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9.01.25 05:15최종 업데이트 19.01.2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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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라는 존재는... 너 하나 인생 망치는 건 쉽다" 의대생들 인권실태 심층인터뷰 결과

의대생들, 투명한 인턴 및 레지던트 선발절차·인권교육·독립적인 기구 설치 등 대안 제시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정다연 기자] 의과대 학생들이 인권실태 심층인터뷰를 통해 의과대 내 부조리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내로라하는 대학 입시 성적을 가지고 의과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이 마주한 현실은 지성의 향연이 펼쳐지는 고등교육기관의 교육의 장이 아니었다. 음주를 강요하고 선배들을 위해 섹시 댄스를 추고, 맞거나 성추행을 겪어도 항의할 수 없는 꽉 막힌 세계였다. 의대생들은 대학에서 병원까지 이어지는 폐쇄적인 집단 구조와 의사 사회에서 배제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호소하며 처음으로 세상에 목소리를 냈다. 이들이 절실히 바라는 것은 의과대학의 변화, 나아가 의료계의 변화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인권의학연구소는 23일 '의과대학 학생들의 인권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의과대학 학생들의 인권실태 심층인터뷰 결과를 발표했다. 심층 인터뷰는 1:1 대면 인터뷰로 진행 됐다. 14개 대학 21명의 의대생(여성 14명, 남성 7명)이 참여했다. 해당 학생들이 소속된 대학은 서울 소재 대학 8명, 수도권(경기·인천·수원) 소재 대학 2명, 지방 소재 대학이 11명이었다.

연구원으로 실태조사에 참여한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최규진 교수는 "의과대학 교육자로서 반성을 많이 했다. 의과대가 이번 실태조사를 통해 인권 감수성을 고취하려는 자정 노력을 시도했으면 한다"며 "이번 연구의 목적이 특정 학교에 대한 낙인 찍기가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 이에 따라 학생의 신원을 추정할만한 개인정보, 학교명, 병원명 등은 모두 생략하거나 바꿨다. 대신 직접 인용을 통해 될 수 있으면 당사자의 목소리를 최대한 직접 전달하는 방식을 취했다"고 말했다.

"선배라는 존재는... 너 하나 인생 망치게 하기는 쉽다"

인권의학연구소는 심층 인터뷰 결과, 실습을 돌면서 언어 또는 물리적인 폭력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당사자가 문제 삼지 않아도 주변에서 문제 삼아 소문이 확대·재생산 되는 구조적 권위주의의 폐해도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연구소는 과거보다 물리적인 폭력은 줄었으나 아직도 얼차려 등 선배가 후배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는 학교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폭력은 동아리, 동문회, 향우회처럼 결속력이 높은 집단에서 강도가 심해졌다.

- 선배들에게 들었던 말 중에 제일 '헉' 했던 일이 있다. 나보다 딱 1살 많은 선배(내가 재수하지 않았으면 같은 동기였을 선배)가 나한테 '선배라는 존재는 너를 도와줄 수는 없어도 너 하나 인생 망치게 하기는 쉽다'고 말한 것이었다. 그걸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들었던 말이 아니다. 그냥 본인이 선배로서 하는 행동들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그런 말이었다. 

- 선배로부터 신체적 폭력이 있었다. 무서웠는데 말해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 그냥 넘어갔다. 저뿐만 아니라 제 동기들이나 후배들도 언어적 폭력이나 신체적 폭력을 당했다. 가해자 선배는 술에 취해서 취기로 그랬다고 했다. 제대로 된 처벌이 없으니 계속해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 같다. 학교에서는 문제를 들어도 해결하지 않고 숨기려고 한다.

- 쌍욕을 한다든지 '멍청한 놈'이라든지…. 아직도 몇몇 교수와 실습을 돌게 되면 언어적 폭력을 많이 듣는다. 

