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0.12.28 10:41최종 업데이트 20.12.28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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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저수가·코로나19·형사처벌…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 29.7%, 존폐 위기의 참담한 심정"

[기피과 문제]① 소아청소년과학회 은백린 이사장 "1차 의료기관 긴급 재정지원과 소아 수가 가산, 상담수가 신설 필요"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은백린 이사장.
2021년 전공의 모집현황에서 기피과 기피 현상이 이전보다 더욱 크게 눈에 띄었다. 특히 소아청소년과는 수도권 빅5병원에서조차 전부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기피과 문제는 수십년간 이어져온 해묵은 난제다. 의료 전문가들은 이제야말로 정부와 각 전문학회가 뭉쳐 기피과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메디게이트뉴스는 해마다 미달을 면치 못하는 전문과목을 대상으로 현황과 원인, 해결책을 알아보기 위한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①소아청소년과, 저출산·저수가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 29.7% 존폐 위기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1960년대까지 전쟁 후 베이비 붐의 사회적 경향이 나타나면서 1970년대 정책 슬로건은 '아들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다. 출생아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당시 소아과는 가장 인기 있는 과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영광도 잠시, 2020년 현재 소아청소년과의 현실은 참혹하다.
 
1970년대 100만명에 육박하던 출생아 수가 2016년 40만명대로 곤두박질치더니 2020년 예상 출생아 수는 30만명대로 더 떨어졌다. 이에 비례해 2021년도 소아청소년과 전기 전공의 지원율도 29.7%에 그쳤다. 총 209명 정원에 62명밖에 지원하지 않은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역대 최저 수치다. 빅5병원 중 한 곳도 소청과 정원을 채우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서울대병원은 16명 정원에 지원자가 14명이었고 서울아산병원(8명/4명), 삼성서울병원(8명/3명), 세브란스병원(14명/3명), 가톨릭중앙의료원(13명/3명) 등으로 전체 미달이었다.
 
덩달아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은백린 이사장의 고심도 깊어졌다. 저출산에 코로나19 여파까지 겹치며 최악의 지원율을 기록한 상황에서 설상가상 의대생 의사 국가고시 미응시로 향후 기피과 문제가 개선될 여지도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은백린 이사장은 메디게이트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보건복지부와 학회가 특단의 해결방안을 적극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기피과 지원방안 협의체(가칭)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붕괴위기에 있는 소청과 진료 인프라에 대한 회심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역대 최악의 상황, 학회 내부는 참담한 분위기…이대로라면 수련체계 자체 붕괴
 
은 이사장은 최악의 결과가 도출됐다며 암울한 학회 내부 분위기부터 전했다. 그는 "저출산과 코로나바이러스 유행 여파로 대규모 미달 사태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막상 지원현황을 받아보고 학회 전체는 참담한 분위기였다"며 "올해 지원율 29.7%는 그야말로 역대 최악의 결과"라고 말했다.
 
소청과는 최근 지속적인 미달사태를 겪어 왔지만 지원율이 과반수 미만으로 떨어진 적은 없다. 2019년도에는 정원의 89.8%를, 2020년에는 추가 모집을 더해 정원의 71.2%를 확보해왔다.
 
은 이사장은 이 같은 지원율 하락세가 지속된다면 결국 소청과 의사 수련체계의 붕괴와 병원 진료 인프라 마비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즉, 입원실이나 응급실, 중환자실의 소아청소년 환자를 일선에서 담당할 의사들의 한 축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그는 이로 인해 수련병원 전문의들이 야간 당직 등의 업무 부담 증가에 따른 퇴직으로 이어져 신생아 중환자실을 비롯해 중증, 희귀 난치 소아 질환 환자의 진료 공백마저 우려된다고 우려했다.
 
은 이사장은 "지도 전문의를 통한 전공의 교육이 가장 중요하지만 전공의 고연차로부터 받는 교육과 저연차를 가르치는 교육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며 "어느 한 연차의 정원을 채우지 못하면 전공의 간 교육의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소청과 전공의는 외래, 병동, 응급실, 신생아중환자실, 소아청소년중환자실 등에서 진료를 수행한다. 이미 지방 소재 수련병원에서는 전공의 지원이 없어 소아응급실 운영이 파행을 겪고 있다"며 "조만간 소아응급실뿐만 아니라 병실, 외래, 신생아중환자실과 소아청소년중환자실 운영이 전국 규모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 번 전공의 1년차를 채우지 못하면 그 여파로 이후에는 지원이 더욱 줄어 나중엔 1~3년차 전공의가 모두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저출산‧저수가 체계가 원인 1순위…학회, 진료 패러다임 전환 노력 역부족

