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국에서 허드렛일만 하는 인턴, 아직 원시 형태의 인턴교육…뚜렷한 교육목표 ·실행·평가체계 부재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메디게이트뉴스] 과거 2차 세계대전이 패망으로 끝나고 일본은 잠시 미국으로부터 군정통치를 받게 됐다. 당시 일본의 수상이나 다름없었던 미국의 백전노장 맥아더 장군은 일본의 의학교육에 인턴제도가 없는 것을 알고 이를 도입해 시행하도록 했다.
1960년대에 시작된 일본의 인턴 교육은 단 한 번도 이 교육을 받아본 일본인 교수가 없었던 만큼 ‘인턴과정’에 대한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설계가 될리 만무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보이는 특성 중 하나인 강한 경직성과 수직적 의료사회에서 인턴은 이제 갓 의대를 졸업 한 의사로서 사회적으로나 의료계 자체 내부에서도 의사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일본 인턴은 무급제로 독일식 강좌제도와 일본식 권위주의에 익숙한 의과대학에서 나름대로 본연의 역할과 임무가 주어졌다. 그러나 그 당시 수준에 필적하는 교육학적 이론이나 서양의학이 갖고 있는 임상담화의 기본적 소양을 갖추지 못했으며, 인턴 교육의 목표도 구체적으로 설정되지 못했다. 인턴에 대한 학습평가나 과정에 대한 평가 역시 명확성이 없었다.
이로 인해 1980년대로 접어들자 그동안 누적됐던 불만들과 문제점들이 흘러내리면서 인턴교육에 대한 무용론이 제기됐고, 여기에 애꿎은 인턴들이 무엇 때문에 불필요하고 실효성 없는 시간 낭비적 비교육적인 제도를 거쳐야 하는지 젊은 의사들의 응축된 분노의 도화선에 불이 붙게 됐다.
결국 동경대학교 의과대학 인턴들의 항의시위가 불씨가 되어 부실하게 시작된 일본의 인턴 교육은 초라한 모습의 종말을 알리는 ‘예고된 운명’을 맞게 됐다. 지금이나 당시나 많은 의과대학 교수들은 인턴은 임상의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져나가야 할 교육생 입장의 초보 의사이고, 순환근무를 배치 받은 과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일부터 배우면서 차츰차츰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받아들이고 있다.
인턴, 선배 전공의나 교수의 일을 보조하면서 익히는 개념에서 출발
실제로 인턴교육은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에 각자 배치된 병원에서 현장 중심 또는 실습 위주의 ‘교육과정의 임무’가 부여된 것으로써 의과대학의 교육과정에서 한 단계 올라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인턴 과정 역시 의대에서 장소가 병원으로 바뀌는 교육의 연장이다. 과거 일본에서 진행됐던 체계적이지 못하고 낮은 수준의 인턴교육처럼 아주 단순한 직무 수준에서 선배 전공의나 교수들이 하는 일을 보조하면서 배우고 익힌다는 개념의 ‘도제식 교육’에서 출발했다.
지금도 동네 미용실에 가면 가장 초보 수준의 견습생이 바닥에 잘려 떨어진 머리카락을 쓸고, 이발 미용 기구들을 정리하고 닦는다. 이에 우리나라 인턴 교육 역시 체계적 프로그램에 따라 운영되는 방식이 아닌 맨 밑바닥부터 몸으로 구르면서 습득해야 하는 소위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전근대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우리나라 건설현장에는 많은 일본식 용어가 그대로 남아 있으며 순화되지 못한 채 거칠게 사용되고 있다. 이 중 특별한 기술 없이 허드레 일만 도와주는 ‘보직’이 있는데 일본식 용어로 ‘데모도’로 칭한다.
우리나라 인턴 의사의 모습은 바로 건설현장의 데모도 또는 미장원에서의 초급 조수와 엇비슷하다. 인턴에게 제공되는 맞춤형 교육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병원 내에서 정확히 어느 부서가 인턴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지도 정확하지 않다. 과마다 일정기간 배치 후 계속 순환하는 구조여서 인턴들이 마땅히 소속감을 느낄만한 부서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인턴 종료시점이 다가오면 자신이 원하는 과에서 속칭 인턴과 레지던트의 변환시기인 ‘인지던트’로서 일종의 인턴과 전공의 교육의 전환점을 맞는다. 인턴 과정을 종료했으면 인턴 교육에 대한 학습평가나 교육과정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할텐데 이것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영국 중국 일본 등 최선의 교육을 위해 인턴제도 개편 중
영국은 아직도 대부분이 5년제 의과대학이고 1년은 의사면허 취득 전, 그리고 1년은 졸업 후 의사면허 취득과 함께 각각 우리나라의 인턴과정에 해당하는 ‘FOUNDATION YEAR’ I, II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일반의’라는 정의는 과거 의과대학 졸업 후 아무런 졸업 후 교육을 받지 않은 의사를 명명한데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이런 연유로 일반의는 전문의에 비해 한 단계 수준이 낮은 의사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그러나 영국식 제도에서 일반의(General Practitioner)는 Foundation Year 2년을 마친 후 다시 3년간의 수련을 거쳐야 한다. 홍콩만 가도 일반의를 ‘전과의(全科醫)’로 캐나다나 미국은 ‘가정의학(Family Physician)’ 그리고 프랑스는 홍콩의 표기와 유사한 ‘omnipraticien’으로 명명하고 있다.