- 레지던트 선배와 운동을 같이하다 실수로 선배를 쳤고, 사과를 하고 넘어갔는데, 술자리에서 선배가 본1이 쳐서 넘어졌다고 장난으로 말을 하니 주변 사람들이 오해하여 어떻게 본1이 레지던트 선배를 쳤느냐 하면서 모르는 사람들이 밤늦게 전화해서 말꼬리 잡고, 혼이 난 적이 있어서 겁을 먹었다. 당사자끼리는 에피소드처럼 지나간 일도 소문을 타며 문제시되는 경우가 있다.

- 예과 1, 2학년 때 동아리나 동문 모임에서 선배들이 사소한 잘못을 과하게 지적하거나 신체적 폭력을 행사하여 불편했다.

음주 강권도 모자라 공론화까지 막은 의대의 권위주의 문화

인권의학연구소는 강권하는 음주문화 자체도 문제지만 '음주문화까지 문제 삼는 건 지나치다'는 분위기가 이를 근절하지 못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소는 실제 증언을 해준 한 학생은 정신과 치료를 받는 중이라며 음주를 강요하는 술 문화에 대해 지적했다. 연구소에 따르면, 음주를 권하는 문화는 동아리, 동문회, 향우회, 지도교수제도처럼 결속력이 높은 집단에서 강도가 심하다.

- 음주 강요로 억지로 술을 너무 많이 먹어 크게 탈이 났다. 악순환을 막기 위해 공론화 준비를 많이 했는데, 주변의 압력(특히 교수)으로 결국 공론화를 하지 못했다.

- 어떤 향우회에 여학생이 혼자라 회장이 됐는데, 선배가 따로 불러서 취할 때까지 술을 먹이고 하는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최근에 들었다.

- 담임반 제도가 있는데, 병원에 있는 노교수가 담임반 교수이고, 그 교수가 호출할 경우 그날은 술을 끝까지 먹어야 해서 우리는 '죽으러 가는 거야' 한다.

의대에서 인사를 빌미 삼아 후배를 괴롭히는 문화는 체대, 예대 등에서 논란이 됐던 '군기 잡는 문화'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대 내 각종 모임과 행사를 통해 권위주의적인 문화가 재생산 되는 대목이 눈에 띄었다.

- 우리 학교는 선배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도서관 등 다른 과와 섞인 곳에서는 잘 몰라서 인사를 못 한 것이었는데, 한 선배가 화가 났고, 그 선배에게 불려갔다. 선배는 '이렇게 하면 나만 빼고 족보를 내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죄송하다고 했고, 결국 낮에 혼나고 끝날 줄 알았는데 그 선배한테 술자리로 불려 나가서 술자리에서도 계속 혼났다. 우리 학교에서는 선배 한 명한테 문제를 지적받아 번호가 노출되면, 술자리마다 불려 다녀야 한다. 인사 문제 때문에 다른 선배들까지 내 전화번호를 캐내 다른 모임 술자리에 불려갔다.

- 저희 학년이 밉보이는 상황에서 멀리 떨어진 선배에게 인사를 못 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소문을 낸다. 그럼 술자리를 가져서 인사를 못 한 학생은 계속 술을 강요받게 된다. 그렇게 한번 인사 안 하는 학번으로 찍히면 몇몇 선배가 제대로 혼내라는 지시를 내린다. 우리 학번도 찍힌 학번이라 남삭생 전체를 모아 두 학년 위의 남자 선배들이 술을 먹였다. 한 명당 7병꼴로 1시간 이내에 술을 마시게 했다. 일부는 응급실에 실려 갔다.

- 우리 학교는 동아리도 있고, 향우회도 있고, 담임반도 있다. 향우회는 술만을 먹기 위한 모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쓸 데 없이 개입할 수 있는 구조가 너무 많다.

- 그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과는 어떤 동아리가 먹고 있다'라고. 저희 학교는 족보를 학생회에서 관리해서 모든 아이에게 동일하게 공개하는데. 어떤 학교는 동아리마다 족보가 다르다. 그래서 원하지 않아도 합창부 족보가 좋다고 들으면 합창부 동아리에 들어간다. 그리고 어떤 과에 들어가려면 어떤 공아리에 가서 그 선배에게 줄을 서야 한다.