 
은 이사장은 이같이 소청과의 기피과 문제가 유난히 극심하게 나타나고 있는 원인으로 저출산과 수가체계를 꼽았다. 은 이사장은 "무엇보다 극심한 저출산과 그동안 주로 급성기 환자의 대량진료로 겨우 보전해온 최저 수준의 건강보험수가가 문제다. 이로 인해 젊은 의사들이 소청과에 대한 미래 비전을 상실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에 더해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사망 사건에서 의료진 형사처벌 등 코로나19도 쓰러져가는 소청과의 직격탄을 날렸다고 평가했다.
 
은 이사장은 "소아청소년과 관련 의료사고에서 연이은 아쉬운 형사처벌이 소청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켰다"며 "올해 코로나19의 대유행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 등으로 급성기 질환 발병이 크게 줄고,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우려로 병원 방문 자체가 급감하면서 소청과 1차 의료기관을 포함한 거의 모든 병원의 어려움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해결방안 마련 또한 녹록지 않다. 여러가지 문제가 얽혀 있는 상황에서 무엇 하나를 임시로 해결한다고 해서 상황이 쉽게 나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동안 학회는 변화하는 사회·경제적 상황 등을 감안해 소청과 진료의 패러다임을 질환치료 중심에서 질환예방과 건강증진, 만성질환 관리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은 이사장은 "학회는 내부적으로 전공의를 위한 육아상담 지침서를 비롯한 다양한 교육자료 및 지침 개발과 교육을 강화해왔다. 관계기관과 협의와 조율을 통해 만성질환 관리와 학교건강검진 통합 등 수가 및 제도개선을 다각도로 추진해 왔다"고 말했다.
 
“정부, 소청과 존립 위해 특별지원 방안 받아들여야…협의체부터 만들자”
 
그러나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예상보다 소청과 진료 인프라 붕괴까지 위협받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학회는 소청과 존립을 위한 대정부 특별지원 방안까지 촉구하고 나섰다.

은 이사장은 "과의 존폐위기가 걸린 상황에서 이제 학회만의 계획과 노력만으로는 타개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의사수련체계 붕기와 병원 진료인프라 붕괴를 막기위해 정부는 소청과 존립을 위한 특별지원 방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은 이사장이 제안한 특별지원 방안은 구체적으로 소청과 1차의료기관 긴급 재정지원과 소아연령 수가 가산, 상담 수가 신설 등이다. 또한 소청과 전공의 수련비용을 국가가 지원하고 저출산 극복을 위한 5년 주기 소아청소년 건강증진 종합계획도 주문됐다.
 
그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소아청소년의 건강권 유지를 위해 지역사회 1차 의료기관의 소청과 전문의가 지역주치의로서 질환의 치료 중심에서 건강교육자와 관리자가 돼야 한다"며 "이는 교육상담(육아, 영양식이, 운동, 정신건강)과 관리수가(만성질환, 감염, 비만) 신설 등을 통해 소청과 전문의의 새로운 역할과 보상에 대한 비전이 제시될 때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한편으로 중증 환자 중심의 상급 의료기관에서는 전문의 주도 방식의 진료 체계로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진료와 보조 인력의 수급과 적절한 수가 체계 마련 역시 필요하다"고 전했다.
 
은 이사장은 지속적으로 이 같은 대책을 논의할 수 있도록 복지부-학회 간 기피과 지원방안 협의체(가칭)를 구성해 논의가 단발에 그치지 않고 꾸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를 통해 복지부 내 아동청소년건강정책국을 신설해 미숙아 추적 관리 및 추적 검사, 육아상담, 건강한 소아청소년 관리, 만성질환 관리 등을 통해 소아청소년의 건강을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하는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끝으로 은 이사장은 의대생 의사 국가고시 미응시로 인해 내년에 2700여명의 신규의사가 배출되지 못하면 소청과 같은 비인기 필수과의 타격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는 "안 그래도 힘든 극한의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내년 신규의사가 제대로 배출되지 못한다면 전공의 1개년차가 통으로 사라지고 기피과는 그 여파로 지원이 더욱 줄어 나중엔 1~3년차 전공의가 모두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그는 "태아부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모든 아이들이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 다음 세대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지원과 학회의 부단한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며 " 소청과 의사가 본연의 임무에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속히 만들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경대 기자 (kdha@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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