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미국 뉴욕병원의 응급실에서 18세 여대생이던 '리비 지온'은 전공의가 처방한 약을 복용한 후 사망했다.
변호사였던 그녀의 아버지는 이 사건을 의사에 의한 살인으로 규정해 해당 전공의를 고소했고, 소송 과정에서 전공의들이 36시간 연속근무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였고, 뉴욕주는 전공의들의 과도한 근로와 열악한 수련환경이 안전사고의 원인이라고 판단해 1989년 전공의 주당 근무시간을 80시간으로 단축하고, 연속 근무시간을 24시간으로 제한하는 일명 '리비 지온법'을 제정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2000년 대 후반 S씨는 2000년대 한국에서 의사 면허를 취득한 후 대학병원에서 인턴을 마치고, 미국에서 가정의학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았다.
S씨는 가정의학과 레지던트 1년차로 출근한 첫날 일과시간이 끝나자 "이제 퇴근하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로부터 또 10여년이 지나 이제 대한민국 수련병원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최근 고대 안암병원은 전공의 숙소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근무를 마친 전공의들을 지체 없이 퇴근시키기 위한 조치다.
고대 안암병원 이헌정(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교육수련부장은 8일 "전공의들이 잠을 충분히 자지 않으면 의료행위를 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할 수 있고, '리비 지온' 사건처럼 약화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환기시켰다.
그는 "그동안 인턴, 레지던트들은 근무가 끝나도 집에 가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계속 숙소에 남아 이런 저런 일을 처리하고, 당직이 아니더라도 콜이 들어오면 병실로 달려가는 문화가 고착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공의특별법이 제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숙소 문화부터 없애야 한다는 판단에서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밝혔다.
당일 당직 근무자를 제외한 모든 전공의들은 근무시간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라는 것이다.
지난해 제정된 전공의특별법은 ▲전공의 주 80시간 초과 수련 금지 ▲36시간 초과 연속근무 금지 ▲연속수련 후 최소 10시간 휴식시간 보장 등을 골자로 하고 있지만 주 100시간 이상 근무하는 수련병원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또 고대 안암병원은 3억여원을 편성해 숙소에 머물던 전공의들이 전세나 월세를 구하면 실비 차원에서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헌정 교육수련부장은 "당직 근무자가 아니면 쉬어야 한다. 적어도 10시간은 쉬라는 게 전공의특별법상 주 80시간 근무제의 핵심"이라면서 "편하게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집으로 보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대 안암병원은 향후 숙소를 전공의 공부방, 휴게실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헌정 교육수련부장은 "이제 우리나라 수련환경도 국민의 건강권을 위해, 전공의의 인권을 위해 달라져야 한다"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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