- 의학교육이 도제식이라는 명목하게 선후배 간의 위계를 중시한다. '과토'라는 것을 하는데 ROTC나 군대에서 군기 잡는다고 하는 것과 비슷한 것을 한다.

- 내가 입학했을 때 총 MT를 하는데 신입생들이 촌극을 준비하고 본과 3~4학년 선배들이 기다리는 방에서 방돌이를 한다고 들었다. 촌극이 재미없으면 선배들이 술병을 거꾸로 세워 술을 먹였다고 한다. 저 바로 바로 위 선배들은 '뼈다귀를 던지고 받아먹는 개 흉내'를 내게 했다고 한다. 이건 우리는 직접 받지 않았다. MT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당시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 터져 총 MT가 취소됐다. MT를 가기 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한 학생이 걱정돼서 학교에 투고했다. 그런데 학장이 학생회장하고 학생 담당 교수에게 그 투고 편지를 그대로 보여줬다. 결국 총 MT는 안 갔지만 우리 학번이 찍혀 선배들로부터 타겟이 되었다.

- 본과 진입식이라는 것이 있는데, 본과로 올라가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술을 먹이는 행사를 한다. 학생들을 술집에 모아놓고 맥주잔에 소주를 몇 잔씩 강요한다. 그리고 선부해 대면식에서 자기소개 하고 그 와중에 마음에 드는 이성 선배를 고르게 하기도 한다. 남학생 여학생 상관 없이.

- 선배들 졸업할 때 후배들이 10만원씩 걷어서 금반지, 졸업 반지를 해줘야 한다. 

의대의 수직적인 문화는 권위주의적인 병원 문화의 영향

의대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권위주의적인 문화는 가시화 되기 어렵고 쉽게 해결하기 어려워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그 이유는 체대와 마찬가지로 의대 또한 대학에서부터 향후 진로로 이어지는 과정이 사슬처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연구소는 의대의 수직적인 문화는 견고한 권위주의가 작동하는 병원 문화의 영향이 크다고 봤다. 연구소는 의과대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해서 의대 차원에서 조정이 되더라고 의과대학과는 또 다른 별도의 공간, 체계, 문화를 가지고 있는 병원의 임상교수나 레지던트들이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 외과 계열을 가고 싶은데, 외과 실습을 돌고 나서 도저히 못가겠다는 친구가 있다. 교수는 '너희는 왜 외과를 안 하냐, 힘든 건 싫어하고 편한 것만 추구한다. 의사의 참된 모습이 아니다'라고 말씀하는데, 잘 모르시는 것 같다. 외과를 안 가는 것은 힘들어서가 아니라, 교수들이 권위주의적이어서고 그 교수에게 배우면 우리의 정신건강 상태가 온전하지 않을 것이 걱정돼서다.

- 우리가 수술 참관을 하는데, 일부 수술 과에서는 우리가 병원 실습하는 기간에는 거기에 할당된 인턴 TO를 반으로 줄인다. 그래서 우리가 (수술) 어시스턴트를 선다. 교수님하고 레지던트하고 나하고 3명이 함께 수술한다. 환자 수술 끝나고 치료실에 데려가는 것까지도 학생이 해야 한다.

- 교수가 논문 자료정리를 레지던트에게 시키면, 레지던트는 다시 실습 학생인 우리에게 시킨다. 이게 학습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단순 노동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실습 후 학생부장 교수에게 교육 효과가 없는 단순 자료정리는 부당하다고 건의해서, 학생부장 교수가 다음 학기에는 없게 하겠다고 했는데, 다음 학기에도 결국 다시 반복되었다.

- 전공의 지원에서도 맞는 사람끼리 일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전공의를 선발하지 않고 레지던트의 평가를 통해 전공의 선발을 한다고 들었다. 즉, 자기가 원하는 전공을 위해선 레지던트 선배에게 잘 보여야 하는 구조인 것이다. 

'여자는 임신하니까 안 된다' 전공과 지원 과정서 공공연한 성차별

심층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의료계 내 여성 의사 및 예비 의사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이다. '여성은 힘들어서 어렵다'는 편견이 작동하는 외과계 뿐만 아니라 피부과, 성형외과, 정신과 등 전공과에 상관 없이 임신한다는 이유로 여성을 공공연하게 차별하는 폭력 행태가 드러났다. 

