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6.01.04 05:53최종 업데이트 16.02.16 08:39

제보

[딴데 간 의사들]일본 전공의 박광업

동경대 마취통증의학과 수련중인 한국 의사

일본에서 외국 의사로 근무하기란?




의료계엔 "의료 환경이 나빠진다"는 말만큼 '꾸준하게 진부한 전설'도 없다.

원시시대 동굴벽화에도 기록돼 있다는 '요즘 애들 버릇없어' 만큼이나, 세대가 지나도 동어 반복하는 지겨움에 흘려듣던 '의료계 악화설'.


그런데 이 말이 최근엔 심상치 않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런 악화설이 실제 피부로 와 닿을 만한 증거가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그럴싸한 근거는 '고전적인 진료 포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의사들은 전형적인 진료 이외의 진로에 관심을 보이고 그 분야에 진출하기 시작했으며, 본인이 유일하게 쌓은 기술과 학문을 굳이 한국에서만 발휘하려 하지 않는다.
 
의료 환경 변화가 쉽지 않다고 판단한 대한민국 의사들은 '고전 파괴'를 선택했다.
 
 
현재 메디게이트뉴스에서 진행 중인 비임상 인터뷰에 이어, 해외에서 근무 중인 의사들의 얘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이번 시리즈는 외국에서 진료하는 한국 의사가 제안하는 현지 환경이 '더 나은 이유'를 공유하고, 그곳에서 바라본 (주관적이지만) '더 열악한 곳'의 환경을 되짚는 취지로 기획했다. (물론 별 반응 없으면 파일럿이 마지막이다)
 
첫 번째 주인공은 일본 동경대 마취통증의학과 후기연수의(우리나라로 치자면 전공의)로 근무 중인 박광업 의사다.
 
박광업 씨는 순천향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고, 공중보건의를 마친 후 현재 일본에서 수련 중이다.
 
그에게 일본 수련 환경과 의료에 관해 물어봤다.


 
[딴데 간 의사들]일본 전공의 박광업1
#일본 진출 과정
#일본 전공의 수련 환경
#일본에서 체류하기

[딴데 간 의사들]일본 전공의 박광업2
#일본에서 외국 의사로 근무하기
#한국 의사가 바라본 일본 의료 환경
#에필로그



#일본 진출 과정


동경대학병원 수술실에서 마취 준비를 마친 박광업 후기연수의.

 
메디게이트뉴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고요. 의대 입학부터 현재까지 걸어온 과정 좀 소개해주세요.
 

-6년간 평범하게 의과대학을 다니다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후, 어린 나이에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자 병원 수련 대신 공중보건의(이하 공보의) 길을 택했습니다.
 
공보의 때 교정시설과 검찰청에서 근무하다 대한공보의협회(이하 대공협) 홍보이사를 맡으면서 의료계 안팎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변호사, 제약의사, 공무원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의사분을 만날 기회가 생기면서, 의사로서 임상 밖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했고요.
 
 
공보의가 끝날 무렵, 당시엔 수련에 대한 필요성도 못 느꼈고, 대신 의료 시스템이나 의료 산업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런 관심 때문에 경영대학원 의료경영학과에 진학했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GP(일반의)의 삶을 선택했죠.
 
 
일본 (의사) 국가고시는 공보의가 끝나면서 임상의 길에 대비한 보험 같은 의미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만, 임상의 길을 실제 선택했고 의도대로 일본에서 수련 받고 있습니다.
 
벌써 2년 9개월이나 됐네요. 2013년 3월 21일 아침 8시, 하네다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김포공항에서 양손에 무거운 캐리어 1개씩 들고 가족들과 작별 인사하던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네요.
 
 
메디게이트뉴스: 돌이켜보면 선생님은 어떤 의대생이었어요? 남들과 좀 뚜렷하게 다른 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평범했습니다. 아마 별로 눈에 띄지도 않았을 것 같네요.
 
지금이야 성격이 많이 활발하고 낯선 사람에게도 뻔뻔하게 말 걸지만, 당시엔 내성적인 의대생이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특별한 고민도 없고, 당연히 졸업 후 인턴, 레지던트 수련 받고 전문의 되어 군대 갈 것으로 생각했죠.
 
다만, 예과 때 봤던 다양한 사람들이 본과에 올라가면서 점점 비슷해지는 게 무의식 혹은 의식적으로도 거부감이 들었던 것 같고요, 병원에 근무하는 선배들이 획일화하는 모습이 싫어서 일단 공보의를 갔습니다. 
 
