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6.08.08 16:05최종 업데이트 26.08.08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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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정책 결정하는 건정심·보정심, 누구를 위한 기구인가…“정부안 추인하는 거수기 전락”

불명확한 위원 구성에 촉박한 자료·짧은 회의…전문가 반복 참여하고 청년세대 대표성도 부족

복지부 “의료혁신위 시민패널 운영…현행 제도 개선과 중장기 개편 병행”

8일 개최된 대한의료정책학교 전문가포럼 전경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건강보험료와 의료수가를 결정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와 국가 보건의료정책을 심의하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가 실질적인 숙의보다 정부가 마련한 정책을 추인하는 형식적인 기구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위원 구성 원칙이 불분명한 데다 회의자료가 촉박하게 제공되고 충분한 토론시간도 보장되지 않아, 참여단체가 우려를 회의록에 남긴 뒤 정부안을 통과시키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8일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본관 최덕경홀에서 열린 대한의료정책학교 제1회 전문가포럼 ‘우리를 둘러싼 보건의료정책, 어떻게 결정되고 있는가’에서는 보정심과 건정심을 중심으로 한국 의료정책 거버넌스의 한계와 개선 방향이 논의됐다.

“가성비 의료 끝났지만 정책 결정 구조는 그대로”

이날 ‘한국 보건의료 거버넌스의 동학-더 나은 정책과정을 위하여’를 주제로 발제한 존스홉킨스대 정치학 정웅기 박사는 그동안 정부와 의사, 시민 모두 기존 의료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유인이 크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OECD 평균보다 적은 의료비로 우수한 건강지표를 달성하는 ‘가성비 의료’를 유지했다. 의사는 낮은 수가에도 박리다매식 진료와 비급여를 통해 소득을 유지했고, 시민 역시 저렴한 비용으로 의료기관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23년 건강보험 진료비가 110조8029억원으로 증가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의료비 비율도 9.9%로 OECD 평균 9.5%를 넘어서는 등 기존 체계의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의대 증원 갈등 과정에서는 의료체계를 지탱해온 전공의 상당수가 진료 현장을 이탈하면서 의료정책 결정 구조의 한계도 수면 위로 드러났다.

정 박사는 “코로나19와 2024∼2025년 의정갈등을 거치면서 한국 의료체계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을 수 없게 됐다”며 “제도를 보완하거나 새로운 체계로 전환하기 위한 정책 담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건정심의 ‘8·8·8’ 구조부터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정심은 위원장 1명과 가입자·의약계·공익 대표 각 8명 등 총 25명으로 구성된다.

정 박사는 “어느 한쪽의 입장을 더 반영하기 위해 구성을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현재 제도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가 기형적”이라며 “회의자료가 전날이나 전날 새벽에 전달돼 위원들이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채 회의에 들어가는 경우도 일반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각자가 자신의 입장에서 불만을 제기한 뒤 미리 정해진 결론을 확인하는 요식적 절차에 가까운 경우가 많았다”며 “왜 해당 주체들이 참여하는지, 정부가 지불자·규제자·조정자 중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도의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이해당사자들은 결정 결과를 수용하지 않고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논의의 장을 이탈하게 된다”며 “현행 건정심은 핵심 행위자들의 참여 유인과 의지를 충분히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폐쇄된 회의실에서 결정…건정심은 짜인 틀에 도장 찍는 자리”

지정토론에서도 정부 중심의 폐쇄적인 정책 결정 방식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충북대학교 의과대학 이영성 교수(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책개발위원)는 “현행 거버넌스는 40∼50년 전 의료보험 도입 당시의 환경에서 만들어졌다”며 “시민이 인터넷과 AI를 통해 많은 의료정보에 접근하는 시대가 됐지만 정책은 여전히 정부와 일부 전문가·직역단체가 결정하고 국민이 사후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시민 참여도 위원 몇 명을 추가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했다. 누가 의제를 설정하고 어떤 정보가 제공됐는지, 반대 의견이 어떻게 처리됐는지를 공개해 시민이 실질적인 정책 결정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한의사협회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원장은 반복되는 의료개혁 실패를 개별 정책이 아닌 정부와 의료계 사이의 거버넌스 실패로 규정했다.

