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5.02.07 10:08최종 업데이트 25.02.07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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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적 권위주의가 부른 의료 망상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고려대 명예교수

사진=챗GPT가 그려준 한국 의사들이 강압적인 정부 정책으로 괴로워하는 장면. 

[메디게이트뉴스] 우리나라는 과거 군부독재에서 유신체제로 이행되며 ‘관료적 권위주의’가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조직 원리로 자리매김해왔다. 그러나 대의 민주주의를 달성한 후로 한동안 잊혀진 듯했던 관료적 지배주의가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윤석열 정권에 의한 의료 농단은 마치 선한 정부가 국가를 대신해 국민의 이해를 대변하고 정부가 곧 의료 생산 주체로 착각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부총리나 주무 장관이 합리성, 타당성, 정당성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책을 의료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는 비록 단점과 우려가 있었으나 세계적으로 신속한 전문의 진료로 인정 받아왔다. 문재인 정권이 추진한 보장성 강화와 실손 보험이 결합해 의료비 지출의 증가 속도가 세계 1위를 2년 연속 기록하기도 했다. 현 정권은 필수의료 기피에 대한 현상의 해석을 합리적 증거가 될 수 없는 몇 가지 사건과 사고를 확대 연출하며 현재 우리나라 의료의 지속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주술적 의료 개혁’으로 드라이브를 걸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의료계는 이런 정부의 무모함이 우리나라 의료가 정말로 지속 가능하지 않게 됐다고 주장한다.
 
정권 교체마다 주기적 발작처럼 나타나는 의료개혁은 이미 1994년부터 동일한 주제와 내용으로 몇 번째 반복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의료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는 대부분 정권의 임기 종료나 다른 정치적 사안 등으로 유명무실하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는 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정부는 의료보험제도 도입 12년 만에 전국민 건강보험시대를 열었다며 세계에 유례없는 일로 자화자찬해 왔다.

우리나라 보건정책은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됐다. 식민 정치체제부터 민주적인 방식은 아니었다. 일제 강점기 통치를 위한 수단은 관료나 경찰, 군대가 총독부의 권력을 빌어 강압적인 정치체제로 시작됐다. 해방 후 군정을 거쳐 다시 우리나라의 군사정권에 의한 강압적 보건정책으로 관료적 권위주의가 지속됐다. 산업화, 공업화를 목표로 국민의 권리를 통제하며 고속 성장을 이루었고 의료도 발전했다. 성장을 위한 국민 기본권의 침해도 공공의 복리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정당화됐다.

군사정권에서 의료보험제도는 저소득층을 위한 배려라는 명분으로 도입됐으며 그 방향에 맞춰 점차 빠르게 진화했다. 의료보험제도의 발달과 더불어 오늘날 의료는 본격적으로 의료가 제도화, 조직화돼 발전했다.
 
통제와 압박의 정치적 의료개혁 보건 분야 거버넌스 질식시켜
 

우리 사회도 민주사회로 서서히 변모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으로 국민소득이 향상됐다. 보건의료의 환경은 지속적으로 변하고 국민소득도 높아졌다. 그러나 의료제도는 여전히 구시대의 이념인 저소득층 배려를 위한 초저가 수가 정책을 고수하며 적절한 시대적 변화의 기회를 상실했다. 의사집단에 대한 통제와 압박을 기조로 하는 관료적 권위주의의 보건의료 거버넌스는 민주적 보건 거버넌스를 질식시켜 거의 발달장애 상태가 됐다. 군사정권에서 출발한 의료제도는 관료적 권위주의의 인과인지 문민정부를 거치면서도 여전히 존재했다.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만들지 못하는 보건 정치의 역량 부족은 정부와 의료계의 만성적인 상호 불신과 갈등만 키워왔다.
 
정권마다 만들었던 의료개혁을 위한 특별한 위원회는 초저수가제 유지와 의료 형사처벌 등 정부 정책의 실패를 묵과하며 의료에서 나타나는 부정적 현상을 의사 집단이 만들어내는 대중의 위협으로 간주했고, 그 책임을 의사집단의 도덕성 문제로 공개적인 비난을 했다. 결국 정부는 자신들의 정책적 통제를 위한 의사집단의 사회적 배제에 성공했다. 의사집단은 세계적 수준의 의료을 제공했음에도 정부는 의정 갈등 자체를 비윤리적인 병리적인 현상으로 국가 발전의 적으로 간주하는 이데올로기로 선동해 우리 사회를 흔들어댔다.