 
(아마도 그는 '비슷'과 '획일화'란 단어가 싫었나 보다.)


메디게이트뉴스: 공보의 3년이 본인 진로 결정, 혹은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줬나요??
 
-많은 영향을 줬습니다. 그냥 3년도 아니고, 한창 쌩쌩할 20대 중반에 여유 있는 3년인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 일하고 놀면서도 미래를 찬찬히 생각할 수 있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학창 시절에는 아무래도 같은 의대생 동기나 선배 정도밖에 대화하고 간접 경험할 상대가 많지 않아 상상하는 삶의 폭이 좁습니다만, 첫 공보의 근무지였던 교정시설에선 생전 처음 본 수많은 수감자의 에피소드를 들으며 다양한 삶이 존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물론 생각이지만요(웃음).
 
 
그러다 대공협 소속이었던 모교 선배의 권유로 공보의 2년 차 때 홍보이사를 맡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홍보이사로서 대공협 대외 업무도 겸하고, 그때 마침 시작했던 Enjoy PHD라는 대공협 격월 소식지를 맡으면서 의료계 관계자들, 예를 들면 의사협회나 대공협 혹은 대전협 관련 의사들, 공무원이나 의료전문지 기자들, 그리고 비임상에 종사하는 다양한 의사분을 만난 게 큰 수확이었죠.
 
 
그런 다양한 경험을 통해 단순히 한 분야에 전문적인 임상의로서만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경험했고, 의료 환경이 의사에게 너무나도 불리하게 변한다는 점을 알았어요.
 
그러면서 공보의 마치고 일반적인 수련 과정을 무턱대고 좇았다간 큰일 나겠다는 위기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던 것 같고요.
 
그래서 의료 외적인 다양한 경험과 의료산업이나 의료제도의 시야를 넓히기 위해 봉직생활을 겸하면서 의료경영대학원 진학을 결정했습니다.
 
 
공보의 3년은 저에게 충전을 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여행도 많이 다니고, 세상의 흔하지 않은 사람들도 만나고, 연애도 많이 했던 것 같고요.
 
행복하고 좋은 추억들이 많이 남았습니다(웃음).
 
 
메디게이트뉴스: 남자 의사들에게 공중보건의 기간은 어떤 의미일까요? 특히 선생님처럼 수련 전에 공보의를 마친 의사들에게 말입니다.
 
-제가 대표하는 입장은 아니라는 전제하에 말씀드리면,
 
아무래도 일차적으로는 의대 기간 내내 시험이나 수업에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수 있는 기간이라 생각합니다만,
 
3년이 길긴 하네요. 여의사와 비교하면 억울한 마음이 들긴 합니다.
 
아 그리고 군의관분들껜 죄송합니다(웃음).
 
 

일본 동경대학병원 소개 팜플렛에 실렸던 사진(초기연수의 시절). 가운데가 박광업 후기연수의.


메디게이트뉴스: 일본 병원에 진출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공보의가 끝날 때쯤, 한국에서 의대를 졸업하면 일본에서 진료할 수 있다는 정보를 우연히 접했어요.
 
원래 일본에 관심이 많았고, 일본어도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어서 공보의 끝나기 전 새로운 경험할 목적으로 가볍게 도쿄에 갔죠.

 
도쿄에서 여러 병원도 구경했고요. 일본 의사의 삶, 특히 수련 과정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됐는데, 수련 환경이 너무나도 훌륭하더라고요.
 
단순하게 수치화할 수 있는 것들, 가령 근무 시간이나 급여도 그렇지만, 선배 의사나 동료 의료인들, 환자에게 인격체로 대우받는 게 확연히 눈에 보였고, 수련 과정에서 다양한 술기를 철저한 감독 아래서 경험하는 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저는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금방 잊는 스타일이라, 평소 많은 경험을 하게 하고 이를 맡기는 의료 환경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찾았다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당시엔 앞서 말했듯이 임상의 길을 바로 할 생각이 없어서, 보험 든다는 의미로 일본 국가고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1~2년 정도 비임상이냐 임상이냐를 놓고 고민하다가, 조직 생활에 얽매이는 비임상보단 자유와 기동성을 중시하는 제 성격이 임상가와 맞다고 생각해 선택했고, 합리적인 환경이라고 판단해 일본에서 2013년부터 수련하게 된 거죠. 


(이어지는 일본 수련 환경에 대한 그의 평가를 보면,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진 않는 것 같다.) 


