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9.06.03 06:08최종 업데이트 19.06.05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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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할 계획입니까? 당신은 우리와 일할 수 없습니다' 의료계 만연한 임신 전공의 기피현상

[임신 전공의①] 임신 전엔 임신금지 서약·임신순번제 임신하면 따돌림·차별... 유산·사산 사례 많아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전공의 모집 면접에서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 지원자는 임신 계획이 없다고 증명해야 했다. 의국에서는 임신을 하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압박을 받았다. 임신을 한 전공의는 병원에서 질시나 압력을 받는 것은 물론, 임신부 근로자로서 권리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위해한 일에 내몰렸다."

"임신 전공의 대책으로 의료계에서 꾸준히 제기된 논쟁은 수련시간 단축으로 인한 추가수련 여부였다. 하지만 추가수련만으로는 결코 임신 전공의의 수련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임신 전공의 논쟁은 의료계 내에서 여성 전공의의 위치에 대한 고찰을 바탕으로 활발한 논쟁을 거쳐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여성 전공의들의 목소리 중에서)

이번 임신 전공의 기획은 여성 전공의들의 목소리를 통해 임신과 관련해 전공의들이 처한 현실을 살펴보고, 현재 진행 중인 추가수련 논쟁을 짚은 다음, 대안을 모색하는 내용을 담는다.

임신 전공의 문제 
① '임신할 계획입니까? 당신은 우리와 일할 수 없습니다' 의료계 만연한 임신 전공의 기피현상
임신 전공의 수련교육을 둘러싼 쟁점은... 정량중심 수련 또는 역량중심 수련 관점의 차이
③ 임신 전공의 등 여성 의사의 인권 향상 위한 대책 우선순위는

[메디게이트뉴스 정다연 기자] "남성 의사가 압도적으로 많은 의료계에서 소수인 여성 의사의 목소리는 작아서 거의 들리지 않는다. 여성이면서 수련을 받는 전공의인 여성 전공의들은 과로와 성차별이라는 압박을 두 배로 받고 있다. 의료계에 공고한 남성 중심 문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성성을 포기하도록 강요받는다. 임신금지서약, 임신순번제 등이 대표적인 예다.

심지어 임신한 사실을 밝혀도 임신한 근로자의 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임신에 위해한 업무를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생명을 살리는 병원에서 많은 여성 전공의들이 과로, 임신에 위해한 업무에 노출돼 유산·사산을 하는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전공의로서 임신 경험이 있는 이들을 포함해 총 6명의 여성 전공의들의 목소리를 통해 2019년 여성 의사들이 임신과 관련해 처한 현실에 대해 들어봤다. 이들은 대체 인력에 대한 정부와 병원의 지원이 마련돼야 하고 의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식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당장 임신한 전공의들의 안전을 위해서 근로지침이 마련돼 지켜져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전공의 선발 과정에서 임신계획 묻고 임신금지서약 요구... 의국에선 임신순번제까지

임신 전공의들은 의국 내에서 차별을 겪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임신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은 동료 전공의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일으키고, 병원으로부터 업무 차별과 복귀 압박 등으로 이어졌다. 여성 전공의들은 임신 전공의들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처우가 매우 심각하지만 신상 노출 등의 이유 때문에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전공의 C씨는 "임신한 전공의들은 임신했다는 이유로 동료와 병원으로부터 차별과 미움을 받는다"며 "수련의 질이 낮은 행정 업무를 몰아주는 등 동료 전공의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사례도 있다. 또 수련병원으로부터 '임신부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주 40시간만 근무하도록 돼 있으니 월급을 반만 주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를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공의 A씨는 "임신 전공의의 추가수련에 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기준이 정해진 바가 없다. 그런데도 수련병원은 '임신 유급제'라고 부르면서 임신해서 주 40시간만 근무하니까 추가수련을 받아야한다고 압박하거나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전공의 D씨는 "법으로 정해진 출산휴가를 3개월 사용하려고 휴가계를 제출했는데도 의국에서 두 달만 쉬고 나와서 일하라고 했다"며 "법정휴가를 지켜달라고 말하면서 이를 거부했다가 의국에서 찍혔다. 나중에 병원에 복귀했더니 아래 연차 전공의가 하는 일들을 나에게 떠넘겼다"고 밝혔다. 

