하겠다면, 이 사회의 변화와 새로운 요구에 부응할 수 없다.

오히려 과감히 전문가의 벽을 스스로 부수고 인간대 인간의 솔직한 선의와 진실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런 관계가 회복됐을 때 의사는 새로운 형태의 전문가로서 의학 지식과 도구들을 활용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의사는 믿을 수 있는 전문가를 넘어 인간으로서 인간을 도와주는 존재가 돼야 한다. 
 
김승범 원장의 사진을 보고 관객이 직접 생과 사의 사분면에 점을 찍는 것이 전시회의 관람 순서다. 

임솔 기자 (sim@medigatenews.com)의료계 주요 이슈 제보/문의는 카톡 solplus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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