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12.27 06:52최종 업데이트 23.12.27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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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맥박리 진단 못했다고 실형 받은 응급의학과 의사 판결문 살펴보니…'CT검사 안한게 이유'

의료계 "응급실 급박한 상황에서 모든 환자 CT검사 해야 하나" 분통 …CT검사 제안했다는 의사 주장에도 재판부 '불인정'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응급실에 방문한 흉통 환자를 대동맥박리로 진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실형을 선고받은 응급의학과 의사 사건의 핵심은 '흉부 CT 검사' 여부였다.

27일 메디게이트뉴스가 응급의학과 의사 사건의 판결문을 확인한 결과, 재판부는 당시 환자의 증상만 보고 대동맥박리를 의심해 흉부 CT 검사를 하지 않은 것이 의사의 과실이라고 판단했다. 흉부 CT 검사를 하지 않은 것과 환자의 악 결과 사이에 명백한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았다는 의사의 주장에도 이를 과실로 인정했다. 

의료계와 일부 법조계는 그간 의료 관련 형사 사건에서 의료행위의 과실과 악결과 사이의 명백한 인과관계를 요구하던 재판부가 다소 피해자인 환자 측에 온정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원, '흉부 CT' 안한 의사에게 '업무상과실' 판단…"검사 안해서 적절한 치료 받을 기회 상실"

사건은 2014년 9월 11일 밤 12시 55분경 안면부 감각 이상, 식은땀, 구토와 함께 흉부 통증을 호소하던 환자 B씨가 A씨가 근무하던 병원 응급실에 내원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전공의 1년차이던 A씨는 B씨에게 심전도검사, 심근효소 검사 결과에서 별다른 이상 소견을 확인하지 못했고, 급성 위염에 의한 것으로 판단했다.

A씨는 같은 날 새벽 5시 30분경 진통제 투여에 의해 A씨의 흉부 통증이 다소 완화되자 별다른 조치 없이 B씨를 퇴원시켰는데, B씨는 같은 날 오전 10시 경 대동맥박리 진행으로 인한 양측성 다발성 뇌경색이 발생해 의식을 잃었다.

결국 B씨는 인지기능 상실 및 사지 마비 등 뇌병변장애의 상해를 입게 됐다.

B씨의 보호자 측은 A씨가 근무하던 병원을 상대로 억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의사 B씨는 업무상 과실치상,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먼저 A씨가 당시 B씨가 호소하던 흉통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 흉부 CT 검사 등 추가적인 진단 검사를 실시하지 않은 것이 '업무상과실'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는 추가적인 진단 검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피해자가 수술 등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었음에도 이에 위반해 피해자를 단순히 급성 위염으로 추정 진단하고 진통제 등만을 투약 처방한 채 퇴원시켰다"며 "이로 인해 피해자가 조기에 대동맥박리를 진단받고 이에 대한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를 상실하게 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A씨가 사건 당시 흉부 CT 검사를 두 차례권유했으나 B씨의 딸이 이를 거부해 진행하지 못했다고 주장한 데 대해 그런 사실이 없다는 B씨 딸의 주장만 받아들여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 B씨의 수술을 담당한 병원 의사가 "피해자가 처음 방문했던 병원에서 수술을 진행했다면 이후에 발생한 의식저하와 심한 저혈압 상태 및 심장마비가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며 "급성 A형 대동맥 박리증의 응급수술에 따른 뇌손상 가능성이 약 12~15% 내외인 것을 고려한다면 현재 피해자가 겪고 있는 저산소성 뇌손상은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았을 것이라고 판단된다"라는 의견을 밝히면서 A씨의 죄가 인정됐다.
 
1심 재판부는 또 A씨가 의료법도 위반했다고 봤는데, A씨가 사건이 13일 지난 2014년 9월 24일 병원 의무기록시스템에 접속해 피해자와 보호자에게 흉부 CT 검사를 권유했다는 취지의 경과기록을 작성한 것이 진료기록부를 거짓 작성했다는 판단이다.

A씨는 "B씨의 보호자에게 대동맥박리, 폐색전증, 기흉으로 인한 종격동 기종 등을 확인해 보고자 흉부 CT검사를 권유했으나 보호자가 일단 지켜보겠다고 했다. 그러다 새벽 4시쯤 환자의 명치 부위 통증이 다시 심해졌다고 해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2년차와 상의해 흉부 CT 검사를 권유했는데 B씨의 딸이 괜찮다고 하며 CT 검사를 받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B씨의 보호자인 딸이 흉부 CT 검사를 권유받은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으며, 해당 간호사로 상당한 의학적 지식이 있어 두 번에 걸쳐 흉부 CT 검사를 권유했다면 이를 거부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A씨가 진료기록부에 흉부 CT 검사를 권유했다는 취지의 경과기록을 작성한 것이 진료기록부 거짓 작성이라며 의료법 위반의 혐의도 인정했다.

