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정다연 기자] 의료소송을 맞닥뜨린 전공의들은 법률적 지식이 없고 병원의 조력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혼란을 겪다가 사건을 키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무방비 상태에서 의료소송을 겪는 전공의들을 위해 지난해 12월 로펌 고우와 업무협약을 맺어 법률자문을 지원하고 있다.
24일 '전공의 수련환경 심포지엄'에서는 전공의들이 의료소송 대처방안에 대해 조언을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로펌 고우의 김대호 변호사는 사법고시 합격 후 변호사로 활동 하다 가톨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해 의사 면허를 취득한 의료 전문 변호사다.
그는 이날 심포지엄에서 전공의들에게 수사 단계에서 조사를 받기 전에 변호사를 선임, 변호사와 대동해 조사를 받을 것을 강조했다. 또 세 명 이상의 변호사와 상담과 현실적인 목표를 가지고 의료사고에 대응할 것을 권했다. 사과나 유감 표현 등으로 환자와 라포를 유지하는 것이 형사 소송에 유리할 수 있다는 조언도 했다.
의료소송에서 전공의는 병원과 입장이 다르다
김 변호사는 의료소송에서 전공의가 결코 병원과 같은 입장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전공의의 과실 등으로 인해 병원이 환자에게 책임을 진 경우, 병원은 민법 제 756조에 따라 전공의에게 이 책임에 대해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의료소송에 대해 막연히 불안해 할 필요는 없지만 전공의로서 병원과 어떻게 입장이 다른지는 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의료소송은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미래 의사가 감당해야할 소송 리스크는 과거 의사들이 감당하는 소송 리스크보다 크다. 과거에는 환자들이 의료소송을 제기하기 어려웠지만 요즘에는 로스쿨 도입으로 전문 변호사의 수가 늘면서 수임료가 떨어졌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전공의들에게 의료소송 진행과정에서 지식을 제공하기 위해 자리에 섰다. 변호사로서 실무 경험과, 현역 법조인들과 인터뷰, 최신 판례 분석 등을 토대로 전공의들이 의료소송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의료사고 발생 시 환자, 병원, 전공의의 법적 관계를 생각해 봐야 한다. 우선 환자와 병원은 진료계약을 맺은 계약 관계다. 계약은 환자가 진료를 받기 위해 찾아오고 병원이 환자를 진료하는 행위를 통해 성립 된다. 응급환자의 경우 이를 묵시적으로 성립한다고 본다"며 "병원과 전공의의 관계는 근로계약을 맺은 관계다. 전공의들은 병원이 고용한 사람으로서 근로계약에 의해 병원이 요구하는 업무를 이행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고 말했다.
그는 "전공의 의료사고에서 알아둬야 하는 점은 전공의가 환자와 직접 계약을 체결한 사이가 아니라는 것이다"며 "전공의 의료사고 발생시 환자는 병원에 계약 위반을 이유로 하는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또 환자는 전공의에게는 계약 위반으로 인한 책임이 아니라 불법행위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법적 관계 때문에 전공의를 고용한 사용자 또는 감독자인 병원은 민법 제 756조에 따라 전공의 의료사고 발생시 전공의에게 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다"며 "간단히 말해 의료사고가 났을 때 병원과 전공의는 적대 관계로 다투고 책임을 미룰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환자는 어떻게 원고가 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환자들은 예상하지 못한 나쁜 결과가 발생했을 때 의료소송을 고민한다. 진료 계약에 따라 병원은 최선의 진료를 다 했으면 비록 결과가 나빴더라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하지만 담당 의료진의 고의 또는 과실이 있었으면 이는 진료 계약을 위반한 것이 되므로 병원 또는 의료진은 나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 면허에 영향을 주는 형사소송 대처법
민사소송과 달리 형사소송은 구속으로 이어질 수 있고 결과에 따라 의사 면허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김 변호사는 의사로서 인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전공의들이 형사 고소로 조사를 받기 전에 변호사와 꼭 상담을 하고 변호사와 동행해 조사를 받는 것이 좋다고 권유했다.
