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 정부가 지역의사제를 기어코 실행할 모양이다. 더 좋은 정책은 외면하면서 효과 없음이 일본에서 증명됐고 예산만 낭비하고 슬그머니 사라질 것이 확실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는 그냥 ‘한다면 한다’라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우선순위가 잘못됐다.
지역의사제를 시행하려면 지역환자제를 먼저 하는 것이 맞으나 현행법 상 주민들에게 지역 내에서만 진료를 받으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 환자는 수도권으로 가는데 의사들만 지역에 묶어 놓을 지역의사제도는 실패할 것이 분명하다.
요즈음 대한민국에서는 부모님이 지역에 거주하는 경우 자녀들의 가장 큰 효도는 ‘부모님이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치료받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 더 이상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이와 같은 수도권 쏠림 현상의 배경에는 사실상 전 국토가 일일생활권, 최고 수준의 교통망, 그리고 한층 높아진 지역 주민의 소득과 지식수준으로 더 높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이다.
이와 같은 요인들 이외에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지역 의과대학과 병원들에 대한 턱없이 부족한 정부 지원과 이에 따른 불신 때문이다.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환자의 의료기관 선택과 진료 횟수에 제한이 없다 보니 환자들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것이다. 지자체 소속 지방의료원들도 전국에 포진해 있지만 지자체 지원이 부족함은 물론 노조 입김 때문에 경영과 의료진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지역 주민은 물론 지역 정치인들도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더욱 우려되는 일은 이러한 수도권으로의 의사 쏠림을 더욱 부추길 일이 예정돼 있다는 것이다. 향후 1~3년 내에 수도권에 12개 의대 부속병원이 들어서며 최대 약 7800개의 병상이 늘어날 예정이다. 그러면 지역 의대로부터의 교수, 의사들의 이탈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의료붕괴의 여파로 배출되는 전문의, 특히 필수의료 전문의 수가 심각하게 줄어들고 있는데 이와같은 의대병원 증설은 지역의료 붕괴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 뻔하다.
정치인과 중앙정부, 지자체는 지역 의료기관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미흡하면서도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은 없이 선거철마다 주민들 집 앞에 공공의대와 대학병원을 설립해 주겠다는 포퓰리즘 공약만 내세우고 있다. 그 결과 주민들은 희망 고문과도 같은 공약에 익숙해 진 나머지 공공의대와 병원 신설이 자신들의 의료서비스 수준을 올려줄 것이라는 잘못된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이런 심리를 악용해 단지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런 공약을 수십년 간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 이런 허튼 공약에는 여야도 없고,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도 않는다.
이런 와중에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열악한 진료 여건과 연구 환경에 대한 불만으로 지역의대 교수들의 수도권으로의 이직이 많아지면서 남은 교수들의 업무에 과부하가 걸리며 이로 인해 교수들의 이탈에 가속도가 붙고, 신규 교수 지원자 수도 급감하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교수 수가 줄어드니 전공의 지원자도 같이 줄면서 지역의료와 수련 프로그램이 함께 붕괴하고 있다.
이제 이런 악순환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단 하나,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지역의대와 의료기관의 인력, 장비, 시설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것이다. 지역 공공의대와 병원 신설, 지방의료원 신설, 지역의사제 도입에 들어갈 국민 세금을 과감히 기존 의대와 병원의 인력, 시설 장비에 투자해야 한다.
최근 언론에서 지역의대와 병원 신설, 지역의사제 도입 등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옹호하는 듯한 기사들이 언론과 방송에 자주 나오면서 지역 주민의 희망 고문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주말에는 갈 병원이 없어요, 밤중에는 갈 병원이 없어요, 병원에 가려면 택시로 15분!도 더 가야 해요, 일주일에 한 번 씩 당뇨, 디스크로 고생하시는 부모님 모시고 7시간 운전해서 서울 병원에 가야 해요, 실명 위기의 미숙아를 데리고 안과전문의 찾아서 200km 떨어진 서울로 와야 해요” 등 끝도 없고 황당한 뉴스들이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당뇨, 디스크는 구태여 서울까지 와야 하는 병이 아니다. 그리고 도대체 신생아 망막 전공한 안과 세부 전문의가 대한민국 전국 방방곡곡에 배치되는 것이 가능하고 바람직한 일인가?
최근에 나온 더 황당한 기사 하나를 소개한다. 탄광 폐광으로 인해 인구소멸 위기에 처한 지자체가 내어놓은 대책 중 하나가 가속기 도입, 암센터, 의료 클러스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다급하다지만 이런 의료정책들을 주민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발상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인구소멸 지역 활성화 대책이라고 내어놓은 공공의대 신설 법안보다 더 황당하다.
주민들은 누구나 가고 싶은 지역 병원, 믿을 수 있는 지역 의사가 있다면 수도권으로 가지 않고 당연히 집 근처 의료기관을 선호할 것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 아래의 여섯가지 조건을 주장하고자 한다.
①지역 공공의대와 병원 신설을 끝까지 막아야 하고 ②기존 지역 의료기관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과감한 인력, 장비, 시설 투자 ③지역 대학병원, 종합병원의 전문의, 세부 전문의 부족은 기관 간의 과감한 선택과 집중, 구조조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모든 병원이 모든 분야의 전문의, 및 세부 전문의를 골고루 갖추고 모든 분야를 잘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지역 대학병원, 종합병원은 각자가 잘하는 분야에 집중하고, 비교적 약한 분야는 타 대학/병원이 잘할 수 있도록 선택과 집중, 통폐합을 통한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④지역 환자에 대한 이송시스템을 전면 개편, 확장, 다양화해야 한다. 지역 특성에 따라 앰뷸런스, 헬기를 확보하고 소방, 경찰, 운수회사, 봉사단체와 협력해 빠르고 효율적인 환자 이송시스템을 확보해야 한다. ⑤원격의료, 재택진료, 순회진료도 좋은 선택으로 적극 고려해야 한다. ⑥수도권 12개 대학병원 분원 증설에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이대로 7800 병상이 모두 추가된다면 모두 함께 망하는 길로 들어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