#일본 전공의 수련 환경


동경대학병원의 전경 <사진 출처 : www.obayashi.co.jp>

 
메디게이트뉴스: 일본의 전문의 제도를 소개해주세요. 인정의 제도가 맞는지, 전문의 제도가 맞는 건지 아직도 헷갈리거든요?
 
-과별로 전문의 제도가 다소 달라서, 한국처럼 일괄적으로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을 보내고 전문의 시험에 합격해 전문의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한국은 내과 4년 수련 기간에 여러 분과를 돌고 전문의 시험 합격 후 '내과 전문의'가 되지만, 일본은 초기연수의* 2년을 돌고, 내과 분과 코스 1개를 바로 정해 3~4년 동안 (후기연수의로) 수련 받은 뒤 분과 전문의 타이틀을 달게 됩니다.
 
*한국의 인턴 과정처럼 의대 졸업 직후 갖는 수련 과정. 여러 과를 로테이션하지만, 1차 콜을 받는 주치의를 한다는 의미에서 역할은 다소 차이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인턴+전공의' 수련 과정이 일본에선 '초기연수의+후기연수의'로 구성됐다.
 
 
앞으로는 한국처럼 여러 분과를 3년간 로테이션해서 '종합 내과' 전문의를 취득한 후 내과 분과로 빠지게 된다고 합니다만, 일단 지금까지는 그렇고요.
 
외과 계열 같은 경우 한국처럼 일반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등을 각각 후기연수의로 3~4년 돌고, 전문의를 취득합니다. 제가 속한 마취과의 경우는 4년을 돈 뒤 전문의가 되죠.
 

인정의와 전문의에 대해선 평소에도 많이 받는 질문인데요, 오해를 많이 하세요.
 
'큰 틀'에서 설명하면 전문의가 되기 전 인정의를 받는다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를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내과의 경우 후기연수의 때 분과를 1년 돌면 인정의를 취득할 자격이 주어지는데요, 이것은 위에 살짝 언급한 초기연수의 때 메이저 내과 파트를 1~2달 간격으로 최소 반년 이상 돌아야 하며, 그때 주치의 역할을 한국의 레지던트처럼 하기 때문에 (초기연수+후기연수) 합해서 1년 6개월 이상의 내과 경험으로 인정의 자격을 받는 것입니다.
 
 
마취과는 2년간 연수 경험으로 인정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초기연수의 때 마취과를 돌 경우 역시 한국의 레지던트처럼 직접 담당 환자를 배정받아 전문의 감독하에 전신마취 도입부터 수술실 퇴실까지 실질적 마취 업무를 담당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많이 돌면 그 경력을 제대로 인정받아 같은 레지던트라도 인정의를 빨리 취득하는 등 좀 유연하게 운영되는 편이죠.
 
마취과는 초기연수의 2년 중 최대 11개월까지 돌 수 있는데, 그렇게 한 의사들은 인정의도 상대적으로 빨리 취득하게 되죠.
 
다만, 전문의 자격은 레지던트 4년을 마쳐야만 가능합니다.
 
 
메디게이트뉴스: 현재 받는 급여가 궁금해요.
 
-공개 지면에서 급여를 밝히는 게 조금 조심스럽습니다만, 사실 이번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거리일 거라 생각이 들어, 가감 없이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일반화하기 힘든 점은 미리 양해 부탁합니다.
 
저의 급여는 마취과 업무와 비 마취과 업무(속칭 아르바이트)로 나뉩니다.
 
마취과 업무는 주 4회의 평일 대학병원 근무와 1회의 관련2차병원 파견 업무로 나뉘는데요, 이것은 2차와 3차의 환자 케이스가 다르기 때문에 균형 잡힌 수련을 위해 만든 제도인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주 1회 파견 업무는 수당이 별도로 나오는데, 이를 합하면 급여가 월 50~60만엔 정도 되고요. 대학병원 24시간 당직은 마취과의 경우 월 3회 정도 되는데, 당직비가 별도로 지급되며 이를 포함한 금액입니다.
 
 
비 마취과 업무는 당직 근무나 콘퍼런스가 없는 주말을 골라, 저는 재택의료 분야에서 왕진의로 근무하고 있어요.
 
한국에는 없는 제도라 피부에 와 닿게 설명하기 힘든데요, 거동이 불편한 만성 질환자를 자택에서 관리해 환자에게 병·의원에 직접 갈 수고를 덜게 하고, 정부에겐 의료비 증가를 억제해 줍니다.
 