일본은 과거의 인턴 제도를 폐기한 후 그들이 갖는 매우 철저한 전문과목별 교육에서 오는 부작용을 경험하고 난 뒤 이를 탈피하고 보다 더 좋은 임상의사로서 기본적인 임상교육을 위해 1990년대 말 졸업 후 임상수련의무화 방안을 도입했다. 의과대학 졸업 후 2년간의 수련을 의무화 한 조치였다. 과거 인턴 제도에서 실패한 뼈아픈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이 과정을 인턴이라고 명명하지 않고 ‘레지던트’라고 부르고 있다.
중국은 5년제 의과대학 졸업 후 이제 3년간의 인턴과정을 의무화하고 중국어 표기로 ‘주원의(住院醫)’ 그리고 영문으로 레지던트라고 이름 붙였다. 이렇게 일반의로서 교육을 강화하는 이유는 중국이 처한 보건의료 실정에 맞는 가장 우선순위를 역량 있는 일반의사의 배출이라는 정책적 판단에 기인한다. 이미 공산당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결정와 으며, 세계보건기구 중국사무소 입장에서도 권장하는 사안이기도 하다.
중국 역시 졸업 후 교육 특히 일반의를 위한 교육에 대한 경험이 없어 고민하던 중 캐나다 의학회와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매년 북경에서 개최되는 대규모 졸업 후 교육 학술대회를 통해서 캐나다에서 개발한 다양한 최신 전공의 교육법을 접목하기 위한 벤치마킹에 뜨거운 관심을 쏟고 있다.
그러나 문화적으로 다른 환경에서 캐나다의 방법론이 쉽게 정착하기 힘들어 보인다. 워낙 방대하고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는 국가에서 나라 전체의 인턴과정 3년을 관리하기란 절대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공산당은 지난 2012년에 우리나라로 치면 재정부, 보건부, 과학기술부, 노동부 등 관련 부처 6개 장관이 한자리에 모여 서명하고 직인을 찍어 만든 ‘공산당 문건’을 통해 향후 중국의 졸업 후 교육을 위한 당 차원의 확고한 결의를 보여줬으며, 특히 전공의 교육에 대한 장애요인 모두를 제거하고 난 후 이를 당 차원의 중요한 과업으로 인식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도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대규모 졸업 후 교육 학술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교수들을 위한 교육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워낙에 나라 규모가 커서 그런지 북경 지역을 비롯해 인근 도시와 그리고 몇 개의 대도시에 근무하는 교수들을 위주로 우선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일본은 1990년 말 도입한 임상수련 의무화에 따른 방향성과 경험 부족으로 표류하다 최근 많은 발전을 이룩했다. 일본은 시행초기 2년간의 급여 문제도 확실하지 않았고, 무엇을 어떻게 교육할지도 목표가 분명하지도 않았다. 경험이 부족해 첫 1년을 마치고 다시 배운 과정을 반복하다 이것 역시 수련생들로부터 무용론이 제기되고 1년은 일반의 공통과정으로, 2년째는 자신의 향후 전공분야 선택에 따라 4가지 정도의 다른 프로그램 중 하나를 선택해 수련을 받도록 하고 있다.
무엇보다 괄목할 만한 성장은 일본과 같은 폐쇄된 조직문화에서 전공의 선발을 위한 매칭제도를 성공적으로 도입했다는 사실이다. 이미 미국, 캐나다 등 전국단위의 전공의 선발 매칭제도와 유사한 제도를 들여와 성공한 것이다. 이런 일본의 제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면, 6년제 의과대학의 임상실습과정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담겨져 있음을 인지할 수 있다.
