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엇박자내는 환자 신체 억제 정책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환자를 신체보호대로 결박할 일이 자주 생긴다. 환자가 병으로 인해 현실에 대한 인식이 없거나, 심각한 자·타해 위험이 있을 경우, 낙상의 우려가 높은 경우 환자의 사지를 결박하고 치료를 진행한다. 이는 분명히 환자의 인권과 자율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일이지만, 환자의 인권 침해보다 분명한 치료적 이득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박을 시행한다. 결박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두드려 맞는 일도 일상다반사다.
‘결박 베테랑’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도 환자의 결박을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있다. 환자의 의식과 판단력이 정상이고 현실 검증력도 정상인데 병에 대한 치료를 거부할 때다. 정신이 멀쩡한 사람을 묶는다는 것이 마뜩치 않은데다가, 환자를 섣불리 결박했다가 인권 침해 소송에 휘말리거나 심한 경우 환자에게 직접 보복을 당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식과 판단력이 정상인 환자가 치료를 격하게 거부하는 경우, 이를 자해로 간주해 환자를 구속해서라도 치료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일까.
최근 대법원은 농약을 마시고 응급실로 내원해 위 세척 등의 치료를 거부하고 사망한 환자의 유족들이 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심 판결을 인정하고 병원이 총 9800만원을 유족들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농약을 마시고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를 진료한 내과 전문의는 위세척을 실시하려 했으나 환자는 강하게 치료를 거부했다. 그래서 직원들이 모두 달려들어 겨우 결박을 했으나 환자가 격하게 반항하면서 스스로 결박을 풀고 위 세척 튜브를 빼냈다.
의사는 유족들에게 위세척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상급병원으로의 전원을 권유한 후 환자에게 ‘제발 수액이라도 맞으라’고 설득했다. 그렇게 겨우 환자에게 수액을 놓고 전원을 준비하던 중에 환자의 상태가 심각해졌고, 상급병원으로 전원한 후 환자는 사망했다.
재판부는 "당시 의사가 환자를 더 강하게 결박해서라도 치료했어야 한다"며 의사의 과실을 인정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에서 신체가 억제돼있던 환자들의 사망을 계기로 환자들의 신체 억제를 가급적 지양해야 한다는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환자의 인권 보호 차원에서 신체보호대 사용과 관련한 규정을 요양병원, 정신병원에서 일반병원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에 따르면 신체보호대를 사용하는 경우 의료인은 환자에게 그 사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신체보호대 사용에 대한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 법이 개정돼 의료현장에 적용된다면 앞서 내과 의사 사례에서 과실이 있는 걸까, 없는 걸까. 내과 의사는 환자에게 직접 신체보호대 설치와 결박에 대한 동의를 받을 수 있었을까.
한 쪽은 자꾸 신체 억제를 풀어 주라고 하고, 한 쪽은 의사의 억제를 풀어준 과실을 묻겠다고 한다. 법원과 국회가 엇박자를 내는 괴상한 장단에 어떻게 춤을 춰야할지 고민하는 의료 현장은 더욱 혼란스럽다.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 마취총을 준비해 두고 환자에게 ‘훅’하고 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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