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혁신 의료기기 육성과 지원 방안 중에서 커다란 한 축은 건강보험 급여 제도에 어떻게 편입할 것인가에 있다. 하지만 급여 제도는 건강보험 체계와 맞물려 있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시장 가격을 결정하는 문제도 아니다.
한 업체는 외국 유수의 기관들로부터 혁신성을 인정받은 제품의 국내 시장 진출을 계획했지만, 국내 급여 등재 요건을 갖추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국내 시장 진출을 포기했다. 당시 해당 업체가 각종 자문기관이나 컨설팅업체로부터 받은 조언에 따르면, 국내 시장 진입을 위해서는 의료기기를 외국 시장에 먼저 출시해 기기의 유효성·안전성을 입증할 데이터를 충분히 쌓은 다음, 한국 시장에 들어올 것을 제안 받았다. 사실상 한국 시장에서 생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었다.
이처럼 급여 등재는 기업 생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기업들의 건의로 기존기술에 상응하는지 여부에 따라 인공지능 기기들이 보험에 등재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되긴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체외진단의료기기 선진입 후평가' 시행 평가 결과를 보더라도 답이 나온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제도가 도입될 때 선진입후평가 제도가 의료기기의 시장 진입 촉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고, 기업들은 규제 혁신 측면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했다. 그러나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기존 제도와 차이 없는 절차와 요건을 고수하면서 기업들은 이 제도를 외면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용한 제품에 대한 급여 적용 여부 판단도 쉽지 않다. 건강보험 보장성은 국민의 기본권의 문제다. 지속 가능한 건강보험체계를 유지하는 것은 국민의 생존과 행복추구에 관한 국가의 기본 책임이다. 반면 보건산업 진흥은 경제에 대한 문제다. 미래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추진 동력을 탐색하고 발굴해 미래를 위한 국가 경제의 기반을 다지는 문제다. 그러다 보니 양측이 상반된다. 보건복지부 정책도 양측을 다 소화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급여는 건강보험 보장성의 관점에서 우선적으로 다뤄야 한다. 하지만 의료기기 급여는 산업화의 문제에 해당한다. 의료기기 제품이 출시된 후 급여를 받지 못하면 병원은 해당 제품의 사용을 주저할 수 있다. 판매되지 못한 제품과 그 기업은 시장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 산업 발전도 어려울 수 있다.
급여에 등재될 수 있는 혁신 기술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무엇으로 삼을 것인지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무엇이 혁신인가라는 면에서 두 가지의 관점이 존재한다. 기술의 혁신과 가치의 혁신이다. 기술의 혁신은 편의성, 미래의 가능성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는 반면, 가치의 혁신은 제품의 사용으로 인한 환자의 편익과 치료 효과로 구분된다.
식약처 허가 단계에서 기술의 혁신 여부만을 기준으로 해서 혁신제품군으로 허가를 내줄 수도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 보장성이라는 관점을 고려하면, 환자와 의사의 편익 또한 고려해야 한다. 혁신 기술이라는 이유만으로 급여를 해줄 수는 없다. 기술의 혁신만으로 급여 여부를 평가하는 것은 효능 효과에 대한 가치를 입증하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기존의 평가 기준과 충돌한다.
인공지능에 대한 진단 기술을 예로 들어보자. 의사의 진단 정확도를 높인다는 측면과 의사를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측면에서 기술의 혁신과 가치의 혁신 양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전자는 환자에게 가치의 혁신을 통한 편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주는 것이고, 후자는 기술의 혁신을 통한 병원 경영 개선이라는 편익을 줄 것이다. 후자의 경우 병원의 경영 개선에 건강보험 재정이 투입되는 것이므로, 이 부분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의료 인력 부족으로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산간벽지나 지방 소도시의 환자들을 고려했을 때 의사를 대체 공급해 줄 수 있는 기술의 혁신이 가치의 혁신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혁신 제품의 품목 분류와 수가 적용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질병을 진단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추가로 유전자 분석을 통해 적합한 치료제나 치료기술을 찾아주는 기능이 추가된 장비가 있다. 이 장비는 기존에 각각의 기기에 따로 적용되면서 보험수가를 합한 만큼의 수가를 적용 받을 것인지, 아니면 더 비싼 보험수가를 적용해야 할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이 논란을 혁신 가치적인 측면에서 보면 특허권처럼 개발 업체에 높은 가산 수가를 주고 기업이 더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기술의 혁신은 궁극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더 나은 제품을 만드는 데 의의가 있으므로, 시장에 의해 선택될 문제일 뿐, 급여로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결론적으로 혁신 기술의 가치를 어떤 기준으로 얼마나 부여하고, 건강보험에 등재해 수가를 얼마나 산정할지는 간단하지 않다. 산업계는 당연히 식약처가 혁신제품군이라고 지정한 모든 제품에 대해 신의료기기평가를 유예하고 급여 등재를 해주길 원할 것이고, 수가도 많이 받기를 원할 것이다. 반대로 효능 효과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고 의료 현장의 필요성에 대한 반응이 충분히 취합되지 않은 상태의 제품에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할 수 없다.
혁신성장을 위한 성장통이 언제 멈출지는 예상할 수 없다. 정부와 학계, 산업계, 연구기관 등이 힘을 합해 풀어야 하는 우리의 과제다. 나의 불편만을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환자와 국민을 우선으로 고려하고 그들의 가치를 통해 해법을 고민해 봤으면 한다.
댓글보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