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라나는 꿈나무였던 학창시절 에릭시걸 저서인 닥터스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책 내용 중 주인공이 동료와 식당에서 식사 하던 중 주위 손님이 음식물에 기도가 막히는 상황이 발생하여 응급조치를 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주저 없이 나서는 용기가 대단해보이기도 하고 그런 능력을 갖추며 도움을 줄 수 있는 의사라는 직업이 부러웠었다.
의대에 입학하고 의사가 된 후로 이러한 실제 상황을 맞닥뜨리지는 않았지만 상상 속에서 혹은 꿈속에서 이런 상황들에 마주치는 경험을 하곤 했다.
나뿐만 아니라 의사가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길거리에서 또는 비행기 안에서 응급 환자를 만나는 상황 혹은 상상 등을 경험하게 되지 않을까 한다.
그럴 때 응급의학과나 내과 같이 바이탈을 다루는 진료과 의사이거나 응급환자의 증상이 자신의 진료과목과는 관련이 없으면 섣불리 나섰다가 상태가 악화되거나 혹은 소송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의사들이 선한 의지로 기내에서 혹은 병의원에서 진료 업무 중이 아닌 일상생활 중 응급 환자가 도움을 바라는 상황을 지나치지 못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그러면 의료인이 기내나 일상생활 중 응급환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 응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책임 유무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우선 응급환자와 응급의료 종사자라는 말의 의미를 먼저 살펴보자.
응급의료법에 따르면 제2조(정의)에서 용어를 정의하고 있다.
1. '응급환자'란 질병, 분만, 각종 사고 및 재해로 인한 부상이나 그 밖의 위급한 상태로 인하여 즉시 필요한 응급처치를 받지 아니하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거나 심신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환자 또는 이에 준하는 사람으로서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사람을 말한다.
여기서 응급환자란 응급의료법 시행규칙에 따라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증상이 있는 자를 말한다.
1.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별표 1의 응급증상 및 이에 준하는 증상
2. 제1호의 증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응급의료종사자가 판단하는 증상
[별표 1] 응급증상 및 이에 준하는 증상
1. 응급증상
가. 신경학적 응급증상 : 급성의식장애, 급성신경학적 이상, 구토·의식장애 등의 증상이 있는 두부 손상
나. 심혈관계 응급증상 :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증상, 급성호흡곤란, 심장질환으로 인한 급성 흉통, 심계항진, 박동이상 및 쇼크
다. 중독 및 대사장애 : 심한 탈수, 약물·알콜 또는 기타 물질의 과다복용이나 중독, 급성대사장애(간부전·신부전·당뇨병 등)
라. 외과적 응급증상 : 개복술을 요하는 급성복증(급성복막염·장폐색증·급성췌장염 등 중한 경우에 한함), 광범위한 화상(외부신체 표면적의 18% 이상), 관통상, 개방성·다발성 골절 또는 대퇴부 척추의 골절, 사지를 절단할 우려가 있는 혈관 손상, 전신마취하에 응급수술을 요하는 중상, 다발성 외상
마. 출혈 : 계속되는 각혈, 지혈이 안되는 출혈, 급성 위장관 출혈
바. 안과적 응급증상 : 화학물질에 의한 눈의 손상, 급성 시력 손실
사. 알러지 : 얼굴 부종을 동반한 알러지 반응
아. 소아과적 응급증상 : 소아경련성 장애
자. 정신과적 응급증상 :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을 해할 우려가 있는 정신장애
2. 응급증상에 준하는 증상
가. 신경학적 응급증상 : 의식장애, 현훈
나. 심혈관계 응급증상 : 호흡곤란, 과호흡
다. 외과적 응급증상 : 화상, 급성복증을 포함한 배의 전반적인 이상증상, 골절·외상 또는 탈골, 그 밖에 응급수술을 요하는 증상, 배뇨장애
라. 출혈 : 혈관손상
마. 소아과적 응급증상 : 소아 경련, 38℃ 이상인 소아 고열(공휴일·야간 등 의료서비스가 제공되기 어려운 때에 8세 이하의 소아에게 나타나는 증상을 말한다)
바. 산부인과적 응급증상 : 분만 또는 성폭력으로 인하여 산부인과적 검사 또는 처치가 필요한 증상
사. 이물에 의한 응급증상 : 귀·눈·코·항문 등에 이물이 들어가 제거술이 필요한 환자
2. '응급의료'란 응급환자가 발생한 때부터 생명의 위험에서 회복되거나 심신상의 중대한 위해가 제거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응급환자를 위하여 하는 상담·구조·이송·응급처치 및 진료 등의 조치를 말한다.
3. '응급처치'란 응급의료행위의 하나로서 응급환자의 기도를 확보하고 심장박동의 회복, 그 밖에 생명의 위험이나 증상의 현저한 악화를 방지하기 위하여 긴급히 필요로 하는 처치를 말한다.
4. '응급의료 종사자'란 관계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취득한 면허 또는 자격의 범위에서 응급환자에 대한 응급의료를 제공하는 의료인과 응급구조사를 말한다.
위의 법령의 정의에 해당하는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상담·구조·이송·응급처치 및 진료상담 등의 조치를 제공하는 의료인은 응급의료 종사자의 정의에 해당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의료인이 응급환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개입을 하는 순간 응급의료종사자가 된다.
의료인이나 응급구조사가 아닌 일반인은 응급의료종사가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반인이나 의료인이 선의를 가지고 응급환자를 도울 경우 발생하는 상황들에 대한 면책에 대한 법률 조항이 있다는 점이다.