인권의학연구소는 특히 병원 특정과에서 여성을 받지 않는 전통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이를 공공연하게 주입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연구소는 의료계의 성차별적 구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심지어 그것을 발화하는 것이 성차별적이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교수가 상당수라는 것이 현재의 의과대학 인권의식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연구소는 의대 교육에는 교수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만큼 이들에 대한 성평등 교육 및 시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 특정과에서는 여자는 안 뽑는다는 걸 학생 때부터 알기 때문에 차별감을 일찍부터 느끼게 된다. 

- 성별을 이유로 교육 기회에 차별이 있다. '특정 과를 가지 못한다. 어떤 동아리는 무슨 과에서 잘 받아준다'하는 등의 말이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고 단체생활에서 차별이 있어 여학생은 빼준다는 느낌, 기장과 같은 것도 밤늦게까지 술 마시는 일 등이 있어서 라는 이유로 대부분 남자를 시킨다.

- 우리 학교는 대부분 주요 학생회나 회장 역할 등은 다 남자가 도맡는다. '여자는 왜 안 되느냐'고 물으면 '항상 남자였기 때문에 여자는 안 된다'고 한다. 이번에 갑자기 특별한 예외상황이 생겨서 여자가 됐다. 그 과정이 자연스럽지 않았고 뒷말도 많았다. 교수도 싫어했다. 성차별이 만연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는 실습과가 여러 개가 있는데 공공연하게 '여기는 남자만 들어올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 남자들이 많은 정형외과 같은 과는 학생이 선발기준을 물어봐도 말을 아낀다. 다른 과는 성적 등으로 가는데 그 과는 성별이 남자고 특별한 지역 출신이 갈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아무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 바뀔 것 같지도 않다.

- 실습 때 '여자는 군대에 안 가니까, 투표권이 없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발언을 흔히 한다. 특정 과는 '여자는 임신하니까 안 된다'며, 겨우 몇 년에 한 명씩 여자를 뽑는다.

- 내과 실습을 도는 동안에 같이 회진을 돌았던 전공의 선생님께서, 교수님이 요즘 어떤 과가 인기가 많냐고 물어보니까, '어디 어디 인기가 많습니다. 그런게 거기는 뽑는 사람이 정해졌습니다. 그 과는 젊은 남자만 뽑습니다'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할 정도였다. 정형외과는 여자 못 들어가는 것도 여자들의 체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니까 서서 힘을 쓰고, 이렇게 생각하는데, 사실 그것도 말이 안 된다.

- 인기 있는 피부과, 성형외과, 정신과까지도 심지어 남자들만 뽑는다. 그런데 그 이유를 '여자들이 임신을 하고 애를 낳으면 중간에 그걸 누가 채우냐', 그렇게 말하면서 안뽑는다. 심지어 그런 말을 하는 여자 교수도 있다. 자신도 정말 걱정이 되는데 같은 성적이면 여자보다 남자가 더 경쟁력이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여자는 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더 독해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또 '독한 년' 소리를 듣는다. 여자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40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 여자를 더 뽑지 않을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 그나마 교수들은 최근 워낙 사회적 이슈가 돼서 그런지 조심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실습 중 외부파견을 나가 만나게 되는 의사들은 '넌 여자니까 그냥 돈 벌고, 남편은 교수시켜 뒷바라지해라'라는 말을 흔히 한다. 일단 '남자친구가 있냐'라고 물어보는 질문부터가 불쾌하고, 동기랑 사귀고 있다고 대답하면 '같은 의사 부부가 될테니, 남자 교수시키고 너는 돈을 벌어라'라고 까지 이야기한다. 여자로서 평생을 공평하지 못하게 살아왔다고 생각을 하는데, 실력이 있어서 여기까지 왔는데도 여자라는 이유로 계속 불평등을 당해야 하는 것이 굉장히 불쾌하다.