그는 "법으로 정해진 출산휴가마저도 의국 내에서 쉬쉬하면서 암묵적으로 넘어가는 일이 많다. 이를 거부하면 부당한 처우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C씨는 "늘 과로에 시달리고 마땅한 대체인력도 없는 상황에서 전공의들의 결혼이나 임신을 하면 환영받는 분위기가 아니다. 대부분의 여성 전공의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며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의료계에 결혼, 임신 등을 이유로 여성 전공의를 기피하는 현상이 심각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며 "게다가 임신 전공의는 소수이기 때문에 소속 병원과 임신 여부 만으로도 신상이 노출될 우려가 커서 부당한 일을 겪어도 외부에 호소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개인에게 떠넘겨진 책임... 심폐소생술 도중 유산 등 병원 내 위험에 노출된 임신 전공의

전공의 모집은 국가의 의료인력 관리 체계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한 전공의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업무 양이 줄거나 잠시 자리를 비운다고 해서 수련병원이 곧바로 다른 전공의로 인력을 대체할 수는 없다. 결국 전공의가 아닌 다른 의료 인력으로 대체해야 하지만 수련병원과 정부는 대안 마련에 지지부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 사이 임신·출산의 책임은 여성 전공의 개인에게 떠넘겨졌다.  

전공의 E씨는 "임신했을 때 24시간 근무를 하다가 실신하고 하혈을 한 적이 있다. 임신중절까지 고려해야할 위험이 있었고 그 때문에 휴직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갔다. 그 상황에서 대체 인력이 없다보니 의국에서 대대적으로 욕받이를 했다"며 "결국 출산 휴가 이후 복귀했을 때 만만치 않은 불이익을 겪었다. 지금도 불이익을 겪고 있다. 정말 서럽다"고 토로했다. 그는 "육아나 임신에 대한 권리를 찾고자 하는 순간 여성 전공의는 불편한 사람이 된다"고 덧붙였다.

전공의 F씨는 "우리 과에서 여성 전공의 두 명이 임신을 했다. 한 명은 고령에 초산으로 임신중독증이 와서 휴직을 해야 했다. 대체 인력이 없는 상황에서 빈 자리를 채우려고 하니 남은 사람들이 정말 힘들었다"고 말했다.

F씨는 "임신과 출산으로 여성 전공의가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출산 휴가를 제대로 쓸 수 있으려면 대체 인력을 고용하거나 수당을 지급하는 등 대책이 있어야 한다"며 "병원 또는 국가가 대책을 지원하지 않는다면, 결국 부담은 고스란히 의국원들이 지게 된다. 이 점이 전공의 선발 과정에서부터 임신을 이유로 여성 전공의를 기피하는 현상을 만드는 원인이다"고 강조했다.

C씨는 "가장 큰 문제는 인력 보충에 대한 마땅한 지침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대다수 수련병원은 임신 전공의의 업무 공백을 동료 전공의에게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며 "이는 동료 전공의들 사이에서 임신 전공의를 미워하는 이유가 되고 있으며, 따돌림 등 심각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병원은 방사선 노출, 감염 우려 등 여느 일터보다 임신부에게 더 위험한 요소가 많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업무 지침이나 업무 재배치 기준은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다. 임신 전공의를 기피하는 병원 분위기는 임신 사실을 밝힌 전공의가 임신한 근로자가 하면 안 되는 위해한 업무를 하도록 내몰고 있다.

D씨는 "우리 병원의 내과 전공의는 임신 35주차에 두 달간 응급실 당직을 서면서 만삭으로 심폐소생술을 했다. 결국 하혈하면서 양수가 터져 조산했다. 실제로 임신 중에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유산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F씨는 "만삭 임산부였던 전공의가 응급수술에 투입돼 조산한 경우도 봤다"고 밝혔다.

A씨는 "중환자실 환자에게 휴대용 엑스레이 기기로 사진을 찍는 경우가 있다. 찍는다는 말도 하지 않고 찍는다.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임신 전공의들은 환자들을 돌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방사선에 노출된다"며 "임신에 대한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지도전문의나 병원 직원들이 어떤 업무가 임신부에게 위험한지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C씨는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주 3회 24시간 근무를 한 다음에 사산한 일도 있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되는 경로가 하혈이나 실신인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임신 초기에 잦은 당직과 장시간 업무로 유산하는 일도 많다"며 "현재는 임신 전공의들을 위한 근로지침도 없는 상황이지만, 앞으로는 학회 차원에서 임신한 의료인들을 위해 구체적인 업무에 따른 지침을 제시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정다연 기자 (dyjeong@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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