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8.07 12:46최종 업데이트 23.08.07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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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정신질환자 범죄, 매번 언급만 되는 '사법입원제' 이번엔 도입될까?

도입 위한 연구 등 절차도 진행되지 못해…현행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 한계 명확, 전문가들과 제도 개선 논의부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최근 잇딴 흉기 난동사건이 터지면서 대한민국이 혼란에 휩싸였다. 지난 3일 경기 분당 서현역에서 발생한 무차별 흉기 난동으로 14명이 다쳤고 대전의 한 고등학교에 들어와 교사를 흉기로 찌른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사건들의 공통점은 피의자들이 모두 정신 질환 병력을 갖고 있지만 치료를 받다가 거부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에야말로 정신질환자들이 제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흉기 난동 피의자 모두 자의적으로 진료 거부한 정신질환자

7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현역 사건 피의자인 A씨는 대인기피증을 앓아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정신건강의학과 약물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2020년 이후 조현성 인격장애 진단을 받고 난 뒤엔 약물 복용 등 모든 진료를 받지 않았다. 

대전에서 교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B씨도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조현병과 우울증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그러나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오자 받아오던 진료마저 모두 끊은 상태였다. 

이들 모두 자의적으로 정신과 진료를 중단했다는 점에서 환자들이 꾸준히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만 있었어도 어느 정도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연이어 중증정신질환자에 의한 사고가 터지면서 정부도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4일 관계 부처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정신 질환자의 입원과 치료를 지원하는 제도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법무부도 중증 정신 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법원이 결정하는 '사법 입원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법무부가 언급한 사법입원제도는 입원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 시 법원 또는 준사법기관에서 입원심사를 거쳐 입원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2017년 비자의입원 요건을 대폭 강화한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제때 입원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의료계에서 줄곧 주장하고 있다.
 
현재 미국 대부분의 주와 독일, 프랑스는 법원심사 모델로 실시되고 있으며 호주는 법원 대신 독립된 준사법기관인 정신건강심판원을 통해 입원치료가 결정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건 터질 때마다 사법입원제 언급되지만 도입위한 실질적 움직임은 없어

정부가 사법입원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사실 중증정신질환자에 의한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사법입원제 도입 얘기는 꾸준히 언급돼 왔다. 그러나 정작 제도 정착을 위한 실질적인 움직임은 거의 없었던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지난 2019년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 당시에도 복지부는 '중증정신질환자 보호·재활 지원을 위한 우선 조치방안'을 발표했지만 사법입원제 도입은 중장기 개선과제 정도로 치부돼 구체적인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법 개정 이후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은 지켜보자는 보수적인 입장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요청에 현재 정부와 의료계는 사법입원제 중 사법부 심사 모델 보단 준사법기관 심사 모델인 정신건강심판원 모델을 지향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판사 정원제로 인해 인력 제한이 있다 보니 새롭게 정신건강 입원 심사를 할 만한 판사 인력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법원 모델은 심사에 대한 적법절차에 따른 객관성과 공정성이 부여되지만 형식적인 절차로 인해 환자에게 일종의 상처가 될 수 있고 의료인이 아닌 판사에 의해 의견이 결정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준사법기관 모델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심사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는 최대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환자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선에서 유연한 실질적 판단이 가능하다.
 
사법입원제 포함한 전면적인 법 개정 필요…퇴원 이후 지역사회 자립 지원도

관련 논의를 통해 복지부와 의료계는 정신건강심판원 도입을 위한 근거를 마련하자는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아직까지 연구용역 조차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백종우 법사-사회특별위원장은 "입원적합성심사는 비자의입원이 이뤄진 환자의 적절성을 사후 심사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입원이 이뤄지기 전에 환자 가족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도록 국가가 개입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심판원이 도입되면 72시간 이내 입원 여부가 자연스럽게 결정되니 입원 결정자의 부담이 적어지게 된다. 환자들도 법원보다는 심판원 모델을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심판원 도입이 늦어지면서 그 사이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가 계속되는 사태가 안타깝다"며 "법 개정에 시간이 걸린다면 우선 정신질환자 응급시스템부터라도 개선돼야 한다. 현장에서 경찰이 병원 이송 여부를 판단하지 말고 우선 의료기관에 연계해 의료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비자의입원을 위해 운영되고 있는 현행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 제도의 한계를 지적하는 견해도 존재한다. 

연세대 산학협력단 이선구 교수는 2021년 국립정신건강센터 연구용역에서 "입적심은 비자의입원으로 인해 환자의 권리가 과도하게 제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입적심의 운영 과정에서 기대만큼 인권의 증진에 기여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입적심이 제기된 지 한 달 내에 그 결과를 기관장에게 통지하라는 법적요건은 심사의 내실 면에서도, 절차의 신속성 면에서도 부적절하다"며 "심사과정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인의 소견을 참고하도록 한 것 역시 내실 있는 보호막은 아니다. 두 번째 전문의는 첫 번째 소견을 참고할 가능성이 높아 독립적인 별도의 판단을 내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사법입원제 이외에도 정신질환자가 퇴원 이후에 지역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연계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사법입원제를 포함해 전면적인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장석용 의료경영학과 교수는 "한번 정신질환자가 폐쇄병동이 입원하면 퇴원 결정이 쉽사리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퇴원 이후에 환자들이 지낼 곳이 없기 때문"이라며 "이들이 자립해서 생활할 수 있는 수단은 꼭 필요하다. 더 나아가 이들이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으면서 악화 또는 재발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지원방안도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장 교수는 "정신질환자들이 지역사회에서 그 장애의 정도에 따라 거주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며 "아울러 현재 존재하는 제도만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법입원 등을 포함해 새롭게 도입될 수 있는 제도가 충분한 합의의 과정을 거친다면 전면적인 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경대 기자 (kdha@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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