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1.06.11 15:40최종 업데이트 21.06.1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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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이 원시인의 장내미생물을 이식받으면 건강해질까?

[칼럼] 김용성 원광의대 소화기질환연구소 교수·것앤푸드헬스케어 CMO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1611년 1월 2일 헝가리에서는 사회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사건이 벌어졌다. 유력한 가문의 바토리 에르제베트 백작부인이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젊은 여성들을 죽이고 그 피로 목욕을 하거나 마셨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은 것이다. 그녀는 600명 이상의 여성을 죽였다고 알려졌고 후에 흡혈귀 전설의 모델이 됐다고 한다. 이런 범죄행위가 실제였는지는 불분명하고 당시 합스부르크 왕조에 의한 정치적 희생양이었다는 설도 있지만, 얼마나 인간이 건강과 젊음을 유지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지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젊은 사람의 신체 조성물을(피)를 빼내 나이 든 사람이 바르거나 섭취함으로써 '젊음'을 얻게 된다는 방법론인데, 비슷한 개념을 장내미생물총에 적용시켜보면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현대인이 건강한 분변을 이식받아 다시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이런 상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건강한 분변, 즉 건강한 장내미생물총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내야 할 것이다. 현대인들이 다양한 심혈관계 질환과 암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고 이것을 산업화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산업화가 되기 전, 즉 수렵-채집 시대의 인간의 장내미생물총이 더 건강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최근 수렵-채집인의 장내미생물총이 Prevotella type과 유사하고 그 방향으로 장내미생물총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이 Enterotype은 2011년 Arumugam 등이 인간의 분변 샘플을 분석해서 Bacteroides, Prevotella 및 Ruminococcus type 3개로 나눌 수 있다고 제안한 것이 시초이다. 같은 해 Wu 등은 Bacteroides type은 단백질과 동물성지방 섭취와, 그리고 Prevotella type은 탄수화물 섭취와 연관된다고 제시하면서 각각 산업화시대 패턴과 수렵-채집 패턴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인간의 장내미생물총이 가지고 있는 역동성과 다양성 때문에 이 enterotype 분류 자체에 대한 의문이 계속 제기되고 있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유용하다는 보고도 있다. 최근 비만인을 대상으로 한 분변이식술 연구에서 분변이식이 잘 되는 공여자 분변의 특성은 Prevotella:Bacteroides 비율이 높다는 결과가 발표됐는데, 비록 분변이식 성공에 국한되지만 특정 enterotype의 장점을 증명해 준 결과로 생각된다.

원시인의 장내미생물총은 어떻게 다를까

현대인들이 수렵-채집인의 장내미생물총 조성으로 바꾸는 게 좋을지 논하기 전에 우선 원시인의 장내미생물총이 현대인과 달랐는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 지 확인해봐야 할 것이다.

원시인의 장내미생물총을 직접 알 수는 없는데 그나마 화석으로 남아있는 원시 분변에서 세균의 유전자를 분리해 비교해볼 수 있다. 간접적으로는 지금까지도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아프리카 원주민이나 산업화되지 않은 저개발국가 사람들의 분변 샘플을 산업화된 사람들과 비교하는 방법이 이용된다. 대표적인 연구로 탄자니아 북쪽에 거주하는 하드자(Hadza) 부족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들 수 있다. 이들은 1300여 아프리카 부족 중에서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수렵-채집 부족으로 200여 명이 아직도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하드자 부족의 장내미생물총은 계절에 따라 변화됐고, 미국인 HMP 연구의 샘플과 비교했을 때 탄수화물을 분해하는 carbohydrate active enzymes (CAZymes)이 훨씬 더 다양해 식물 유래 탄수화물의 사용 능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건강한 미국인의 경우 점막 분해능이 높았고, 계절에 따른 변화가 없어 식물성 재료가 부족하고 큰 변화가 없는 현대 식사의 패턴이 반영됐다.

또 다른 방법으로 저개발국가에서 산업화된 국가로 이민자들의 샘플을 세대에 걸쳐 비교해 추정한 연구도 있다. 태국인 현지인과  미국으로 이민 온 1세대와 2세대를 비교해보면 이민 세대들은 Faecalibacterium prausnitzii가 45% 감소했고, 50% 이상 감소된 균의 절반 이상이 Prevotella 속이었다. 미국에서 거주 기간이 길수록 Bacteroides가 증가해 Bacteroides:Prevotella 비가 증가하는데, 이런 변화는 아마도 식물성 식이의 감소가 원인일 것으로 추정됐다.

이런 연구를 통해 비산업화 지역에서 전통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많고 산업화된 지역 사람에게는 없는 것으로 확인된 균을 VANISH (volatile and/or associated negatively with industrialized societies of humans) taxa라고 하는데 Prevotellaceae, Spirochaetaceae, Succinivibrionaceae 과가 이에 포함된다. 흥미롭게도 VANISH taxa는 지역에 관계없이 비슷한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에 이 균들의 유무는 산업화 유무와 더 관계가 많다는 것을 시사한다.