- 성차별은 병원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없는 병원이 어딘지 모르는 것만큼 만연해 있다. 성차별 이유 중 하나는 '남자와 여자의 힘이나 근력이 다르니까', '정형외과에서는 망치질하기 힘들다'는 이런 문제가 아니라 여자의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경우가 많다. 이걸 해결하려면 병원에서부터 정부까지 많은 사람이 노력해야 한다. 교육으로서는 절대 안 될 것 같다. 이미 알 것 다 아는 사람들이라서.

- 정형외과는 몇 년 동안 여성을 뽑지 않았다. 근거가 여성을 뽑았는데 도망가서 안 뽑는다고 한다. 그런데 솔직히 그분이 나간 이유가 여자라서 직접 때리지 못해서, 캐비닛에 넣고 캐비닛을 때려서 여성이 도망갔다고 들었다. 그러면 남자도 도망가는 사람 있으면 남자도 뽑지 않아야 하지 않는가.

대학측 성범죄 은폐·축소와 부족한 성인지 교육... 의료계 성폭력 악순환 지속돼

인권의학연구소는 상당수 학생들이 성희롱이 만연하다고 증언할 만큼 기본적인 성인지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신입생 시절부터 OT, MT, 본과진입식 등에 남아있는 장기자랑 등을 통해 이 문제를 겪은 사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문회, 향우회 등 선후배 사이 접촉이 모임에서 발생하는 일이 많았고 특정 동아리가 병원의 특정 과를 장악해 교수-레지던트-해당 동아리 학생까지 연결된 견고한 구조 속에서 성폭력 문제를 양산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지적했다. 

의과대 학생들은 실태조사를 통해 학교가 인권 침해 문제 등을 처리하는 과정이 부실하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의과대 학생들이 개선과 재발 방지를 위해 독립적인 기구 또는 신뢰할 수 있는 외부 인사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는 이유다.

- 졸업한 학교 선배들이 오는 행사인 경우, 여학생들에게 불쾌한 스킨십이나 성희롱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강력하게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성폭력인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 같았다.

- 화장실 몰카범이 있었다. (중략) 범죄사실이 발각됐는데 학교에서 막았다. 학교에서 만약 이게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뉴스에 나오면 입시점수도 떨어지고 학교가 타격을 받는다는 이유로 문제를 숨겼다. 그 몰카범이 가진 여학생 사진만 해도 몇백 장이었다. 어떤 여학생이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는데, 남자 폰에 자기 사진이 너무 많았다. 다른 여학생들 사진도 많았다. 그래서 겁을 먹었다. 만약 경찰에 신고하면 계속 봐야 하고 진술도 해야 한다. 그게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학교까지 적극적으로 막아서니까 결국 위축돼서 신고를 못했다. 결국 그 범죄 학생과 같이 의과대학에 다니는 여학생들은 정신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렇게 심각한 사건까지 학교에서 덮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어떤 성폭력도 학교에 말해봤자 해결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됐다.

- 술자리에서 여자 후배를 만지는 선배가 있었는데 학교 측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그냥 조심하라는 정도로 덮고 넘어갔다.

- 선배들이 술자리에 불러내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하는 일은 다반사다. 기숙사 통금시간 전에 여자 후배를 자취방에 부르는 사건도 비일비재하다.

- 1학년은 기숙사에 들어가야 하는데 기숙사는 새벽 1시부터 5시까지 문이 잠긴다. 선배들이 일부러 12시쯤 술자리에 부른다. 그러면 기숙사에 못 들어간다. 실제 동기 중 한 여학생이 남자 선배가 불러서 술자리에 갔고 결국 그 남자 선배 집까지 억지로 끌려갔다가 도망쳐 나왔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학교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새나가면 그 자리에 둘 밖에 없었으니 누가 그랬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고민하다가 그 여학생이 다른 선배들한테 이야기했지만, '그 선배는 원래 그래'하며 어쩔 수 없다는 조언 정도로 끝났다. 이게 현재의 의대 상황이다.

