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년을 돌아보며

2018년 제40대 대한의사협회장 선거의 화두는 이른바 '문재인 케어'라는 포퓰리즘 의료정책에 대한 대응 중 가장 나은 해결책을 제시한 사람을 고르는 선거였고, 이에 대해 가장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던 회장이 당선됐다. 내가 평상시 고민했던 의료정책에 대한 철학과는 180도 다른 후보가 당선됐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내가 속한 단체의 수장이기에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길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난 3년을 돌아보았다. 과연 우리는 승리했는가?

# 왜 우리는 지기만 했을까.

그렇다. 내가 알고 있던 우리나라 의료계는 지금까지 항상 '지기만 했다.' 국민건강을 수호해야 하는 의사들과 정부의 공통적인 목표를 두고 우리는 여야를 막론하고 어떤 정치 세력이 집권을 하든 의료계는 그들과 싸우기만을 고집했다. 의료계의 고질적인 문제가 '턱없는 수가'로 귀결된다지만 그 '수가' 이야기를 꺼내기만 하면 협상테이블에서든, 여론이든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나 보다.

왜곡된 의료시스템의 문제점은 당연히 항상 지적해야겠지만, 그렇다고 그 문제점이 당장 해결될 수도 없다. 또 막상 그 문제점을 들고 갔을 때 해결할 의지도 없는 상대방을 통해 언성만 높이고 회의장을 박차며 나가버리면, 슬프지만 우리는 정부를 이길 수 없다. 지난 8월 젊은 의사들이 도저히 이 정부의 옹졸한 의료정책을 참지 못하고 들고 일어나 마지막 한 줄기 희망의 꽃이 피어나는 듯했으나 내부 분열은 악화되고 죄 없는 학생들만 고스란히 이 모든 피해를 감당할 수밖에 없는 촌극을 맞이했다.

앞서갔던 이들의 구태를 답습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과 으르렁거리며 삿대질을 하며 싸워야 하는가? 정부와의 대화 창구에서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서로의 감정을 자극하는 정책의 향연과 이에 맞서 조롱을 일삼으며 대응하는 나의 모습, 우리의 모습이 과연 올바른 의료제도 개혁을 위해 득이 되는 것일까?

# 뱀처럼 지혜로운 회장

그럴싸한 공약만 남발하는 사람이 회장이 되진 않았으면 한다. 지킬 수 있는 공약을 내세우는 사람이 수장이 돼야 한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들은 누구나 쉽게 알아채고 지적할 수 있지만,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아직 본 적이 없다.

의료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수가 이야기를 더 해보자. '수가를 정상화하겠다'라는 공약은 누구나 말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공약을 실현할 전략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최소한 답할 줄 아는 사람이 회장이 돼야 한다. 의료수가 결정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구조를 어떻게 개혁할지에 대한 플랜을 가진 사람이 우리의 회장이 돼야 한다. 필연적으로 늘어날 보건 의료비에 대한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예산을 책정하는 국회의원과 이를 집행하는 정부 기관을 향한 실질적인 노력(대화를 포함한 합법적 로비)을 어떻게 펼쳐낼지에 대한 계획을 풀어놓는 사람이 돼야 하지 않을까.

# 때론 고개 숙일 줄 아는 회장

의사들은 '내가 가장 똑똑하다'고 착각하고 사는 것 같다. 물론 의학의 분야에 있어선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맞다. 하지만 세상을 읽는 흐름에 있어선 '어떻게 저런 발언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될 정도로 편향적으로 사는, 공감 능력이 결여된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의사회장은 의사들의 수장으로서 위풍을 갖고 당당해야 한다. 하지만 대중과 정부에 절대 권위적이어선 안 된다. 때론 힘을 가진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일 줄도 알아야 하고 주먹으로 한 대 치고 싶어도 이를 꽉 깨물고 웃음으로 화답해야 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의사들은 연간 얼마나 국회의원들에게 기부하고 있는가. 당신이 좋아하는 의원이라면 기부하는 데에 아낌없겠지만, 의사들의 정책에 반하는 정책과 공약을 쏟아내는 정치인에게는 10원도 아깝다고 우리의 지갑을 닫는다. 의료계와 관련한 법안을 만드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총 24명으로 구성돼 있다. 100% 환급되는 연말정산 정치기부금에 대해 과연 13만 의사들은 얼마나 이들에게 후원금을 내고 얼마나 그들과 대화하려고 시도하고 있는가.

나는 합법적인 이러한 문화를 이끌어 낼수 있는 의사가 회장이 됐으면 한다. 우리의 정책에 반한다며 역정을 내며 바닥에 드러눕는 회장이 아닌, 이들이 우리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우리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법안과 정책에 대해 읍소하고 합리적인 비판을 통해 더 나은 의료계 정책들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회장이 되었으면 한다.  대나무처럼 곧을 필요도 있지만, 갈대처럼 구부릴 줄 아는 유연성을 갖춘 사람이 회장이 됐으면 한다.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는 회장

의사협회 구조는 너무도 수직적으로 경직돼있다. 의사들의 정책을 논하는 데에 온통 교수들만 자리를 잡고 있다. 전공의의 수련환경을 평가하는데 전공의가 단 두 명만 속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선배 의사들 중 이 구조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의료계 인사들을 본 적이 없다. 전공의의 수련환경을 개선시키려면 전공의들의 의견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지난  수련환경평가위원회 구성을 보면 아찔한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진짜 전공의들의 수련환경을 개선시키고 싶은 의지가 있는것일까.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의사협회 회비를 납부하지 않는 사람은 '의사면허'를 갖고 있어도, 의사협회 회장을 뽑을 수 있는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는 이상한 구조를 타파할 필요가 있다. 왜 13만 의사면허 중 4만 명만 회비를 납부하고 있었느냐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던 역대 의사협회 집행부는 반성해야 한다.

회원들이 회비를 내어 실질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어떤 인센티브가 있었는가. 회비를 내지 않는 회원들에게 왜 회비를 왜 내지 않고 있었는지에 대해 단 한번이라도 그들의 의견을 경청한 적이 있는가. 그들이 회비를 내도록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던 시도조차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40기 선거를 맞이했고, 13만명이 회원인 곳에서 4만명만 유권자로 등록이 되고 그중 50%만 투표해 총 의사 회원 대비 5%의 지지인 6000여표만으로 당선되는 구태의연한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의사협회의 미래는 없다고 본다.

각 과마다, 직역마다 모두 다양한 의견들을 갖고 있기에 의사들은 흔히들 뭉치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투표에 참여하는 구조를 만든다면, 나눠진 단체, 직역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특정과 특정 직역을 무시하지 않는 회장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번 선거에는 이 구조를 바꿀 수 없겠지만 회장이 됐을 때 이러한 의료계의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겠다고 공약하는 회장에게 나는 힘을 실을 것이다.

# 제발 좀 잘하는 회장

의사협회 회장은 왜 항상 임기 때마다 아름답게 퇴장하지 못하고 불신임이라는 얼룩진 채 뒷길로 비난을 받으며 잊혀져야 하는가. 이번 41대 의사협회장 선거는 이러한 얼룩 없이 회무를 곧고 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한다. 자신의 권위와 영달에 만족하지 않고 모든 회원의 염원인 '왜곡된 의료정책 개혁'을 올바른 방법으로 이끌어 주는 회장이 되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평회원이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제발 좀 잘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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