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9.03.04 07:27최종 업데이트 19.03.04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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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전공의를 존중해주세요"

열악한 처우와 인식 개선에 복지부, 병원, 의료계, 환자들 모두 노력해야

사진: pexels
[메디게이트뉴스 정다연 기자] "너 같은 전공의 말고 당장 교수 불러!"

횡격막 탈장 어린이 오진 구속 의사 중 당시 전공의였던 가정의학과 전문의 A씨와의 대화 중에 듣게 된 이야기였다. 그는 전공의라는 이유로 환자로부터 뺨을 맞은 경험이 있다고 털어놨다. 자신뿐 아니라 많은 전공의들이 병원에서 환자로부터 '전공의 아닌 다른 의사를 데려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는 이야기도 했다.

심지어 그는 '남성인 자신의 처지는 차라니 낫다'며 여성 전공의는 의사로서 존중받지도 못할 뿐더러 만취한 환자들로부터 성희롱, 성추행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수련병원을 관두는 전공의들이 꽤 있지만,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을 관둬도 병원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전공의 사건을 취재하는 동안 환자가 전공의를 의사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일화를 자주 들었다. 전공의들은 전문의는 아니지만 의사 면허를 가진 일반의다. 일반의는 의원을 개업하고 환자를 진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의사다.

하지만 전공의들은 수련병원에서 수련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환자들에게 의사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환자들이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려보이는 전공의들에게 반말을 하는 일은 빈번하다고 한다. 욕설과 폭력이 뒤따르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고 한다.

메디게이트뉴스에 입사하기 전까지 전공의와 전문의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했던 터라 수련 받는 의사라는 이유로 전공의들을 무시하는 환자들이 많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환자들이 종합병원에서 똑같이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들 중에서 특히 전공의들에게만 함부로 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료계에 종사하지 않는 국민들에게 물어봤다. 열 이면 열 모두 전공의들에 대해 의사로서 완전히 신뢰하기 어렵다는 말을 했다. 이유를 묻자 사람들은 이렇게 답했다.

"뉴스나 드라마 보면, 병원에서 교수들이 전공의들 무릎을 발로 차고 머리를 때리고 소리를 지르잖아요. '야, 이 멍청아 그런 것도 몰라?!' 이러면서. 의사들 사이에서도 그러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환자들로서는 전공의가 진료한다면 불안한 게 당연한 일 아닐까요."
 
"전공의들은 병원에서 수련 받으니까 학생 같은 신분 아니에요? 어떻게 배우는 사람에게 제 가족의 건강을 맡길 수 있겠어요. 물론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저는 전공의가 아닌 교수를 찾았다는 환자의 마음을 알 것 같아요."

"전공의들이 교수들에게 맞는다는 뉴스를 보면 전공의들이 불쌍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중대한 병에 걸렸을 지도 모르는데 교수로부터 구박받는 그 전공의에게 진찰을 받아야 한다면 의심하게 될 겁니다."

국민들이 전공의를 보는 시선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전공의가 뉴스나 드라마 등 대중 매체에서 신뢰할 수 없는 의사, 불완전한 의사로 그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러한 장면을 연출한 선배 의사들은, 국가는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전공의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인식에는 전공의들 존중하지 않는 선배 의사들과 국가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열악한 수련환경에서 전공의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횡격막 탈장 오진사건으로 법정구속까지 됐던 가정의학과 전공의(현재 가정의학과 전문의) A씨는 이렇게 말했다.

"인턴, 레지던트 2년차까지는 죽을 만큼 힘들죠. 그래도 대개 레지던트 3년차부터는 좀 나아요."

지난한 전공의 시절을 겪고 전문의가 된 그의 한 마디를 들으니 머릿속이 복잡했다. '전공의 3년차부터 낫다'는 말은 전공의의 처우와 인식이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될 문제라는 뜻인지 바로 잡아야 하는 문제라는 뜻인지 아리송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전국 종합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 가장 많이 일하는 전공의들이 파업을 하면 한국 의료 시스템에 비상이 걸린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처럼 들릴 정도다.

전공의들이 한국 의료 시스템에서 막중한 역할을 짊어지고 있다면, 수련병원에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맞으면서 버티고, 당직비도 제대로 못 받는 그런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 임신을 했는데도 당직을 서다 유산을 하고, 구멍난 인력을 대책 없이 몸으로 메우다가 과로로 죽는 그런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

전공의들이 젊음을 바쳐 한국 의료 시스템이 버티고 있다면, 수련병원과 보건복지부는 지금보다 전공의들의 처우 개선에 더 힘써야 하고 국민들은 열악한 처우에서 버티는 전공의들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전공의 처우와 인식 개선이 지지부진한 사이에 전공의들의 과로사는 계속 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가천대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당직실에서 2년차 전공의가 숨진 채 발견됐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그는 사망 직전 24시간을 연속 근무한 상태였고 36시간의 연속 근무를 해야 할 상황이었다.

전공의를 과로사로 몰아갈 정도로 우리 사회는 전공의를 존중하지 않고 있다. 전공의들은 사회의 평균보다 못한 열악한 근로 환경에서 매일 절벽 끝에선 심경으로 아슬아슬 버티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2019년 한국 사회에서 전공의법은 전공의가 주당 최대 88시간(교육시간 8시간 포함)까지 근무하는 것을 합법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합법이라서 아무 문제가 없다면 한국 사회는 수 차례의 법 개정을 통해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보건복지부, 수련병원, 의료계, 환자들 모두에게 부탁하고 싶다. "전공의들이 한국 의료 시스템을 지탱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면, 적어도 전공의들이 수련을 하는 동안에는 폭력을 겪거나 유산을 하거나 과로사 하지 않도록 전공의를 존중해 주세요."

정다연 기자 (dyjeong@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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