- 남자 선배들에게 불려나가지 않기 위해 대부분 밤 10시 이후에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런데 불문율처럼 계속 전화를 받지 않고 나가지 않으면 찍힌다는 압박감이 있다. 그래서 결국 나갔다. 전화를 받은 것 자체가 실수였다. 동기 여학생과 어쩔 수 없이 함께 불려 나갔는데, 전혀 모르는 인턴 선배와 다른 남자 선배가 둘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그들이 '나랑 내 친구 중에 누가 더 이쁘냐'면서 자신들은 마음에 드는 사람을 정했다고 했다. 그러고는 알고 싶으면 술을 마시라고 종용했다. 그날 너무 충격을 받아서 울면서 집에 왔다.

- 대학 내 댄스 동아리에서 선배가 야한 춤을 강요했다. 춤이 거의 성행위 유사 동작이었다. 연습하는 동안에 심적으로 고통스러웠다. 의상을 정할 때에도 (선배가) 야동에 나올법한 옷을 입을 것을 요구했다. 수치심을 많이 느꼈고 신고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신고하게 되면 피해자만 매장되는 사회니까 하지 못했다. 가해자에 대해서는 운이 안 좋은 것이라고 하고 피해자는 그것도 못 견딘 이상한 애가 된다.

- 신입생 장기자랑 문화가 많은 학교에 남아 있다. 신임생들이 들어오면 조를 짜서 야한 춤을 시킨다. 남자들의 경우에는 노출을 하면서 저질 코미디를 연출해야 하고 또 그런 과정에서 섹시댄스를 많이 춘다. 장기자랑은 신입생들이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관문처럼 진행되고 있다.

- 학교에서 조치를 적극적으로 안 한다. 어떤 남학생이 핸드폰 카메라로 치마 밑을 찍어 알려졌는데도 학교에서 제재를 하지 않았다. 

- 교수들에 대한 인계장이 있다. 심지어 '어떤 교수는 치마를 좋아하니까 이 교수님은 치마를 입고 가면 예후가 좋다'라는 말도 오간다. 실제 치마를 입고 가면 (교수가) '학생은 치마를 입으니까 보기가 좋네'라고 한다. 그 교수님이 어떤 (여성) 환자분이 전신마취를 하는데 겨드랑이 털을 안 밀었는데, 그걸 보더니 '이 여자는 겨드랑이 털도 안 밀었네'라면서 '너는 겨드랑이 털 밀고 다니니'라고 했다고 한다.

- 남학생들만 있는 술자리에서 있었는데 선배가 후배에게 동기 중에 섹스하고 싶은 여학우들을 말해보라고 했다. 이것이 소문이 나서 언급된 여학생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이 문제를 학생회와 학교측에 알렸는데 잘 해결되지 않았다. 그나마 학교에서는 정학처분을 내렸는데 해당 남학생들이 부당하다면서 소송을 제기해 이를 막고 있다.

- 여자 동기의 화장실 몰카를 단체 카톡방에 올린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학교는 사회봉사 몇 시간, 반성문 몇 개 정도의 징계를 하고는 사건을 축소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피해자는 동기들의 단톡방에 자신의 영상이 올랐기에 모욕감이 엄청 컸다. 가해 학생과 같이 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정신적 피해를 줄 텐데, 학교는 그에 대한 아무런 대안이 없다. 상담도 안 해줬다. 학교 입장은 '충분한 징계를 했고 최선을 다했다'였고 피해자에게는 '그 정도는 감안해야 한다'는 태도였다.

미흡한 사건 해결 과정... 대응 매뉴얼과 신뢰성 확보한 기구 필요

의과대 학생들이 폭력 등 인권 침해 문제에 대해 손 놓고 바라만 본 것은 아니다. 이들은 자신의 처지에서 문제 제기를 하는 등 개선을 위한 목소리를 내왔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의대생들이 마주한 것은 견고하고 높은 벽이었다. 의대생들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것은 각종 인권 침해 문제에 대해 침묵과 방조 등으로 일관하는 대학측과 교수 등 선배 의사들의 자세였다.

