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6.08.19 07:31최종 업데이트 26.08.19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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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의 오디세이와 지역필수공공의료

[칼럼] 박지용 공정한사회를바라는의사들의모임 대표·대한병원의사협의회 조직강화이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화제의 신작 놀란의 오디세이를 보며 봉준호의 기생충이 떠올랐다. 강자와 약자라는 이분법으로 보기 쉬운 현실을, 선악의 구분 없이 담담하게 드라마로 풀어냈다는 점이 닮았다. 기생충이 사회경제적 상류층과 하류층을 그렸다면, 오디세이는 국제사회의 강자와 약자를 오디세우스의 병사들이라는 하나의 틀 안에 담아 묘사한다.

오디세이가 강조하는 것은 두 가지다. '제우스의 법'과 '바다민족'.

제우스의 법은 낯선 손님에게 환대를 베풀어야 한다는 규칙이다. 바다를 떠돌던 이들은 낯선 이에게 환대받을 자격이 있었다. 식량이 떨어진 손님에게 식사를 내어주지 않는 주인은 같은 그리스인으로 취급받지 못했다. 제우스의 법을 어긴 자는 낯선이의 모습을 한 신에게 벌을 받는다는 믿음이었다. 이 규칙을 보며 UN과 ILO가 만든 각종 헌장들이 떠올랐다. 지켜야 할 것으로 여겨지지만, 대놓고 무시해도 강제력이 없는 법이라는 점에서 닮았다. 풍요로운 시대에는 모두가 당연히 지킨다. 하지만 무임승차자들이 제도를 남용하기 시작하고, 여기에 풍요마저 끝나버리면 규칙은 아무도 지키지 않고 아무도 벌받지 않는 것이 된다.

ILO 협약에 따르면 전공의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거나, 군복무가 아닌 사회복무요원과 공보의를 공공업무에 징집하는 것도 협약 위반이다. 그러나 정부가 무시하면 그만이다. 제우스의 법도 다르지 않다. 모두가 지키지 않으면 의미를 잃는다. 이민자가 늘고 경제가 흔들리면서 서구 선진국들의 관용과 포용은 자취를 감췄고, 트럼프의 UN 탈퇴 선언은 그 정점을 보여준다. 관용과 포용을 이용하는 이들이 늘고, 시스템을 지탱하던 풍요가 막을 내리며 세계의 질서는 힘을 잃어간다. 오디세이는 제우스의 법이 효력을 잃기 시작한 세계를 그린다. 낯선 이들에게 식사를 나눠주는 그리스인은 이제 없고, 병사들은 민가를 약탈한다.

바다민족은 고대 지중해 무역 시스템을 붕괴시킨 민족이다. 영화 속에서 이들은 미케네 문명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끝내 멸망시켰으며, 트로이의 종주국 히타이트 제국을 무너뜨리고 이집트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인다. 이렇게 강력했던 민족이지만 정작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성경 속 블레셋이 바다민족의 후예 중 하나로 추정될 뿐이다. 바다민족의 침입으로 트로이를 공격했던 그리스의 역사는 400년간 지워졌고, 그 사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이야기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나서야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라는 서사시로 기록됐다.

바다민족의 정체에 대해서는 그리스를 뒤엎은 도리아인이라는 설도, 바이킹의 남하라는 설도 있지만, 정설은 여러 민족이 뒤섞인 집단이라는 것이다. 그 안에는 오디세우스와 함께 트로이를 함락시켰던 그리스인도 포함되었을 수 있다.

놀란이 하려는 말은 이것이다. 오디세우스는 변화하는 세계를 마주한 우리 자신이며, 풍요가 구축해놓은 질서가 해체되는 역사의 한복판에 우리는 서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외눈박이 거인에게 잡아먹히는 피해자가 될 수도, 민가를 약탈하는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호의를 베풀고 서로 양보하던 사회는 사라진다.

이 서사에서 나는 한국 의료를 보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출범 이후 한국 의료는 세계 최고의 시스템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극도로 효율적으로 작동해왔다. 그러나 그 효율은 시스템을 떠받치던 이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문제는 그 희생에 대한 보답이 돌아오지 않는 상황을 사람들이 반복해서 목격했다는 점이다. 희생하면 언젠가 손님의 모습을 한 신이 보답할 것이라는 믿음, 그 제우스의 법과도 같은 믿음으로 지탱되던 한국 의료는 현실을 직시한 이들이 하나둘 이탈하면서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우리가 우려하는 '지역필수공공의료'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역필수공공의료는 한국 의료제도의 모순이 가장 먼저, 가장 심하게 곪아 터지는 지점을 가리키는 이름일 뿐이다. 보건복지부가 '필수과가 어떤 과들이냐'고 물었을 때 의협과 대전협 등 의료단체들이 '모든 과들이 필수과'라고 답했음에도 필수의료라는 용어가 굳이 만들어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익이 떨어지는 진료의 압박과 지역의 압박이 겹치는 지점을, 우리는 편의상 지역필수공공의료라 부를 뿐이다. 실은 한국의료의 모순과 지속불가능성이 가장 먼저 균열로 드러나는 단면인 것이다.

필수의료 과목을 진료했거나 거주가 선호되지 않는 지역의 병원에서 근무해온 의사들이야말로 그 법을 지켜온 이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보답이 아니라, 낙수효과를 운운하며 밀어붙인 의대증원이었다. 보건복지부는 그나마 낙수효과 발언을 공식적으로는 부인하기라도 했지만, 한의사협회는 아예 의사들을 도태시켜 지역의료에 복무시키라는 망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의사들의 환멸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역필수공공의료는 정권이 바뀌어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다.

한국 의료는 세계 어디에도 없던 효율적인 제도였다. 하지만 지속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는 모래 위에 쌓은 성이었다. 시스템을 떠받치던 이들이 보답받지 못한 희생을 더는 감당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 시작한 지금의 풍경은, 구체제의 모순이 폭발하고 유럽 최강국의 지위를 잃어버린 프랑스 대혁명 직전과 닮아있다.

한국식 의료제도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미국식 민간의료보험 체계로 가든, 모두가 굉장히 불편해지는 유럽식 체계로 가든 선택해야 한다. 두 체계의 공통점은 하나다. 병원이 계약할 수 있는 보험자가 국민건강보험 하나뿐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의료기관이 국민건강보험과 강제로 계약해야 하는 지금의 제도는 미국식도 유럽식도 아니다. 민간의료보험이 주도하는 미국식은 빈부격차에 따른 의료 격차가 커진다지만, 유럽식 역시 민간의료보험 가입 자체는 허용된다.

논란이 됐던 소생활권 제도도 의료 이용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유럽식으로 전환할 계획이 있다면 정부는 부인 대신 국민을 설득했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사실무근이라는 말로 논의 자체를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단일강제지정제 폐지든 소생활권 제도 신설이든 무엇이든 선택해야 하는 와중에, 결국 제자리에 머무르는 쪽을 택한 셈이다.

2024년 의료대란이 격화됐던 이유는 결국 여기에 있다. 세계 최고라 자부하던 한국 의료의 제도적 모순이 누적되어 유럽식이나 미국식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 왔음에도, 급증할 의료비나 국민 기본권 제한, 의료의 질 저하라는 표가 떨어질 민감한 문제들은 외면한채 의사 수만 늘리고 의사 때려잡는 정책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표를 얻으려 했다는 것. 오디세이에서 제우스의 법이 무너지는 장면을 보며, 우리나라 지역필수공공의료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디세이 # 지역∙필수∙공공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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