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합법적 비급여 '3가지 조건' 벽은 높았다
서울고법, 파기환송심에서 병원 일부 승소 판결
급여항목 비급여화, 이식 전 진료비는 임의비급여 결론
서울성모병원 전경
예상대로 임의비급여라 하더라도 부당청구가 아닌'합법적(의학적) 비급여'로 인정받을 수 있는 '3가지 조건'의 벽은 높았다.
서울고법은 최근 여의도성모병원 임의비급여사건에 대해 일부 합법적 비급여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1명의 백혈병 환자들은 여의도성모병원 조혈모세포이식센터(BMT, 현재 서울성모병원으로 이전)에서 급성골수성백혈병, 골수이형성증후군, 급성립프구성백혈병 등으로 치료 받았다.
이후 환자들은 심평원에 자신들이 병원에 납부한 본인부담금이 요양급여 대상인지 확인해 달라는 민원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심평원은 아래 표와 같이 일부 진료비의 경우 요양급여기준에서 정한 진료범위를 초과하거나 요양급여 대상 또는 비급여 대상으로 고시되지 않은 새로운 치료방법으로 검사 및 시술을 한 후 환자에게 진료비를 부담했다고 판단했다.
소위 말하는 임의비급여를 했다는 것이다.
이는 여의도성모병원이 169억원에 달하는 과징금 및 환수 처분을 받는 시발점이 됐다.
임의비급여 유형은 4가지다.
요양급여 대상 항목이지만 삭감을 우려해 환자에게 비급여로 청구한 게 대표적이다(급여 대상 비급여).
이미 치료행위 수가에 반영돼 있어 별도로 진료비를 징수할 수 없는 치료재료 비용을 환자에게 청구(별도산정 불가) 했다는 것이 또 하나다.
식약처가 허가한 용법과 용량을 초과해 투여한 의약품 비용을 환자에게 청구한 것도 있다(허가사항 외 투약).
선택진료비 임의비급여는 3가지로 분류된다.
선택진료신청서에 열거되지 않은 의료진이 진료하고 선택진료비를 청구한 유형(D1), 선택진료신청서가 보존되지 않아 신청 여부가 불분명함에도 비용을 청구한 유형(D2), 주진료과인 혈액내과에 대해서만 선택진료를 신청했음에도 진료지원과 의료진에 대해서도 청구한 유형(D3)이 있다.
이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지난 2012년 8월 비록 병원이 진료비를 임의비급여했다고 하더라도 3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부당청구로 볼 수 없다며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3가지 조건이란 △사전절차의 부존재 또는 절차 비회피(진료의 불가피성) △해당 진료의 의학적 안전성과 유효성, 의학적 필요성 입증 △환자의 동의를 의미한다.
서울고법은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례에 따라 이들 11명의 사건을 재심리해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법은 우선 급여 대상을 비급여했다는 부분과 관련 "병원이 진료비 삭감을 우려해 심평원의 심사절차를 회피한 채 공단으로부터 받아야 할 진료비까지 전부 본인부담한 것은 과다본인부담금에 해당한다"고 못 박았다.
동일한 진료행위에 대해 심평원이 종전 심사과정에서 이미 삭감한 전례가 있다고 해서 달리 볼 수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별도산정 불가, 허가사항외 투약 중 조혈모세포이식 신청서를 작성한 이후 임의비급여 한 것은 3가지 조건에 해당한다고 봤다.
사전절차의 부존재 내지 절차 비회피와 관련, 요양급여 조정을 위한 사전절차에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는 반면 환자의 병세나 고통 완화, 위생상 요청 등에 비춰 진료의 필요성이 매우 시급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의학적 안전성과 유효성, 필요성도 갖췄다고 판시했다.
조혈모세포이식술은 유일한 치료법인데, 이식술 전체 단계에서 시행되는 복합적인 항암치료로 인해 환자의 골수가 모두 파괴되고 면역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져 다른 질병의 감염을 차단하기 위한 철저하고, 충분한 예방 및 즉각적이고 선제적인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는 여의도성모병원의 주장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환자의 동의에 대해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고, 즉각적으로 선제적인 대응이 요망되며, 장기간 급박한 처치과정을 거친다면 그 과정에서 다수의 임의비급여 진료행위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환자들도 잘 알고 있다면 상대적으로 다소 포괄적인 설명도 용인된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병원 주치의들이 요양급여 대상이 아닌 비급여 진료행위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과 그 경우 비용을 이식 대상자 측에서 전액 부담해야 한다는 것 등을 충분히 설명하고, 그 선택에 대한 동의를 구했다는 점이 인정된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환자들이 '요양급여기준에서 인정하지 않는 급여 제한 부분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전액 환자 부담으로 하며,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조혈모세포이식 신청서를 병원에 제출한 점도 합법적 비급여로 인정 받는 증거로 작용했다.
법원은 "이식 대상자에 대한 임의비급여 진료행위 중 조혈모세포이식 신청서 제출 이후의 진료행위는 세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했다고 할 것이므로, 과다본인부담금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입원약정서에 대해 충분히 설명한 증거 없다"
그러나 이식 이전 별도산정 불가 항목, 허가사항 외 투약에 대해서는 임의비급여에 해당한다고 선고했다.
여의도성모병원은 환자가 입원할 때 '입원치료 중 긴급수술이나 검사가 필요한 경우 보호자의 사전 동의 없이 시행한 진료행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입원약정서 서명을 받았다.
법원은 "환자 입장에서는 위 문구가 '해당 질병의 치료를 위해서는 요양급여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법정 비급여 대상 진료행위가 시행될 수 있고, 따라서 애당초 보험처리가 될 여지가 없이 본인부담으로 진료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될 여지가 있다"고 환기시켰다.
따라서 병원으로서는 환자들에게 입원약정서의 내용과 의미에 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 후 수진자들의 동의를 받아야 할 것인데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선택진료 D2, D3 역시 과다본인부담금이라는 게 재판부의 결론이다.
수진자들이 선택 또는 위임을 하지도 않은 선택진료, 선택진료 신청을 했다고 볼만한 아무런 자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택진료비를 본인부담금으로 부과한 것은 임의비급여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선택진료비 포괄 위임 사안은 이미 대법원에서 임의비급여로 볼 수 없다고 결론이 난 사안이다.
다만 이번 사안은 병원이 보관중인 신청서를 증거자료로 제출하지 않아 생긴 예외적인 사례로 봐야 한다.
하지만 법원이 일부 합법적 비급여를 인정했지만 금액면에서 보면 전체 임의비급여의 16%에 불과하다.
특히 급여항목의 비급여 청구, 조혈모세포이식 수술 이전 별도산정 및 허가사항외 투여가 모두 임의비급여로 결론 난 대목은 병원 입장에서 뼈아프다.
그만큼 대법원의 3가지 조건을 충족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지만 여의도성모병원은 이번 판결에 불복해 다시 상고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서울고법 판결은 백혈병 진료비 임의비급여에 대해 대법원의 판례가 적용된 첫번째 사건이라는 의미가 있다.
특히 이번 판결이 현재 여의도성모병원의 169억원 과징금 및 환수 처분사건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된다.
여의도성모병원은 이번 사건과 흡사한 형태로 백혈병환자 진료비를 임의비급여하다 적발돼 과징금 및 환수처분을 받고 대법원의 파기환송을 거쳐 현재 서울고법에서 변론을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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