- 음주 강요 문제를 제기하자 교수들은 선배들의 설명을 더 들었다. 그리고 학교의 공식적인 입장은, '학교에서 만든 공식적인 술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거기서 일어난 사건은 학교가 책임질 수 없다'였다. 결국, 매년 술을 먹고 응급실에 가는 사건이 일어나는데도 제대로 된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문제를 제기한 사람만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

- 친구가 폭력을 당했다. SNS를 통해 외부에 알리려고 하니, SNS를 통해 외부로 알려지면 학교 명예를 실추시킨 것이 돼 학교 내 학칙에 따라 올린 사람이 오히려 처벌을 받는다고 했다. 심지어 학생회에서 그렇게 말했다. 가해자는 근신 며칠 받고 학교를 다닐 수 있지만, 피해자는 계속 그 사람을 무서워하며 학교생활을 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인 것 같다.

- 설문조사, 인권침해가 있는 경우 적어내라, 술 강원, 선후배 간의 폭력, 인권문제를 적어내라고 해서 지금도 있다고 적어 냈다. 의대 학장이 의지를 보이고 1년간 여러 개선 방안을 추진했다. 그런데 많은 교수들이 불만을 표시하고 (본과 3~4학년) 선배들이 무시로 일관하자 결국 개선되지 못했다. 의대 학장이 바뀌자 권위주의 문화가 다시 부활했다.

- 성추행 사건이 있어 의대 학생회에 말을 했으나 학생회장이 지연시켰다. 그 사건은 나중에 성폭행으로 와전됐다. 사건이 알려지자 교수들이 처음에는 제보한 것에 대해 용감하다고 말했지만, 나중에는 카톡으로 다른 학교 성추행 피해 기사를 보내면서 '학장님이 이렇게 언론기사가 날까봐 두려워하신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해결책이라고 제시된 것은 항상 똑같은 패턴이다. 아무도 듣고 싶어하지 않는 예방교육 세미나를 하는 것으로 끝났다. 학생회나 교수나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 성폭력 전담 기구가 있긴 있는데 사건을 제보하고 익명 조사를 해서 많은 피해자가 추가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징계를 내리지 않았다. 그때 가해자가 받은 처분은 몇 개월 동안 학교를 나오게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의과대학 특성상 일정 이상 학교를 출석 못해 가해가는 유급이 됐다. 하지만 가해자가 유급해서 아래 학년에 들어가면 피해자들과 더욱 가까워지는 일이 발생한다. 이는 피해자 중심 처분이 아니다. 여학생들의 성인지 관점은 점점 나아지고 있으나 대학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학교에서 이 사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 (가해자) 교수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기 어려운 이유는 시험을 보고 성적을 매기고 유급을 시킬지 진급을 할지 결정하는 것은 교수의 재량이고 학생은 결과를 수동적으로 결과를 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바로 문제제기를 하기가 힘들다. 수업이 끝나거나 실습이 끝났을 때 나에게 영향을 끼칠 것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을 때 문제제기를 어느 정도라도 할 수 있다. 

- 신고하면 가해자가 꼭 찝어지는데, 그러면 피해자도 꼭 찝어져서 도움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별로 효용이 없다. 문제가 제기됐을 때, 교수는 대부분 노교수니까 이 걸 포장할 수 있다. 덜 추하게. 교수들은 피해 갈 방법은 많은데, 신고한 학생들은 평생 낙인이 찍혀서 의사사회에서 못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신고한 학생이 학교를 나간 경우가 있었다.

- 의대 안에도 상담센터가 있는데 솔직히 학생들이 잘 못 믿는 분위기다. 상담센터도 어차피 의대 교수가 주관하고 관장하고 있다. 프라이버시, 상담내용 등이 비밀 보장이 될지 솔직히 믿지 않는다. 

투명한 인턴·레지던트 선발절차와 인권교육 등 의대생들이 제시한 대안

선배 의사들이 후배 의사들을 위해 전해줘야 하는 유산은 단지 의학 지식뿐이 아니다. 의과대 학생들은 더 나은 의학 교육 환경을 위해 선배 의사들이 변화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교육, 독립적인 기구 설치, 인증평가 반영 등 학생들의 학습권을 강화하고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이 제시 됐다. 또 의대생들은 자체적으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노력도 했다.

