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정다연 기자] 지난해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남북 협력과 교류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북한의 보건의료 시스템은 체제 변화기를 맞아 사회 안전망이 국가에서 개인으로 넘어가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의약품은 병원이 아닌 시장에서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다. 빈부에 따른 의료접근성 격차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만성질환은 심각한 북한에서도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비감염성 질환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보건의료 협력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 됐다.
이에 따라 남북 보건의료 협력을 위한 다양한 활로를 모색하고 지원 효과를 체계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보건의료 분야에서 남북이 함께하는 연구개발을 확대하고 교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의료연구실은 29일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연구혁신센터에서 서울대학교 통일 대비 기반구축 및 역량강화사업의 일환으로 '북한 재난의료 지원체계 수립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가정의학과 박상민 교수는 '남북관계 및 국제동향을 고려한 보건의료 교류협력 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현재 북한 보건의료 체계의 현황을 짚고 남북 보건의료 협력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봤다.
북한 보건의료 전달체계의 붕괴, 병원에 없는 의사들
박상민 교수는 북한 보건의료 이해할 수 있는 세 축으로 북한 내 보건의료 변화, 사회경제 변화, 인구구조 변화 등을 꼽았다. 변화의 세 축은 상호작용을 하며 북한의 보건의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북한은 사회주의 경제에서 시장 경제로 체제가 전환하는 시기를 맞아 보건의료 시스템이 취약해진 상황이다. 재정 부족과 해외 지원 부족은 북한 사회에서 의사들을 병원 밖으로 내몰고 있다. 이에 따라 환자들의 의료 비용 부담도 커지고 있다.
박 교수는 "북한의 보건의료는 사회경제 변화의 영향을 받는다. 북한 주민의 기대 여명은 1994년까지 여성이 74세, 남성이 69세였다가 1995년을 기점으로 7~8세 가량 급락했다가 2002년 최저점을 찍었다. 2003년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점차 예전의 기대여명까지 회복하는 추세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북한 보건의료 전달체계의 시대적 변화와 맞물린다. 기대여명이 떨어진 시기는 보건체제 혼란기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한의 인구구조 변화 추이를 보면 저출산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북한에서도 도시에서 가임기 여성의 출산 비율이 떨어지고 있다"며 "1990년에서 2010년 사이 북한의 질병 부담 변화를 살펴보면, 호흡기감염과 조산 합병증은 감소했으나 심혈관질환, 당뇨, 만성간질환 합병증, 암 등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북한 보건의료 시스템의 변화는 여느 사회주의 국가가 체제 전환을 할 때 사회 안전망이 국가에서 개인으로 넘어가면서 겪는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북한의 국가보건의료 전달체계는 약화돼 있는 상태다. 인구 1000명당 의사수는 북한이 3.3명으로 OECD 평균(3.1명)과 남한(2명)보다 많다. 하지만 여느 체제전환국들이 겪었던 문제와 같이 공공보건의료 체계는 약화돼 가고 있다. 비공식 보건의료시장이 커지고 있다"며 "이는 북한 내 보건의료 재정과 지불보상체계 등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짚었다.
박 교수는 "북한의 보건의료 재정은 점점 줄어 과거 재정의 25%까지 낮아졌다. 이를 보완하려면 원조를 받아야 하는대 원조 지원 금액도 부족하다. 대북 제재 등 이유 때문에 북한은 높은 질병 부담을 가지고 있어도 아프리카 등 다른 국가에 비해 보건의료 원조를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이는 보건의료인이 제대로 된 월급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정과 지불보상 체계가 흔들리면 보건의료인들이 생존을 위해 보건의료 업무가 아닌 장사 등 다른 일에 뛰어든다. 예를 들면, 당직 의사가 서류상으로는 10명인데 실제 병원에 가보면 의사 1~2명만 있는 셈이 된다"며 "보건의료인이 생존을 위해 다른 업종에 뛰어들면 다시 이는 환자의 비공식 부담금 증가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각 치료법에 따라 어느 정도 비공식 환자 부담금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제왕절개에 30달러, 위 절제에 30달러 등을 환자가 비공식적으로 부담해야 한다고 한다"며 "북한뿐 아니라 다른 체제전환국도 환자의 비공식부담금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재정이 악화돼 병원에서 보건의료인에게 월급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의료인에 대한 정부의 통제는 약화되고 의료인이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개인 진료도 늘어난다"고 말했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의약품은 가난한 만성질환자들에겐 사치
북한에서는 의약품이 장마당을 통해 거래 된다. 장마당은 우리나라의 시장과 같은 개념이다. 장마당에서 거래되는 의약품의 문제점은 특별한 정책 책정이 없어 가격 변동이 발생해 환자의 지불 부담을 가중시킨다. 또 의사의 처방전 없이 거래 돼 안전성도 담보할 수 없다.
박 교수는 "의약품의 비공식의료시장 유출 문제는 심각하다. 북한에서는 의약품이 장마당(우리나라의 종합시장 격)을 통해 유통되기 시작했다. 북한이탈주민들에 따르면, 장마당에서 모든 의약품은 밀수품이든 아니든 상품가치를 가진다. 한국제 등은 비싼 편이고 중국제는 싼 편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의약품 가격은 특별한 책정 규정이 없어 장마당에 많이 풀리는지 여부에 따라 가격 변동이 있다"며 "의약품은 개인약국과 장마당에서 팔리다가 최근에는 개인 약국을 통해 활발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개인약국에서는 의사 처방전 없이도 증상을 이야기하고 약을 파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북한이탈주민들에게 장마당을 통해 의약품을 사는 이유를 물었다. 이들 대부분은 '병원에 약이 없어서'라고 답했다. '의사가 장마당에서 약을 구입하라고 해서'라는 답변과 '장마당 약이 병원 약보다 더 효과가 좋다고 믿어서'라는 답변이 그 뒤를 이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사회주의 의료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상태에서 비공식 의료비용 지불이 늘고 비공식 의료시장이 활성화 됨에 따라 북한에서는 의사와 환자의 행태가 달라지고 있다"며 "빈부격차에 따라 의료접근성이 달라진다"고 짚었다.
