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7.11.27 05:00최종 업데이트 17.11.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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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중심 의료’를 수가로 반영할 때 한계점

[칼럼]네바다주립의대 유지원 교수

환자중심의료, 환자의 권리와 책무 함께 다뤄져야

이미지: 영국 만화 페파피그(Peppa Pig®)에서 주치의 닥터 브라운이 감기 걸린 조지를 왕진한 모습(출처: YouTube, ©Entertainment One Inc.)

[메디게이트뉴스 윤영식 기자] 며칠 전 5살이 된 딸이 TV에서 나오는 영국 어린이 만화영화 '페파피그(Peppa Pig)'를 보다가 '왜 우리 (미국) 의사 선생님은 집에 안 와?'라고 물었다.  머리 속에는 '영국과 미국의 의료전달체계가 달라서'라고 떠올랐지만, 입으로는 '여기 의사 선생님들이 바쁜가봐'라고 대충 답했다. 막상 말하고 나니 미국 의사들은 영국 의사들보다 환자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환자중심 의료(patient-centered care)'는 의료 정보가 균등하지 않아 생기는 의료의 질 저하, 의료 비용 상승, 환자 만족도 저하 등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나온 다소 추상적인 개념이었다. 환자중심 의료가 임상의사로서 피부에 와 닿기 시작한 것은 2010년 3월 오바마케어(Affordable Care Act)가 시행된 이후다. 당시 민간단체이지만 오바마케어 시행령에 의해 설립된 환자중심결과 연구소(PCORI: Patient-Centered Outcomes Research Institute), 미국 메디케어메디케이드서비스센터(CMS: Center for Medicare and Medicaid Services)가 의료의 질과 수가 반영 정책인 '가치 기반 의료시스템' 중 환자 및 보호자 중심의 진료(HCAHPS: Hospital Consumer Assessment of Healthcare Providers and Systems) 제도를 도입했다.

환자중심의 의료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입원환자 회진 또는 외래 진료실에서 시간을 더 내서 한층 쉬운 내용으로 설명해준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미국 CMS는 환자와 보호자 중심 진료 지표 8가지가 환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을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8가지 중 한가지인 '통증관리(pain management)'의 경우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가 최우선으로 규제하는 마약처방을 줄이는 움직임과는 반대로, 통증이 심한 환자로부터 받을 평가가 걱정돼 마약을 '관대하게' 처방하는 일이 생긴다. 반면, 의사와 환자 관계에서 많이 다뤄지는 핵심 내용인 의료수가 적절성 및 처방약 및 의료기기의 구매 가격(본인부담금), 가족과 의료휴가법(FMLA: Family and Medical Leave Act, 일종의 병가 또는 장애등급으로 최장 12주까지 한 번에 휴가 가능) 서류 작성 등은 8가지 지표에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환자중심의료는 미국 의료계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것 같다. 미국 CMS가 환자 및 보호자 중심 진료(HCAHPS) 지표 결과를 병원 수가에 반영하듯, 영리·비영리를 망라한 미국 내 거대 의료공급기관(Health Care Organization), 예를 들면 커뮤니티 헬스 시스템(Community Health Systems), HCA(Hospital Corporation of America), 어세션헬스(Ascension Health) 등에 고용된 의사들은 CMS와 비슷한 평가 항목으로 환자 및 보호자에게 평가를 받아 연봉, 보너스, 진급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근거중심 의료보다는 환자 입맛에 맞추는 진료가 돼 항생제를 과다 처방하거나 '가족과 의료휴가법' 서류를 과도하게 발급하는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필자는 환자중심결과 연구소(PCORI)로부터 연구 용역을 받아 라스베이거스 인근 완화의료 전달 모델을 환자 중심으로 만들어보고 있다. PCORI에서는 환자와 기타 관계자, 즉 이해관계자(stakeholder)라는 표현을 써서 필자는 처음에 당혹했다. 임상의사로서의 고유한 판단과 의사결정 과정에서 존중 받는 일종의 '프리미엄'이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PCORI는 법에 정해진 대로 의료 접근성 중심의 연구를 지향하고, '질 보정 생활년(quality adjusted life year)' 또는 '장애 보정 생존년(disability adjusted life year) 등을 이용한 비교 효과 분석(comparative effectiveness analysis)을 금지한다. 이 때문에 당분간 환자중심 의료 결과물에 따라 의료수가를 반영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다만, 필자는 환자중심결과 연구를 하면서 의대교육이 지식 위주이자 공급자 위주라는 것을 새삼 깨우쳤다. 필자는 의대생들을 방학 중에 주간보호소(adult day care center)에 보내 환자와 보호자를 감성적으로 이해하고 의료전달체계의 현실감을 경험하도록 하고 있다. 주간보호소를 다녀온 의대생들에게 가장 생동감 있게 느낀 내용을 손 꼽으라고 하면, 치매 환자와 보호자 사례를 든다. 이들과 제한된 언어정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최근 수감시설에서 지역사회로 돌아온 C형 간염·간암 환자가 새로운 C형간염치료제(direct-acting antivirals)를 주 정부 메디케이드를 통해 치료받는 것이  얼마나 까다로운지를 알 수 있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환자중심 의료는 환자의 목소리가 의료현장에서 중요하게 반영되는 동시에 환자의 책무도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한다. 예를 들면, 환자가 여러 병원에 다니는 의사쇼핑(doctor shopping)이나 의료진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세심한 장치를 제도 안에 넣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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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식 기자 (column@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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