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서민지 기자]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미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아세트아미노펜, 이부프로펜, 아목시실린 등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 해열제, 진통제, 항생제 등 필수의약품의 수요가 급증한 반면, 원료의약품과 생산능력의 부족, 배송 지연, 무역 제한, 글로벌 공급망 타격 등으로 의약품 부족 현상이 발생했다.
엔데믹에도 팬데믹으로 촉발된 공급망 위기와 저가정책에 기인한 제네릭 시장 축소, 품질 이슈 등의 복합적인 요인으로 세계적으로 의약품 부족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30일 '의약품 부족과 주요국 대응'을 주제로한 글로벌 이슈 파노라마 보고서를 발간, 이같이 밝혔다. 협회는 보고서를 통해 의약품 공급 안정화를 위해 법안 발의, 행정명령, 보고서 발간, 국가·이해관계자간 협력 등 주요국들의 다각적 대응을 소개하고, 국내 역시 향후 미지의 감염병 질병 엑스(Disease X)의 위협과 의약품 부족 상황에 대해 경각심을 고취하고 범정부적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실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효과적인 국산 백신과 치료제의 부재에 따라 의약품 수급 문제가 발생했으며, 해열진통제인 아세트아미노펜 등의 품귀 현상도 나타났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완화된 현 시점에도 비염, 알레르기 등 호흡기 질환 환자 증가로 인해 슈도에페드린 제제의 수급 불안정 등 의약품 부족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2022년 기준 국내 완제의약품 자급도는 68.7%, 원료의약품 자급도는 11.9%에 불과한 만큼 감기약, 해열제 등의 품귀 문제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원료의약품 수입 상위 10개국 중 50.1%를 중국과 인도가 차지하고 있어 글로벌 공급망 붕괴에 매우 취약한 실정이다.
미국 역시 코로나19 확산으로 항응고제, 간질치료제, 마취제, 진통제, 항생제 등 필수의약품의 부족 현상이 두드러졌고, 최근 대표적인 항암제 시스플라틴과 대체 항암제인 카보플라틴의 부족과 더불어 항생제, 식염수 등 올해 2분기 의약품 부족 건수가 309개로 5년 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미 코로나 이전부터 낮은 제네릭 가격으로 공급 불안정이 시작됐고, 과도한 원료약 해외 의존과 수요량 예측 시스템 부재 등으로 더욱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유럽 역시 코로나19 이전에 의약품 부족현상이 나타났고, 호흡기 감염 급증에 따른 항생제 수요 증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높은 인플레이션에 따른 제조 지연과 생산능력 부족 등으로 수급에 차질이 발생했다. 제약 선진국 스위스도 이부프로펜, 파라세타몰과 같은 일반 진통제, 항생제, 만성질환 치료제의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올해 3월 기준 최소 1000개의 약품 공급이 중단됐다.
일본은 최근 GMP 위반, 품질 이슈 등으로 일본약 전체 품목의 1/4에 해당하는 3800품목이 공급 정지 또는 출하 제한된 상태며, 이중 75%가 제네릭이다. 현재 일본의 제네릭 사용비율이 80%까지 도달한 가운데, 공급 중단 사태가 발생하면서 제네릭 32.5%가 공급 문제를 겪고 있다.
협회는 "미국은 의약품 공급 문제 개선을 위해 자급도 향상에 대한 인센티브 정책을 마련했고, 동맹국과의 협력 강화, 원료약 자국생산 확대 등을 추진 중이다. 유럽 역시 의약품 공급 부족 조정그룹(MSSG)을 통해 공급업체와의 협력, 제조 역량을 확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양국은 각각 의약품 생산을 장려하는 법안을 마련했고 의약품 재고 관리도 보다 강화하는 제도를 시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은 지난해 8월부터 전담위원회를 운영해 공급부족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와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면서 "올해 6월 일본 정부(후생노동성)는 '2023년 경제재정운영과 개혁의 기본방침'을 발표하고, 제네릭 지원을 위한 의약품 상환가격 조정 등 약가 시스템 평가, GMP 위반을 줄이기 위한 규제 강화, 필요시 원재료의 공동 조달·투명성 개선을 통한 탄력적인 공급망 구축 등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국내 역시 올해 3월 정부가 제3차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지원 종합계획을 통해 필수의약품 적시 공급과 원료의약품 자급화를 위한 규제혁신·지원 강화 방침을 발표했다.
