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시 질환특성 탓에 경제성 평가 ICER값 측정 어려워…제약업계 "취지 살리려면 유연성 필요"
5월 23일 희귀질환 극복의 날, 날로 중요해지는 희귀질환 진단과 치료
메디게이트뉴스는 5월 23일 희귀질환 극복의 날을 시작으로 희귀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 확대를 위한 연중 기획을 이어갑니다. 희귀질환자들은 늘어나지만 사회적 관심 부족으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을 위해 매달 질환별로 질환의 특징과 진단·치료 방법을 상세히 알아보고자 합니다. 전문가들과 함께 희귀질환으로 고통을 받는 환자들을 위한 질환에 대한 정보를 안내하고 일선 의사들에게도 희귀질환 진단과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을 전하고자 합니다. 이에 많은 관심과 제보 바랍니다.
[메디게이트뉴스 박도영 기자] 글로벌 및 국내 희귀질환 시장이 커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국내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의 장벽은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희귀질환은 치료제가 개발된 질환이 전체 질환의 약 6% 남짓에 불과하다. 환자 수가 적고 임상자료가 제한적이기에 자료의 통계적 유의성 확보가 어려운 탓이다. 치료제가 있더라도 비용효과성을 입증하기 어려우니 치료제의 허가나 국민건강보험 혜택에서 후순위에 밀릴 수밖에 없다. 환자들에겐 혁신적인 치료제도 '그림의 떡'인 경우도 많다.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들은 치료제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투병과 함께 경제적 고통에도 내몰리게 된다. 80% 이상의 희귀질환이 유전성, 선천성 질환이고 가족 내 대물림되거나 재발이 잦은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가족 전체의 의료비 부담 폭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희귀질환자는 다른 질환과는 달리 사보험조차 가입하기 어려운 사정도 있다. 환자들이 더욱 건강보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에서도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에 대한 정책 기조를 바탕으로 위험분담제(RSA)와 경제성평가특례제도를 운영중이다. 신약 등재과정에서 근거 마련이 어려운 항암제와 희귀질환 치료제를 대상으로 의약품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만든 제도다.
그러나 제도 본연의 취지가 무색하게 희귀질환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위험분담제는 대체약제가 없거나, 비용효과적인 약제, 경평면제 약제 등 매우 제한적인 대상요건을 두고 있다. 위험분담제의 가장 큰 장벽은 경제성평가에서 비용효과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희귀질환 치료제는 현실적으로 비용효과성 입증이 어려워 위험분담제의 혜택을 받기 힘들다. 이에 제약업계에서는 ICER값의 유연화를 통해 희귀질환의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의약품의 경제성평가는 비교 대안에 비해 개선된 임상적 유용성과 추가적으로 소요되는 비용을 비교하는 것을 의미한다. ICER 임계값을 '1 QALY(Quality Adjusted Life Years Gained) 당 비용'으로 책정해 비용-효과성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대부분의 희귀질환은 신체적 손상과 함께 삶의 질이 저하되는데, 삶의 질이 낮은 질환은 동일한 생존기간 연장 효과가 있어도 삶의 질이 높은 질환에 비해 비용효과성을 입증하기 어렵다. 희귀질환 치료제의 경우 희귀질환의 특수성을 반영해 ICER임계값을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자료 1] 위험분담제 적용대상
① 다음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1. 대체 가능하거나 치료적 위치가 동등한 제품 또는 치료법이 없는 항암제나 희귀질환치료제로서 생존을 위협할 정도의 심각한 질환에 사용되는 경우
2. 기타 약제급여평가위원회가 질환의 중증도, 사회적 영향, 기타 보건의료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여 부가조건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평가하는 경우
3. 1 또는 2에 해당하지는 않으나, 1 또는 2를 적용한 약제와 치료적 위치가 동등하면서 비용효과적인 약제의 경우
② 급여적정성 평가 결과 비용효과적으로 판단된 약제이나 다음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1. 경제성 평가 자료 제출 생략 가능 약제로 적용 받는 경우
2. 3상 조건부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은 경우
실제로 위험분담제가 본격 도입된 2014년 전후의 신약 급여등재 비율을 비교해보면, 항암제는 77.1%에서 91.7%로 크게 늘었다. 반면 희귀질환 치료제는 71.1%에서 71.4%로 큰 차이가 없었다. 위험분담제 도입 후 최근까지 약 6년간, 위험분담제로 급여를 신청한 희귀질환 치료제 14개 중 급여 등재에 성공한 것은 솔리리스, 니글라자임, 피레스파 3개에 불과하다.
솔리리스는 발작성 야간 혈색소뇨증 치료제, 니글리자임은 뮤토다당증 치료제, 피레스파는 특발성 폐섬유종 치료제로 모두 2015년 등재됐다. 피레스파는 2017년 12월 제네릭이 등재되면서 RSA 계약 만료 이전에 일반약제로 빠졌고, 니글라자임은 2020년 2월 계약 만료가 다가오고 있다. 솔리리스는 보험약가 14.9%를 인하하는 조건으로 지난해 9월 재계약에 성공했다 (조정 전 6,032,018원, 조정 후 5,132,364원).