"흉부 CT 검사 안한 것과 악결과 사이 인과관계 증명됐나?" 항변에도…환자 측 주장만 인정

이어진 항소심에서 A씨 측은 기존 대법원의 판례처럼 B씨에게 발생한 악결과와 A씨 측이 흉부 CT 검사를 하지 않았다는 과실 사이에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2016년 대법원 판례에서는 의료사고에서 의사의 과실과 결과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주의의무 위반이 없었더라면 그러한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임이 증명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항소심에서 A씨 측은 "피고인에게 과실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C병원에 내원하기 전, 늦어도 피해자가 퇴원하기 전에 이미 대동맥박리가 발생하여 진행 중이었다는 사실이 인정돼야 한다. 그런데 원심은 피해자의 대동맥박리 발생 시기가 내원하기 전인지, 퇴원하기 전인지, 퇴원 후인지가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피고인이 내원했을 당시 이미 대동맥박리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단정해 피고인의 업무상 과실 및 해당 과실과 피해자의 상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고 반박했다.

또 "흉부 CT 검사 등 추가 검사를 시행했더라도, 내원 당시 피해자에게 대동맥박리가 발생했는지가 불분명하고, 발생했다고 전제하더라도 흉부 CT 검사를 통해 이를 발견할 수 있었을 가능성도 높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A씨가 병원을 찾은 2014년 9월 11일은 추석 연휴 다음 날이고 당시 A씨가 근무중이던 병원은 대형종합병원으로, 대동맥박리 수술을 당일 즉시 시행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A씨 측은 "설령 흉부 CT 검사로 대동맥박리를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환자 B씨가 다른 병원으로 내원하게 된 급박한 증상이 발생하지 않은 이상 곧바로 수술을 진행하거나 피해자가 다른 병원에서 수술에 착수한 2014년 9월 11일보다 더 이른 시점에 수술에 착수해 악결과를 방지할 수 있었을 가능성도 현실적으로 상당히 낮다"고 주장을 뒷받침했다. 

A씨 측은 의료법 위반 부분에 대해서도 "피고인은 두 차례에 걸쳐 피해자 측에 흉부 CT 촬영을 권유했다. 따라서 피고인이 거짓으로 의료기록을 작성한 사실이 없음에도 원심은 C병원의 운영자인 학교법인에 대해 의료과오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고 있어 진술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피해자 측의 진술만을 근거로 아무런 객관적 증거 없이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피고인이 흉부 CT 검사 등 추가 검사를 시행하지 않은 것에 과실이 있다고 전제하더라도, 위와 같은 과실과 피해자의 상해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도 환자의 당시 증상, 나이와 병력, 감정 의사의 의견을 종합했을 때 환자 B씨가 병원 응급실에 최초 내원했을 당시 대동맥박리가 발생한 상태였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환자의 증상 및 통증 양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흉부 CT 검사 등 추가적인 검사를 진행하지 않은 것은 의사로서의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이며, A씨가 흉부 CT 검사를 권유했다고 주장하나 환자 측이 이를 부인하고 있다며 원심의 판단이 타당하다고 봤다.


의료계 "응급실 찾은 모든 흉통 환자에 흉부 CT 해야 하나?"…법조계 "기존 경향과 달라"

해당 판결 이후 의료계는 앞으로 응급실은 흉통을 호소하는 모든 환자에게 흉부 CT를 실시해야 하는 것이냐며 반발하고 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응급실은 본질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환자들이 다양한 이유로 방문하는 곳이며 당연히 향후 경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곳"이라며 "향후 연간 100만명이 넘는 흉부관련 증상을 가진 응급환자들은 모두 CT촬영을 해야 할 것이고 그 결과 진료비의 폭증을 불러올 것이며, 대동맥박리 수술이 불가능한 병원에서는 감옥에 가지 않으려면 환자를 거부해야 할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도 최근의 판결 경향이 다소 환자 온정주의로 변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우리나라는 의료사고에 대해 일본의 270여 배, 영국의 900여 배에 이르는 기소율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형사 소송은 범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것으로 행위자에 대한 처벌이 목적인 만큼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범죄 사실이 입증돼야 하는데 최근의 판결 경향을 보면 다소 환자 온정주의적 판결이 많은 것 같다"며 "피해자 입장에서는 모든 게 의사 탓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법부는 의료의 특성을 고려해 객관적으로 범죄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데 안타깝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번 판결은 올해 2월 대법원이 주사치료 중 업무상 주의의무 소홀로 환자를 감염시켰다는 혐의로 기소된 의사에게 업무상과실 무죄를 선고한 판결과 다소 배치된다.

당시 대법원은 "의사에게 의료행위로 인한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의료행위 과정에서 공소사실에 기재된 업무상과실의 존재는 물론 그러한 업무상과실로 인해 환자에게 상해, 사망 등 결과가 발생한 점에 대해 엄격한 증거에 따라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설령, 의료행위와 환자에게 발생한 상해, 사망 등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도, 검사가 공소사실에 기재한 바와 같은 업무상과실로 평가할 수 있는 행위의 존재 또는 그 업무상과실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증명하지 못했다면, 의료행위로 인해 환자에게 상해.사망 등 결과가 발생했다는 사정만으로 의사의 업무상과실을 추정하거나 단순한 가능성, 개연성 등 막연한 사정을 근거로 함부로 이를 인정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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