또한 공급 중단 또는 기허가가 없는 국가 필수의약품은 필요시 허가 절차를 개선하고 상한금액을 신속히 인상하는 등 안정적 공급을 위한 방안도 마련했다. 이와 함께 원료의약품 국내 생산 촉진을 위한 연구개발 및 생산 관련 인센티브 부여 등 지원책도 추가했다.
협회 측은 "국가필수의약품 중 해외 의존도가 높은 의약품의 자급화를 목표로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가 오는 2026년까지 생산기술 개발을 지원 중이며, 현재 원료의약품인 아미오다론염산염, 벤세라지드, 케토코나졸과 완제의약품인 아미오다론 정제, 아미오다론 주사제 등 5개 품목과 개발기관이 선정돼 기술개발을 진행 중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정부는 부족한 의약품 증산을 위해 2022년 12월 아세트아미노펜(650mg) 18개 품목의 약가를 인상했으며(상한금액 51원→70원), 최근 슈도에페드린 제제의 약가 인상 계획을 공지했다"면서 "보건복지부와 식약처는 의약품 부족 사태시 제약사에 부족한 제제의 증산을 요청하고 의약품 공급 확대 방안 마련 등을 위한 민관협의체 구성·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6월 식약처는 식의약 규제혁신 2.0를 발표하고, 오는 12월까지 의약품 공급 부족 예측용 인공지능(AI) 모델 개발하고 2024년 8월부터 시범 적용할 계획이라고 부연했다.
협회 측은 이 같은 정책·제도 개선 뿐 아니라 의약품 공급 부족 대응을 위한 범정부적 협력 체계 구축이 불가피하다고 역설했다.
협회는 "민관협력을 통해 의약품 부족 요인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분석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복지부, 식약처는 물론 산업부, 과기부, 식약처 등 정부부처와 민간산업체가 범정부적 협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QbD(Quality by Design, 설계기반품질고도화), 공장 자동화·스마트화, 연속제조공정 시스템 등으로 약품 생산·개발 역량을 강화해 제약주권을 확보하고, 새로운 팬데믹 위험(Disease X)에 대비해 백신·치료제 R&D 지원 확대와 혁신적인 R&D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제언했다.
원료의약품의 자급률도 대폭 끌어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협회는 "원료약에 대한 세제혜택과 R&D 지원 확대는 물론, 자사 생산원료 사용에 대한 약가우대 기간 연장과 자사 포함 계열사까지 약가우대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면서 "국산 원료의약품을 사용한 제네릭 의약품 가격 우대 등 산업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기존의 화학제조 방식을 대체할 바이오제조 등 지속 가능하고 비용 효율적인 제조기술 개발과 도입도 필수"라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협회는 "국가필수의약품 제도도 개선해야 한다. 아세트아미노펜 등 사용량이 많은 의약품 공급 부족 문제를 방지하고 더 넓은 범위의 인구 집단이 사용하도록 의약품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면서 "채산성 문제 등으로 필수의약품의 생산 공급이 중단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약가 인상과 인센티브 제공 방안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제네릭 의약품 품질을 강화하는 대책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협회는 "정부 차원에서 철저한 GMP 준수를 위한 의약품 품질 관리를 강화하고, 비의도적 불순물 시험 등을 실시하는 품질검증센터 설립을 통해 품질 고도화와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면서 "기업 차원에서도 품질관리책임자, 품질담당자 등의 직무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확대, 자체 검증·관리 시스템 강화 등을 이어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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