국가에서 수년 전부터 꾸준히 지원을 늘려가고 있는 분야여서, 매출이 상당한 재택 전문 의료기관이 많은 상황입니다.
 
반면 의사 확보는 쉽지 않아 아르바이트 수당이 상당히 센 편이죠.
 
이 아르바이트로 월 50~70만엔 정도 수입을 내고 있고요. 전공의 수당과 합치면 월 100~130만엔 정도 될 것 같네요.
 
 
수련 과정 중 이 정도 수입을 얻는 과는 일본에서도 한정적인데요, 저의 경우 여러 운도 따르고 잘 풀린 편이라 생각합니다.
 
전국 평균으로는 전공의 급여가 40~80만엔 사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100~130만엔이라...아르바이트로만 웬만한 한국 전공의보다 많이 번다.)


메디게이트뉴스: 일본에선 전공의가 수련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합법인가 봐요?
 
-네, 본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라면 합법입니다.
 
의국에서 알선해주는 경우도 있고, 개별적으로 알아서 구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한국의 '메디게이트 구인·구직'보다 훨씬 큰 사이트가 몇 군데 있고, 거기에 다양한 자리가 나와서 많은 의사가 애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병원에선 급여 외에 어떤 것을 제공해 주나요??
 
-초기연수는 급여가 적고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어서 기숙사를 제공해 줍니다만, 후기연수의는 급여가 올라서 그런지 알아서 집을 구해야 해요.
 
그 외에는 매년 가을철 정기검진 1회, 유급 휴가 1주일, 아플 땐 무급 병가 등을 주고 여성의 경우 임신 때 산전·산후 유급 휴가를 쓸 수 있습니다.
 

(예상과 달리, 부대 조건이 특별하진 않았다.)
 

수술실 망년회 장기자랑 후 찍은 단체사진


메디게이트뉴스: 일주일에 몇 시간 정도 근무하세요?
 
-주 중에는 마취과 업무로 바쁜 편이에요.
 
배정받은 수술방의 마취 기계 세팅이나 약물 준비 등을 초기연수의나 후기연수의가 직접 해서, 오전 6시 반에서 7시까지는 병원에 도착해야 하죠.
 
오전 8~9시에 환자가 수술실에 내려오면 마취를 시작하고, 배정받은 수술이 끝나야만 퇴근할 수 있어 매일 퇴근 시간이 다른 편입니다.
 
빠르면 오후 5~6시에 퇴근하기도 하고, 수술이 길어지거나 신경외과 수술이 걸리면 자정에도 집에 못 가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만, 그래도 대개는 밤 8시 정도면 집에 갈 수 있습니다.
 
대략 주 중에는 50~60시간 정도 되려나요? 근무 시간이.
 
주말 아르바이트의 경우 하루에 8~9시간 정도 근무하니, 주말이 바쁜 주는 80시간, 한가한 주는 50시간 정도가 일주일 근무 시간이겠네요.
 
 
메디게이트뉴스: 다른 과 전공의도 그 정도로 근무하나요?
 
-제가 말씀드린 건 마취과만의 얘기고요.
 
메이저인 내과나 외과의 경우 대중없이 바쁘고, 설령 당직이 없어 출퇴근할 수 있어도 주말 포함 100시간씩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고 봐야 합니다.
 
바이탈(생체 징후)을 다루는 일반외과나 신경외과, 심장외과는 일본 역시 바쁘고 고되긴 마찬가지죠.
 
말씀드린 건 대학병원의 경우고요, 산하 관련2차병원에서 파견 근무 땐 케이스도 중하지 않고 잡무도 상대적으로 덜해 메이저 과도 주중 70~80시간 정도만 근무하기도 합니다.
 
정말 '케이스바이케이스'인 것 같고요.
 
일본은 융통성 있는 수련이 가능해서, 평균치를 내지는 못하고 대략적인 분위기만 설명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메디게이트뉴스: 수련 병원 의국에 있는 엄격한 선후배 문화? 이런 게 일본에도 여전히 존재하나요?
 
-이건 정말 지역별 혹은 대학별 그리고 공립/사립에 따라 너무나 달라, 한 마디로 말하기가 힘들 것 같아요.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일본이 의외로 엄청 넓거든요?
 
'하얀거탑'(드라마, 소설) 같은 경직된 분위기가 있는 외과 의국이 어딘가에 아직도 있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는데, 확인은 못 했습니다.
 
