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종희 교수 "한국 의사, 어느 나라 보다 형사 사법리스크 커… 형사 입건 연평균 735명"
미국 의료과실 인한 의사 형사처벌 판례 없어…뉴질랜드처럼 무과실 손해배상 제도 도입 고민해야
연세대학교 서종희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형사 입건되는 의사가 연평균 735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민사소송 건수와 조정중재원 처리 건수를 합하면 한국 의료진은 매년 3000건 가까운 법적 분쟁에 휘말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상 일본, 미국, 뉴질랜드, 독일, 스위스 등 타 선진국과 비교해서 한국 의료진이 가장 큰 형사 사법리스크 부담을 안고 있는 셈이다.
연세대학교 서종희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8일 의료분쟁 관련 법제도 개선방안 모색을 위한 국회공청회에서 '의료사고 관련 민형사 소송 등 조사 분석을 위한 연구' 보고서를 공개했다.
해당 보고서는 대한의사협회 의료배상공제조합이 발주한 연구용역에 따라 진행됐다.
의사 업무상과실치사상죄 입건 735명…유죄 판결은 20명 내외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법원은 의료과오 관련 형사소송에서 인과관계 입증 완화 법리를 도입하지 않고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 최근 5년간 통계를 살펴보면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입건된 의사는 연평균 약 735명으로, 기소돼 형사재판을 받은 의사는 연간 약 40명이다. 이 중 실제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은 약 20여 명 내외다.
민사소송의 경우 법원에서 선고되는 의료과오 민사소송 1심 건수는 2020년 이후 매년 700~900건이다. 매년 선고되는 판결 중 약 50% 내외로 환자의 청구가 인용되고 있다.
또한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는 매년 약 2000건 정도의 의료분쟁 조정 신청이 접수된다. 이 중 약 70% 내외인 1400건 정도가 조정 절차로 넘어간다.
조정결과를 보면 최근 5년간 조정이 개시된 약 7459건 중 4980건(66.7%)이 원만히 해결됐다. 평균 조정 처리 기간은 약 90일이다.
서종희 교수는 "형사 입건 수에 비해 실제로 재판까지 받는 경우는 드물지만 매년 수백 명의 의사가 송치부터 시작해 형사소송의 부담을 겪고 있다. 이는 필수의료 기피 현상의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민사소송 건수와 조정중재원 처리 건수를 합하면 의료진은 매년 3000건 가까운 민사 분쟁에 휘말리고 있다. 이런 부담은 소극 진료, 과잉 진료, 필수과 기피 현상을 심화시키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해외 선진국들, 일반적인 과실을 넘는 '고의 중대한 과실' 인정에만 형사처벌
연구진은 한국과 비교해 일본, 미국, 뉴질랜드, 유럽 등 선진국과 의사의 형사 책임 구조를 비교했다.
연구결과, 우선 일본의 의료사고 민사 소송 건수는 2004년 1110건으로 정점을 기록한 이후 감소 추세를 보여 2023년 610건으로 승소율은 20% 전후로 낮은 편이다.
판례 경향은 인과관계 입증 시 고도의 개연성을 요구하지만 상당 정도의 가능성만으로도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 경우 배상액은 위자료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다.
형사소송 기소율은 2005년 52%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2015년 기준 12%로 점차 하락 추세다. 또한 업무상 과실치사상죄의 적용은 중대한 과실에 한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으로 의사의 형사책임 범위를 제한적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의료과오로 인한 의사의 형사책임을 묻는 연방대법원 판례는 없다. 1809년부터 1981년까지 약 172년 동안 의료과오를 항소심에서 처리한 사례는 15건에 불과했다. 특히 1981년부터 2001년까지 약 20년간 추가된 사례도 9건에 그친다.
서종희 교수는 "미국의 의료과오로 인한 형사책임 추궁이 극히 제한적이다. 의사가 형사책임을 지는 경우는 일반적인 과실을 넘어서는 '고의에 가까운 중대한 과실'이 있을 때에만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뉴질랜드 의료사고 분쟁처리와 관련해서도 그는 "뉴질랜드는 세계 유일의 무과실 손해배상 제도인 ACC를 통해 의료과오 피해자에게 보상을 제공한다. 의사의 과실 유뮤와 관계없이 국가가 운영하는 공사가 기금으로 보상한다"며 "이로 인해 환자는 복잡한 소송 절차 없이 신속하게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서 교수는 "뉴질랜드 의사 형사책임도 합리적 일반인이 기대할 수 있는 주의의 기준에서 현저히 이탈한 경우에만 인정돼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 사례는 매우 드물다"고 전했다.
아울러 "한국도 미국과 같이 민사책임 중심의 분쟁 해결 모델을 강화하고 형사처벌은 고의나 중대한 과실에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뉴질랜드의 ACC 제도처럼 의료과오로 인해 손해를 입은 환자에게 무과실 보상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다. 특히 산부인과, 응급의료 등 필수의료 분야부터 ACC와 유사한 손해배상체계를 우선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독일은 의료과실 입증책임 환자에 있어
독일과 등 유럽도 의사의 형사책임은 제한적이다. 우선 독일은 의료과실 입증책임 자체가 원칙적으로 환자에게 있다.
중대한 진료의 오류가 존재하고 이로 인해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경우에만 인과관계가 추정된다. 이때 중대한 과실은 객관적인 관점에서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는 과실이며 입증은 환자 측에서 해야 한다.
서 교수는 "독일 형사책임은 진료 오류로 상해 또는 살인에 해당할 수 있으나 고의가 입증된 사례가 극히 드물다"며 "의사의 의무 위반과 환자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는 확실에 가까울 정도도 명확히 존재하는 경우에만 형사책임을 긍정한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이 철저히 적용된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 법 체계에선 원칙적으로 주장하는 자가 입증해야 한다.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입증책임을 경감하고 있다"며 "독일과 스위스 모두 고의나 중과실이 아닌 한 형사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타 국가 사례를 종합해보면 한국의 의료진은 다른 어떤 나라 의료진 보다 더 큰 사법 리스크의 부담을 안고 있다"며 "필수의료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민사 책임을 통해 환자의 피해를 신속히 보상하는 대신 의료진의 형사책임을 면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보조 및 특별기금을 통해 일부 또는 전부에 대해 환자에게 발생한 민사피해에 대한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무과실보상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