김 변호사는 "의료 관련 소송의 종류는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민사소송에서 진행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 형사소송에서 진행되는 업무상과실치사상·의료법위반, 행정소송에서 진행되는 의사면허취소처분 취소소송, 헌법 소송에서 진행되는 리베이트쌍벌제 위헌법률심판 청구 등이다"며 "이 소송들은 각각 따로 진행할 수 있으므로 민사소송에서 이겼더라도 형사소송이 별개로 진행될 수 있다.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민사소송은 소를 제기한 환자가 원고가 되고 소송을 당하는 병원 또는 전공의가 피고가 된다. 전공의가 민사소송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패소하고 배상 책임을 질 뿐이다. 민사 재판에 직접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 민사는 의사 면허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형사 재판은 다르다. 형사소송은 검찰이 전공의를 피고인으로 형법상 혐의를 두고 법적 책임을 묻는 과정이다. 형사소송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전공의는 체포 또는 구속될 수 있다. 또 형사소송의 결과는 의사 면허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재판에도 반드시 본인이 출석을 해야한다. 그만큼 형사 소송에서는 전공의들이 경찰 조사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형사소송은 환자 또는 보호자가 의료인과의 라포(rapport)가 깨졌을 때 의료인을 고소함으로써 시작 된다. 수사 진행시 출석 요구는 전화와 문자로 오는 데 이를 꼭 받아야 한다.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증거 인멸, 도주 우려 등의 이유로 구속 될 수 있다"며 "만약 조사에 가지 않고 버티면 체포 된다. 일단 조사를 위해 출석 요구를 받으면 가능한 날짜를 미루고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 그리고 수사단계에서 조사를 받을 때에는 반드시 변호사와 동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수사단계에서 경찰 조사 전에 최대한 빨리 변호사와 상담할 것을 전공의들에게 권한다"며 "형사 고소가 제기 됐을 때 경찰 조사를 받기 전에 고소장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신속하게 해야 한다. '변호사와 상의하고 출석 날짜를 다시 알려드리겠다'고 말한 뒤 어떤 이유로 고소됐는지를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전공의는 변호사를 내 편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 변호사에게 말하지 않았다가 수사관이 질문하면 변호사가 당황할 수 있다. 미리 다 털어놓는 것이 중요하다. 또 변호사에게 필요한 모든 자료를 제공하고 고소장을 복사해달라고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조사 절차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형사 재판이 시작되면 증거기록을 볼 수 있다. 증거기록을 제공 받고 분석에 참여해야 한다. 이때 전공의들은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다가 실형이 선고되면 2심에 가서 후회할 가능성이 높다. 1심부터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또 변호사에게 모든 것을 맏길 것이 아니라 만일 유죄를 선고 받을 시 형를 약하게 해달라고 요청할 자료를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주변에 탄원서 받고, 가정형편, 경제력 등 증빙할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공의들, 의료 소송 오래 끌지 않으려면 환자와 라포 유지해야
의료소송이 제기되면 의사들은 환자에게 사과나 유감표현을 하는 것이 불리하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에 의사와 환자 간 신뢰가 깨지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사과나 도의적인 유감표현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의료계 내 통념과 달리, 김 변호사는 전공의들에게 환자와 라포를 유지해야 소송에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합의가 꼭 유죄 인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며 피해자와 합의가 형사소송에서 무죄를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와 합의에 관해 전공의에게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병원은 피해자와 합의를 하지 말라고 할 수 있다. 대개 민사소송은 병원을 대상으로만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이 동시에 진행될 경우에 전공의가 형사 고소로 수사기관의 조사 때 합의를 하면 병원이 민사소송에서 불리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병원이 전공의에게 피해자와 합의를 하지 말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와의 합의가 꼭 의료 과오의 인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무죄를 주장하면서도 합의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 특히 형사 소송에서 피고인이 된 전공의가 피해자와 합의를 하면 판사가 무죄 판결을 내릴 때 심리적 부담이 줄어든다"며 "병원에는 '가족들이 변호사 통해 합의 했다'고 하거나 '변호사가 합의 했다'고 말하고 합의를 하는 편이 형사소송에서 유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형사 재판 결과는 의료 면허에 영향을 줄 수 있고, 구속 등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전공의들은 환자 또는 보호자와 최소한의 라포를 가지고 가야 한다. 전화를 끊더라도 화를 내지 말고 부드럽게 말할 것을 권한다"며 "의료사고 발생시, 구체적인 사실 인정을 배제하고 '죄송합니다', '면목 없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죄송하다', '유감이지만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등의 말을 하기를 권한다. 환자 또는 보호자에게 눈을 마주하고 손도 잡고 마음을 담아서 하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그는 "도의적인 사과 표현은 유죄 인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환자 또는 보호자와 최소한의 라포 유지를 위해서 그 말을 하는 것이 되도록 빨리 하는 것이 좋다. 이에 따라서 소송이 얼마나 길어질지 여부가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전공의가 의료 소송을 겪을 때 사실 수련병원은 변호사 조력 등 이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 그럴 만한 예산도 없다. 병원에 법무팀이나 병원 자문 변호사가 있어도 이들은 병원을 대리할 뿐이다. 전공의에게 변호사를 조력해주는 병원은 없다. 결국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오늘날 의사에게 의료소송은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신속하게 전문가와 상담할 것을 권유한다. 로펌 고우와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업무 협약을 맺어 무료법률자문 프로토콜을 만들었다. 로펌 고우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3명의 변호사와 상담해 초기에 어떻게 대응할지 방침을 잘 정하는 것이 좋다. 상담한다고 해서 꼭 변호사 선임을 할 필요는 없으니 부담 가지지 말고 형사 고소로 조사를 받기 전에 변호사와 상담하기를 권한다"고 강조했다.
댓글보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