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비용 올려 전공하는 의사 많아지게 해야...잘못된 정책에 반박과 대안 적극 제시하자
[칼럼] 김효상 재활의학과 전문의
[메디게이트뉴스 김효상 칼럼니스트]
1. 기억
저는 대한민국 의대생이었습니다.
평범한 집에 태어나 입시에 좌절을 겪으며 종로학원에서 날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독서실에서 졸기도 하며 삼수해서 의과대학에 입학한 대한민국 평범한 의대생이었습니다. 2000년 의과대학 신입생 시절 진료와 투약을 분리한다며 정부가 의약분업을 강행했습니다. 의약분업 사태의 풍랑을 보라매공원에서 비를 맞아가며 때로는 길거리 집회에서 함께 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병원의 전공의였습니다.
수련병원 인턴생활 하루에 5분씩 자며 수술방에서 졸다가 교수님의 발을 밟기도 했고 당직실에서 계절이 바뀌는지 모르는 생활을 계속하던 전공의였습니다. 주당 100시간 넘게 일해도 야식 먹으며 몸이 불어 가도 환자분들 건강이 좋아지는 것을 낙으로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군의관이었습니다.
차가운 바람의 영천 삼사관 학교에서 난 누구며 여긴 어딘지 하는 시간을 군의관 동기들과의 격려로 버텼습니다. 밤이슬을 맞아가며 야외 훈련에서 전투식량에 맛다시와 참치를 비벼 먹으며 행복해했고 씻을 물이 없어서 물티슈로 세수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간다지만 39개월의 의무복무 기간은 길고도 참으로 길었습니다.
저는 의대 입학한 지 15년이 지나서야 한 명의 전문의가 된 대한민국 의사입니다.
개원할 자금은 없고 월급 받는 병원에 근무하는 대부분의 의사들과 다르지 않은 한 의사입니다. 늦은 나이에 결혼하고 이제 막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전셋집 살면서 집을 사기 위해서는 얼마나 더 많은 시간 동안 돈을 모아야 하는지, 치솟는 부동산 가격을 보며 걱정하는 대한민국 평범한 가장입니다.
2. 정부가 주는 혼란스러움
국가는 자신들이 의사 인력을 양성했다고 합니다.
저는 의대에 입학하기 위한 입시 비용이나 의과대학 등록금 등 국가의 도움을 받아 본적이라고는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남들이 20개월도 길다며 더 줄인다고 하는 군대 생활을 39개월 하며 사회로 나왔는데, 국가는 저에게 대체 무슨 양성을 해줬다는 것인가요?
일부 환자 단체들은 우리를 적폐, 의료 기득권 독점 세력이라 합니다.
저는 환자들을 보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같이 공감하고 있는데 우리가 어떤 기득권을 갖고 있나요? 의사는 환자를 돌보기 위해 있는데 왜 일부 환자 단체는 우리를 적대시하나요?
정부는 대한민국에 의사가 부족해서 지금 당장 의사를 늘려야만 한다고 합니다.
전국 어디를 가나 동네 병의원이 곳곳에 있고 몸이 아프면 언제든 당일에 진료를 볼 수가 있는 것이 우리 대한민국 의료입니다. 무상의료의 천국인 영국이나 유럽 선진국처럼 몇 날 몇 주를 기다려서 전문의 진료를 보거나 민영의료의 천국인 미국처럼 의료비가 비싸서 진료를 보지 못하는 것과 비교한다면 대한민국의 의사가 모자라면 정말 가능한 일일까요? 왜 의사가 모자란데 해외 유학생이나 교민들은 우리나라로 들어와서 진료를 보고 건강검진, 수술을 받을까요? 정부는 의사수를 늘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는데 저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또 정부는 필수 의료과를 전공하는 의사가 모자라서 의사 정원을 늘려야 한답니다.
며칠 전 아내가 출산하고 대학병원 영수증을 보고 한숨이 나왔습니다. 병원 병실료를 제외한 나머지 총 금액이 40만원이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이런 저비용에 사람의 가장 고귀한 생명을 출산하는 것을 감당해야 합니까? 수술 후 문제가 생기면 수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현실에서 의사들이 산부인과를 전공하지 않는 것은 정부가 이렇게 국민 건강에 중요한 필수 의료과를 저수가로 말살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의사 수를 늘린다고 의사들이 중증 외상외과나 의료감염을 관리하는 감염 내과, 심장 수술하는 흉부외과, 산부인과를 전공할까요? 이런 필수 의료과를 전공해도 전공을 살릴 양질의 일자리가 없습니다. 정부가 필수 의료에 대한 비용을 너무 낮게 책정해서 병원 입장에서는 필수 의료를 하는 의료진을 많이 고용할 수가 없고 이미 있는 의료진의 몸만 갈아 넣어서 유지하는 상황입니다.