그는 "돈이 없어서 필요한 약을 구입하지 못한 북한 주민은 10명 중 6명에 이른다. 가난한 환자들은 증상이 아주 심해서 합병증이 발생해야 병원에 찾아 간다. 이러한 의료 체계의 구조적 문제점은 만성질환자에게 아주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로 북한이탈주민 중 북한에서 의사였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만성질환자와 암환자의 부담이 크다. 북한에서는 고혈압 환자는 우리처럼 평생 약을 복용하는 경우가 드물다. 고혈압 약을 일정하게 복용하다 끊는다고 한다. 현재 북한 의료 체계에서는 만성질환까지 관리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말했다.
효과 평가 등 보건의료 교류협력 위해 전략적으로 행동해야
효과적인 남북 보건의료 협력을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 박 교수는 북한 보건의료 상황이 변한 만큼 그에 적합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다자 기구를 활용한 보건의료 협력을 하되 효과가 있는지 체계적으로 평가해야 하고 종합적인 보건의료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남북 보건의료 교류협력은 국제 보건의료 동향을 고려해야 한다. 통상 보건의료관련 원조의 흐름을 살펴보면 국제사회 등 기부자가 다자 기구, 양자 기구, NGO·재단 등 채널을 통해 북한 보건의료 사업을 시행한다"며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보건의료 사업을 시행하는 경우에는 실제로 사업을 실행하는 단계가 어렵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짚었다.
박 교수는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북한의 보건성 협력을 받으면 보건의료 사업 실행은 쉽다. 하지만 다자 기구, 양자기구, NGO·재단 등 어떤 기구를 거쳐 실행에 옮기는지가 중요하다"며 "양자 기구로는 외교부 산하의 한국국제협력단(KOICA), 보건복지부 산하의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 기획재정부 산하의 수출입은행이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만 대북 보건의료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다자 기구를 활용하는 채널이 중요하다. 대표적인 다자 기구로는 UN 산하기구가 있다. WHO, UNICEF 등은 특정 목적에 한정해서 지원을 한다. 예를 들어 북한의 모자보건 사업에만 지원하는 방식이다. 통일부가 남북협력기금을 활용하는 주요 경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다자기구로는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에 맞서는 글로벌 펀드(Global Fund)와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등 국제 보건 기구(Global Health Initiative)가 있다. 기존의 보건의료 원조 외에 특정 질병이나 일부 질병군에 집중해 추가적인 재원과 사업을 진행하는 기구로 2000년 이후 많이 창설돼 활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글로벌 펀드는 북한에서 결핵과 말라리아 등에 대해 지원할 때 큰 역할을 했다"며 "우리나라는 북한 예방접종 사업을 지원할 수 없다. 외교부는 국제 질병퇴치 기여금으로 2014년부터 3년간 연간 400만 달러를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에 지원했다. 세계백신면역연합 기여금은 북한 등에 예방접종 사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다자기구로 국제개발금융기관도 활용할 수 있다. 세계은행그룹,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등 우리나라가 가입한 지역개발은행 등을 통해 북한의 보건의료 사업을 협력하거나 지원할 수 있다. 다만 지금까지는 유엔 제재로 인해 지원하기 어렵다. 유엔 제재가 해제되면 개발은행 등을 통한 지원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2002년부터 2014년까지 WHO와 UNICEF 등 다자 기구를 통해 우리가 북한 보건의료 지원에 기여한 비율은 WHO가 63.8%, UNICEF가 26.2%다"며 "최근에는 북한에 대한 보건의료 협력이 줄었다. 대북 보건의료 협력 사업에 대해 향후 전략을 세울 때는 종합적으로 여러 영역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외교적인 불안정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대북 보건의료 사업을 어렵게 만든다. 2009~2010년 전후로 대북 보건의료 사업에 대한 대한민국의 지원 비중은 크게 변했다. 2009년 이전엔 비중이 50% 이상을 차지했다. 2010년 이후에는 글로벌 펀드와 세계백신면역연합 등을 통한 개발지원 비중은 늘었고 인도적 지원은 줄었다"고 짚었다.
박 교수는 "이러한 경향에 따라 현재 북한 내에서는 비감염성 질환 관리를 위한 보건의료 지원이 부족한 상태다. 현재 북한 주민의 주 사망 원인은 심뇌혈관 질환, 만성폐쇄성 질환, 폐암, 위암, 간암 등이다. 만성질환에 대한 보건 교육이 필요하다. 또 효과적인 대북 보건의료 지원을 위해 다양한 채널과 시행 기구들의 지원 효과를 체계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그동안 북한 보건의료 지원에서 우리 정부의 기여도는 생각보다 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북한과 교류·협력이 거의 10년 동안 단절돼 있다. 과거처럼 각개전투 하듯 보건의료 사업을 따로 진행하면 협상력이 떨어진다. 보다 창의적인 남북 교류 협력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우선 투입과 효과를 고려해 경제성 평가에 근거한 효율적인 교류·협력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 보건의료 및 영양 영역을 함께 지원 가능한 모델을 추구해야 한다. 남북이 보건의료 협력을 통해 연구개발을 확대하고 교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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