초저수가 보건의료제도에 순응한 의사집단이 진정 민중에게 위협적인 제도였는가? 이제는 왜곡된 이데올로기를 선동하는 정권이 보건의료제도에 더 위협적이다. 꾸준히 천천히 지속적으로 논의했어야 할 산적한 많은 보건의료 의제가 구세주 위원장이 이끄는 특별위원회 하나로 다 해결될 듯한 착각과 의대 증원으로 모두 탕감될 듯한 허구를 창조했다.

그럼에도 대중의 의사집단에 대한 태도는 이중적이다. 최고의 학력 집단이라면 더욱 학술적 가치와 공익을 위한 직업을 선택해야 할텐데 이를 바쳐주지 못하는 국가 정책에서 정작 비도덕적 의사 집단의 합류를 희망하는 의대 열풍은 진화하기 힘들다.
 
현대적인 보건의료제도를 원활하게 작동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문성과 보건의료의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유신시대는 대기업 위주의 경제 발전과 개발을 위해 자칭 엘리트집단에 의한 관료적 권위주의가 자리 잡고 경제적 성장은 거뒀다. 그 대가로 발생하고 있는 정치적 후진성은 대의 민주주의를 달성했어도 전직 대통령마다 탄핵, 투옥, 자살 등 불행한 사태가 이어지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도 보건의료 정책에서 국가의 통제는 극에 달하고 있는 모습이다. 관료적 권위의 유신시대의 긴급조치가 재탄생한 업무개시명령은 가장 근본적인 공공 복리인 국민의 기본권마저 훼손하고 있다. 자칭 민주화 세력이 보여준 관료적 권위주의의 승계 현상이다.
 

시대에 역행하는 ‘의료정치’ 한국 의료 미래 시계 제로
 

지금은 일제 강점기의 공중보건 정책과는 다른 시대에 와있다.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고도의 의료제도(체계) 속에서 관료나 정부의 강압적 지배는 쉽지 않은 세상이다. 언제까지 정부는 의사집단에 대한 배제 전략을 사용할 것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의대 정원 문제만 봐도 정부는 처음부터 의사 집단 배제를 도모하는 본격적인 억압적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의사 집단에 대한 동원 능력을 파괴하기 위해 시대착오적인 행정명령과 업무개시 명령을 내렸다. 과거의 의사 집단행동의 경험에 비춰 의사 국가시험이 끝난 시점에 의료 농단 작전 개시를 했으나 연차별 승급이 2월 말이라는 사실은 놓친 셈이 되어 1년을 허송세월하게 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아직도 보건의료 정책의 헤게모니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결국 정부의 의료 개혁은 이제 대통령 탄핵과 더불어 과거의 특별위원회와 운명을 같이 할 듯 보인다. 의사집단은 현재까지 사회적으로 높은 수준의 억압에 의한 불길한 미래 예측에 대해 수동적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가 취하는 통제 방식은 보건복지부 산하에 여러 가지 위원회를 차려놓고 다양한 집단을 이용해 의사집단을 배제한다. 관료적 권위주의는 사회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집단이나 조합을 보조금, 연구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정부의 권위를 이용해 규제하고 유인하려고 한다. 정부는 의사 집단의 집단행동은 무조건 불법으로 간주하고 의사집단의 정책적 반대와 저항의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사전 차단하는 것을 보건의료 정치의 목적으로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의사집단은 정권의 막강한 선동과 압박으로 정상적 사회적 의사소통에서 배제당했고, 무기력과 자괴감에 든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의사집단은 개혁의 정책적 모순과 문제점을 비판했으나 의사소통에서 배제된 의사 집단은 여론으로부터 철저히 차단 격리됐다. 대중의 귀에는 의사집단의 의료정책에 대한 합리적 비판은 지겨운 의사집단의 밥그릇 타령의 민요로 들리게 됐다. 이제는 왜곡된 사실이 기형화된 채 진실인 것처럼 우리 사회로 전파되고 있다. 정권은 독재적 행정명령과 처벌 위협으로 부족한지 급기야 전공의는 계엄 포고령에서 처단의 대상이 됐다. 사회주의 표현으로 인민의 적으로 간주한 끔찍한 사건을 도모한 것이다.
 
관료적 권위주의에 의한 의대 증원은 아무리 옹호해도 대통령 가족과 대통령 개인의 사법적 위험을 모면하기 위한 부당한 정책으로 정책적 정당성이나 시급성이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관료적 권위주의는 진정한 국민 건강보다는 정권의 안위와 보위를 위해 정부가 국민의 의견을 대변하는 듯한 순진한 착각을 유도한다. 그리고 어느새 슬그머니 국민 위에 당당하게 군림하고 있다. 관료적 권위주의는 공적 권력의 강화를 도모하는 것이 국가 발전의 지름길이며 곧 공공의 복리라고 왜곡하는 보이스피싱과도 같은 고도의 통치 행위(?)인지 주술적 행위인지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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