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2.11.22 09:47최종 업데이트 22.11.22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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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누리는 '의료' 영원하지 않다...“의료계도 국민 눈높이서 설득 나서야”

[인터뷰]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펴낸 약사 출신 박한슬 작가 “위기에 처한 의료체계, 국민들에게도 직접적 영향”

약사 출신 박한슬 작가.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의료계에선 연일 현행 보건의료체계에 메스를 들이대야 한다는 경고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병원 내부의 의료진들은 인력 부족으로 아우성이고, 전공의가 외면하고 있는 기피과와 지방 병원들은 이미 붕괴가 진행중이다. 가파른 고령화 속에 의료비가 증가하면서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하나같이 시급한 문제들이지만 대부분의 일반 국민들에겐 아직도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값싸고 우수한 대한민국의 의료가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라고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약사 출신인 박한슬 작가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착안해 최근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 문제를 설명한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란 책을 출간했다. 그는 앞서 약과 제약∙바이오산업을 주제로 두 권의 책을 쓴 바 있으며, 현재도 여러 매체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 

최근 메디게이트뉴스와 만난 박 작가는 “의료제도의 문제가 일반 시민들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문제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다”며 “의외로 지금 누리는 의료서비스가 저출산과 고령화 기조가 계속될 미래에는 더 이상 당연한 게 아닐 수 있단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본인 스스로도 약사지만 평소 병원 행정직 아버지, 대학병원 간호사 어머니, 의사 여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며 의료계 전반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병원의 만성적 '인력 부족'과 환자∙의사 '수도권 쏠림'이 초래한 실패

책은 간호계의 태움(선임 간호사들의 신입 간호사 대상 직장 내 괴롭힘) 문화와 진료보조인력(PA) 문제를 언급하며 시작한다. 박 작가는 언론이나 사람들이 신입 간호사를 괴롭힌 선임 간호사를 악마화하거나 태움과 PA를 막기 위해 간호사·의사 인력을 늘리면 된다는 1차원적 얘기들이 나오는 걸 보며 안타까웠다고 했다.

그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병원이 인력 충원을 꺼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책을 통해 설명한다. ‘진료’에 인색하고 ‘검사’에 후한 현행 의료비 책정 구조가 의료진은 부족하고 검사 장비들은 가득찬 병원들의 모습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대형 병원들의 수익 중 의료 행위를 통해 얻은 ‘의료 수익’이 아닌 비의료 분야에서 나온 ‘의료 외 수익’의 비중이 더 큰 얼핏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그는 개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이 전체 체계의 실패로 이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우리나라 의료체계에서 나타나고 있다고도 꼬집는다. 환자들이 서울 소재 대형병원들로 쏠리고, 의사들도 지방 근무를 기피하는 현상은 개개인 차원에선 합리적일지 모르나 서울과 지방 간 의료 격차를 심화시켜 전체 체계의 실패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박 작가는 이 같은 상황의 해결책을 묻자 “결국은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느냐’하는 문제”라며 “공급 측면에서 서울권의 병상 총량제 도입 등을 논의해볼 수있다. 최근에 대형병원들이 분원을 계속 만드는 식으로 규모를 키우고 있는데, 이런 움직임을 제한하기 위해 정치권 내에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이용 측면에서 제한을 둔다면 주치의 제도가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있지만, 그간 자유롭게 의료를 이용해 온 일반 시민들의 수용성 문제는 물론이고 의료계 내부에서도 합의가 필요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우선 의료계 내부적으로 합의가 된 후에 국민들을 설득하는 게 맞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건보재정 지속가능성 '간병' 문제가 해결 열쇠?..."의료계도 시야 넓혀야"

그는 책에서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의료계의 정부에 대한 불신, 원가 이하로 낮게 책정된 수가와 소위 ‘심평의학’이라 불리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삭감 문제 등도 짚는다. 이는 정부가 국민들의 저항을 우려해 건강보험 수입을 늘리는 방식(정부지원금 증액·건강보험료율 인상) 대신 지출을 조이는 방식을 택해왔기 때문이라고도 설명한다.

문제는 향후 고령화로 의료비가 증가하고 직장가입자 수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현행 방식으론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박 작가는 고령화로 늘어나고 있는 ‘간병’ 수요가 오히려 건강보험 재정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지금도 부담이 큰 간병비를 급여 범위 내로 끌고 들어와야 한단 얘기가 있지만 정부는 보험 재정 규모가 너무 커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고 있는 것 같다”며 “하지만 반대로 간병을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하면서 그 대신 건보료를 올리겠다고 국민들 설득에 나서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박 작가는 끝으로 현재 보건의료체계가 처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의료계도 시야를 넓히고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춘 설득에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의료계의 문제는 전체 사회가 직면한 문제와 유사한 경우가 많은 만큼, 다른 분야의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의료계의 문제에 대해서도 국민들의 동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의료계 종사자는 계층적으로 보자면 사회 최상층부 출신이 많다”며 “그러다 보니 본인 기준에선 ‘이 정도 말하면 알아듣겠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소통 과정에서 이 부분(국민들 눈높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의료계는 내부의 문제가 의료계에만 존재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며 “보건의료종사자들도 의료계의 문제 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비슷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동료 시민들을 설득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사회 문제는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박민식 기자 (mspark@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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