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추진 300병상 이하 병원 퇴출·기능변경 정책, 학문적 근거 없고 대형병원 쏠림만 우려
지역병원협의회·바른의료연구소 '의료이용지도 연구' 문제점 분석 ⑤심각한 역효과 예상
대한지역병원협의회와 바른의료연구소의 '건강보험 의료이용지도 구축 연구의 문제점 분석 및 관련 의료 정책들의 오류' 보고서를 순차적으로 발췌합니다. 이는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의 '의료이용지도 구축 연구' 1차 보고서를 대한지역병원협의회로부터 연구용역 의뢰를 받아 바른의료연구소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건강보험 의료이용지도 구축 연구'는 김용익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의 300병상 이하 병원 퇴출 주장과 보건복지부의 공공의대 설립 및 공공의료 확충 정책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를 담고 있습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보고서에서 "연구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정부 정책의 학문적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병상총량제와 공공의료 확대 정책은 그 자체로도 많은 부작용과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의료이용지도 연구에서 300병상 이상 의료기관은 평가 기준이 아니다. 또한 영국의 사례에서도 드러났듯이 병상 공급을 규모가 큰 병원 위주로만 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고 지적했다.
300병상 이상 의료기관은 평가 기준 아냐
2015년 11월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300병상 이상인 경우에만 신규 개설을 허용하고 300병상 미만의 병원은 300병상 이상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 합병 등의 방법으로 양도·양수를 허용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연구소는 “그러나 발의안에는 왜 퇴출 병원의 기준을 300병상으로 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지난 2018년 3월 6일 정춘숙 의원과 윤소하 의원이 주최한 '중소병원 의료서비스 질,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았던 서울시립대 임준 교수는 “적정 병상 규모에 미달하는 병원의 경우 의료의 질적 수준이 낮고 환자 안전사고 발생률이 높다는 것은 이미 일관된 연구 결과로 확인된 사실”이라고 하면서 여러 편의 연구결과를 근거로 제시했다.
연구소는 “그러나 제시한 근거에 대해 참고문헌도 인용하지 않거나 인용한 경우에도 사실과 다르게 발표하기도 해 주장의 신뢰성에 의구심을 갖게 했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특히 2015~2017년까지 전국을 73개 중진료권으로 구분해 중증도 보정 입원사망비를 분석한 결과와 중증 응급 질환 환자의 사망비 분석 결과는 참고문헌을 전혀 인용하지 않아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임준 교수는 Foster D 등의 연구를 인용했다. 미국 2300개 지역병원을 대상으로 병상 규모별 의료의 질적 수준을 비교 분석한 연구결과에 따라 250병상 이상의 병원이 100∼249병상, 100병상 미만 병원에 비해 사망률과 의료비용은 낮고 수익성과 환자 만족도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고 전했다.
연구소는 “하지만 실제 문헌에서는 250병상 이상, 100∼249병상, 100병상 미만 병원으로 분류했다는 언급이 전혀 없었다. 오로지 소지역병원(small community hospital), 중지역병원(middle community hospital), 대지역병원(large community hospital), 교육병원(teaching hospital), 대형교육병원(Major teaching hospital) 등으로 분류했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이 연구를 자세히 보면 사망률은 소지역병원이 높고 규모가 커질수록 낮아지는 경향이 있었으나 환자 합병증 발생률은 소, 중, 대 지역병원에서 제일 낮고 대형교육병원에서 제일 높았다. 환자 안전도는 소, 중, 대 지역병원과 교육병원이 제일 낮고 대형교육병원에서 제일 높았다”라고 말했다.
연구소에 따르면 임 교수는 정태경 등의 ‘한국과 미국 의료기관의 중증도 보정 사망률 비교(The journal of Digital Policy & Management, 2013;11(5):371-384)’ 논문을 인용해 "300병상 미만 병원의 사망률이 300병상 이상 병원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연구소는 “그러나 실제 논문에는 300병상 미만이 300~500병상보다 사망률이 약간 높지만 95% 신뢰구간이 겹치고 있어 두 군 간에 차이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라며 “이 논문에 의하면 500병상 미만에 비해 500-999병상에서 유의하게 사망률이 낮은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논문 결과대로라면 중소병원 퇴출 기준을 300병상이 아니라 500병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병상 공급을 규모가 큰 병원 위주로만 하는 것은 득보다 실 많아
대부분의 의료기관을 정부가 소유하고 세금으로 무상의료를 시행하고 있는 영국에서는 의료보험 재정의 막대한 압박으로 적자가 나는 의료기관들이 늘어나자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의 중소병원에 해당하는 트러스트들의 합병을 대규모로 추진했다. 규모의 경제와 합리화를 도모한다는 목적에서다.
연구소는 “합병한 병원들의 전후 실적과 합병하지 않은 대조군과의 비교를 통해 합병의 효과를 분석한 Martin Gaynor 등의 논문에 의하면 합병은 성과가 좋지 않은 NHS 병원을 다루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했다”고 밝혔다.
저자들은 재정적인 성과, 생산성, 대기시간, 임상적인 질 등을 포함한 다양한 결과 변수에 합병이 미치는 효과를 분석했다.
연구소는 “그 결과 활동력 둔화라는 부작용만 나타나고 합병으로 인해 이득이 생겼다는 증거를 전혀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이는 경쟁 촉진이 이득을 가져온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합병이 이득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희망만으로 합병의 근거가 되기에는 불충분하며 이득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중소병원 합병 정책이 시장에서의 경쟁을 사라지게 함으로써 오히려 합병 전보다 재정이나 의료서비스의 질적인 부분에서 후퇴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최근 영국에서는 합병을 신청하는 트러스트들에 대해 경쟁 약화에 의한 독점을 우려해 거절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합병을 통해 병원의 규모를 확대하면 의료서비스의 질이 향상되고 재정이 건전화가 될 것이라는 논리는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이 영국의 정책 실패로 잘 드러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회·복지부도 300병상 미만 병원 퇴출 시 부작용 우려
연구소는 "2016년 당시 김용익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대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위 기록에 의하면 국회 수석전문위원은 일률적으로 병상 규모를 상향 조정하면 나타날 부작용에 대해서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또 인구가 많지 않은 지방이나 의료취약지의 경우 중소병원의 신규 개설이 불가능해지면 의료서비스 제공 부족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그리고 수도권 또는 대도시의 대형병원으로의 쏠림 현상이 가속화될 우려도 있다. 신규 진입을 제한하기 때문에 현재 중소병원을 개설한 사람의 기득권이 강화되는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수 있어 좀 더 면밀하게 분석해서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고 언급했다.
연구소는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도 수단 자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 워낙 광범위하고 여러 가지 형평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고 밝혔다.
시장 진입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 이익을 저버리는 문제와 자칫 기존의 병원들이 오히려 더 기득권을 강화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에 조금 더 사회적인 논의와 객관적인 연구를 한 후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구소는 “결국 이 법안은 이러한 이유로 임기만료 폐기됐다. 하지만 아직도 국회와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이 지적한 부분들은 해결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6년과 비교해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연구 내용 자체를 신뢰할 수도 없는 의료이용지도 연구를 명분으로 내세워 병상 제한이라는 무리한 정책을 밀어붙이는 의료사회학자들의 행태는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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