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마치 응급실 의료진이 환자를 받지 않은 것처럼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시스템의 문제를 개인에게 떠넘기지 않도록 법 개정 시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30일 서울 서대문구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열린 대한응급의학회 학술대회에서 국회가 추진하고 있는 응급의료법 개정 과정이 현장과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의료진의 책임만 강조하는 방향의 법 개정은 응급실 이탈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날 대한응급의학회 이의선 대의원은 응급의료의 특수성을 강조하며 "응급의료는 단순히 진료를 수행하는 일이 아니라, 매 순간 한정된 인력과 자원을 어떻게 배분하고 활용할지를 동시에 판단해야 하는 분야"라고 말했다.
그는 "응급실은 사회적 약자를 가장 가까이서 마주하는 24시간 사회의 안전망이지만, 최근에는 결과만을 두고 소송을 제기하는 분위기가 확산돼 책임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며 "진단 오류나 처치 과정의 사법 리스크가 높아지면서 점점 더 많은 의료진이 응급실을 떠나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히 병원이 아닌 개인을 상대로 한 의료소송이 급증하고 있다며, 무혐의 처분이 나더라도 최소 3년간 조사를 받는 경우가 많아 의료진 활동에 큰 제약이 된다고 했다.
이어 응급의료 환경의 변화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메르스 유행 당시 응급실 과밀화를 언급하며 "환자 한 명이라도 더 돌보려 했던 선의가 처벌로 돌아왔고, 이를 학습하게 됐다"며 "이후 응급의료에서 환자 수용을 통제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는 코로나19 시기에도 이어졌으며, 각 병원은 환자 발생 규모와 무관하게 응급실 수용 능력을 초과하지 않는 선에서 진료를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의원은 "'응급실 뺑뺑이'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건 2015년 메르스 때였고,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에는 급격히 늘었다"며 "또 올해 의정사태를 지나면서 배후진료과 미작동 등으로 최종 진료가 불가능한 사례가 늘었다. 하지만 개정안은 마치 응급실 의료진이 환자를 받지 않은 것처럼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시스템의 문제를 개인에게 떠넘기지 않도록 법 개정 시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응급의료법 개정 방향과 관련해 현장의 수용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한응급의학회 송명제 총무이사는 "법 개정이 실제 현장에 있는 의사와 응급실 종사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향인지 평가가 필요하지만, 지금은 일방적으로 통보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응급실 환자 수용 문제로 응급실 뺑뺑이 현상이 부각됐지만, 2020년 코로나19와 2024년 2월 의정사태라는 특수 상황에서 비롯된 문제를 일반적 상황의 기준으로 입법화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윤 국회의원 보좌관인 허희수 보좌관은 현장의 우려를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법 개정안을 발의할 때 단어 하나하나가 현장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고민한다"며 "응급실 전담 인력과 최종 치료 인력 확충, 재정 지원 강화 등을 중장기적으로 담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허 보좌관은 "응급의료 체계의 개편은 한 번의 법 개정으로 달라지기 어렵다"며 "환자 발생부터 병원 도착, 치료 전 과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패키지로 함께 다뤄야 실질적인 개선이 가능하다. 인식 개선 등도 수반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당한 사유라는 틀 안에서 응급실의 수용 불가 상황을 어떻게 공지하고 대처할지에 대한 세부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부연했다.
아울러 그는 "필수의료 특별법은 특별회계로 통과돼 응급의료기금과는 연관이 없다"며 "필수의료 시도위원회나 정책심의위원회도 기존 응급의료위원회를 대체하는 개념이 아니라 지역 현안에 따라 연계·조율하도록 설계됐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