 
제 근무 환경을 말씀드리면, 엄격하다기보단 자율적으로 규율이나 위·아래 관계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어서 그냥 무난한 것 같습니다.
 
외과의 경우는 조금 더 엄격하지만, 한국보다는 유한 편입니다.
 
의외로 정형외과가 유해서 조금 놀랐고요.


(일본 수련의는 대개 한국보단 '덜 일하고', '더 받고', '덜 맞는' 것 같다.)


#일본 생활

"일본이라서 좋은 점은 아무래도 제가 의사로서 일을 배우러 왔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의료환경이 구축돼 있다는 것에 대한 개인의 행복, 성취감, 안도감 등이겠죠.
 
그리고 일본 시각에서 한국을 바라볼 기회도 생기고, 
한국에서 얻기 힘든 의료 분야의 자료(학술적이라기보단 임상 외적인 의료 분야) 등 
다양한 정보도 비교적 수월하게 얻을 수 있어 좋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일본은 한국과 참 많이 다른 나라라고 하지만, 여러 나라 돌아다녀 보면 일본만큼 정서적으로 비슷한 나라도 없거든요. 일본에 거주하는 게 한국과 비교해 어떤 거 같아요?
 
-살면 살수록,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 같습니다.
 
유교, 군대 문화에 바탕을 둔 집단주의나 공동체주의가 아직도 직장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는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선 일찌감치 탈아입구(脱亜入欧)를 기치로 메이지유신 이후에 탈유교화, 서구화가 진행하면서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심해졌죠.
 
그래서 개인주의적 성향을 추구하는 저에겐 큰 부담이 없고, 살기 편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친한 친구에게 서로 아낌없이 민폐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제 신념(?) 상 이런 게 힘든 일본에선 한국의 절친들이 그리울 때가 많습니다.
 
모르는 사람 관계나 직장에선 일본 생활이 더 맞고, 친구 관계에선 한국이 더 맞지 않나 싶어요. 
 
 
메디게이트뉴스: 일본에 거주하면서 좋은 점은 뭐가 있어요?
 
-아무래도 외국 생활을 통해 사고가 직·간접적으로 확장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특히 젊은 날의 경험들이니까요.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 사는 것도 마찬가지일 거로 생각합니다.
 
일본이라서 좋은 점은 아무래도 제가 의사로서 일을 배우러 왔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의료환경이 구축돼 있다는 것에 대한 개인의 행복, 성취감, 안도감 등등이겠죠.
 
그리고 일본 시각에서 한국을 바라볼 기회도 생기고, 한국에서 얻기 힘든 의료 분야의 자료(학술적이라기보단 임상 외적인 의료 분야) 등 다양한 정보도 비교적 수월하게 얻을 수 있어 좋습니다.
 
 
그리고 한국과 가까워 조금 더 역량이 쌓이고 독립할 단계가 되면 수시로 왕래할 수 있는 것도 심리적 안정에 한 몫 기여한다고 할까요?
 
사람들도 친절하고 민도(문화수준) 자체가 높은 나라여서 소모적인 스트레스가 적은 것도 좋은 점 중 하나입니다.
 
 



메디게이트뉴스: 체류 비용은 어때요? 한국에 비하면 이런 점은 저렴하고 이런 점은 많이 들어가고... 비교해주세요.
 
-어떤 지역에서 어떤 집에 살며 어떤 차를 타고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체류 비용은 천차만별일 텐데요(웃음).
 
도쿄와 서울을 비교하면, 도쿄는 확실히 서울보다 월세, 교통비가 많이 들어갑니다.
 
비슷한 수준의 동네에 같은 평수라면 도쿄는 서울보다 2~5배의 월세가 필요하고, 교통비는 베이스 자체가 높고 택시비도 비싸서 이 2개를 어느 정도 최소화하느냐에 따라 매몰 비용이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결국 사회 초년생이나 일반적인 가정은 도쿄의 좁은 집에서 살거나 근교로 나가야 하며, 대중교통을 가급적 이용하는 것이 답이지요.
 
저는 건축 연수 30년 된 10평 정도의 집을 9개월째 임대하고 있는데, 관리비와 전기·수도·가스비 포함 월 10만엔이 나가고 있습니다.
 
서울이라면 비슷한 수준의 동네에서 아마 60만원 정도가 최대치가 아닐까 생각하니 좀 억울하네요(웃음).
 
