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5.08.03 13:21최종 업데이트 25.08.03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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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전자처방전 도입, 그 이면엔 성분명 처방과 총액계약제까지 숨어있다

[칼럼]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 전라북도의사회 부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최근 의료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공적 전자처방전 도입 의료법 개정안'은 단순한 행정 시스템의 현대화를 넘어, 우리 의료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겉으로는 환자의 편의 증진과 보안 강화를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성분명 처방'의 그림자와 '총액계약제'까지 이어질 수 있어 우려스럽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영석 의원(더불어민주당, 부천시 갑)은 지난 7월 25일 공적전자처방전과 관련한 의료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의료기관과 약국간 안전하고 표준화된 전자처방전 전달시스템 구축·운영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결론적으로 공적 전자처방전 도입은 전문가와 환자의 신뢰를 무시한 독단적 정책이라고 본다. 의료는 단순히 경제 논리로만 접근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다. 비대면 진료의 확산과 공적 전자처방전 도입은 환자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는 전문가인 의사의 처방권을 침해한다. 전문적인 노하우를 담고 있는 지적재산권을 소실시키며, 결국 환자에게 최적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를 빼앗을 뿐이다. 
 
공적 전자처방전, 성분명 처방으로 약품비 절감 의도 

우선 공적 전자처방 시스템은 의사들의 처방권을 사실상 무력화시킬 수 있다. 현재는 의사가 특정 제약사의 특정 약품을 지정해 처방한다. 하지만 공적 시스템이 도입되면 시스템이 성분명 처방을 유도하거나, 약사가 임의로 대체조제를 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진다. 이는 의사들이 환자에게 최적의 약물을 선택하고 처방하는 '전문가적 권한'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특히 시스템의 오류나 해킹은 환자의 민감한 의료정보를 유출하는 심각한 보안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환자의 신뢰를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다. 
 
공적 전자처방전 도입을 둘러싼 논란은 비대면 진료의 확대로 인해 더욱 첨예해지고 있다. 정부가 비대면 진료의 전면 확대를 추진하는 명분은 의료 접근성 강화와 국민 편의 증진이다. 하지만 비대면 진료가 활성화되려면 처방전이 안전하고 신속하게 약국에 전달되는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현재는 팩스나 스마트폰 사진 등 불안정한 방식으로 처방전이 전달되는 경우가 많아 개인정보 유출, 위변조 등의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적 전자처방전 시스템이 비대면 진료의 필수 인프라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이 연결고리는 단순히 시스템의 편의성을 넘어선다. 공적 시스템은 비대면 진료를 통해 확보된 방대한 의료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이 데이터는 결국 정부가 의료 정책을 수립하고, 특히 약품비 지출을 통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결국 비대면 진료의 확산은 공적 전자처방전 시스템 도입의 명분을 강화하고, 이 시스템은 다시 성분명 처방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고갈이라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고령화와 만성질환자의 증가로 의료비 지출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수입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어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의료비 지출 억제'다. 성분명 처방은 약가 인하를 유도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공적 시스템을 통해 약국들이 더 저렴한 제네릭을 판매하게 하고, 이를 통해 약품비를 절감하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정부, 가치 기반 의료제도와 총액계약제까지 비용 절감 대책 이어나갈 듯 
 

공적 전자처방전 도입을 통한 비용 절감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공적 전자처방전 시스템을 통해 의약품비라는 가장 큰 재정 지출 항목을 통제하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궁극적으로 총액계약제를 도입하려 할 것이다. 

가치기반 수가제는 제공된 의료 서비스의 양에 따라 보상하는 행위별 수가제와 달리, 환자 치료의 질과 결과에 비례해 의료기관에 보상하는 제도다. 즉, 투입되는 비용 대비 의료의 질과 치료 결과가 우수할수록 더 높은 가치를 인정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비용-효율성 증대를 위해서 불필요한 검사나 치료를 줄여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정부는 환자 중심 의료 강화라는 이름으로 개인 맞춤형 의료 서비스를 통해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겠다고 한다. 또한 의료 자원 배분의 형평성 추구를위해서는 사회적 약자, 응급 환자, 중증 질환자 등에게 적절한 자원이 투입되도록 한다고 한다.

특히 가치기반 수가제는 총액계약제와 같은 포괄적인 지불 방식의 단점을 보완해 진료의 질과 결과를 반영하는 평가지표에 따라 보상과 패널티를 적용함으로써 의료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 가치기반 수가제는 총액계약제로 가는 중간 단계 또는 총액계약제 내에서 질을 담보하기 위한 핵심적인 구성 요소인 셈이다.
 
독일식 '총액계약제' 도입의 사전 준비 작업은 이미 시작됐다. 장기적으로 '총액계약제'를 도입하기 위한 사전 작업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총액계약제는 정부가 의료 서비스 전체에 대한 예산을 미리 정해놓고, 의료기관들이 이 예산 안에서 진료를 하도록 하는 제도다. 독일의 사례처럼 총액계약제는 의료 서비스의 질 저하, 필수 의료 분야 기피, 과도한 제네릭 사용 등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 건강을 위한다면 독단적인 정책 추진 대신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야 한다. 성분명 처방을 강제하고 총액계약제 도입을 위한 포석을 놓는 것은 단기적인 재정 안정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우리 의료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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