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 거부 의향 84%∙실제 중단은 16% 불과…연명의료 결정 전 과정서 환자 자기결정권 실질 보장 안 돼
사진=한국은행 보고서 중 일부.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한국은행이 연명의료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내놨다. 연명의료 거부 의향을 보이는 비율과 실제 연명의료가 중단되는 비율에 괴리가 커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11일 공개한 BOK 이슈노트 ‘연명의료, 누구의 선택인가’에서 현재 연명의료결정제도의 성과와 문제점을 조명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존엄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지난 2018년부터 시행됐다. 이후 연명의료 중단 이행 건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났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도 300만명을 넘겼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연명의료에 대한 환자 선호와 의료현장의 현실 사이에 간극이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65세 이상 고령층의 84.1%는 회복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향을 밝혔지만, 실제 65세 이상 사망자 중 연명의료 유보∙중단 비율은 16.7%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이 같은 괴리의 원인으로 연명의료 결정 전 과정에 걸쳐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우선 사전 논의단계에서는 죽음에 대한 논의 부족을 언급했다. 평소 죽음에 대한 대화를 꺼리는 문화가 임종기 치료에 대한 내용을 사전에 문서화하는 데 대한 소극적 태도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자체 설문조사 결과, 현행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단순히 연명의료 중단 여부만 선택하도록 하고 있어 환자마다 다른 가치관과 개별 시술에 대한 선호를 반영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등록을 위해선 원칙적으로 종합병원, 보건소,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 등에 직접 방문해야 한다는 점도 걸림돌로 꼽혔다.
이 외에 연명의료 중단을 위해 의료기관이 필수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등 일부 대형병원에만 존재한다는 점, 임종기 판정이 어렵고 연명의료 중단 이후 생애말기 돌봄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였다.
사진=한국은행 보고서 중 일부.
이에 한국은행은 연명의료와 관련해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먼저 생애주기별 맞춤 홍보∙교육을 통해 국민이 연명의료결정제도의 취지 및 절차를 정확히 이해하도록 하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에 대한 건강보험료 인하 등의 인센티브 제공, 동네 병∙의원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등록 허용 등을 제시했다.
또 개별 환자의 선호를 반영하기 위해 개인화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서식을 도입하자며, 여기에 포함할 내용으로 ▲법정 연명의료 시술에 대한 선택적 거부 ▲현행 법정 연명의료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생명유지와 밀접한 인공영양공급에 대한 의사 ▲장기기증 의사 ▲의료결정 대리인 지정 항목 등을 언급했다.
아울러 연명의료 중단 이후에도 완화의료, 심리상담, 가족 지원 등이 이어지는 생애말기 돌봄 체계를 구축하자며, 이를 위한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기관 확충과 해당 기관과 일반 의료기관 간 협력∙정보 공유 체계 강화를 제안했다.
한국은행은 “연명의료 제도 개선의 목표는 연명의료 자체를 줄이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삶의 마무리 방식을 미리 충분히 숙고할 수 있도록 돕고, 그에 대한 자기 결정이 마지막까지 존중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데 있다”고 했다.
이어 “향후 연명의료 논의는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가운데 생명존중의 가치와의 조화를 어떻게 실현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모색하는 과정이 돼야 한다”며 “또한 현행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의 생애말기 의료 문제 역시 향후 논의돼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