- 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는 교수가 인권 교육과 언어 교육을 시작했다. 나중에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의대 내에 '의사와 사회'라는 수업이 매 학기 있다. 의사가 처할 수 있는 수많은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서로 존중할 수 있는가'를 주제로 더 나은 대처를 고민해야 한다. 교수들에게도 이러한 교육을 정기적으로 하면 좋을 것 같다.

- 레지던트, 인턴 선발방식이라든지 전체적인 의사 양성과 관련된 선발 과정이 보다 투명하고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 나는 인권 침해 문제가 일어날 수 있는 요소 중 하나가 전공의 선발방식의 불투명성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아직도 여자를 뽑지 않는 과가 존재하고 있고 이것이 문제화 되지 않는지. '의대 입학과정에서도 정말로 성비를 두지 않았을까' 그것도 솔직히 의심이 든다. 절차의 투명성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 그런데 그런 과들은 백이면 백 '(여자가) 지원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대답할 것 같다. 정말 투명해졌으면 좋겠다.

- 폭력은 일이 발생했을 때 징계를 하지 않으면 없어지지 않는다.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고발할 수 있는 기구가 생겼으면 좋겠다.  

- 예전에 병원과 학교가 아닌 곳에서 인턴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인턴을 하면서 부적절한 행위에 대해 인권위원회 같은 곳에 신고했다. 그곳에서 사생활 보호를 잘 해주고 잘 안내해 줘서 도움을 받았다. 이런 정보만이라도 의대생에게 잘 알려졌으면 좋겠다.

- 병원에 실습 나간 학생들이 이런저런 폭력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우선 보건복지부 인증평가에 학생 교육을 할 떄 인권적으로 행하고 있는지 넣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 같다.

- 담임반 모임에 나이 많은 교수도 있고 젊은 교수도 있다. 나이 많은 교수가 술을 강요하니까 젊은 교수가 '요즘은 그러면 문제 될 수 있다. 요즘은 그러면 안 된다'고 말했다. 교수 사이에 서열이 있어 그렇게 말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젊은 교수가 술을 강요하는 행동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는 사실, 나이 많은 교수에게 말을 해 제지해 준 것 자체가 학생 입장에서 감동이었다.

- 군기가 굉장히 세고 선후배 관계가 엄격해서 문제가 많은 학교였다. 그런데 2016년에 학장이 나서서 권위주의의 온상인 모든 동문회 모임을 없애고 술자리도 강권하지 못하게 하는 등 분위기 자체를 크게 변화 시켰다.

- 어느 교수님이 여성 비하 발언을 해서 다음 수업에 한 명도 들어가지 않았다. 이후 우리 학교 교수님들이 발언할 때 조심을 한다.

- 미투 운동 이후 '너 이러면 고발할거냐?' 술 먹으라고 할 거면서 '너 이런 것 갑질이라고 고발 안 할 거지?' 확인을 받는 선배나 교수가 많아졌다. 물론 결과는 똑같아도 그나마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인지라도 생긴 것 같다.

- 예전에는 수업 시간에 성희롱적 발언이나 모욕적인 언사를 하는 교수가 있었는데 최근에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미투가 논의된 이후 사소한 것도 많이 주의하는 것 같다. 분위기나 제도가 많이 바뀐 것 같다. 또한, 학생회에서 학생들과 교수들이 서로 논의해 분위기를 바꾸기도 했다.
 
- '우리도 싫었으니까 강요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학생들이 많아졌다. 우리 위 학번 선배들만 해도 정말 대다수가 '우리도 했으니까 너희도 해라'는 식이었다. 우리 학번이랑 아직도 사이가 좋지 않은데, 우리 학번 친구들이 그런 문화를 많이 없앤 것 같다. 우리는 그런 강요를 많이 하지 않아서, 소위 꼰대 비율이 낮아서, 우리 아래 학번도 우리를 보고 조금 더 발전하는 것 같다.

정다연 기자 (dyjeong@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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