 
식비는 마취과 특성상 주중 점심은 늘 벤또(도시락) 인생이고, 저녁은 동네 밥집이나 가끔 외식하는 정도여서 한국 직장인과 비교해 큰 차이는 없을 듯하네요.
 
차는 아직 없어서 대중교통비만 쓰는데, 대학병원 근무일은 집에서 걸어가고 주중 마취 아르바이트나 주말 재택의료 아르바이트의 경우 교통비가 전액 지급돼, 주말에 도쿄 시내에 놀러 갈 때 정도나 교통비를 쓰는 편입니다.
 
생각해 보니 아직은 참 심플한 생활만 하고 있네요.
 
고년 차가 되어 여유가 생기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겠습니다(웃음).
 

(기자의 단편적인 개인 경험을 덧붙이면, 교통비와 주거비를 뺀 도쿄의 다른 물가가 생각보다 비싸진 않다. 서울이란 도시의 물가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고, 우리가 거기에 적응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메디게이트뉴스: 근무 시간에 식사는 주로 어떻게 해결하세요? 병원 식당?
 
-마취과의 경우 배정받은 수술방이 있다 보니, 긴 시간을 할애해 식사할 수는 없습니다.
 
마취과 의사 1명 이상은 반드시 수술방에 상주해야 하기 때문에, 그 날 담당 감독 전문의 선생님이나 여유가 있는 후기연수의가 교대해줄 경우 20분 정도 수술방 내 식당에서 밥을 먹습니다.
 
식당이라고 해도 음식은 본인이 준비하는데, 보통 벤또를 개별적으로 준비하거나 아침에 일괄적으로 돈을 내고 주문해 놓죠.
 
저녁 이후에도 정규업무가 끝나지 않으면, 저녁 식사로 배달음식을 무료로 시켜주는데 수술이 그 전에 끝나 밥을 안 먹더라도 빨리 집에 가는 편이 낫습니다(웃음).
 
 

일본 도시락 <사진 출처 : en.wikipedia.org>


메디게이트뉴스: 음식이 입맛에는 맞나요??
 
-일본 벤또가 종류는 다양해도, 매일 먹으면 결국 물리게 되죠.
 
같은 쌀 문화권이라고 해도 반찬의 양념 베이스가 달라 단맛이 많은데, 얼큰한 걸 좋아하는 저 같은 신토불이 한국 남자는 고생입니다.
 
개인적으로 일식은 단기 여행 중 맛집을 찾아 먹을 때가 가장 맛있고, 살기 시작하면 의외로 음식 때문에 고생하기 쉬워요.
 
한인타운에 있는 한식은 베이스가 일본인 입맛에 맞춰 그런지 좀 달아서 만족도가 별로 높지는 않고요.
 
정말 일본음식에 물릴 땐 한인타운에서 미리 산 청양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많이 해소되는데, 가끔 스스로 처량하단 생각이 드네요(웃음).
 
 
메디게이트뉴스: 여가 생활은 뭐 하면서 보내요?
 
-아직은 의사로서 역량이 부족해 정규업무나 아르바이트로 바쁘고요, 여가생활을 잘하지 못합니다.
 
물론 한국의 레지던트 1년 차와 비교하면 여가 시간을 확보하기가 수월합니다만, 요즘은 피곤이 쌓여서인지 쉬기 일쑤고요.
 
1주일에 1번 정도 도쿄 번화가로 놀러 가 친구들과 술 마시거나 미팅도 하고, 재즈바나 클럽에 가서 음악도 들으며 스트레스를 푸는 편입니다.
 
여자친구 없이 지낸 지 반년째로 아직은 외로움을 못 느끼는데, 조금씩 우울증 신호가 오기 시작해서 2016년도엔 연애 활동도 열심히 해볼까 합니다(웃음).
 
 
메디게이트뉴스: 주로 주위에 어떤 사람이 많아요? 여가를 같이 보낼 수 있는 사람 중에 말입니다.
 
-저처럼 한국에서 의대 졸업 후 일본으로 넘어온, 비슷한 나이의 의사나 일본인 중 코드가 맞는 사람과 자주 시간을 보내요.
 
현재 제 여건상 한국에 있을 때보단 사람 만나는 게 줄었고요, 혼자 여가를 보내는 게 이상하지 않은 나라여서 그냥 혼자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2편에서는 '한국 의사가 바라본 일본 의료'와 '일본에서 외국 의사로 근무하기'에 관한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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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환 기자 (dhkim@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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