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으로 공인된 진단을 하고도 요양급여를 인정하지 않고, 해당 비용을 환자에게 부담시킬 수도 없으며, 의료기관은 부당청구를 했다는 의심을 사는 건강보험의 사각지대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 검사.
헬리코박터균은 위장점막에 주로 붙어 위염, 위궤양, 십이지장 궤양, 위선암, 위 림프종 등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위장질환이 발생하면 우선적으로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된 것인지 균주검사를 하는데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위내시경 검사 및 이를 통한 조직생검, 일명 CLO 테스트.
이 진단법은 보험급여가 인정되긴 하지만 내시경 검사가 필요 없거나 조직생검으로 인해 출혈이 발생할 위험이 있으면 시행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또 하나의 검사법이 요소호흡검사(urea breath test).
이 방식은 비침습적 검사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가 가지고 있는 요소 분해효소를 이용해 감염 여부를 검사한다.
이와 관련 A대학병원 소화기내과 C교수는 "요소호흡검사는 내시경검사 및 조직검사가 필요 없으며, 진단의 정확도가 높아 전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하는 진단방법 중 하나"라고 환기시켰다.
문제는 이 검사법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박멸치료를 한 후 균이 제거됐는지 여부를 확인할 때에 한해 보험급여가 인정된다는 점이다.
2009년 2월 신설된 요양급여 인정기준 고시에 따라 의료기관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박멸치료 후 4주가 경과한 후 '제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요소호흡검사를 실시한 때 급여를 인정받을 수 있다.
다시 말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감염 여부를 '진단'할 목적으로 검사를 하면 보험급여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단 목적의 요소호흡검사는 보험급여가 인정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환자에게 비급여로 청구할 수도 없다.
비용을 청구하다가는 임의비급여가 처벌받을 수 있다.
검사 비용은 4만원 선.
보건복지부가 제균 확인에 한해 요양급여를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이를 제외한 검사비용을 환자에게 청구할 수 있다는 규정이 없다보니 의료기관들은 진료비 삭감을 감수하고 비용을 청구하는 처지다.
C교수는 급여도, 비급여도 되지 않는 검사건수가 전체의 20~25%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했다.
C교수는 "의사 입장에서는 급여기준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환자를 위해 불가피하게 이 검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병원에서 내시경검사를 한 결과 궤양이 있어 내원했는데 헬리코박터균 검사를 하지 않은 환자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럴 때 보험급여 인정을 받으려면 내시경검사를 또 해야 하는데 환자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어 의료기관들은 삭감을 감수하고 요소호흡검사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게 C교수의 설명이다.
또 위장관 출혈이 있는 환자에게 내시경검사 및 조직생검으로 헬리코박터균 검사를 하면 균이 있음에도 없는 것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아 이럴 때 역시 진단 목적으로 요소호흡검사를 하지만 검사후 비용을 청구하면 100% 삭감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C교수는 "항응고제나 항혈전제를 복용하거나 혈액응고장애로 출혈 경향이 있을 때에도 요소호흡검사를 해야 하지만 보험급여가 인정되지 않아 검사를 하고도 비용 보전을 받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의료기관은 요소호흡검사를 한 후 삭감을 감수하고 심평원에 공단부담금 심사를 청구하고, 환자에게는 본인부담금을 받는다.
그러면 심평원은 해당 비용을 불인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환자에게 병원이 본인부담금을 부당청구한 만큼 되돌려 받을 수 있다고 안내한다.
이렇게 되면 의료기관은 졸지에 안해도 되는 검사 내지 불법검사를 한 게 된다.
C교수는 "환자에게 비용을 받을 수 없더라도 의학적으로 필요한 검사라면 하는 게 의사"라면서 "그럼에도 본인부담금을 돌려받으라고 안내하면 환자 입장에서는 병원이 불법진료하고 돈을 받아먹었구나 생각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소화성궤양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요소호흡검사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균주검사를 하면 환자 안전 측면이나 추가 내시경으로 인한 비용, 심적 부담을 덜 수 있고, 반복 검사를 줄일 수 있다"면서 "이를 급여 기준에 추가하거나 최소한 비급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C교수는 "의학적 근거가 있음에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면, 비급여를 인정해 환자가 자기 치료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그런 장치가 없다보니 의사들은 환자를 치료하고도 부당청구를 한 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소화기내시경학회는 조만간 심평원에 불합리한 요소호흡검사 요양급여기준을 개선해 줄 것을 요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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