위와 같은 여러 연구들은 수렵-채집인(혹은 전통생활을 하는 저개발국가 사람)과 산업화된 나라 사람들의 장내미생물총이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표 1).
 
표1. 수렵-채집인/비산업화 시대 사람과 산업화 시대 사람의 장내미생물총의 특성 차이(자료: Sonnenburg 등 Nature 2019).


과연 수렵-채집인의 장내미생물총이 현대인의 것보다 더 건강한 것일까

그렇다면 수렵-채집인의 장내미생물총이 더 건강한지, 그래서 이를 현대인에게 이식하면 여러 대사질환이나 암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인지를 한번 고민해 보자. 사실 이에 대한 결론을 낼 수 있는 근거자료나 연구는 없기 때문에 나만의 가설을 세워보는 수밖에는 없다.
 
그림 1. 1543년에서 2015년 사이 시대에 따른 기대여명의 변화(자료: Our World in Data).

건강함을 오래 사는 것으로 치환시키고 이 수명이 장내미생물의 건강성을 반영한다고 가정하면, 산업화 전의 평균수명과 산업화 후의 평균수명을 비교해 봄으로써 어느 시대의 장내미생물이 더 건강한지 추정해볼 수 있다. 멀리 원시시대까지 갈 것도 없이 불과 1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인류의 기대수명은 40세도 되지 않았고 1900년 이후 급격하게 기대수명이 늘어났다(그림 1). 산업화 이전의 매우 낮은 기대수명은 높은 영아사망률 때문이었고 백신, 항생제, 의료 서비스의 발달과 영양상태의 개선으로 이 영아사망률이 줄어든 것이 1900년 이후 수명 연장의 주요인이다. 최근 장내미생물총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항생제가 장내미생물총에 나쁜 영향을 미쳐 마치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존재인 것처럼 언급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여전히 항생제를 환자의 치료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 필자는 이런 주장에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다. 아마도 페니실린을 발견한 플레밍은 나보다 더 서운할 것 같다.

수렵-채집인 혹은 산업화 시대 이전 인류의 짧은 수명을 고려했을 때 이들의 장내미생물총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닌 것 같다. 흥미롭게도 비산업화 지역의 사람들도 성인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수명은 현대인과 비슷하다고 한다. 하드자인들의 경우 일단 성인이 된 경우 평균 70세 이상을 산다고 하는데 현대인과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사망원인이다. 현대인들은 심혈관질환이나 암으로 사망하는 것에 비해 하드자인은 이런 질환이 매우 드물고 주로 위장관 감염, 호흡기 질환, 그 외에 사고사나 퇴행성 질환으로 사망한다. 즉 과거와 현대의 장내미생물총의 조성은 다르지만 각각 건강함(수명)을 유지한다는 측면에서는 동일하다고 추정할 수 있겠다. 장내미생물총은 시대에 따라 인간이 노출되는 환경에 대응해 적절하게 공진화(coevolution)함으로써 숙주의 건강을 유지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인간의 장내미생물총은 오랜 시간동안 인간과 함께 진화해왔다. 장내미생물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은 먹는 것인데 인류가 지구상의 여러 지역을 이동하면서 새로운 음식을 접해왔고 계절에 따라서도 음식이 바뀌기 때문에 이에 따라 장내미생물도 바뀌게 된다. 20만~30만 년 현생인류가 등장해 주로 수렵-채집 생활을 할 때는 음식을 획득하기 매우 힘든 환경이었기 때문에 장내미생물총은 섭취한 식이로부터 최대한 많은 에너지를 빼내 인간에게 전달하는 기능이 중요했을 것이다. 약 1만 년 전에 농작물 경작과 축산이라는 결정적인 변화가 시작됐고 장내미생물총 역시 이에 적응해 유당을 분해하는 역할을 했다. 인간의 신체기능도 환경의 변화에 따라 유전체 표현형의 변화가 나타나면서 적응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낙농이 시작된 후 나타난 우유 소화능을 들 수 있다. 약 7500년 전 유당을 분해할 수 있는 락타아제 지속성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이 중부 유럽에 출현해 우유를 마실 수 있는 인류가 점차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보면 장내미생물총과 숙주인 인간은 오랜 시간동안 공생하면서 생존을 더 잘하는 방향으로 협력해왔던 holobiont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장내미생물총이 식이 환경에 따라 진화하는 것은 숙주를 더 건강하고 오래 살게 하려는 것이고, 그래야만 장내미생물도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인류사 특정 시기의 장내미생물총은 당시 인간을 가장 잘 생존하게 할 수 있는 최적의 조성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해본다. 그런데 산업화 이후 현대에서는 이런 holobiont의 관계가 어긋나면서 건강에 해가 될 수 있는 dysbiosis라는 상태가 질병 발생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산업화 시대에 장내미생물총에게는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수만 년 동안 환경의 변화에 적응해 숙주의 건강을 책임져왔던 장내미생물총에게는 최근 100년간은 상대적으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산업화의 결과로 위생수준의 향상, 항생제 사용, 제왕절개 출산과 분유 사용, 단백질, 지방 및 설탕의 급격한 사용 증가, 보존제나 살충제 및 첨가제 등의 화학물질 사용, 식이 성분 중 MAC (Microbiota- accessible carbohydrates)의 감소, 고칼로리-저 영양소 가공식품 섭취 증가됐는데 장내미생물총은 이런 변화에 그야말로 정신없이 적응해야 했던 것이다.