아래와 같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응급의료 종사자가 업무수행 중이 아닌 때는 민사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 않으며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도 감면받는다는 조항이 있다.
제5조의2(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제공하여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에 대하여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그 행위자는 민사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 아니하며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한다.(개정 2011년 3월 8일, 2011년 8월 4일)
1.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자가 한 응급처치
가. 응급의료종사자
나. 「선원법」 제86조에 따른 선박의 응급처치 담당자,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제10조에 따른 구급대 등 다른 법령에 따라 응급처치 제공의무를 가진 자
2. 응급의료종사자가 업무수행 중이 아닌 때 본인이 받은 면허 또는 자격의 범위에서 한 응급의료
3. 제1호 나목에 따른 응급처치 제공의무를 가진 자가 업무수행 중이 아닌 때에 한 응급처치
제63조(응급처치 및 의료행위에 대한 형의 감면) ① 응급의료종사자가 응급환자에게 발생한 생명의 위험, 심신상의 중대한 위해 또는 증상의 악화를 방지하기 위하여 긴급히 제공하는 응급의료로 인하여 응급환자가 사상에 이른 경우 그 응급의료행위가 불가피하였고 응급의료행위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에는 정상을 고려하여 형법 제268조의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
② 제5조의2 제1호 나목에 따른 응급처치 제공의무를 가진 자가 응급환자에게 발생한 생명의 위험, 심신상의 중대한 위해 또는 증상의 악화를 방지하기 위하여 긴급히 제공하는 응급처치(자동심장충격기를 사용하는 경우를 포함한다)로 인하여 응급환자가 사상에 이른 경우 그 응급처치행위가 불가피하였고 응급처치행위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에는 정상을 고려하여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의료인들은 위 법령의 조항만으로 안심하고 응급환자에게 응급의료를 제공해도 되는 것일까?
첫 번째 문제점은 제5조의 2에 명시한 민형사상의 감면을 받으려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라고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실제 환자의 보호자가 이에 납득이 안된다고 소송을 진행할 경우는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거기다가 고의나 과실이 없다 하더라도 환자가 사망한 경우에 대해서는 면책이 아니라 형사책임의 감면이기 때문에 일정부분 형사 책임을 져야할 가능성이 있다.
제63조에서도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고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응급환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로 법에서 정하고 있는 제5조 2(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에 따른 면책의 규정이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로 한하고 있기 때문에 생명이 위급하지 않은 응급환자나 위의 법령에서 정하는 응급환자가 아닌 비응급환자에게 선의의 도움을 행한 경우는 민형사상의 면책이 아예 되지 않을 수 있다.
제63조(응급처치 및 의료행위에 대한 형의 감면)에서는 면책의 규정이 응급환자로 되어 있지만 여기서는 민사책임의 면제는 없고 형법 제268조의 형(업무상과실·중과실 치사상) 업무상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처럼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며 이 또한 법에서 정한 응급환자가 아닌 경우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눈 딱 감고 119가 오기까지 기다리는 것이 정답일까. 그렇지만 눈앞에서 환자가 발생했을 때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의료인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의료인이 응급의료를 제공할 것이기 때문에 더욱 이런 제도의 맹점을 보완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첫째. 항공사나 열차 같이 응급의료기관에 긴급히 접하지 못할 상황에서는 의료인이 응급환자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위의 법령에서 해당하지 않는 사항에 대한 각각의 지원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항공사나 철도회사, 지자체 등의 규정에 의료인이 법령에 정한 면책을 받지 못하는 경우에 대비한 보험을 들거나 소송이 시작되었을 때 소송을 대리해줄 수 있는 법률 조력을 해주는 것이 그 대책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
현재와 같은 시스템 안에서 의료인에게 부담을 줄여준다면 더욱 적극적으로 환자를 돕는데 나설 수 있고 결국은 이것이 고객 만족으로 이어지고 국민들과 업체, 지자체등에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한다.
의료진에게는 닥터콜에 응해 응급환자 진료후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마일리지나 기념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환자가 회복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한 후에 발생할 수 있는 소송이나 불미스러운 일들에 대한 항공사의 실질적인 대책들이 더 필요하다.
둘째. 위의 내용을 위한 여객 운수 시설이나 공공시설 등의 경우에서 응급환자를 도운 경우 각 회사나 지자체가 소송을 대신하여 담당한다던지 등의 그것에 대한 부담을 진행하는 주체에 대해서 명확히 법령에 추가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셋째 . 법령을 개정하여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도 감면이 아니라 면제해야 하지 않을까한다. 대부분의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는 사망으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환자 사망에 대한 책임까지 지게 된다면 후에 또 그런 상황이 왔을 때 선뜻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선한 사마리아인들을 늘리려면 선한 마음을 가지고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싶을 때 그것을 격려해주고 안전하게 시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지 무작정 국민들의 의식만 탓하는 것은 옳지 않다.
누구나 언제든지 아플 수 있고 긴급한 도움이 필요한 상황일수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의료진이 누구나 안심하고 선뜻 도움을 베풀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국민들의 생명을 책임지고 보호해야하는 국가의 의무가 아닐까 한다.
의사들을 저수가로 신음하게 하거나 각종 법령과 규제로 얽매이게만 하지 말고 그 가진 능력을 환자들을 위해서 더 사용할 수 있도록 권장하고 그 간에 일어날 수 있는 예기치 못한 상황들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위의 내용은 항공우주의학회지 제18권 제3호에 실린 기내 응급환자 진료에 관한 고찰, 관련 기사, 배상준 선생님의 블로그, 의료 변호사들의 칼럼 등을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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