빵집에서 슈크림 빵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이 100원인데 정부에서 80원에 팔라고 하면 빵집에서 슈크림 빵이 없어질까요? 계속 남아 있을까요? 빵집에 이윤을 남길 수 있는 빵만 남기고 나머지는 없어지는 것에 대한 책임은 빵집에 있나요? 정부에 있나요?
지방에 의사들이 없어서 지역 의사제를 해야 한다고 정부는 주장합니다.
지방에는 의사만 모자란 것이 아니라 고령화와 출산율 감소로 지방 인구 자체가 줄어갑니다.
그리고 정부의 높은 분들은 자신들의 지방 집은 팔면서 서울 집은 놔두는 상황에서 의사들이 지방에 내려가지 않는다고 질타를 합니다. 지방의료가 황폐화된 근본 원인을 찾고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치논리로, 지역주민의 요구로 의대를 만들고 의사를 늘린다는 발상은 기가 막힙니다. 차라리 울릉도나 마라도에 짜장면 의과대학도 하나 만드시지요.
KTX를 타고 반나절이면 목포에서 서울로 오는 세상에 지방 환자들이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등의 서울 대형병원에 오는 것은 어떻게 막고 지방의료를 활성화할 것인지 정부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3. 깨우침
저는 이제 깨달았습니다.
의과대학 시절에 민주주의와 독재 철폐를 외치던 운동권 선배들이 나중에 학생 때 했던 주장과 언행일치하는 삶을 살까 매우 궁금했었습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이 인도주의와 인권, 무상의료를 외치지만 자신들의 자녀들은 영어유치원, 사립학교 보내고 자신들이 싫어하던 미국 등의 선진국에 해외 유학을 보낼 궁리하는 모습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입만 열면 지방의료, 공공의료, 무상의료 이야기하면서 왜 본인들이 지방에 가서 지방의료와 공공의료에 헌신하지 않는지, 무상의료를 하지 않는지 궁금했는데 이제 깨달았습니다.
또한 정부가 의사들을 적폐와 기득권 취급하며 의사수를 늘려야 한다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K 방역은 의료진 덕분이라더니 K 방역 홍보하는 데는 어마어마한 국가 예산을 쓰면서 의료진 수당은 안 주고 지연시키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들은 정책이나 일이 잘되면 자기 덕분에, 잘 안되면 다른 사람 탓하기 바쁜 사람들이었습니다. 남들에게는 자신들이 하기 싫은 것을 강요하고 자신들은 과실만을 따먹으려고 합니다.
그 모든 것은 자신들의 이익과 자리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이 당연히 있습니다만 가면을 쓰고 욕망을 숨기는 사람보다는 차라리 솔직한 사람이 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결국 깨달았습니다.
생각이 다른 상대와 대화와 공감으로 문제를 풀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상대방이 이미 답을 정해놓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경우는 대화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부가 현재 의대 정원인 3000명보다 더 많은 4000명을 증원한다는 것을 이미 정해놓은 상태에서 대화는 요식행위였습니다. 상대방이 진정으로 대화에 나서게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필요한 것을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정부가 움직이게 하기 위한 우리 안의 결집과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4. 권력자들의 기술과 작업
정부가 국민들에게 분열과 혼란을 일으키는 것은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정부, 권력층이 그리고 힘 있는 시민단체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자신을 따르는 지지층들과 따르지 않는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증오심을 부추겨서 혼란에 빠뜨리며 그 사이에 자신이 그 과실을 따먹는 되풀이된 역사가 우리 세계사에 늘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문화 대혁명 시기 마오쩌둥 정부는 자본주의와 전근대적인 문화를 적폐로 규정하고 없애야 한다며 국민들의 갈등을 부추기고 분열을 조장, 정부에 맹목적인 충성을 보이는 홍위병들을 동원해 가진 자로 규정된 자들을 학살하고 정권의 반대자들을 몰살했습니다.
캄보디아 역시 크메르루즈라는 독재 정권이 노동자와 농민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명분 아래 국민들을 증오와 광기에 몰아놓고 200만명에 이르는 지식인을 학살했습니다.
국가 정책이 국민의 이익이 아닌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서 졸속으로 이뤄져서는 안됩니다.
2000년 의약분업 사태 이후로 국민 건강의료비 중에 약제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그 와중에 의약분업을 추진하는 데 공을 세운 분들은 여전히 높은 자리에 계십니다.
의사 정원을 늘리고 각 지역 정치인들의 소망대로 지역 의과대학, 공공 의과대학을 신설해 주면 그 정책을 이뤄준 대가로 나오는 지역 주민들의 민심과 표라는 과실은 누가 따먹을지는 명확하겠지요.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환자 단체나 인도주의, 인권, 무상의료를 표방하는 시민 단체가 의사들을 적폐, 기득권 집단으로 모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래야 자신들의 정체성과 선명성이 유지가 되고 자신들의 주장이나 단체를 유지할 명분이 됩니다. 한때는 저분들에게 이런 취급받는 게 억울했지만 이제는 이해가 됩니다. 다 자기들 살려고 하는 짓이었고 이제는 측은하면서 불쌍하기까지 합니다.