RSA를 통과한 약제들은 그나마 희망적이다. 예를들어 노바티스의 일라리스는 2015년 12월 크리오피린 관련 주기적 증후군(CAPS)과 전신성 소아 특발성 관절염으로 국내에서 허가를 받았으나 급여 등재에는 실패했다.
노바티스는 일라리스를 CAPS를 주적응증으로 급여 신청했으나, 심평원에서는 전신성 소아 특발성 관절염(sJIA) 환자가 더 많은 것으로 보고, sJIA 치료제인 악템라주 대비 경제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키너렛주가 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서 수입 제공하고 있어, 대체가능 약제 유무 판단에 대한 쟁점이 있었다.
베링거인겔하임의 특발성폐섬유증 치료제인 오페브는 2016년 10월 국내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2015년 3월 동일 적응증 허가 받은 피레스파가 위험분담제로 등재됐고, 2017년 10월 제네릭 등재와 함께 위험분담제 계약이 종료되면서 오페브는 보험등재 신청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경평면제제도 역시 희귀질환자에게 동아줄이 되기 어렵다. 경평면제에 해당하려면, 대체할 수 있는 치료제가 없고 대상 환자가 소수로 근거생산이 곤란하다고 인정돼야 하며, 7개 국가 중 3개 국가 이상에서 공적급여가 돼야 한다. 여기서 '소수'의 기준은 어디에도 명시돼 있지 않지만 통상 200명으로 한정된다. 이 기준을 모두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면제받을 수 있는 범위가 극히 제한적이다.
제도의 높은 문턱을 넘었더라도 제약사는 A7 국가의 최저가보다 낮은 약가를 수용해야만 경평면제가 가능해, 국내에 신약 도입이 늦어지거나 불가능한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제약업계에서는 경평면제 제도를 본래 취지에 맞게 운영하려면 유연한 적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호하고 제한적인 대상 기준보다 산정특례로 지정된 희귀질환 약제와 같이 구체적인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자료 2] 경제성 평가 자료 제출 생략 가능 약제 기준
① 다음 각 호 모두에 해당하는 약제의 경우에는 경제성 평가 자료 제출을 생략할 수 있다. 다만, 제6조의3제1항제1호에 해당하는 약제 중 국내에서 세계최초로 허가 받은 신약의 경우에는 제1호와 제2호의 조건만 만족하는 경우에도 자료제출을 생략할 수 있다.
1. 희귀질환 치료제나 항암제로서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약제
가. 대체 가능한 다른 치료법(약제포함)이 없는 경우
나. 치료적 위치가 동등한 제품 또는 치료법이 없고 생존을 위협할 정도의 심각한 질환에 사용되는 경우
2.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약제
가. 대조군 없이 신청품 단일군 임상자료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은 경우
나. 대조군이 있는 2상 임상시험으로 3상 조건부 없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은 경우
다. 대상 환자가 소수로 근거생산이 곤란하다고 위원회에서 인정되는 경우
3. 위원회에서 정한 외국조정평균가 산출의 대상국가인 외국 7개국 중 3개국 이상에서 공적급여 또는 이에 준하여 급여되고 있는 약제
② 제1항의 조건을 만족하지는 않으나, 약사법 제2조에 의한 국가필수의약품 중 결핵치료제, 항생제, 응급해독제는 다음 각 호 모두에 해당하는 경우에 경제성 평가 자료 제출을 생략할 수 있다.
1. 제외국에서 경제성평가를 수행하지 않은 약제. 다만, 제외국에서 경제성평가를 수행한 경우라도 경제성평가 소위원회가 국내에서 경제성평가를 수행하기가 곤란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제외국에서 경제성평가를 수행하지 않은 약제로 간주함
2. 위원회에서 정한 외국조정평균가 산출의 대상국가인 외국 7개국 중 3개국 이상에서 공적급여 또는 이에 준하여 급여되고 있는 약제
실제로 GSK의 루푸스 치료제인 벤리스타는 60년만에 개발된 신약으로, 대체약제 가능한 약제가 없다. 그러나 생존을 위협하는 질환(기대여명 2년 미만)의 기준에 해당되지 않아 위험분담제를 적용받지 못한 채 비급여 판정을 받아 연간 2천여만원의 치료비를 환자가 고스란히 지불하고 있다.
이같이 제도 요건이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3월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과 '신약 등 협상대상 약제의 세부평가기준 개정안'을 발표해 제도에 유연성을 적용하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개정안에는 위험분담제의 대상을 후발약제, 경평면제 약제, 3상 조건부 허가약까지 확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경평면제 약제에는 결핵치료제·항생제·응급치료제가 포함됐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도 희귀질환의 치료제 접근성 향상에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희귀질환 치료제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서는 희귀질환 약제의 예외성을 고려한 유연하고 독자적인 접근방안이 필요하다. 정부는 의약품 재평가로 재원을 절감해 희귀질환을 포함한 중증질환의 접근성을 강화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 5월 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도 뇌기능개선제인 콜린알포레세이트 제제의 재평가를 시작으로 의약품 사후재평가의 본격적 도입을 알렸다.
업계 관계자들은 "재정 절감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 제시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 "재정 확보도 중요하지만, 이미 마련된 위험분담제와 경평면제제도가 본래 제도 도입 취지에 맞게 운영될 수 있도록 개편안에는 희귀질환의 특수성을 반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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