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 10일 서울대 조사위원회(위원장 정명희)는 "황우석 교수의 2005년 논문에 이어 2004년 논문의 줄기세포도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가 아닌 것으로 확인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어 조사위는 "2005년 네이처 논문에 나온 11개의 줄기세포와 관련해 황우석 교수팀은 환자맞춤형 줄기세포주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그것을 만들었다는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의 첫 노벨상 수상 예정자, 차세대 먹거리 책임자 '황우석 신드롬'은 그렇게 막이 내렸다.
적어도 2005년 11월 22일 MBC PD수첩이 '황우석 신화의 난자의혹' 편을 방송하기 전까지 황우석 교수는 국민 영웅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그 국민적 영웅을 무너뜨린 인물이 바로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류영준(43·병리학) 교수다.
류 교수는 최근 의료윤리연구회 47차 모임에서 '생존과 윤리 사이'를 주제로 강의하면서 PD수첩에 제보하게 된 경위를 상세하게 소개했다.
류 교수는 2002년 황우석 줄기세포연구팀에 합류해 팀장을 맡았고, 2004년 황 전 교수가 '사이언스'에 인간배아줄기세포 논문을 발표할 때 제2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 직후 그는 황 전 교수와 결별하고, 2005년 원자력병원에서 레지던트 1년차로 근무했다.
그러던 3월 경 과거 황 전 교수 연구팀에서 함께 일하던 동기로부터 두가지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하나는 황우석 연구팀이 11개의 복제줄기세포를 만들었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5월 '네이처'에 논문이 실리는 직후 임상실험에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류 교수는 "복제줄기세포를 1개도 아니고 11개 만들었다고 하니까 ‘이건 도를 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움직일 생각은 전혀 없었다"면서 "이미 랩을 나왔고,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어서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황 전 교수가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10살 소년을 상대로 임상시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이대로 놔두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때부터 두달 동안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던 중 그는 평소 알고 지내던 모 대학원 원장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의했다.
그러자 대학원 원장은 화분을 가리키며 "한국 사회에서 꽃을 꽃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나서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었다.
그는 "황 전 교수는 정권과 국민, 기득권의 지지를 받던 상황이었지만 제가 본 진실은 그게 아니었다"면서 "하지만 저는 어리고, 아무 것도 없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그는 "가치를 지키려면 무언가를 내놓아야 한다. 무언가가 문제인데 저는 (제보를 한 이후) 10년 가량 계속 고생을 했고, 어떤 분들은 목숨을 잃기도 했다"면서 "내가 어떤 편에 서느냐에 따라 수입 등이 너무나 큰 차이가 나고, 선택의 순간 그런 게 크게 작용한다"고 털어놓았다.
연구자로서의 꿈과 진실(truth) 중 어느 길을 갈지 고민이 많았다는 의미이다.
그는 황우석 전 교수의 민낯 몇 가지를 소개했다.
황 전 교수는 세계 다섯 번째 복제소 '영롱이'를 탄생시키면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그는 "1999년 영롱이를 발표했지만 실제 복제에 성공한 건 2003년"이라면서 "4년간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고, 관련 논문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연구 데이터도 잃어버렸다며 내놓지 않았다. 1999년 언론에 '이게 복제소다'라고 내놓았을 때 다 속았던 것"이라고 피력했다.
황우석 교수는 2005년 7월 26일 KBS 열린음악회에 출연해 당시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클론'의 강원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저 강원래를 벌떡 일으켜 과거의 화려하고도 날렵한 몸놀림을 열린음악회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류 교수는 "황 전 교수는 그 때부터 종교 부흥사 같은 느낌이었다"고 설명했다.
황 전 교수는 불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는 2005년 6월 15일 명동성당을 방문해 정진석 추기경에게 "저도 천주교 신자입니다. 본명이 '아드레아' 입니다”라고 언급했다.
류 교수는 "황 전 교수의 단면을 잘 알 수 있는 일화”라면서 “자기한테 필요하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정부 차원에서도 황우석 노벨상 프로젝트를 가동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류 교수는 "학자들 중에는 그 당시 황 전 교수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분들이 많았지만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만큼 절대적 권력을 휘둘렀고, 진실을 아는 이들은 가진 것을 내놓기 싫었을 것이다.
연구윤리 역시 재앙 수준이었다.
류 교수는 "연구팀에 소속된 2명의 여자 대학원생은 반대급부를 바라고 자신의 난자를 제공했고, 이 중 한명은 박사 학위가 없었지만 모 의대 전임강사로, 또 한명은 황 전 교수 논문에 계속 자신의 이름을 넣을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황 전 교수는 그 후에도 집요하게 난자를 기증하라고 요구했고, 대학원생들은 어쩔 수 없이 난자를 제공하고, 자기 난자로 실험을 했다고 한다.
2005년 11월 22일 PD수첩이 '황우석 신화의 난자의혹' 편을 방송하자 황 전 교수 주변에는 돈과 권력이 더 집중됐다.
황 전 교수가 12월 7일 서울대병원에 입원하자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손학규 경기도지사 등 거물급 정치인들의 문병이 줄을 이었다.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황 교수팀 연구는 중요한 국가 자산"이라며 "연구 성과를 통해 한국 과학의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주자"고 촉구하고 나섰다.
국회의원 30여명은 '황우석 교수를 돕는 국회의원 모임'을 결성했고, 연구 목적 난자기증자도 크게 늘었다.
황 전 교수 팬클럽은 그의 연구 복귀를 염원하는 뜻에서 서울대 수의대 건물 앞길에서부터 연구실까지 진달래꽃을 깐 소위 '진달래 양탄자’ 행사를 열기도 했다.
류 교수는 진달래 양탄자 행사도 사기극이었다고 했다.
그는 "나중에 알고 봤더니 이벤트 회사에 돈을 주고 한 퍼포먼스였더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까지 나섰다.
노 대통령은 11월 27일 정부 국정브리핑 사이트에 "황우석 교수 줄기세포에 관해 PD수첩에서 취재를 한다는 보고가 있었다"면서 "수십 명의 교수, 박사들이 황 교수와 짜고 사기극을 벌이고 있고, 세계가 그 사기극에 놀아나고 있었다는 말인가?"라는 기고문을 올렸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황 전 교수를 감싸는 판에 진실은 힘을 잃었다.
류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두 초토화 됐다.
PD수첩 황학수 PD 등은 직무정지를 당했고, 류 교수 역시 원자력병원에서 쫒겨났다.
그런데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12월 5일 새벽 포항공대 과학자 커뮤니티인 'bric'에 '어나니머스'라는 필명의 연구자가 '쇼 머스트 고온(쇼는 반드시 계속돼야 한다)'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랬다.
'나는 감자 농사꾼인데 내가 (황 전 교수) 논문을 보니까 사진이 좀 이상하더라. 내가 찾았는데 더 찾는 사람이 있으면 감자 한 박스를 보내주겠다.'
그 직후 한국과 미국, 일본 과학자들이 논문에 실린 조작된 줄기세포 사진을 추가로 찾아내면서 '과학적 게임'이 사실상 끝이 났다.
류 교수는 "제가 만약 생존을 생각했다면 이런 일이 절대 있어서도 안되고, 피해갔어야 마땅했다"면서 "그 때 제 애가 8개월이었다"고 환기시켰다.
그러면서도 그는 "황 전 교수가 10년간 거짓말을 했고, 아는 사람은 그런 사실을 다 알았지만 그대로 방관했다"면서 "만약 그가 노벨상이라도 수상한 후 이 사건이 불거졌으면 진실이 규명되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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