산업화로 위생수준이 개선되면서 사람 사이에서 미생물 이동이 억제된 것도 장내미생물총의 건강함이 잘 유지되지 못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어떤 요인으로 인해 장내미생물총이 교란되면 다른 사람의 정상균을 받아들여 회복돼야 하는데 이런 미생물 교환이 줄어들면서 인구집단 내 장내미생물총의 건강성과 다양성을 잃게 된 것이다. 위생이 좋지 않은 저개발 국가의 인구 집단이 산업화 국가의 인구보다 서로 공유하는 미생물이 많고 전체적인 미생물의 수도 많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일반적으로는 환경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장내미생물을 가지고 있는 것은 큰 장점이다. 하지만 이런 환경-장내미생물총의 변화가 인간이 생리적으로 적응하기에 버거울 만큼 폭이 크거나 속도가 빠른 경우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유전자는 그렇게 빨리 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산업화에 의한 급격한 환경 변화에 대해 적응하는 속도가 달라서  빠르게 바뀐 장내미생물총에 대해 숙주인 인간이 적응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이런 부조화로 인해 숙주인 인간의 건강이 나빠지게 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현대인 분변에 A. muciniphila와 같이 점막 분해 세균이나 Bacteriodes 속 균이 많아진 것은 식이가 바뀌면서 소실된 과거의 VANISH taxa를 대신해 필수 기능을 수행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신체는 새로운 미생물에 적응하지 못하고 염증과 같은 원치 않는 반응이 유발됨으로써 비전염성 만성질환(non- communicable chronic diseases, NCCD, 심혈관질환, 당뇨병, 암, 만성폐질환 등)이 호발된다는 가설이다. 또 인간의 생리를 조절하던 산업화 이전 장내미생물의 신호가 미생물의 소실과 함께 사라져 생리 조절기능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수렵-채집시절에 특화된 장내 미생물을 음식이나 장내환경이 전혀 다른 현대인에게 이식하면 그 역시 부조화의 원인이 될 수 있고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나쁜 환경에서 에너지를 최대한 뽑아내던 원시시대의 미생물총은 영양섭취가 충분한 현대인에서는 오히려 비만을 일으키지 않을까?

 
그림 2. 진화 동안 숙주-미생물총 상호관계의 변화(자료=Sonnenburg 등 Nature 2019).

산업화 시대 이후 현대인이 겪고 있는 장내미생물총-신체 불균형을 정상화시키려면

이 분야에 대해 꾸준히 연구를 해온 스탠퍼드 대학의 소넨버그 교수 부부가 네이처에 기고한 통찰력 있는 글에서 해답에 대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단기적으로는 현재 부조화 상태에 빠져 있는 인간 신체와 장내미생물총 중에서 수정이 가능한 미생물을 바꿔 산업화 이전 조화상태로 돌아가는 전략이다. 이때 중요한 점은 미생물뿐만 아니라 먹는 것도 산업화 이전처럼 MAC이 충분한 식품으로 바꿔줘야 한다는 것이다. 또 현재는 생활속에서 MAC이 적은 식품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전혀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즉 MAC이 적은 현대의 식이 환경에 적응된 새로운 '건강한' 장내미생물총을 인간의 장에 자리잡게 하고, 서서히 인간의 유전체가 이 미생물총과 조화를 이루면서 건강함을 유지하는 새로운 holobiont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림 2).

산업화로 인한 식이의 풍요함, 그리고 항생제와 같은 약물과 의료기술의 발달은 분명히 인류의 평균 수명을 늘리는데 기여했다. 그렇지만 그 결과에 따른 장내미생물총과 인간 신체 사이의 부조화는 감염질환 대신 비전염성 만성질환의 증가를 가져왔다. 의료기술을 계속 발달시키면서 장내미생물총과의 조화를 회복한다면 인간은 기대여명을 더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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