캐나다와 미국은 인턴 제도를 폐지했다. 학부과정에 충분히 담을 수 있다는 판단과 함께 실습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임상의 실제적 경험과 책임이 동반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실제 임상 경험이 부족해 이들이 안전하게 실습할 수 있도록
필자가 캐나다에서 가장 기본적인 수기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당시 같은 과에 실습 나온 본과 3학년 학생에게 시범을 요구하며 배운 경험이 있다. 이미 본과 3학년 실습생이면 자기 판단도 해야 하고 병실에서 주치의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물론 전공의가 추후 확인서명을 해야 정식 처치명령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본과 마지막 2년의 임상실습을 지금도 관찰위주나 인턴이나 전공의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이른바 ‘shadowing 역할’만으로는 임상실습의 효율성을 논하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나 일본 그리고 타이완에서 하는 학생실습을 보면 아직 관찰 위주의 실습이고 실제 영어식 표현인 ‘hands on experience’와 같은 실제경험은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진다. 의료소송이 우리보다 훨씬 많다는 미국도 의과대학을 졸업하려면 15명의 출산과정에 직접 참가해야 한다. 관찰만으로 관찰만으로 출산 경험을 인정받을 수 없으며 반드시 의료팀의 일부로 학생들까지 일정부분 역할을 하도록 했다. 미국이나 캐나다 사람이라고 학생의 활동을 반드시 긍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원칙과 실천적인 방법에서는 우리나라와 매우 다르다.
학생이나 인턴이 이런 실습을 할 수 있는 바탕은 문화적인 요소도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에 대한 인간적인 존중을 바탕으로 임상교수진은 사전에 환자에게 소개하고, 자신도 인턴이나 학생을 진료진의 일원으로서 대우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출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학생이 외래에서 입원기록을 작성하고 ‘clinical clerk(우리나라의 임상실습학생)’으로서 직무수행을 하고 나면 이에 따른 소정의 경제적 보상도 이뤄진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도 본과 3학년이 되면 병실 주치의로서 당직을 서야 하고, 이에 따른 일정 금액의 수당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성공적으로 이뤄지는 인턴십 과정이나 이와 유사한 일반의 과정의 기초교육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면, 무엇보다 이 과정에 대한 국가 차원의 공적 투자가 원활히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아직도 우리나라나 일본의 경우 인턴교육에 대한 중요성은 물론 교육 이수에 필요한 일정 비용의 국가적 지원 문제는 ‘언감생심’처럼 느껴진다.
의료계 스스로가 이런 시각을 가질 때 우리 사회는 무슨 관심이 생길까 반문도 해본다. 공적 자금의 투입과 함께 인턴교육에 대한 정확한 학습 평가와 교육과정에 대한 평가 없이는 어떠한 형태의 인턴과정도 성공하기 어렵다. 현재 우리나라 인턴의 급여는 거의 선진국 수준이다. 이런 시점에도 아직 인턴 교육의 선진화로 향한 과정은 거리가 한참 멀어 보인다.
성공적인 인턴 과정이나 임상실습과정을 이행하기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열쇠는 인턴교육이 이제 갓 졸업한 의사들에게 의국에서 가장 수준 낮은 허드렛 일을 시키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실제 임상 경험이 부족해 이들이 안전하게 직무를 배울 수 있도록 매우 계획적이고 체계를 갖춘 교육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턴교육에 필요한 여러 과의 협치가 필요한데 이 부분에 대한 기대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절망적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정치판을 대입해 보면 아마도 우리나라 문화의 유전자 지도상으로 협치는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인턴이나 이보다 더 어린 의사후보생인 학생들의 임상실습을 위해서는 몇 개의 필수과가 모여 합의된 교육목표를 세우고 이를 위한 교육과정의 개발, 학습평가, 과정평가, 질 개선 등 치밀한 계획과 실행력이 반드시 담보돼야 한다. 인턴과 학생의 관리 감독 뿐 아니라 해당 임상과의 교육에 대한 감측(monitor)이 동반된 가운데 운영에 필요한 적절한 예산과 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수준 높은 의사 양성이야말로 결과적으로 국민건강을 위한 국가 차원의 필수 자산임을 인식해 공적 재정 투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유도해야 할 것이다.
이제 막 임상 현장에 진출한 초보 의사들에 대한 질 높은 교육 지원이야말로 결국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자양분의 환류적 기능임을 통찰해야 한다. 보다 우수하고 역량 있는 의사 배출을 위해 국가 사회적 가치관의 틀을 변화시켜야 한다.
현재 세계적으로 인턴과정, 임상실습과정에 대한 규범이 높은 나라는 그렇게 많지 않다. 세부전공의나 전문 과목에 대한 전공의교육은 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많은 의학교육자는 아직도 이런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특히 의학기술에 대한 냉철하지 못한 자부심과 일시적 도취상태로 인해 의학교육의 미래를 위해 똑바로 앞을 내다봐야 할 우리의 시야를 뿌옇게 흐리게 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댓글보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