안 원장은 “정부 산하 위원회 상당수는 1년에 한두 차례 짧게 회의를 열어 실질적인 숙의가 불가능하다”며 “다양한 단체 인사를 참여시켜 민주적으로 보이게 하지만 실제로는 정부 정책을 추인하는 거수기 역할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고 비판했다.

한국 의료 거버넌스는 대통령과 정부·국회 등 거시적 차원의 통제력은 강한 반면, 전문직 단체와 지역 단위의 중간 거버넌스는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안 원장은 “정책 개발 단계부터 지역과 전문직이 참여하고 중간 단위의 충분한 논의를 거쳐 중앙의 의사결정으로 이어져야 한다”며 “지역의 세부적인 의료체계까지 중앙정부가 설계해 내려보내는 방식은 정부와 전문직 간 신뢰를 떨어뜨리고 의료인의 자발적인 참여도 끌어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고려의대 예방의학교실 정재훈 교수는 동일한 전문가가 정부위원회에 반복적으로 참여하면서 이른바 ‘전문가 포획’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위원 12명이 5분씩 발언하면 한 시간이 지나고 한 차례 더 돌면 두 시간이 끝난다”며 “이런 구조는 토론이 아니라 정부가 제시한 의제에 각자가 의견을 표명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한번 거버넌스에 들어가면 참여 자체가 전문가에게 보상이 되고, 어느 순간 자신의 의견을 100% 솔직하게 말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며 “전문가 추천과 참여 구조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한국적 토론 문화와 전문가 집단의 한계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의사결정기구가 40∼60대 중심으로 구성돼 앞으로 50∼60년간 의료체계를 이용해야 할 청년세대의 이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건정심 위원인 이봉근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는 건정심이 실질적인 논의보다 정부가 준비한 안건을 의결하는 기구로 운영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이사는 “건정심에 참여한 약 2년 동안 대부분의 안건이 그대로 통과됐다”며 “각 단체가 우려를 회의록에 남기는 과정일 뿐 안건이 부결되거나 근본적으로 수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건정심을 개별 의료행위의 비용을 결정하는 기구가 아니라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공동 목표를 논의하는 기구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복지부 “의료혁신위 시민패널 운영…단기 개선·중장기 개편 병행”

정부는 법 개정과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만큼 보건의료 거버넌스 개편에 단계적으로 접근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건복지부 김영학 보건의료정책과장은 “건정심과 보정심의 구성은 법률로 규정돼 있어 변경하려면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입법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현행 거버넌스를 효율적으로 개선하는 방안과 중장기적으로 보건의료 거버넌스를 어떻게 개편할지를 나눠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출범한 국무총리 소속 의료혁신위원회는 새로운 거버넌스 모델로 제시했다. 의료혁신위원회에는 민간 전문가와 가입자·공급자 대표가 참여하고, 별도로 200∼300명 규모의 시민패널을 구성해 국민 의견을 정책 논의에 반영하고 있다.

김 과장은 “의료혁신위원회는 보정심이나 건정심과 달리 온라인으로 국민 의견을 상시 수렴하는 창구를 갖추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장시간 토론할 수 있는 구조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존 위원회의 짧은 회의시간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제약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건정심 담당 사무관으로 일할 당시 회의를 2시간 이상 잡으면 여러 위원이 함께 참석할 수 있는 날짜 자체를 정하기 어려웠다”며 “위원마다 일정이 달라 충분한 회의시간을 확보하기 쉽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위원회마다 수가 결정, 연구개발, 건강검진 등 기능과 성격이 다른 만큼 통합할 기구와 별도로 운영할 기구, 다층적으로 구성할 기구를 구분하는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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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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