정부 정책의 근거가 되는 통계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정부는 우리나라가 OECD 평균의사수보다 모자란다고 의사수를 늘리는 근거로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의료수가가 OECD 평균의료수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이나 우리나라 의사 증가율이 OECD 의사증가율을 초과한다는 것 등의 불리한 통계는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이제야 이해됩니다. OECD에서 발표한 의사가 부족한 나라에 우리는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통계만 가져다 쓰는 통계 마사지는 정상적으로는 해서는 안 되는 해악입니다.
그렇지만 통계를 통해 국민들을 속이고 내 편은 선하고 상대 진영은 악하다는 진영논리와 갈라치기로 국민들 간의 분열과 불신을 조장하는 것은 지지자들의 힘이 절실히 필요한 집권자들에게는 굉장히 큰 기술이자 무기입니다.
5. 의사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전국의 의사들이 늘어나면 생명에 필수적인 전공을 하는 의사가 늘어날까요? 사람 출산하는 비용보다 강아지 출산하는 비용이 훨씬 더 높은 나라에서 누가 필수의료를 전공할까요?
정부는 생명에 중요한 필수의료의 비용을 올려서 전공하는 의사들이 많아지게 해야 합니다.
대통령께서는 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2012년 10월 7일 의사 가족대회에서 우리나라의 저수가를 언급하셨고 2017년 8월 31일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 핵심정책토의에서 의료 수가가 적정화 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017년 12월 11일 수석·보좌관 회의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면서 의료 수가 체계도 합리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라고 하셨습니다.
의사들 중 그 누구도 소아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외과, 외상외과, 의료감염, 중환자의학 등의 생명에 직결되는 필수의료의 수가를 정상화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정부가 생각하는 적정 수가란 무엇입니까?
생명을 살리는 필수의료에 돈을 더 지불하는 것이 초음파, MRI 급여화, 한약 급여화에 주시는 돈보다 아깝고 분하십니까? 그렇다면 국민들에게 그렇게 솔직하게 말씀하십시오.
정부는 의료계의 근본 원인을 직시하고 해결 노력을 논의해야 합니다.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의사수를 늘려서 전국에 강제로 뿌리는 것이 아니라 지방에 왜 의사가 부족한지, 공공의료에 종사하는 의사가 왜 모자란지, 필수의료를 전공하는 의사가 왜 사라져가는지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해야 합니다.
의사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 수도권 집중 현상은 더 늘어나고 피부 미용 성형에 종사하는 의사들이 급증하고 살아남기 위한 싸구려 저가 덤핑 의료가 만연할 것입니다. 쿠바와 베네수엘라 의료가 그 답이 되겠지요.
정부가 국가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선심성 정책으로 돈을 퍼주고 자신을 따르는 국민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던 베네수엘라는 국민들이 살기 위해 다른 나라로 탈출하는 망한 국가가 됐습니다. 의사들이 발에 챌 정도로 많다는 쿠바는 의사들을 아예 다른 나라로 수출해서 앵벌이 시켜서 그 돈으로 국가 경제를 유지한다고 합니다. 쿠바나 베네수엘라 무상의료가 좋다고 극찬하는 분들은 제발 아프면 그 나라로 가십시오.
6. 의사들이 나아가야 할길
의사들은 잘못된 정부 정책에 반박과 대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해야 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첫째, 국민들에게 의사 정원을 늘리는 정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데 필요한 필수 의료를 살리는 정책이 더 중요함을 적극 홍보해야 합니다.
둘째, 국민들에게 의사 정원을 늘리는 정책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나 소득 주도 성장 정책 등과 같이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정책이라는 것을 널리 알려야 합니다.
셋째, 국민들에게 의대 정원을 늘리는 정책은 우리나라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의 우수한 인재들을 의대에 쏠림 현상을 만들어 국가의 기간을 흔드는 일임을 설득시켜야 합니다.
넷째, 정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민들의 생각과 여론을 움직이지 않고서는 정부의 정책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전국의 모든 의료기관에서는 진료실과 대기실에 정부의 주장에 합리적 반박을 제시하는 팸플릿과 동영상(지식의 칼 같은)을 지속적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다섯째,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들의 수많은 직역 간 이익이나 갈등보다는 우리는 앞으로의 국민 건강과 의료계의 미래가 지금 굉장히 중요하다는 인식을 같이하며 의대생 전공의 의대 교수 봉직의 개원의 모두 한마음과 한뜻을 모아야 합니다. 분열된 조직으로는 그 누구도 상대할 수 없습니다.
천망회회 소이불실이라 했습니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도 넓어서 엉성해 보이지만 놓치는 것이 없습니다.
또한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하늘의 뜻과 진정성 어린 의사들의 마음이 합치된다면 우리는 못 이뤄낼 것이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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