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 꼼수를 부른 허술한 약가제도
동일성분이라도 신제품은 약가 높게 책정
보령제약‧휴온스, 계열사 통해 약가 편법 인상
같은 성분의 약이라도 출시된 지 오래된 제품에는 낮은 가격, 새로 출시한 제품에는 높은 약가를 주는 허술한 약가산정방식이 제약사의 약가 인상 꼼수를 불렀다.
최근 대한의원협회의 문제 제기로 표면화된 보령제약의 혈전예방약 '보령아스트릭스' 약가 인상 논란은 현행 약가산정 방식이 가진 모순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 사건은 보령제약이 '보령아스트릭스캡슐100mg'을 생산 중단한 후 이름만 '보령 바이오아스트릭스캡슐100mg'로 살짝 바꾸고, 계열사인 보령바이오파마를 통해 지난해 8월 출시하면서 불거졌다.
새로 발매된 '보령바이오아스트릭스캡슐'은 생산자와 제품 이름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기존 제품(1정당 43원)보다 79%나 높은 약가(1정당 77원)를 받았다.
하지만 생산, 영업, 마케팅은 모두 이전처럼 보령제약이 맡고 있어 약가를 인상하기 위한 꼼수 아니냐는 비난을 사고 있다.
제약사의 이 같은 편법행위는 현행 약가제도의 모순 때문에 가능했다.
2012년 4월 약가 일괄인하 때 개편된 현행 '약제의 결정 및 조정 기준'은 새롭게 보험등재되는 의약품에 약가를 부여할 때, 해당 제약사의 동일제제(같은 성분 및 투여경로) 품목이 이미 등재돼 있는지 여부를 확인한다.
만약 등재돼 있다면 그 제품과 같은 가격을 부여하고,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약값을 주는데, 기등재 제약사와 상호만 다르면 되기 때문에 얼마든지 계열사를 통한 재등재가 가능하다.
보령제약의 경우 보령바이오파마라는 계열사를 통해 재등재 했기 때문에 새로운 약값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었던 것이다.
또 동일제제 제품들의 약값이 서로 다른 경우 가장 높은 가격을 산정기준으로 삼는다.
아스트릭스의 동일제제 최고가(30여개 품목 77원)는 77원. 보령이 77원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다.
비단 보령제약뿐 아니라 다른 제약사들도 이 같은 허점을 파고들어 약가를 높였다.
휴온스는 346원이던 '휴온스린코마이신염산염주사600㎎'을 자회사 휴메딕스를 통해 재등재(휴메딕스린코마이신염산염주사600mg)하면서 약가를 500원으로 올렸다.
이 같은 방식으로 '휴온스덱사메타손디나트륨인산염주사액(133원)'을 '휴메딕스덱사메타손포스페이트이나트륨주사(222원)'로, '휴온스트라마돌염산염주사(207원)'을 '휴메딕스트라마돌염산염주(300원)'로 재출시하면서 약가인상 효과를 누렸다.
등재순서에 따라 약값이 떨어지던 계단식 약가제도와 달리, 약가를 절반으로 떨어뜨린 후 늦게 등재된 약에도 최고가를 부여하는 현행 일괄 약가인하제가 낳은 모순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이를 인정했다.
심평원 약제평가부 관계자는 "현행 약가 산정방식의 문제점이 제약사 편법의 근거"라며 "계단식 약가를 폐지했다면, 동일제제에 모두 최고가를 부여했어야 하는데 현행 제도는 같은 회사가 재신청하면 예전 약값을, 다른 회사가 신청하면 최고가를 주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제약사 입장에서는 자기 회사가 신청하면 이전 가격을 주고, 어떤 회사든 새롭게 신청하면 최고가를 주니까 불공평하게 느껴지는 것"이라며 "규정 자체에 모순이 있다. 어떤 회사든 보령과 같은 편법을 부릴 수 있는 구조"라고 시인했다.
그는 "보령처럼 출시된 지 오래돼 낮은 약가를 유지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면서 "동일제제 제네릭이라도 신상품에는 높은 약가를 부여하지만 기존 등재품목이 경우 정해진 가격 이상을 받기 힘든 구조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원가는 오르는데 약가인상은 안되고…어쩔 수 없는 선택"
보령제약 역시 이러한 약가 산정방식 때문에 계열사를 통한 출시가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보령제약 관계자는 "새로 등재되는 약은 77원이지만 오래된 제품만 예전 가격 그대로였다"면서 "다른 제품과 비슷한 수준으로 오를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자회사를 통해 등재할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기존 제품의 낮은 가격 때문에 제품 원가보전이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아스트릭스는 동일 제제 중 저가로 공급되는 상황이었다.
생산되지 않는 30~40원대 일부 품목을 제외하곤 40여개 경쟁 품목들의 약가는 대부분 77원이다.
보령제약 관계자는 "43원으로는 원가보전이 어려웠다"면서 "제품이다 보니 원가가 계속 오른다. 하지만 원가가 안 맞는다고 팔리는 약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약가인하 정책은 계속되고, 한번 내린 약가를 올리는 정책은 요원하니 어쩔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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